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08:27:11

강봉환

1. 제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강봉환2. 의병장, 강봉환

1. 제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강봉환

<colbgcolor=#0047a0> 출생 1867년 9월 8일
전라도 제주목 구우면 금악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1]
사망 1961년 3월 5일
제주도 제주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본관 진주 강씨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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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9월 8일 전라도 제주목 구우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8년 10월 5일 제주도 남제주시 법정사(法井寺)에서 승려 김연일, 강창규, 방동화(房東華) 등과 함께 항일 무력시위에 참가했다. 이에 앞서 김연일은 1918년 봄에 강창규, 방동화 등의 승려를 중심으로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한 뒤 신도를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했다. 이윽고 1918년 10월에 강봉환을 비롯한 30명의 신도가 법정사를 근거지로 뭉치자, 김연일은 그해 10월 5일에 스스로를 불무황제(佛務皇帝)로 칭하고 도대장 이하 군직 체제로 조직을 편성했다.

이후 김연일은 제주도 내의 일본인 관리 처단과 일본인 추방을 행동 방침으로 정하고 그 전에 각 면의 이장에게 격문을 배호파고 동참할 것을 권유해 군민 4백명을 운집시켰다. 강봉환 등은 김연일의 지시에 따라 일본 경찰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전선을 절단하여 각 주재소를 고립시킨 뒤 중문 주재소를 습격했으며, 주재소에 감금되었던 구금자 13명을 석방하고 일본 상인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이어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이틀만에 체포되었다.

강봉환은 이 일로 1919년 2월 4일 과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제주도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61년 3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봉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10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2. 의병장, 강봉환

<colbgcolor=#0047a0> 출생 1883년
출생지 미상
사망 1908년 6월 4일
황해도 장연군 목감면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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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와 의병 가담 전 경력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는 1908년 황해도 송화군과 장연군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으나 1908년 6월 4일 황해도 장연군 목감면에서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된 직후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강봉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진주 강씨 집성촌이다. 만화가 박시백박진우 전 경찰대학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