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http://cfile225.uf.daum.net/image/1546F70D49842029A2D53B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 있는 바윗덩이. 1982년 6월 29일 대구광역시의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건들바위는 건들바위네거리 바로 옆에 있다. 건들바위는 대구분지의 지반 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예로부터 바위의 모습이 삿갓을 쓴 노인과 같다고 하여 삿갓바위라고도 불려 왔다고 한다. 원래 바위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견이 있긴 하지만 신천에서 갈라진 물길(가칭 대구천)이 이곳을 지나 반월당을 거쳐 달서천과 합류했다고 본다.신천이 원래 이 쪽으로 흘렀으나 1778년 정조 2년 대구판관 이서공이 물길을 현재의 신천으로 돌렸다는 얘기는 오래된 오해다. 이서공 이전의 고지도에도 신천은 이미 新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건들바위 일대는 본래 제방을 쌓기 전에는 맑고 깊은 냇물이 흘러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기던 명소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구 10경의 하나다. 1994년 건들바위 일대의 조경 공사가 이루어져 분수와 폭포가 설치되어 있다.
홀로 떨어진 곳에 우람하게 치솟은 외형 덕에 속칭 득남석으로 인기가 높았다 한다. 덕분에 조선 말기에 이 근방은 무속촌이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건들바위의 바로 옆에는 교회가, 맞은편에는 불교대학(진각종)이, 뒷편에는 대구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2008년 12월 9일, 풍화침식 및 나무뿌리에 의한 지반약화로 근처 절벽이 일부 붕괴하는 사고가 있었다. 관련 기사 밤 늦게 일어난 일이라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건들바위의 안내 표지판과 대구십경[1]이 파손되었다. 사실상 절벽 위에 있는 가옥들도 무시못할 원인이지만 시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지어진 것들인지라 대구시로서는 어쩌지도 못하고 있다. 문제는 주변 절벽상단이 여전히 9도 가량 기울어 져 있으며 문화재 관리법 상 주변 절벽에 대한 보수도 불가능하다. 현재 주변 조경은 공사완료.
근처에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건들바위역이 있다.
3. 기타
2020년 건들바위 위에 C1912 (Cliff on Geondlebawi 1912) 대구복합문화예술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대봉정(카페), 대봉산책(독립서점), 보이드갤러리, 더피자사운즈[2], 청담동 마녀김밥, 아르누보플라워 등이 들어섰다.2024년 북스테이션과 대봉안내소, 딴짓가옥 등 대봉2동 구도심지 <골목문화>를 지역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4. 문화재청 소개글
건들바위와 주변 단애(斷崖, 깍아지른 든한 낭떠러지)는 대구분지를 관통해 흐르는 신천(지류인 대구천)에 의하여 구릉 일부가 침식된 것으로서 대구의 지반을 구성하는 중생대 퇴적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노출된 단애는 퇴적의 층위를 깨끗하게 나타내고 있고, 단애 주변 건들바위는 퇴적암층의 절리에 따라 침식되어 암벽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 형성된 것이다.
건들바위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서 있는 모습이 불안하게 보여 인근 주민들은 건들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까지만 해도 이곳에 무당들이 제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이 찾았다.
20세기 전기까지만 해도 대구천은 건들바위 앞으로 흘렀으나, 이후 지속적인 개발로 인해 물길은 사라지고 현재와 같이 복개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과거에는 건들바위 앞으로 물이 흘러 수려한 풍광을 보이는 명소였다고 한다. 또한 건들바위는 입암으로 불리어 서거정(1420~1488)이 지은 대구십영(大丘十詠) 중 입암조어(笠巖釣魚) 시제가 되었던 자연경관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에는 입암이라는 명칭에 대해 삿갓바위(笠巖)가 아닌 선바위(立巖)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들바위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서 있는 모습이 불안하게 보여 인근 주민들은 건들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까지만 해도 이곳에 무당들이 제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이 찾았다.
20세기 전기까지만 해도 대구천은 건들바위 앞으로 흘렀으나, 이후 지속적인 개발로 인해 물길은 사라지고 현재와 같이 복개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과거에는 건들바위 앞으로 물이 흘러 수려한 풍광을 보이는 명소였다고 한다. 또한 건들바위는 입암으로 불리어 서거정(1420~1488)이 지은 대구십영(大丘十詠) 중 입암조어(笠巖釣魚) 시제가 되었던 자연경관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에는 입암이라는 명칭에 대해 삿갓바위(笠巖)가 아닌 선바위(立巖)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