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輕工業 / Light Industry부피에 비하여 무게가 가벼운 물건을 만드는 공업을 말한다. 의류, 음식료품, 종이, 목제품, 장신구, 플라스틱 제품, 문방구, 완구, 각종 생활용품 등의 잡화품을 생산하는 소비재 산업이 중심이며 중공업에 비해 소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하다. 공업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공업의 뿌리'라는 별명이 있다.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며, 뛰어난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로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한다. 메이드 인 차이나로 대표되던 시절의 중국이 있으며 현재는 중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베트남,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지로 옮겨가는 추세이다.
그렇다고 경공업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어디까지나 규모의 경제에서의 기술 레벨이 낮다는 평가이지, 실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만만치 않은 기술과 노하우가 발휘되는 산업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볼펜 한 자루[1], 신발 한 켤레일지라도 적절한 시장가격에 좋은 품질을 갖추려면 대량생산이 가능한 생산설비를 구축해야하고, 엄격한 원료 품질검사와 정교한 공법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령 세계 명품 의류 시장을 선도하는 이탈리아의 모직, 피혁 제품들의 인기와 위상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발전된 경공업은 민간경제와 문화에 직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발휘한다. 이탈리아 뿐 아니라 이케아로 대표되는 저가형 원목 가구제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웨덴이라던가,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등등도 좋은 예시에 들어간다. 경공업의 발달로 인한 소비재의 대량 생산은 민생을 풍요롭게 하고, 그 나라의 제조업의 기초역량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경공업이 괜히 공업의 뿌리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2. 구 공산주의 국가와 경공업
경공업을 무시하고 중공업만을 밀어붙이던 공산주의 국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던 약점 중 하나였다.대표적으로 구소련의 예가 있다.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전차와 미사일, 각종 개인화기 등을 대량으로 생산해 공산진영 국가들에 수출하고, 항공 및 우주 산업을 선도하는 나라였지만, 정작 경공업이 굉장히 빈약해 치약이나 면도날 같은 생필품을 사려면 줄을 서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거나 발품을 팔아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했다. 그리고 설사 생필품을 사더라도 품질이 영 좋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그나마 품질 좋은 물건을 사려면 웃돈을 주고 외화상점에 들르거나 아니면 농민시장에 들러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군에서 사용되는 보급품의 질도 서방권에 비해 열악했다[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은 공여 받았다가 격파된 M4 셔먼 전차에서 의자에 쓰는 가죽을 뜯어다가 구두를 만들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였고, 대전 이후에도 뒤떨어진 피복류의 질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3] 소련의 경공업 노하우 부족은 공업에서 매우 중요한 정밀가공 기술의 부족으로 나타났고, 이는 현재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북한의 경우, 남한보다 공업적으로 더 발전했고 잘 살았던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조차 경공업은 남한에 뒤져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국 전쟁 때 개전 3일만에 북한이 서울특별시를 점령했을 때 북한군인들이 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명동에 가서 옷을 빼앗는 것이었다. 이는 대표적인 경공업 분야인 섬유, 의류 산업에 있어서 북한의 수준이 빈약해서 발생한 현상이다. 6.25 전쟁 직전 당시 북한이 남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 대만보다도 경제정상화가 일찍 진행되어 동북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앞선 국가였지만, 일제 시대 때의 경제 정책에 의해 기형적으로 중공업만 육성되었기 때문에[4] 경공업이 부실했다. 전후 복구 때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중공업 시설을 우선 복구하느라 경공업은 등한시 되었다.
따라서 소련, 중국, 동유럽,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모두 이런 탓으로 자체적인 경공업 능력이 부족하거나 신뢰하기 힘든 품질을 보이는 편이었다.[5] 이 나라들이 전통적인 의복이나 음식 등은 특색이 있다 하더라도, 상품으로서 생각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류, 스포츠 용품, 식품 브랜드는 거의 없다.
다만 중국의 경우 1980년대에 현대화에 성공하고 흑묘백묘론 사상에 입각한 개혁개방을 강력히 추진한 이후부터는 경공업이 엄청난 기세로 발달하면서 세계 각지로 경공업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 규모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메이드 인 차이나일 정도. 그러나 중국의 제품들은 값이 매우 싸고 대량으로 양산하는 것이라, 비록 값이 매우 비싸고 소량으로 양산하더라도 품질이 매우 좋은 구미 선진국의 제품들에 비해 상대가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다만 이것도 어느 정도 극복된 게, 수십년간 하청을 하면서 제조 기술력과 노하우가 쌓이다보니 잘 만든 것은 선진국의 것과는 별 차이가 없을 정도는 되었다.
베트남이나 라오스도 수출용 경공업은 매우 발달되어 있고, 북한도 2010년대 이후로는 기업의 자율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경공업이 이전보다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단, 쿠바의 경우에는 경제 재제 때문에 선진국의 기술을 들이기 난망한 면이 있고 내수 시장도 크지 못하다보니 미제 같은 것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편이다.
현재 선진국의 유명 브랜드 옷이 아울렛 같은 데서 대량으로 매우 싸게 풀릴 때 이런 옷들을 보면 대부분 하청을 주고 개도국에서 만든 것이다. 이런 옷들은 처음엔 품질에서 별 차이 없어보여 가성비가 매우 좋아보이나, 자주 빨다보면 물이 빠져서 빛이 배래보이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3. 한국 경공업의 역사
한국의 경우 경공업부터 시작해 중공업까지 이룩하는 방향으로 산업화가 진행되어 자체적인 공업능력을 탄탄히 갖춰내었다.3.1. 광복 이전
대한제국 성립 이후, 공업진흥정책에 의하여 경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공업으로는 주로 남면북양으로 대표되는 방직 공업이 주로 발달했다.3.2. 광복 이후
6.25 전쟁 이후 기반시설 대부분이 파손되고 중공업 시설과 지하자원도 풍부하지 않았던 남한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이 노동력이었고 따라서 전후 한국은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경공업 위주로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6] 이승만 정부가 기초를 시작해 박정희 정권 당시 수출장려에 따라 주요 수출 품목을 이루며 한국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한국인의 교육 수준과 임금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집약 위주의 경공업은 쇠퇴하게 되었다. 대신 요즘에는 경공업에 기계 및 자동화를 대대적으로 도입하고, 많은 기술력을 축적하여 품질이 뛰어난 경공업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는 등 여전히 경공업은 제 역할을 하고 있다.4. 관련 문서
[1] 볼펜의 촉을 담당하는 볼은 극도로 작으면서도 매우 정교하게 구형으로 깎아야 하기에, 요구되는 기술력 수준이 생각보다 매우 높다.[2] 군사장비 및 무기류야 중공업 분야와 연관이 깊지만, 군복이나 전투식량 같은 보급품은 당연히 경공업 분야다.[3] 더군다나 구소련이 몰락 하고 러시아로 바뀌었어도 이는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수입한 도시락 라면이나 초코파이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받자 생필품 부족부터 나타난 게 다 이유가 있다.[4] 일본제국의 목표인 대동아공영권의 달성을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려면 군용 무기와 이를 조달할 열차나 선박 등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5] 그나마 과거에는 공산권 내에서 중부유럽 쪽이 제일 나았다. 체코,폴란드,동독 등 중부유럽 지역은 역사적으로 공업이 꽤 발달된 지역들이었기 때문. 과거 서방제 물건을 구하기 힘들었던 북한에서는 폴란드제 만년필, 헝가리제 지갑 같은 동구권 공산품이 큰 선물로 통했다.[6] 주요 대기업인 삼성, LG, SK 모두 경공업으로 시작한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