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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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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계순희(桂順姬, Kye Sunhui)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출생 1979년 8월 2일 ([age(1979-08-02)]세), 평양시
학력 모란봉과외체육학교
종목 유도
체급 -48kg(1996) / -52kg(1997~2002) / -57kg(2003~2010)[1]
신체 158cm
본관 수안 계씨

1. 개요2. 선수 경력3. 근황4. 수상 기록5. 기타

1. 개요

북한의 前 여자 유도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1979년 8월 2일 평양시(이북5도 기준 평안남도 평양시)에서 태어나 모란봉과외체육학교에서 유도를 배웠다. 평양시 출신인데다 고난의 행군기가 아닌 1970년대생이므로 그렇게 작은 키가 아니다.[2]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에 만 16세로 출전했고, 국제무대 첫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사실 계순희는 결승전 이전 경기들에서 이미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준결승에서 당시 -48kg 급 유럽챔피언이었던 스페인의 욜란다 솔레르를 한판으로 꺾고 올라갔는데, 당시 준결승 영상을 보면 솔레르를 말 그대로 그냥 힘으로 집어던진다(...)

계순희는 결승에서 당시 84연승을 기록 중이던 일본의 유도 영웅 다무라 료코와 맞붙었다. 당시 다무라 료코는 일본에서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었으며 우라사와 나오키의 유명 유도 만화 YAWARA!의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야와라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다무라 료코의 체급도 -48kg으로 만화 주인공과 똑같았고, 유도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기에 -48kg급에서는 무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마침 다무라 료코는 결승전을 은퇴 경기로 삼을 예정이었고, 모든 일본인들이 다무라 료코가 금메달을 따서 금의환향할 것이라고 믿었다. 경기장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일본 응원단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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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WARA가 쓰여진 일장기를 들고 다무라 료코를 응원하는 일본 관중들(1996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전)

그런데 결승전이 시작되자마자 계순희는 힘으로 다무라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다무라의 공격을 잘 방어해내면서 유리하게 경기를 끌어갔다. 경기 종료 36초 전 계순희의 발뒤축걸기가 들어가고 다무라가 크게 넘어지면서 공식 점수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명백히 유리한 포인트를 얻어냈다. 당황한 다무라는 성급히 기술을 걸면서 들어왔고 계순희는 되치기로 반격하여 마침내 효과를 따냈다. 설상가상 다무라는 급한 마음에 공격을 남발하다 경기 종료 5초를 남겨놓고 위장공격으로 지도까지 받았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에서 바다 건너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만 16세의 소녀가 다무라 료코를 꺾는 대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로는 다무라 료코가 우위에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세계 유도계는 뒤집어졌고, 계순희는 말 그대로 스타가 되었다. 우승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계순희는 우승소감으로 마치 스포츠 만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명언을 남겼으며, 당시 계순희의 이 우승소감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계순희가 목에 건 금메달은 유도 부문에서 최연소 금메달이었다.

후일담으로 다무라 료코는 은퇴를 미루고 -48kg급 체급으로 다시금 올림픽에 도전했지만, 계순희는 성장기였기에 -48kg 체급을 유지할 수가 없어서 결국 올림픽에서 둘의 재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무라 료코는 2000 시드니 올림픽2004 아테네 올림픽 -48kg급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획득하여 한을 풀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후에 야구선수 다니 요시토모와 결혼해 남편 성을 따르면서 현재는 다니 료코로 불리고 있다. [3]

한편 계순희는 그 뒤로도 뛰어난 선수 커리어를 이어나가면서, 애틀랜타에서 다무라 료코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 결코 깜짝 이벤트이거나 우연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했다.

1997년에는 -52kg으로 체급을 올려서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4], 1999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 2001년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북한 선수출신들이 공동 성화 봉송주자로 선정되었는데, 북한 측 성화 봉송주자로 계순희, 남측 성화 주자로 1984 LA 올림픽 유도 영웅 하형주가 선정되어 남북을 대표하는 유도 스타들로 성화주자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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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나란히 성화대에 오른 계순희와 하형주

그러나 계순희는 이때 아시안게임 성적은 동메달에 그치며 아쉬운 성적을 남겼는데, 16강에서 중국의 시안동메이에게 패배한 후 심기일전해서 남은 3경기를 모두 이기고 간신히 동메달을 따냈다. 대회 한달 전쯤에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안고 출전했던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다만 이때 국내 유도 관계자들은 계순희의 얼굴살이 오른 것을 보고 체중 조절에 애를 먹은 것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계속 성장기였기 때문에 체중 조절이 쉽지 않았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2003년 계순희는 다시 체급을 -57kg으로 올렸는데, 적응기간이고 뭐고 없이 바로 그해 2003년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이어 2005년과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땄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했으나 아쉽게 16강전에서 탈락했다. 어찌 보면 실력적으로 최전성기는 -57kg으로 활동하던 때라 할수 있다.

통산하자면 올림픽에 총 4번 출전하여 금, 은, 동을 하나씩 따냈고[5] 세계선수권을 체급을 올려가며 2001, 2003, 2005, 2007 무려 4연패를 달성했으며 그 외에 은메달과 동메달도 하나씩 땄다. 거기에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동메달이 추가된다. 즉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출전한 세계구급 대회에서 모두 포디움에 오른, 여자유도사(史) 에 남을 강자이다.

3. 근황

2007년 유도 코치와 결혼했으며, 2010년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유도 지도자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워낙 화려한 경력을 가지다 보니, 김일성시계를 하사받는 김일성상 수상을 비롯해 '로력영웅', '인민체육인' 등의 칭호를 받는 등 운동 선수로는 북한에서 무려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육상선수 정성옥 선수 다음으로 최고의 지위를 얻는 영예를 누렸다.

2018년 9월 18일, 국제유도연맹(IJF) 명예의 전당에 대한민국조민선과 함께 헌액됐다. #

2020년 10월 13일, 메아리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현재도 유도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1월에는 모란봉체육단에서 책임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근황이 공개됐다. #

4.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48kg
은메달 2004 아테네 -57kg
동메달 2000 시드니 -52k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1 뮌헨 -52kg
금메달 2003 오사카 -57kg
금메달 2005 카이로 -57kg
금메달 2007 리우데자네이루 -57kg
은메달 1997 파리 -52kg
동메달 1999 버밍엄 -52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 방콕 -52kg
동메달 2002 부산 -52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7 오사카 -52kg

5. 기타

  • 북한이 정치적 이유로 미국에서 열린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을 보이콧했다면 이 대회 최고의 화제의 인물이자 북한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스타가 된 계순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그녀가 지도한 것으로 알려진 안금애 선수가 유도 여자 -52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북한에 16년 만의 유도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뤄 냈다. 대한민국의 김경옥을 떨어뜨린 이탈리아의 포르시니티도 한판으로 제압했다.
  •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북한 유도선수로 단독 출전해 연습파트너가 없어서 대한민국 현숙희 선수가 연습파트너가 되어주어 후에 인터뷰에서 감사를 표했다.

[1] 금메달을 취득한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48kg이었기에 대부분 사람들이 -48kg로 알고 있으나, 이때는 너무 어려서(만 16세) 성장이 끝나지 않아 -48kg에 출전한 일회성 출전에 가깝다. 다음 시즌부터 바로 체급을 올려 -52kg에서 상당부분 선수생활을 지냈고, 선수 후반기에는 -57kg로 체급을 또 한번 올렸다. 후술하겠지만 바로 이 체급에서 무려 세계선수권 3연패를 기록했다.[2] 애틀란타 올림픽 당시 결승 상대였던 다무라 료코는 146cm였다.[3] 요시토모는 구대성, 이승엽 동료로 유명하다.[4] 당시 결승에서 대한민국의 김혜숙을 꺾었다.[5] 메달 순서로 보자면 1996 금, 2000 동, 2004 은 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