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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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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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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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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
}}}}}}}}}}}}}}}
<colbgcolor=#000080> 곡옥 3대 국군
진(晉)나라 18대 국군
무공
武公
희(姬)
곡옥(曲沃) → 진(晉)
칭(稱)[1]
아버지 곡옥장백(曲沃荘伯) 선(鱓)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77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715년 ~ 기원전 677년

1. 개요2. 생애
2.1. 곡옥백 시절2.2. 진후 시절
3. 평가

[clearfix]

1. 개요

중국 춘추시대 곡옥의 3대 국군이자 진(晉)나라의 18대 국군. 곡옥장백의 아들이며 진헌공의 아버지이다.

곡옥의 3대 국군으로 진나라의 후작이 되기 위해 익과 싸워 끝내는 진나라를 통일하여 곡옥대진을 종결시키고, 주나라 희왕에게 뇌물을 바쳐 정식으로 진후로 인정받는다. 참고로 곡옥백이었기 때문에 진 무공이 아닌 곡옥 무공으로 불리기도 한다.[2]

2. 생애

2.1. 곡옥백 시절

곡옥 무공은 처음에는 진애후에게 패배해 화평을 청하면서 힘을 길렀다.

진 애후 8년(기원전 710년), 진 애후가 형정 땅을 침범하자 곡옥 무공은 형정 사람과 힘을 합치고 이듬해 봄에 익을 치기 위해 형정에 주둔해 한만을 여융, 양홍을 거우로 삼아, 애후를 분수(汾水)가에서 사로잡았다. 하지만 진나라에서 소자후를 세우자 곡옥 무공은 인질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 진 애후를 살해했다.

진 소자후 3년(기원전 706년), 소자후를 유인해서 살해했으나 그 대가로 주환왕이 괵중을 보내 곡옥을 치자 수도를 지키기 위해 회군했다. 그리하여 주 환왕은 진후 민[3]을 옹립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다.[4][5]

진 소자후 4년(기원전 705년),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소자후를 유인해 죽인 것이 이 해라고 적고 있어서 기록에 따라 연도가 다르다.

진후 민 원년(기원전 704년), 익을 멸했으나, 주 환왕이 괵중으로 하여금 진후 민을 옹립시켜 익을 부흥시키는 바람에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후 민 2년(기원전 703년), 진 무공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쳤으니 괵중, 예백, 양백, 순후, 가백이 연합하여 진 무공을 쳤다.

진후 민 28년(기원전 679년), 수십년의 어려운 싸움 끝에 진, 즉 익을 쳐서 멸하고 진후 민을 몰아냈다.[6] 진나라의 병력을 주희왕에게 뇌물로 바치고, 1군만 두는 조건으로 곡옥 백에서 진 후로 승진했다.

2.2. 진후 시절

진 무공 원년(기원전 678년) 무공은 순(荀)나라를 쳐서 멸한 뒤, 대부인 원씨암에게 주니 그가 바로 순씨들의 조상인 순숙이다. 그리고 당시 춘추오패로 군림하고 있었던 제환공은 진나라와의 우호를 위해 훗날 진헌공이 되는 궤제에게 자신의 딸인 제강을 보내나 무공이 낼름 차지해버렸다. 그러나 진 무공이 늙어서인지 제강을 상대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무공의 아들 궤제와 정을 통하게 된다.

진 무공 2년(기원전 677년), 진 무공은 진후가 된지 겨우 2년 만에 훙했다.

3. 평가

그는 진문후의 사후 익과 곡옥으로 갈라진 진나라를 통일시켜[7]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1]열국지》에서는 '칭대'(稱代)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사기》를 오독해서 생긴 오류다. 원문에서 곡옥장백이 죽은 뒤 진 무공이 대를 이었다는 것을 칭대로 오독한 것이다.[2] 물론 시호로 곡옥무공이 드물게 쓰이지만 곡옥의 군주였을 당시에는 곡옥백이었음을 잊지 말자.[3] 진나라 즉 익나라의 마지막 후작이라서 시호가 없다.[4] 이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아직 주나라의 힘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5] 참고로 이것은 《사기》의 내용이다.[6] 일설에는 진 무공이 죽였다고 한다.[7] 익과 곡옥의 기나긴 내전을 곡옥대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