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24 13:20:12

진악후

파일:진(晉) 전서체.png
진(晉)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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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
40대

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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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80> 진(晉)나라 14대 국군
악후
鄂侯
희(姬)
진(晉)
극(郤) / 도(都)
아버지 진소후(晉昭侯) 백(伯)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718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723년 ~ 기원전 718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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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14대 국군. 진소후아들. 진효후동생. 진애후아버지. 《사기》와 《춘추좌씨전》의 기록이 상이한 인물 중 한 명이다.[1] 곡옥대진(曲沃代晉) 사건에서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2. 생애

진 효후 15년(기원전 724년), 진효후곡옥장백에게 살해되자 진나라 사람들이 곡옥 장백을 몰아내고 효후의 아우인 그를 즉위시키니 바로 진악후이다. 《사기》에 의하면 곡옥장백이 진 악후의 상을 틈타 익(翼)을 공격했으나 주나라 천자주환왕곡옥(曲沃)을 쳐서 장백을 내쫓고는 공자 희광(姬光)을 진후로 올리니 그가 바로 진애후(晉哀侯)다. 다만 《춘추좌씨전》에서는 달리 전한다. 곡옥 장백은 형나라(邢), 정나라(鄭)와 연계해서 익을 쳤다. 주환왕은 원병을 파견해서 곡옥을 도왔다.[2] 결국 그 압박을 견디다 못한 진 악후는 증나라로 달아났다.

후에 곡옥이 주나라에 반기를 들자 주 환왕은 괵공(虢公)으로 하여금 곡옥을 치게 했다. 그 틈에 진나라는 여유가 생겨 진 애후가 즉위했다. 진나라의 대부 가보(大夫 嘉父)는 진 악후를 악(鄂) 땅으로 맞아들였다. 진 악후가 죽자 그에게 악후(鄂侯)라는 시호를 주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곡옥 계열의 진(晉)나라가 아닌 진문후 계열의 진나라의 최후의 군주인 진후민곡옥무공에게 살해당한 설을 받아들일 경우 그가 유일하게 곡옥의 군주에게 살해당하지 않은 유일한 진후가 된다.


[1] 그 차이점은 밑을 참조할 것.[2] 다만 천하 질서를 유지해야 할 주나라 천자 입장에서 후작이 다스리는 진나라를 대신하여 백작이 다스리는 곡옥을 도운 점은 미스터리하다. 역사서에서 그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나온 기록이 없으니, 다소 개인적인 추측을 덧붙여보자면 진 악후가 주 환왕의 비위를 거스르는 짓을 했거나 혹은 주 왕실에 소홀히했거나 이익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