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 국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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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당숙 우 | 제2대 진후 섭 | 제3대 무후 | 제4대 성후 | |
제5대 여후 | 제6대 정후 | 제7대 희후 | 제8대 헌후 | |
제9대 목후 | 제10대 상숙 | 제11대 문후 | 제12대 소후 | |
제13대 효후 | 제14대 악후 | 제15대 애후 | 제16대 소자 | |
제17대 진후 민 | 익/곡옥 분열 | 곡옥1대 환숙 | 곡옥2대 장백 | |
곡옥 曲沃 | ||||
제18대 무공 | 제19대 헌공 | 제20대 해제 | 제21대 탁자 | |
제22대 혜공 | 제23대 회공 | 제24대 문공 | 제25대 양공 | |
제26대 영공 | 제27대 성공 | 제28대 경공 | 제29대 여공 | |
제30대 도공 | 제31대 장평공 | 제32대 소공 | 제33대 경공 | |
제34대 정공 | 제35대 출공 | 제36대 애공 | 제37대 유공 | |
제38대 열공 | 삼진분립 | 제39대 환공 | 40대 정공 | |
}}}}}}}}}}}}}}} |
<colbgcolor=#000080> 진(晉)나라 6대 국군 정후 靖侯 | ||
성 | 희(姬) | |
씨 | 진(晉) | |
휘 | 의구(宜臼) | |
자 | 희보(喜父) | |
아버지 | 진여후(晉厲侯) 복(姬福)[1]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841년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858년 ~ 기원전 8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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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나라의 6대 군주. 진여후의 아들. 진희후의 아버지. 자는 희보(喜父).2. 치세
진여후 원년(기원전 858년), 아버지 진여후가 죽고 그 뒤를 이었다.진정후 17년(기원전 842년), 주 여왕이 폭정을 자행해 국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왕을 쫓아내고 주정공과 소목공이 나라를 대신 다스리는 공화 시대 때 군주가 되었다.[2][3]
진정후 18년(기원전 841년), 진정후가 사망하고 아들 사도가 뒤를 이었다. 그가 바로 진희후다.
3. 여담
진정후의 서손 난빈이 훗날 진나라의 유력 가문인 난씨(欒氏)의 시조이다.[1] 북마(僰馬)라 하기도 한다[2] 일설에는 공나라 백작인 화가 간왕(干王)을 자칭해 나라를 다스렸다는 말이 있다.[3] 거의 3000년 후 일본에서 repulic을 번역 할 때 이 사건을 보고 공화정이라고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