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2:37:06

관동별곡(경기체가)

파일:관동별곡(경기체가).png
《근재집》 권2 111면
1. 개요2. 원문
2.1. 제1장2.2. 제2장2.3. 제3장2.4. 제4장2.5. 제5장2.6. 제6장2.7. 제7장2.8. 제8장2.9. 제9장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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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중기~말기의 문인인 안축(安軸)의 작품으로 《근재집》(謹齋集)에 실려 있다.[1]

훨씬 인지도가 높은 조선시대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와 마찬가지로 관동의 경치를 소재로 한 작품이며, 정철의 관동별곡이 창작되기 이전인 조선 초기에도 경기체가 <관동별곡>을 불렀다거나 하는 기록이 남아있기에,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정철의 관동별곡에 비해선 유명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국문학대학에서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이 경기체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나마 문학 교과서에 지나가듯이 실려있고, EBS 올림포스 고전문학 등에 경기체가가 2편 정도 실려있어 고등학생 때 접했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2. 원문

본문에 종종 '~景 幾何如'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것이 '경기(景幾)체가'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경기하여(景幾何如)가' 역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각 장은 6행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제4, 제6행에는 이두식 표현이 종종 보인다. 위 이미지에서 보듯 이두식 표현은 1/2 크기 글자로 표기에 차이를 두고 있다. 본 문서에서는 밑줄로 썼다.

번역 출처

2.1. 제1장

海千重 山萬疊 關東別境
바다가 겹겹 산이 첩첩 관동의 절경
碧油幢 紅蓮幕 兵馬營主
푸른 깃발, 붉은 장막, 군사와 말의 주인이 되어
玉帶傾盖 黑槊紅旗 鳴沙路
옥띠를 매고, 검고 붉은 깃발 앞세우고 명사길로
巡察景 幾何如
아, 순찰하는 모습, 어떻습니까?
朔方民物 慕義起風
삭방 지역의 백성들을 보호해주니 의를 사모하는 기풍을 일으키고
王化中興景 幾何如
아, 임금의 덕화가 일어나는 모습, 어떻습니까?

2.2. 제2장

鶴城東 元帥臺 穿島國島
학성 동쪽 원수대와 천도와 국도
轉三山 移十洲 金鼇頂上
삼산을 돌아 십주를 지나서 금자라가 이고 있는 삼신산
收紫霧 卷紅嵐 風恬浪靜
자줏빛 안개 걷고 붉은 내가 감도니 바람은 물결이 고요하네
登望滄溟景 幾何如
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창해의 모습, 어떻습니까?
桂棹蘭舟 紅粉歌吹
계도난주로 만든 화려한 배에 기녀들의 노래와 피리 소리 넘치네
歷訪景 幾何如
아, 좋은 경치를 둘러보는 모습, 어떻습니까?

2.3. 제3장

叢石亭 金幱窟 奇巖怪石
총석정, 금란굴, 기암괴석
顚倒巖 四仙峯 蒼苔古碣
거꾸로 선 바위, 사선봉에 낀 푸른 이끼, 묵은 돌비석
我也足 石巖回 殊形異狀
아야차! 돌바위들, 다른 이상한 모양들은
四海天下 無豆舍叱多
아, 천하 어디에도 없으리로다.
玉簪珠履 三千徒客
구슬비녀 꽂은 귀한 손님들처럼, 구슬로 꾸민 신발을 신은 호화로운 많은 나그네들처럼
來悉(오실) 何奴 日是古(어느 날잇고)
아! 또 오실 날, 어느 날일까?

2.4. 제4장

三日浦 四仙亭 奇觀異迹
삼일포 사선정은 기관에 이적으로
彌勒堂 安祥渚 三十六峯
미륵당 안상저, 삼십육봉
夜深深 波瀲瀲 松梢片月
밤은 깊어 물결은 잔잔한데 소나무 가지 끝에 걸린 조각달이
古溫 貌 我 伊西爲乎伊多(이슷ᄒᆞ오이다)
아! 고운 모습, 나와 비슷합니다.
述郞徒 六字丹書
술랑도의 여섯 붉은 글자가[2]
萬古千秋 尙 分明
아! 만고천추를 두고 오히려 분명합니다.

2.5. 제5장

仙遊潭 永郞湖 神淸洞裏
선유담, 영랑호, 신청동 속에
綠荷洲 靑瑤嶂 風煙十里
푸른 연잎이 덮인 섬과, 푸르고 아리따운 묏부리, 십리에 서린 안개
香冉冉 翠霏霏 琉璃水面
향긋하고 향내나는 푸른 남기, 내리는 유리 같은 물 위로
泛舟景 幾何如
아, 배를 띄우는 광경, 어떻습니까?
篿羹鱸膾 銀絲雪縷
순채국과 농어회, 은실처럼 가늘게 쓴 눈 같이 흰 회고기 맛은
羊酪 豈 勿參爲里古
아! 양젖을 어찌 대적하리오.

2.6. 제6장

雪嶽東 洛山西 襄陽風景
설악산 동쪽 낙산사 서쪽 양양의 풍경
降仙亭 祥雲亭 南北相望
강선정, 상운정이 남북으로 마주보고
騎紫鳳 駕紅鸞 佳麗神仙
자색 봉황 타고 붉은 난새 탄 아름다운 신선 같네
爭弄朱絃景 幾何如
아! 붉은 악기를 다투어 타는 모습, 어떻습니까?
高陽酒徒 習家池館
풍유로운 술꾼들 습욱의 주관 같은 좋은 경치 속에서
四節 遊伊沙伊多
아, 사계절에 놉시다.

2.7. 제7장

三韓禮義 千古風流 臨瀛古邑
삼한의 예의, 천고의 풍류를 지닌 임영의 옛 고을
鏡浦臺 寒松亭 明月淸風
경포대, 한송정의 청풍명월
海棠路 菡萏池 春秋佳節
해당화 길과 연꽃 연못에서 봄가을 좋은 시절에
遊賞景 幾何如 爲尼伊古
아! 놀며 구경하는 광경, 어찌하겠습니까?
燈明樓上 五更鍾後
등명사 누각 위 새벽 오경 종이 울린 후
日出景 幾何如
아! 해돋는 광경, 어떻습니까?

2.8. 제8장

五十川 竹西樓 西村八景
오십천, 죽서루, 서촌의 팔경
翠雲樓 越松亭 十里靑松
취운루, 월송정에 십리를 뻗은 푸른 소나무
吹玉篴 弄瑤琴 凊歌緩舞
옥적을 불고 요금을 타면서 청아한 노래 부르며 느릿느릿 추는 춤 속에
迎送家賓景 幾何如
아! 좋은 손님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광경, 어떻습니까?
望槎亭上 滄波萬里
망사정 위 창파만리 바다 위로
鷗伊鳥(갈맥이새) 藩甲豆斜羅(반갑도셰라)
아! 갈매기새 반갑도다.

2.9. 제9장

江十里 壁千層 屛圍鏡撤
십리를 뻗은 대음강 따라 절벽은 천층에 병풍같이 에워싸고 물은 맑은데
倚風巖 臨水穴 飛龍頂上
풍암을 의지하고 수혈에 다다라 비룡산을 올라
傾綠蟻 聳氷峯 六月淸風
좋은 술 기울이고 용빙봉에서 시원한 바람 불면
避暑景 幾何如
아! 피서하는 광경, 어떻습니까?
朱陳家世 武陵風物
주씨와 진씨가 한 마을 이뤄 혈통을 이으니 무릉과 같은 풍경이며
傳子傳孫景 幾何如
아! 자손들에게 전하는 광경, 어떻습니까?

3. 평가

국문학계의 전통적인 논의에서는 이 작품을 경기체가의 대표작인 <한림별곡>과 비슷한, 즉 신흥사대부 계급의 호방함이나 자긍심이 드러난 작품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비교적 근래의 논의 가운데에는, 안축이 충숙왕의 측근으로 활약하다가 충혜왕의 집권 이후 외직인 강릉도존무사(조선시대의 강원도관찰사)로 파견된 것을 중앙정계에서 축출된 것으로 설명하며, 관동의 경치를 묘사하는 와중에 정계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과 억울함이 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고 해석한 논의도 있다.

경기체가 형식에 대해 '고려 시대 문인들은 이렇게 시 쓰면서 놀았대요'라는 문학사적 의미 말고는 작품으로서의 문학적 의미는 희박하다고 보는 입장이 학계 내에 적지 않다. 한편 이황은 경기체가의 대표격인 한림별곡을 언급하며 '한림별곡 부류'를 대차게 비판했는데 이황의 비판 이유와 현대 문학자들의 비판 이유는 좀 다르다.

국문학자들이 경기체가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대략 아래의 2가지 이유 때문이다.
  • 국문(한글/한국어)으로 지었음에도 한자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자국어문학/민족문학으로서 가치가 높지 않다.
  • 시가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서정성'이 약하고 지나치게 교훈적, 교술적인 내용이 많다.

물론 이러한 입장이 여전히 학계의 정설로 있지만, 근래에는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족문학론이 강한 반론에 맞닥뜨리고 있고, 안축이 이 작품을 지은 시기는 훈민정음 창제보다 백년 쯤 전으로써 민족 문학같은 개념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특정 문학 작품을 교술적, 교훈적이라고 (그래서 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것이 지나치게 현대인의 입장에 매몰된 것 아니냐라는 입장도 제기되는 등, 여러모로 재평가의 가능성이 있다.
吾東方歌曲, 大抵多淫哇不足言, 如翰林別曲之類, 出於文人之口, 而矜豪放蕩, 兼以褻慢戱押, 尤非君子所宜尙,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란한 노래가 많아서 족히 말할 것이 못된다. 한림별곡과 같은 작품은 문인의 입에서 나왔으나, 교만하고 방탕하며, 진지하지 못하고 가볍기까지 하니, 더욱이 군자가 마땅히 숭상할 바가 아니다.
반면 이황이 '한림별곡 부류'라며 경기체가 전반을 비판한 이유는, 유학자답게 겸손하고 절제하며 자기수양에 힘쓰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술 마시고 풍류 즐기며 노는 내용, 서로서로 글솜씨가 뛰어나다고 칭찬하는 내용 등 과시적인 면모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해당 내용은 이황이 <도산십이곡>을 지으면서 남긴 발문 <도산십이곡발>에 자세히 나와 있다.


[1] 같은 경기체가인 죽계별곡(竹溪別曲)도 바로 뒤에 이어서 실려있다.[2] 북한 측 고성 삼일포에는 신라 화랑이 새겼다고 전해지는 '술랑도 남석행(述郞徒南石行)'이라는 글귀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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