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02:48:57

구마 겐고

隈 研吾(Kengo Kuma)

1. 개요2. 상세3. 특징4.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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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1급건축사. 1954년 8월 8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코호쿠구 오쿠라야마에서 태어났다.

1990년 본인의 건축소사무소를 개업하였으며 2020년 이후에는 모교인 도쿄대학 외에 오카야마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 등에서 특별교수로 활동하는 한편 고치현 임업대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2. 상세

도쿄대학 건축학과에서 학사, 1979년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석사 전공은 건축의장(建築意匠). 박사학위는 게이오기주쿠대학 객원교수로 재직중이던 2007년 게이오에서 받았다.

건축을 지망하게 된 계기는 1964년 도쿄 올림픽으로 건설된 국립 요요기 경기장 (단게 겐조 작)에서 수영을 하면서 감명을 받아서이다. 그러나 단게 겐조, 마키 후미히코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모더니스트들의 천지였던 도쿄대의 성향과 달리 초년부터 현장을 지향하여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건설회사 자회사로 들어갔고, 버블 경제의 붕괴를 겪으면서 모더니즘은 물론 1980년대 일본을 지배하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1995년 고치현 유스하라정[1]의 옛 공민관 보존 프로젝트로, 1948년 완공된 목조 건물을 이전 개축하는 일을 맡으면서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축[2]에 눈을 돌리게 된다. 한편으로 동시기 일어난 효고현 남부 지진(고베 대지진)의 영향으로 철근 콘크리트 등 현대 건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강해지게 된다. 한편 공민관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유스하라정에서 관청 사무소와 공영 호텔, 도서관 등의 공공건물 설계를 구마가 도맡아서 마을이 구마 겐고 테마파크같은 인상을 풍긴다. 이 점은 선배 단게 겐조카가와현 현청사, 체육관 등을 남긴 것이 연상되는 대목.

이후 구마는 나카가와정 미술관(2000), 나가사키현 미술관(2005), 네즈 미술관(2009), 스타벅스 다자이후 점포(2011) 등 목조 건축의 양식을 크게 드러내는 건축물로 지명도를 올렸다. 한편으로 긴자 가부키자, 도시마구 복합청사 등 고층건물의 외장 부분을 맡은 작품도 있다. 커리어의 정점을 쌓은 것은 논란 끝에 자하 하디드의 원안이 백지화되고 맡은 도쿄 국립경기장으로, 현대의 대규모 경기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외관에 적극적으로 나무를 채용하고[3] 외부 통로 경계를 둘러서도 나무를 심어 '숲의 경기장' 컨셉트를 내세웠다.

도쿄 국립경기장으로 일약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부상한 구마는 2010년대 중반부터 일본 내 목조건축의 전도사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고치현오카야마현에서 임업 현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고 TV 출연도 잦은 편. 2021년에는 미국 타임지의 세계 100대 인물에 선정되었다.

3. 특징

서양 건축 조류와 밀접하게 교류하고 이끌어 왔던 단게 겐조, 안도 다다오 등 이전 세대의 일본 건축가들과 달리 일본식 목조 건축 양식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며 세로 격자(縦格子), 지고쿠구미(地獄組み)와 같은 수법을 애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철근 콘크리트나, 특히 현대에 유행하는 커튼 월 건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철골조나 커튼 월 구조로 기본 틀이 잡힌 건축물에 나무 격자나 오브제를 덧대는 작품이 많다. 대표적으로 나가오카시청 복합시설이나 미나미아오야마 카페건물을 들 수 있다. 어떤 의미로는 21세기판 제관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제관양식에서 두드러지는 궁정 건축의 기와지붕같은 모양에는 집착하지 않는다.

또한 고도성장기 종식과 버블 붕괴를 통해 쇠퇴기에 걸맞은 건축을 부르짖고 있지만[4] 정작 이름값 때문인지 작품이 초고층 빌딩, 복합시설 등 거대 건축물에서 외관, 인테리어 등 일부분에만 참가한 경우가 많다.

한편 1990년대에 지향점이 바뀌기 전에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작품도 남긴 적 있는데 그 사례로 도쿄 세타가야구M2 빌딩[5]이 있다. 건물 중심에 뜬금없이 이오니아식 기둥을 내세운 악취미적인 건축물로 2011년에는 웹진 VirtualTourist에서 세계에서 가장 추한 10대 건축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4. 주요 작품

연도는 완공 기준.


[1] 에히메현과의 경계에 얹힌 산동네로 인구가 4천명이 되지 않는다.[2] 사실 유스하라 공민관은 2차대전 이후에 지어졌기 때문에 도쿄 아사쿠사 등에 즐비했던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근대화된 양식(일본 표현으로 '화양절충')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전통 건축은 아니다.[3] 심지어 구마는 도쿄도를 포함해 일본의 47개 도도부현 전체의 목재를 쓰는 데 집착했는데, 이 때문에 후쿠시마현산 목재가 포함된 것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4] 본인 표현에 의하면 '져주는 건축'(負ける建築).[5] 원래 마쓰다의 디자인 자회사 M2의 사옥으로 건축되었다가 M2가 청산된 후 장례식장으로 바뀌어 있다.[6] 무라카미 본인이 지명했다.[7] 부분개업은 2020년.[8]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을 목표로 건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