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6:52:58

이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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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튀르키예의 지명
1.1. 역사
2. 그리스의 제도3. 그리스의 주
3.1. 역사

1. 튀르키예의 지명

파일:아나톨리아 터키_white.png 아나톨리아 고대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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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튀르키예 아나톨리아.jpg

그리스어 Ἰωνία
라틴어 Ionia
튀르키예어 İyonya

아나톨리아, 즉 현재 튀르키예 서부 해안 일대의 고대 지명이다. 그리스의 이오니아 인들이 정착하여 명칭이 유래되었다. 현대의 주요 도시로는 이즈미르, 셀축, 쿠샤다스가 있고 주요 고대 도시 유적으로는 에페소스, 밀레투스, 디디마, 사르데스, 프리에네, 스미르나, 포카이아, 마그네시아 등이 있다. 페르시아어의 '야우나', 아랍어의 '유나안', 인도의 '야바나' 등 중근동에서 "그리스"를 명칭하는 단어의 어원이 된 지방이다. 페르시아인들이 처음 만난 그리스계 사람들은 이오니아에서 왔고, 페르시아는 이들이 그리스를 대표한다 여겼다.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은 튀르키예어와 아랍어도 마찬가지이다.

1.1. 역사

아나톨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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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 미탄니 히타이트 트로이 미케네 문명
히타이트
신 히타이트 프리기아 리디아, 리키아, 카리아 그리스
(이오니아 / 도리스 / 아이올리스)
신아시리아 제국 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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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고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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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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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제국 / 1차 아나톨리아 베이국
(스미르나 / 다니슈멘드 / 멩귀치 왕조 / 아르투크 / 샤아르멘 / 살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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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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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정부
[[튀르키예 독립 전쟁|
그리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
튀르키예 공화국 }}}}}}}}}

파일:이오니아 튀르키예.jpg
이오니아 지방에서 발원하여 지중해 각지와 남아시아 등지에서 사용된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 머리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들어섰지만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 제국에게 점령되었는데, 이후 그들이 아테네의 지원으로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의 거점인 사르데스까지 불태우는 기염을 토하였다. 이에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 원정을 결심, 페르시아 전쟁의 빌미로 작용하였다. 사르디스를 기억하라 !

헬레니즘 시기와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도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들은 꾸준히 번영하였으나 여러 차례의 지진과 역병, 자연적 요인에 의한 항구의 매립 등으로 서서히 쇠퇴하였다. 그래도 로마 제국 - 중세 로마를 거치며 원로원 속주나 자치도시의 권한이 주어지는 등 매우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1000년을 보냈다.

11세기 말 동로마 제국이 셀주크 제국에게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패해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튀르크인들이 이오니아 역시 장악해 그들의 첫 해군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차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콤니노스 왕조의 반격에 내륙으로 물러나면서 동로마의 영역에 220여년간 머물렀지만 14세기 초엽에 튀르크인들에게 기어코 점령되며 토후국들이 다시 세워졌고 15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이들을 규합하였다. 중근세를 거치며 이오니아의 고대 도시들은 대부분 유적으로 변하였고, 1차 대전 이후 그리스에 점령되어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2년여간 통치를 받았다. 하지만 튀르키예 독립 전쟁에서 무스타파 케말의 튀르키예 국민군이 탈환하고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에 따라 그리스인들을 추방하며 현재 모습이 형성되었다.

2. 그리스의 제도


파일:이오니아제도.png
이오니아 해에 위치한 제도로 대부분은 후술할 이오니아 제도주에 속하지만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쪽의 섬들은 펠로폰네소스주아티키주에 속한다.

3. 그리스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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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로도스 · 코스 · 미코노스 · 낙소스 · 티라 · 칼림노스 · 안드로스 · 키아-키트노스 · 카르파토스 · 밀로스 · 파로스 · 시로스 · 티노스
크레타 이라클리온 · 라시티 · 레팀노 · 하니아 }}}}}}}}}

이오니아 제도주
Περιφέρεια Πελοποννήσου
파일:이오니아제도주.png
주도 코르푸
할양 1864년
면적 2,307㎢
인구 207,855명[1]
주지사 Rodi Kratsa-Tsagaropoulou (
)
[clearfix]

위 문단의 이오니아 제도 대부분을 관할하는 주로 '펠로폰네소스, 서그리스 및 이오니아 분권 정부'에 속한다. 코르푸, 이타카, 케팔로니아, 레프카다, 자킨토스의 5개 지역 단위[2]로 구성되어 있다.

3.1. 역사

기원전 1200~800년 정도에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했다.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장 중 하나였으니 자세한 내용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문서를 참고하라.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차례대로 받는다. 동로마 제국 시기 이탈리아인과 노르드인들의 공격을 수시로 받다가 1185년 시칠리아 왕국의 윌리엄 2세가 이곳을 함락시킨다.

1204년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오니아 제도 최북단의 코르푸를 시작으로 이곳의 섬들을 서서히 장악해간다. 그리스의 대부분을 장악한 오스만 제국도 이곳은 쉽사리 정복할 수 없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곳을 무려 1797년 멸망할 때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이 당시 이오니아 제도의 주요 수출품은 건포도, 올리브 오일과 포도주였다. 상류층과 도시에서는 베네치아어를 사용했고 농민들은 그리스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1797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탈리아 원정을 하며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베네치아 영토였던 이오니아 제도를 직할 통치한다. 프랑스는 귀족을 폐지하고 민주 정권과 자치 정부를 수립했으며 공교육을 도입하는 등 혁명 사상을 퍼트리며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높은 세금은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마저 등을 돌리게 하였다. 1798년부터 1799년까지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협공으로 이오니아 제도를 탈환해냈고 1800년 4월 6일 에프타니소스 공화국을 건국한다. 에프타니소스는 '일곱 개의 섬들'이라는 뜻으로 이오니아 제도를 뜻한다. 에프타니소스 공화국은 명목상 오스만 제국이 통치권을 갖고 있지만 상당한 자치가 이루어졌고 각 섬들도 각각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과 러시아-오스만 간의 패권 경쟁이 이어지다가 이후 1806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이기고 있던 러시아 제국이 이 공화국의 주도권을 잡게 되고 틸지트 조약으로 러시아와 프랑스가 우호적 관계로 바뀜에 따라 러시아가 이 공화국을 프랑스 제국에 넘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807년부터 1814년까지 대영 제국은 이오니아 제도를 봉쇄하고 섬을 하나하나 정복해나갔다. 결국 1814년에 영국은 모든 섬을 정복하고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영국의 보호령인 이오니아 제도 합중국[3]이 건국된다. 18년동안 주인이 무려 5번 바뀌었다. 이탈리아(베네치아)-프랑스-오스만-러시아-프랑스-영국(...).

이후 이오니아 제도 합중국은 1864년까지 영국의 보호를 받다가 새로 그리스 왕국의 왕이 된 요르요스 1세의 즉위선물로 영국이 그리스에게 양도하여 소멸한다.[4][5] 그러다 1940년 파시즘 이탈리아나치 독일과 협의도 없이 그리스를 침공한다. 이에 따라 이오니아 제도 역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1943년 이탈리아 왕국의 항복함에 따라 이오니아 제도는 나치 독일이 통치하게 된다. 추축국의 지배기동안 그리스 공산당 등이 파르티잔 활동을 벌이다가 1944년 그리스가 다시 독립함에 현재까지 그리스의 영토로 남아있다. 1953년 이오니아 지진이 일어나 445-800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큰 피해가 있었다. 현대에는 이 섬들은 어업과 농업이 쇠퇴함에 따라 지역 주민들 특히 젊은 청년층들이 일자리가 없는 고향을 떠나 수도 아테네 등 그리스 본토 지역으로 이주, 상경하고 있어 인구 유출 등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르푸나 자킨토스, 레프카다, 이타카 같은 인근 섬 지역들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어 낙후된 지역에서 신흥 관광지로서의 부활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 섬들은 마케도니아 제국,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프랑스 제1공화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프랑스 제1제국, 대영 제국, 이탈리아 왕국, 나치 독일 등 당대의 수많은 열강들이 지배했던 복잡한 역사가 있는 섬들이다. 특히 유럽의 주요 강대국은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 섬을 통치했을 정도로 수많은 열강들이 오고 갔다.

[1] 2011년 기준.[2] 이전의 현[3] United States of the Ionian Islands, 공교롭게도 미국과 국호가 굉장히 비슷하다.[4] 요르요스 1세는 원래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9세의 차남 빌헬름으로 누나 알렉산드라가 영국 왕세자인 웨일스 공 에드워드의 아내였다.[5] 다만, 그런 이유만 있는것은 아니고, 1848년 이후부터 그리스 민족 주의자들이 힘을 얻으면서 민족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주민들 대부분이 그리스 왕국으로의 합병을 원한것도 있다. 1849년에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 지역 신문사에서 영국의 통치에 비판하는 내용을 자주 싣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