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01:29:14

다니슈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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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سلسله دانشمند‎
튀르키예어 Danişmentliler
영어 Danishmends
1. 개요2. 초기3. 전성기4. 분열과 멸망

1. 개요

십자군 시대에 아나톨리아 반도의 동부 내륙을 다스린 튀르크 계통의 왕조. (1071 ~ 1178년) 다니슈멘드는 페르시아어로 지식을 추구하는 자를 뜻한다. 반도 중부의 룸 술탄국과 남쪽의 안티오크 공국 등과 대립하다가 결국 룸 술탄국에게 정복되었다. 수도는 시바스, 주요 도시로는 아마시아, 토카트, 니카사르, 카이세리 등.전성기에는 앙카라 ~ 말라티아까지 아나톨리아 내륙의 동쪽 절반을 모두 지배했었다.

2. 초기

셀주크 제국의 알프 아르슬란 휘하로 참전했던 다니슈멘드 가지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을 격파하는 데 힘을 보탠 1071년을 시작으로 본다. 1086년 셀주크 제국의 쇠퇴를 틈타 자립하였다.

3. 전성기

1100년, 다니슈멘드의 아들인 귀미쉬티긴 가지는 타우루스 산맥의 요충지 멜리테네를 공격하던 중 멜리테네를 구원하기 위해 도착한 안티오키아 공작 타란토의 보에몽을 사로잡아 경매에 부쳤다. 이후 보에몽이 13만 디나르의 몸값과 안티오키아 공국과의 동맹을 조건으로 내걸자 3년 만에 석방하였다.[1][2]1116년 귀미쉬티긴은 마수드가 셀주크 제국의 술탄이 되는 것을 도와주고 그의 경쟁자들에게서 말라티아와 앙카라를 빼앗아 아나톨리아 내륙의 동쪽 절반을 차지하였다.

1130년, 다니슈멘드 군대는 아르메니아 왕국의 영주들과 연합해 안티오크 공국의 보에몽 2세를 타우루스 산맥 인근에서 전사시키고 그의 머리를 은도금된 술잔으로 만들어 셀주크의 술탄에게 바치며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이로 인해 동로마 측이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고, 요안니스 2세의 친정으로 카스타모뉘와 강그라 등의 영토는 도로 토해내야 했다. 정교회를 믿는 투르크족은 물론 룸 술탄국 출신의 귀족들까지 대거 동로마에 투항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1134년, 셀주크 술탄 산자르는 말리크 (국왕) 칭호를 하사하여 토후 (아미르)국에서 정식 왕국이 되었다. 그해에 귀미쉬티긴은 죽었고 그의 아들 메흐메트가 뒤를 어어 말리크가 되었으나,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요안니스 2세가 다시 강그라 주변을 정복하였다. 비록 동로마 제국에게 최종적으로 패하긴 하였으나, 동로마 입장에서도 쉬운 상대는 아니어서 1130년부터 거의 6년 내내 군대를 일으킨 끝에야 다니슈멘드를 억누를 수 있었다. 메흐메트 가지는 동로마가 다른 지역에서 힘을 소진하는 동안 한숨을 돌린 뒤, 동로마의 트라페준타 지역 둑스가 일으킨 반란에 연계하려는 공작을 펼치며 시간을 벌었다.

4. 분열과 멸망

1142년에 메흐메트가 세상을 뜨고 그의 형제와 아들이 왕국의 영토를 삼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다니슈멘드의 북쪽에서 중흥기를 맞은 룸 셀주크의 술탄 킬리지 아르슬란 2세가 1155년에 분열된 다니슈멘드 왕조의 영토를 침공하였다. 이때는 장기 왕조누르 앗 딘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1174년 누레딘이 사망하면서 킬리지를 막아줄 방패가 사라지자 급속도로 세력을 상실하였고, 동로마 제국이 미리오케팔론 전투에서 패하며 아나톨리아의 세력균형이 완전히 무너지자 곧 멸망하고 말았다.


[1] 보에몽 외 알렉시오스 1세와 클르츠 아르슬란 1세가 경매에참여당연히 보에몽 1세의 목을 딸려고 각각 26만 디나르, 13만 디나르 및 다른놈에게 팔면 공격한다는 가격을 제시했다.[2] 석방된 보에몽은 이후 안티오키아에사 세력을 성장시켜 알렉시오스 1세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십자군 원정때부터 착실히 군비를 비축한 알렉시오스에게 오히려 털렸고 봉신서약 당하는 굴욕을 당하고 실의에 사망한다. 딱히 보에몽 자체는 다니슈멘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