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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리아 주 Θεσσαλία | |
주도 | 라리사 |
획득 | 1881년 |
면적 | 14,037㎢ |
인구 | 732,762명[1] |
주지사 | 콘스탄티노스 아고라스토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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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살리아는 그리스 본토의 북동부 일대를 일컫는 역사적인 명칭이자 주다. 고대 그리스 암흑시대에는 아이올리아(Αἰολία)라고 불리기도 했다. 1881년 그리스 독립 이후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다가 오스만 제국이 일부 지역을 다시 점령 후 다시 그리스에 반환되었던 역사가 있다. 북쪽으로 마케도니아 주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에게 해와 접하며 행정구역 상으로 스포라데스 군도를 포함한다. 서쪽으로는 그리스와 알바니아 사이의 경계 지역인 에페이로스 주와 접한다. 오늘날 기준으로 인구는 73만여 명이며, 주도는 라리사이다.[2] 지중해성 기후에 속한다.2. 역사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테살리아라는 지역명의 어원은 이아손의 아들 테살로스다. 그는 어머니 메데이아가 자식들을 학살할 때 유일한 생존자였는데, 훗날 이올코스의 왕이 된 후 자신의 이름을 따 그 지역 일대를 테살리아라 칭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기에는 평야가 드물었던 남부 지역에 비해 평야가 많은 이유로 기병으로 유명했다. 특히 알렉산드로스 3세 휘하의 테살리아 기병들은 기병 전력이 부족했던 그리스-마케도니아 군에 큰 보탬이 되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폴리스로는 라리사, 크라논, 파르살루스[3]가 있었다. 다만 해당 지역은 남부 아카이아 일대나 이오니아 일대에 비해서 무역과 상공업이 덜 발달하고 가난한 편이었다. 페르시아 전쟁 와중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침공하고 점령했으나 그리스인들이 이 지역을 회복하였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상술했다시피 테살리아 기병들은 알렉산드로스를 따라 종군하며 페르시아 전역을 정복했다. 이후 고대 로마가 마케도니아 왕국을 정복하면서 이 지역도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 지역에서 내 파르살루스 근교 평원에서 파르살루스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는 카이사르 측의 승리로 넘어가고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간다.
이후 테살리아 지방은 다른 지역에 밀리며 로마 제국 내에서 별 볼일 없는 그저그런 지방으로 전락했다. 제정 확립 이후 고대 지중해 세계의 중심지는 그리스 반도에서 아나톨리아 동부와 시리아, 이집트 등으로 이동하는 추세였고, 로마 제국 유럽 영토에서도 히스파니아 등이 더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이미 많은 테살리아인들이 지중해 동부로 이주한 상황이었다.
이후 고대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되고 동서로마로 분열되면서 이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서기 6세기에는 아바르 칸국과 슬라브족의 침공을 받고 슬라브인 인구가 대거 정착하였다. 이후 동로마 제국이 국력을 회복하고 니키포로스 1세 시기에 이 지역을 재점령하면서 테살리아 지역의 슬라브족들은 상당수 그리스인들과 동화되었다. 동로마 제국에 반항적인 슬라브족 군인 상당수는 아나톨리아 반도 국경 지대의 테마로 강제 이주 당했다.
서기 977년 테살리아는 불가리아 제1제국의 침공을 받기도 했으며, 동로마 제국에서는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서 아르메니아인 상당수를 이 지역 테마에 이주시켜 군인으로 삼았다. 불가리아와 동로마 제국 사이의 국경 지대이던 이 지역은 이후 불가리아 제1제국이 동로마 제국에 병합되면서 번영을 누렸으나, 4차 십자군으로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당하며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불가리아 제2제국이 흥기하면서 이 지역도 다시 잦은 전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아나톨리아 지역 영토 곡창지대 상당수를 상실한 이후 테살리아의 인구와 농업 생산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이 카탈루냐에서 불러들인 카탈루냐 전우회가 1305년 반란을 일으키고 미하일 9세의 동로마 중앙군을 무찌른 다음 아테네 공국으로 남하하면서 트라키아와 테살리아 일대를 초토화시키자 동로마 제국은 국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4세기 말에는 오스만 술탄국이 이 지역을 정복했으며[4] 이후 오스만 행정 체계가 도입되면서 이 지역은 오스만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821년 오스만 제국에 항거하는 그리스인들의 봉기가 일어났으나 진압되었고, 이 지역은 18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조약으로 최북단 엘라소나 지역와 올림포스 산을 제외한 테살리아 전체가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다. 1897년 그리스-튀르크 전쟁 때 오스만 제국이 재점령했으나 열강의 압력으로 일부 국경선을 오스만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다시 물러났고 1912년 발칸 전쟁 당시 그리스군이 엘라소나와 올림포스 산까지 점령하면서 테살리아 전체가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 2차 대전 당시 잠시 이탈리아가 이 지역을 점령했으나(1941~1943) 그리스군의 반격에 밀려 패퇴하고 이후 나치 독일이 1944년 이 지역을 잠시 점령하다가 패전 후 다시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