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자세한 내용은 구인회(기업인) 문서 참고하십시오.2. 기독교계 이단 천국복음전도회 전 교주
LG 창업주 구인회와 다른 동명이인이다.3. 일제강점기 순수문학 단체 九人會
구인회는 1933년 8월, 당시 문단의 중견작가라 할 수 있는 사람 아홉 명이 모여서 만들어진 문학 친목단체였다.창립멤버로는 김기림·이효석·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정지용·이무영이 있었으며 이후 이종명·김유영·이효석이 탈퇴하고 대신 박태원·이상·박팔양이 새로 들어왔으며, 그 뒤 유치진·조용만 대신에 김유정·김환태로 바뀌었으나 회원수는 항상 9명이었다.
사실 구인회는 문학 친목단체를 내세우면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1930년대 초반, 경향문학(카프)에 대한 일제의 탄압[1]을 목도하고 민족주의 문학의 퇴조를 지켜보던 과정에서 문학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요구하던 것이 구인회 전체의 목적이 된 듯하다. 구인회의 멤버들은 그 방향성을 모더니즘에서 찾은 듯하며 이는 당시 시대의 흐름상 근대 문명의 유입을 직접 목도하고 이를 영위할 수 있었던 때문이라 하겠다. 당대엔 신문사와 잡지사에 다니는 인원들끼리 뭉쳐서 지면을 독식하려 한다는 비판도 들은 모양.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구인회를 가장 앞장서서 비판한 사람이 학창시절부터 김유정과 절친했고 이상, 박태원하고도 친했던 소설가 안회남이었다[2].
당시 구인회 멤버들의 활동 결과를 지켜보자면 예술의 독자성을 옹호하며 기법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고, 실용성을 중심에 놓는 중산층의 물신숭배적 가치척도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보편적 측면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화의 결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사회의 해체현상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서구의 모더니즘과는 달리 문명화 - 물질화에 대한 지향, 예술적 세련됨을 부린 문학을 통하여 근대성을 추구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는 서양과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3] 이들의 모더니즘 문학 활동은 위에서 상기한 것처럼 당시 서양의 모더니즘의 흐름과는 차이가 났으며 서양의 모더니즘과 유사한 활동이 일어난 것은 후기 모더니즘, 즉 1950년대 후반이었다.
1920년대 서양의 모더니즘 운동이 근대적 감수성을 추구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다면 1930년대의 식민지 조선의 모더니즘 운동은 근대화에 대한 환상과 (특히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 등을 주로 드러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4] 3~4년만의 활동을 보여주었기에 안타깝다고 말할만하나, 1937년부터 무슨 일이 생겼고, 이로 인해 촉발된 일들을 생각해보면 더 활동하려 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구성원들 대부분은 이태준, 김유정, 이상, 박태원 정도를 제외하면 다들 각자의 생업(신문기자,잡지 편집자,교직 등등)이 있어 자주 교류하기 힘들었고 어쩌다 모일 일이 있어도 결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라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 소설'[5]은 창간호가 곧 종간호였다.
구인회의 창립멤버였던 김기림이 구인회가 해체된 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 발표한 시 <바다와 나비>에서 30년대 초반, 모더니즘 지식인들이 가졌던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과 좌절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여담으로, 인원 대부분의 끝이 좋지 않다. 이상과 김유정은 각각 폐결핵과 지병으로 27세에 요절하고, 이태준은 실명에 언어장애까지 겪은 채로 월북한 채 소식이 끊겼으며, 나머지 인원도 대부분 요절하거나 월북한 채 소식이 끊기고 이 중 가장 출세한 유치진은 대표적인 친일파로 연극계를 지 멋대로 주무른 악인이다.
4. Project Moon 세계관의 단체 구인회
모티브는 3번 문단의 구인회.자세한 사항은 구인회(Project Moon 세계관) 참조.
5. 얼음과 불의 노래에 등장했던 단체
The Band of Nine나인페니 왕들의 전쟁의 주동자들이며, 말 그대로 아홉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리더인 마엘리스 블랙파이어 사망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
5.1. 목록
- '괴물같은' 마엘리스 블랙파이어 (Maelys Blackfyre, the Monstrous)
황금 용병단 단장이자 구인회의 실질적 지도자.
- 늙은 어머니 (The Old Mother)
해적 여왕. 휘하에 많은 상인, 해적, 용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 '도살자' 점박이 톰 (Spotted Tom, the Butcher)
분쟁지대에서 활동하던 용병대장으로 웨스테로스 출신이라고 한다.
- '마지막 발리리아인' 사마로 산 (Samarro Saan, the Last Valyrian)
리스의 악명높은 해적 가문 출신으로 휘하 해적, 상인, 용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후손으로는 살라도르 산이 있다.
- '검은 군주' 조바 코쿠아 (Xhobar Qhoqua, the Ebon Prince)
여름 군도의 소왕국의 왕자로 모종의 이유로 추방당한 후 분쟁 지대에 자신의 용병단을 만들어 이끌고 있었다.
- '전투의 지배자' 리오몬드 라셰어 (Liomond Lashare, the Lord of Battles)
꽤나 이름 날린 용병대의 대장이라고 한다.
- 아홉 눈 (Nine Eyes)
유쾌한 친구들 (Jolly Fellows)이라는 용병단의 대장이었다.
- '은혓바닥' 알레코 아다리스 (Alequo Adarys, the Silvertongue)
티로시의 대상인으로 부유하였고 야심도 많았다. 구인회의 일원 중 오직 그만이 목적이던 티로시의 왕이 되는 것에 성공하였다. 마엘리스의 사망 이후 반 년만에 구인회가 와해된 이후로도 6년 동안 권력을 유지했으나 자신의 부인에게 독살당했고, 티로시는 다시 집정관이 다스리게 되었다.
[1] 1931년 공산당 재건 운동과 관련하여 카프 맹원들에 대한 검거 사건이 있었으며 이때를 기점으로 박영희, 김기진 등이 세력을 잃고 임화 등의 강성들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주게 된다.[2] 사실 이쪽도 구인회에 가입하고 싶어하였으나, 구인회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박태원과 주먹다툼까지 가게 되었고 김유정과 순사들이 뜯어말려도 싸움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이상까지 나서서 말린 후에야 싸움이 멈췄다고 한다.[3] 이들의 이러한 방향성은 삼사문학파가 일부 수용한다.[4] 저 인물들 중에서 요절한 사람만 최소 두 명은 넘어간다, 참고로 최소 두명인 이유는 이종명, 김기림, 이태준같이 생몰년 혹은 사망년도가 미상인 인물들도 있기때문, 그런 인물들을 제외하면 요절한것이 확실한 인물은 김유정과 이상이다.[5] 종로 일대에 열었던 다방이 죄다 망하고 금홍과의 동거마저도 파경을 맞은 이상이 잠시 취직해서 편집,교정을 보던 출판사인 창문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창문사는 이상과 아주 친했던 화가 구본웅의 아버지가 설립한 출판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