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13:45:21

구한성

구한성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6번
명태윤
(1991)
구한성
(1992~1997. 5. 19.)
김상현
(2000~2002. 7. 30.)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64번}}}
이승준
(1996)
구한성
(1997. 5. 20.~1998)
결번
}}} ||
구한성
출생 1970년 1월 7일 ([age(1970-01-07)]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제일고 - 인하대
포지션 내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2년 신고선수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92~1997)
쌍방울 레이더스 (1997~1998)

1. 개요2. 선수 경력3. 여담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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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태 타이거즈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선수.

2. 선수 경력

광주일고 시절에는 1년 선배 김기태, 1년 후배 이종범과 함께 뛰었다. 인하대에 권명철(인천고), 장원진(인천고), 이상현(보성고), 김억초(중앙고)과 함께 입학했으며 3루수로 뛰었다. 인하대 시절 전국대회 결승에 수 차례 진출했으나 구대성, 정민태, 손차훈 등이 꿰차고 있던 당대 최강 한양대에 번번히 좌절의 아픔을 맛봤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술회하길 해태 타이거즈의 선수층이 너무 두터워 구한성은 좌완투수 이상현과 함께 포스콘 야구단 입단을 추진했으나 이상현은 OB 베어스로 진로를 틀었고 그 여파로 포스콘 입단이 무산되면서 연봉 700만원의 헐값에 해태 유니폼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주로 백업 역할[2]을 맡거나 2군에 머물면서 주전 자리를 꿰차지는 못했지만, 구대성 등 당대 에이스 선수들을 상대로[3] 홈런을 기록하고, 95년도에는 45경기에 나와서 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주로 경기 후반에서 조커 같은 활약을 남긴 바 있다.[4]

1997년 5월 김승남[5]과 함께 현금 4천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 됐고, 삼성 라이온즈와의 1997년 준플레이오프에 엔트리에 포함되기도 했으나 1998년을 끝으로 선수단에서 정리됐다.

3. 여담

은퇴 이후에는 세한대학교 야구부(당시 대불대학교) 코치로 1년 간 활동했다가 목포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는 전기자재 도매 유통을 하는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야구와 관련된 칼럼을 쓰는 등 기고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목포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직을 역임하며 야구계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예전 룸메이트였던 김성한과 함께 광주MBC전설의 타이거즈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근황을 공개했다. 2023년 11월 박재벌과 함께 다시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했다.

목포MBC 낭만항구에 최해식과 같이 출연했다.[LIVE]낭만항구 '야구와 나의 인생' 최해식&구한성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2 해태 59 .172 10 1 0 1 1 7 0 8 2 15 .294 .241 .536
1993 1군 기록 없음
1994 14 .214 3 0 0 0 1 2 0 2 1 3 .353 .214 .567
1995 45 .233 27 2 0 4 17 11 0 13 0 21 .305 .353 .659
1996 17 .083 2 0 0 1 1 1 0 3 1 7 .214 .208 .423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7 쌍방울 23 .188 3 1 0 0 1 6 1 0 0 3 .188 .250 .438
1998 3 .000 0 0 0 0 0 0 0 0 0 2 .000 .000 .000
KBO 통산
(6시즌)
161 .196 45 4 0 6 21 27 1 26 4 51 .286 .291 .578

5. 관련 문서


[1] 가장 큰 임팩트를 남겼던 95시즌에 1루수로 활약하였고, 커리어 동안 내야의 모든 포지션에 출전했었다.[2] 92년, 95년. 95~96년에는 김병조, 이경복, 양회열 등과 백업 경쟁을 벌였다.[3] 특히 왼손투수들의 공을 잘 쳤고 구대성의 공 궤적은 구한성의 스윙 궤적과 맞아서 구대성의 공을 기가 막히게 잘 쳤다고 한다.[4]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해서 남긴 자기소개에 따르면 당시 신문 1면을 4~5번 장식한 적이 있었다.[5] 광주진흥고 출신의 우완투수이며 해태에 입단했으나 정성룡(삼성)과 맞트레이드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고 다시 해태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번의 트레이드로 쌍방울로 이적했다. 은퇴 후에는 광주진흥고 코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