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5:38:28

그리스 폭동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GreekRiotMontage.jpg

1. 개요2. 발단3. 전개

1. 개요

2008년 12월 6일 시작된 그리스의 반정부 시위 및 폭동. 기존에 있던 청년실업과 저임금 문제 및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겹쳐서 그리스의 경제가 막장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학생 1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고질적인 청년실업 문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분노하여 벌어진 시위다.

시작은 반정부 시위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젊은이들의 대량 참여로 양상이 거칠어지고 공공기관이나 민간상점 등에 불을 지르고 약탈행위가 일어나는 등 막장크리가 서서히 터지기 시작하면서 폭동으로 분류된다.

2. 발단

사건의 발단은 12월 6일 경찰이 15세 소년에게 총을 쏴서 사망케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망 직후 경찰 측의 발언과 주변 민간인 목격자들의 발언이 엇갈렸다. 경찰은 위협용으로 총 세 발을 쏘았고 두 발은 공중에, 한 발은 바닥에 쏘았는데 바닥에 쏜 것이 튀어서 소년이 맞아 사망했다고 했고, 목격자들은 그딴 것 없이 경찰이 직접 소년을 조준해서 쏴 죽였다고 말했다. 이후 조사를 통해 소년이 총을 직접 맞았음이 보도되었고 이 소식에 그리스 전역의 청년들이 들고 일어나게 된다.

안 그래도 700유로 세대(한국의 88만원 세대와 같은 개념이다)로 지칭되는 그리스 청년들의 울분이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은 별로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동조할 정도. 2000년대 들어서 그리스도 전세계적인 호황과 올림픽 개최를 틈타 자산가격도 급속히 올라가면서 매년 4%대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정도의 호황을 누리게 되었지만, 호황은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 관광 산업과 해운업 말고는 내놓을 만한 산업이 없는 그리스는 2007년에 산불로 한 차례 큰 타격을 받았고 그 이후에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그 빈 껍데기가 여실히 드러나게 되어 극심한 무역수지 불균형으로 누적 적자가 산더미같이 쌓여가는 등 경제의 내실이 극명히 드러나게 된다. 또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도 속속히 드러나면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었으며, 이전부터 문제되었던 청년실업률도 20퍼센트[1]에 이르는 수준, 그나마 취직된다 해도 저임금직으로 부려먹혀야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의 죽음은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는 불만을 표출시킬 동기부여 정도를 한 뇌관이라고 보면 되겠다.

3. 전개

시위는 전경의 최루탄과 시위대의 화염병이 교차하는, 격렬한 장면을 열심히 연출해 주었다. 이로 인해 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내무장관이 교체되는 홍역을 치렀으나 어디까지나 진통제였을 뿐... 덕분에 2009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정당이 신민당에서 사회당으로 교체되었으나, 이미 장기간 지속된 무역적자로 생긴 막대한 부채와 부동산 거품 붕괴, 부정부패로 인해 경제위기는 해결되지 못하였다. 한 편, 그리고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신민당 정부 하에서 재정적자가 대규모로 은폐되었다는 것이 폭로되었고 결국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구제금융의 대가는 매우 혹독해서 사회당이 2009년 총선에서 내걸었던 복지확충 공약은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었고, 최저임금도 인상되기는 커녕 떨어져나가서 592유로대까지 후퇴되었고,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청년실업률도 마찬가지로 떨어져나가긴 커녕 계속 증가하여 실업자도 급증하였으며, 연금도 대대적으로 삭감되는 바람에 자살율이 급증하고, 의료예산이 삭감되어 국립병원들이 문을 닫는 등 대혼란을 겪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2011년에 사회당과 신민당의 대연정이 이루어졌으나 대연정이 이루어졌다고 경제위기가 해결되는건 아니었고, 을씨년스러운 상황이 지속되어만 갔다. 2012년 총선에서 시리자와 공산당, 독립 그리스인, 황금새벽당, 민주좌파 등 군소야당들이 대거 약진하게 되어서 사회당이 몰락하였고 신민당의 득표율도 급속히 떨어졌으나 디폴트를 우려한 EU 당국과 독일의 압박으로 2차 총선에서 신민당에게 표가 쏠리면서 정권교체는 불발되었다. 그리고 이후 2년 반 동안 긴축정책이 계속 진행되어서 일단 재정적자 감축에는 성공하였지만 그 동안 일반인들의 삶은 가히 바닥 오브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어서 청년실업률은 2008년 당시보다 3배 가까이 뛰어올라 60% 언저리를 바라볼 수준에 까지 왔으며(참고로 공식통계다) 전체 실업률도 10%대 초반에서 25%로 뛰어올랐다. 거기에다가 민영화 정책로 인한 공공요금의 대대적인 인상은 덤... 이처럼 90년대 러시아를 연상케 할정도로 사회시스템이 무력화되어가면서 국민들의 좌절감은 더욱더 커져갔고, 결국 2015년 총선에서 시리자가 원내 1당이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 정부 공식 통계. 비공식은 이보다 훨씬 더 높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