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김기전 金起田[1] | Kim Ki Jeon | |
출생 | 1935년 11월 10일 ([age(1935-11-10)]세) |
일본 제국 도쿄부 도쿄시[2][3] | |
출신 | 함경남도 이원군 장문 (場門) |
본관 | 강릉 김씨 (江陵 金氏)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경남여자고등학교 (졸업)[4] 경기여자대학 (졸업)[5] |
데뷔 | 1952년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6] |
부모 | 아버지[7], 어머니 |
배우자 | 정막[8] |
자녀 | 장남 정기홍[9][10], 차남 정기준[11], 삼남 정기호[12] |
약력 | 국보오페라단 단원 부산화교중학교 무용강사 원화여자고등학교 무용강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무용강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무용강사 대구시립무용단 창단[13] 정막무용연구소 운영[14] 대구발레아카데미 운영 스페이스 콩코드 소극장 운영 세계안무축제 기획 사단법인 다다 대표[15][16] 미스코리아 대구 심사위원 (1984)[17][18] |
종교 | 개신교 |
링크 | | | |
[clearfix]
1. 개요
현대무용은 철학과 사상이 필요하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대구광역시 원로예술인 구술기록화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대구광역시 원로예술인 구술기록화에서
생각은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작품은 쉽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어요.
대구 현대무용의 역사 전시 中
대한민국의 1세대 무용가, 대구시립무용단 초대안무자이다.그래야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어요.
대구 현대무용의 역사 전시 中
국내 최초의 국 · 공립 현대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Daegu City Dance Company)'을 창단하였다.
2. 생애
대구시립무용단을 넘어서 한국의 현대무용에서 높이 평가받는 인물이다.대구는 1930년대 김상규(1922~1989)를 통하여 현대무용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김상규가 뿌려놓은 씨앗을 싹틔워 꽃을 피우게 한 인물이 김기전이다.
1981년에 국내 최초의 국 · 공립 현대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을 창단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대구시립무용단은 김기전을 시작으로 구본숙[19]·안은미[20]·최두혁[21]·박현옥[22]·홍승엽[23]·김성용[24] 안무가에 이어 현재 8대 안무가인 최문석[25]까지 국내 우수한 안무가들과 함께 지역 무용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26]
3. 공연
3.1. 대구시립무용단[27]
- 제1회 대구직할시 승격 경축 <구름아 풍선아> (1982. 6. 30.)
- 제2회 대구직할시 승격 1주년 <걸음으로부터> (1983. 7. 2.)
- 제3회 <소리따라 빛따라> (1983. 11. 30.)
- 제4회 <바람이 지나는 곳> (1984. 6. 22.)
- 제5회 <행위예술과 환경조형의 만남> (1984. 10. 10.)
- 제6회 <향으로 띄우는 서한> (1984. 10. 10.)
- 제7회 <쓰르라미의 연가> (1985. 11. 26.)
- 제8회 <세일 또 세일> (1986. 6. 16.)
- 제9회 <여기 이곳> (1986. 10. 25.)
- 제10회 <검은 숯 흰꽃되어> (1986. 12. 23.)
- 제11회 <뿌리 나뭇잎 풀잎 열매> (1987. 3. 24)
- 제12회 <그의 춤 그 얼굴> (1987. 7. 1.)
3.2. 세계안무축제[28]
- 2024년 현재 10주년을 맞이하였다.
4. 안무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매스게임' 안무[30]
- 1986년 '여기 이곳' 안무
- 2009년 '오방선유도' 안무
5. 방송
6. 수상
- 이화여자대학교 무용콩쿠르 안무상 (1965)[32]
- 중앙대학교 무용콩쿠르 창작상 (1968)
- 경희대학교 무용콩쿠르 작품상 (1969)
- 외국무용단체 특상 (1969)
- 경상북도 문화상 (1972)
- 제3회 한민족 대상 (2010)
7. 여담
- 아나운서 오정연이 좋아하는 무용가라고 한다. 그의 행사에 직접 가서 사회를 보고 사인도 받았다고 한다.
[1] 훈음 성 김 일어날 기 밭 전[2] 現 도쿄도. 아버지가 도쿄대학 유학생 시절, 태어났다.[3] 일본명은 '요시코 짱'이라고 한다.[4] 함경남도 이원군 장문 (場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한국 전쟁으로 1950년에 가족 모두가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5] 부산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서 청강생으로 수학하였다.[6] 줄리엣 역을 하였다고 밝혔다.[7] 배우이다. 도쿄대학을 졸업하였다.[8] 무용평론가이다.[9] 1957년 출생, 조지아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조지아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제리서치연구소장을 역임하였으며, 만42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10]
맨 왼쪽부터 삼남 정기호, 장남 정기홍, 차남 정기준이다.
삼형제 모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를 다녔다.[11] 1959년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12] 1965년 출생, 부산고 졸업 후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2기로 졸업하였다. 동문으로 조재현, 이병준가 있다. 과거 기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13] 초대안무자이다.[14] 원화여자고등학교에서 운영했다고 한다.[15] DADA (Daegu Art Dance Association)[16] 대구시민문화연구소의 전신이다.[17] 약 5년간 했다고 한다.[18]
오른쪽 여성의 왼쪽이 김기전이다.[19]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20]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 뉴욕 대학교 대학원 박사[21] 계명대학교 무용과 학사, 석사, 박사[22] 한양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박사[23] 경희대학교 학사, 석사[24] 한양대학교 무용과 학사, 석사, 박사[25] 세종대학교 무용과 학사, 석사[26] 현재 2021년 창립 40주년을 맞았다.[27] 재임기간: 1981-1987[28] 세계안무페스티벌 → 세계안무축제[29]
왼쪽이 김상규, 오른쪽이 정막이다.[30] 중앙로에서도 매스게임 안무를 맡아 행사를 하였다고 한다.[31] [32] 당시 유일한 무용콩쿠르였다.[33]
1972년도 당시 대구에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여성이 총 5명이었다고 한다. 동양자동차학원에서 1종보통을 취득하였다.
맨 왼쪽부터 삼남 정기호, 장남 정기홍, 차남 정기준이다.
삼형제 모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를 다녔다.[11] 1959년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12] 1965년 출생, 부산고 졸업 후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2기로 졸업하였다. 동문으로 조재현, 이병준가 있다. 과거 기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13] 초대안무자이다.[14] 원화여자고등학교에서 운영했다고 한다.[15] DADA (Daegu Art Dance Association)[16] 대구시민문화연구소의 전신이다.[17] 약 5년간 했다고 한다.[18]
오른쪽 여성의 왼쪽이 김기전이다.[19]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20]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 뉴욕 대학교 대학원 박사[21] 계명대학교 무용과 학사, 석사, 박사[22] 한양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박사[23] 경희대학교 학사, 석사[24] 한양대학교 무용과 학사, 석사, 박사[25] 세종대학교 무용과 학사, 석사[26] 현재 2021년 창립 40주년을 맞았다.[27] 재임기간: 1981-1987[28] 세계안무페스티벌 → 세계안무축제[29]
왼쪽이 김상규, 오른쪽이 정막이다.[30] 중앙로에서도 매스게임 안무를 맡아 행사를 하였다고 한다.[31] [32] 당시 유일한 무용콩쿠르였다.[33]
1972년도 당시 대구에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여성이 총 5명이었다고 한다. 동양자동차학원에서 1종보통을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