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국민훈장 수훈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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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1993년 |
| 이름 | 정순영 |
| 분야 | 교육 |
| 국민훈장 목련장(4등급) | |
| <colbgcolor=#000><colcolor=#fff> 정막 鄭漠[1] | Jeong Ma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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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정순영 (鄭淳永[훈음], Jeong Soonyoung) |
| 출생 | 1928년 1월 25일 |
| 전라남도 광주군[3] | |
| 사망 | 2012년 1월 21일 (향년 83세) |
|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2가 경북대학교병원 | |
| 등록기준지 |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1가 |
| 본관 | 서산 정씨 (瑞山 鄭氏) |
| 국적 | |
| 학력 | 화순공립보통학교 (졸업)[4] 광주서공립중학교 (졸업)[5]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고등부 (수료)[6]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 학사)[7] 부산대학교 대학원 (섬유공학과 / 석사 · 박사)[8] |
| 데뷔 | 1950년 '평화의 섭리' (무용) |
| 1999년 월간지 '춤' (평론) | |
| 부모 | 아버지 정태암[9], 어머니 문화[10] |
| 배우자 | 김기전[11] |
| 자녀 | 장남 정기홍[12][13], 차남 정기준[14], 삼남 정기호[15] |
| 약력 | 현대군무단(軍藝隊) 단원 한국춤평론가회 정회원[16] 대구공업고등학교 방직과 교사[17] 도쿄대학 객원연구교수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교수[18] 경성대학교 공과대학 교수[19][20] 대구발레아카데미 운영[21] 스페이스 콩코드 운영[22] 대구시민문화연구소 소장[23] 조선교육무용연구소 (제3기 연구생)[24][25] |
| 수훈 | 국민훈장 목련장[26] |
| 종교 | 개신교 |
| 링크 | |
1. 개요
나는 이 책에서 오늘의 춤뿐 아니라 지난 날의 춤에 대해서 남기고 싶거나 남겨야 할 일들을 평론집이란 이름으로 적지 않게 실었다고 생각한다.
<춤 평론집> 춤추는 바보 춤 못 추는 바보
대한민국의 공학자, 1세대 무용평론가이다.<춤 평론집> 춤추는 바보 춤 못 추는 바보
2. 생애
청년 시절에는 정막[27]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직접 무용을 했다. 이후 무용평론가로 활동할 때는 본명인 정순영이라는 이름으로 무용 평론을 써왔다.
전라남도 광주군 출신인 정막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47년 함귀봉이 만든 조선교육무용연구소[28][29]를 통해 춤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한다.
2.1. 공학도 출신으로 춤에 입문
6.25 전쟁 당시 정막은 조선교육무용연구소 출신인 조동화가 조직한 현대군무단(軍藝隊)의 무용단에 들어가면서 무용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정순영의 첫 작품은 1950년 11월 시공관에서 선보인 '평화의 섭리'로 기록된다. 그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부산극장에서 1953년 열린 종군극작가단 신작무대 '인어의 정설' 무대에 출연했고, 같은 해 8.15 광복 경축 무용전 '도학자가 본 서커스' 무대에 서면서 안무도 맡았다. 이듬해 정막은 당시 중앙국립극장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열었다.| |
| 정순영 김기전 부부 |
2.2. 늦깎이 평론가
정순영은 공학과 창작, 비평의 경계를 넘나든 팔방미인(八方美人)이었다. 호남 출신으로 일찍이 영남 지역에서 활동했고, 공학도이면서 예술가로 불렸고, 또한 이론과 실기를 겸비했다.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원장) 융합형 춤의 선구자, 정순영 서울문화투데이
부산대학교를 거쳐 경성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정막은 정년퇴직 후인 1999년 월간지 '춤'을 통해 정식 무용 평론가로 등단한다. 뒤늦게 시작한 무용평론이었지만, 정막에게 공연을 보고 이에 대한 평을 글로 쓰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보다 전인 1950년 중반부터 지역 언론에 무용 공연 평과 칼럼을 기고해왔다.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원장) 융합형 춤의 선구자, 정순영 서울문화투데이
정막은 전국 각지의 무용 무대를 찾아 공연을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정막의 평론 방식은 무용 공연을 실제적, 구체적으로 묘사한 방식이어서 과학비평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3. 사망
한국 무용평론 1세대 정순영 씨 별세연합뉴스
아리랑
영남일보
매일신문
동아일보
한겨레
향년 83세로 2012년 1월 21일 오후 4시 30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빈소는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4. 저서
그는 평론가로 활동하며 쓴 글을 모아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춤추는 바보 춤 못추는 바보" "춤의 현장 觀舞記" "DANCE REVIEW 觀舞記" "Choom & Dance Review" "DANCE REVIEW & 觀舞記"가 대표적이다. 유작으로 남은 "大邱 춤 60年史"는 그의 대구지역 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800쪽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구무용이 본격적으로 태동했던 시기의 무용공연부터 시작해 지역무용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춤추는 바보 춤 못 추는 바보 (2002)
- 춤의 현장 觀舞記 (2005)
- DANCE REVIEW 觀舞記 (2007)
- Choom & Dance Review (2009)
- DANCE REVIEW & 觀舞記 (2010)
- 大邱 춤 60年史 (2013)[30]
5. 수상
- 대구예술인상 (2002)
- 제8회 한국예술발전상 (2008)
- M문화예술공헌상
6. 상훈
7. 여담
[1] 훈음 나라 정 넓을 막[훈음] 나라 정 순박할 순 길 영[3] 現 광주광역시[4] 1936.3-1942.3[5] 1942.3-1946.6[6] 1946.9-1948.6,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고등부는 별도의 독립된 고등학교가 아니라, 광복 직후인 1946년 서울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최초 설립되던 과도기에 존재했던 공과대학 예과 과정이다.[7] 1948.9-1954.3, 現 재료공학부.[8] 1975.2, 現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9] 1983년에 사망하였다.[10] 1978년에 사망하였다.[11] 대구시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상임안무자이다.[12] 1957년 출생, 조지아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조지아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만42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13] ![파일:정막부부 삼형제.jpg]()
맨 왼쪽부터 삼남 정기호, 장남 정기홍, 차남 정기준이다.
삼형제 모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를 다녔다.[14] 1959년 출생,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15] 1965년 출생, 부산고등학교 졸업 후 경성대학교 84학번, 연극영화학과 2기로 졸업하였다. 동문으로 조재현, 이병준가 있다.[16] 1999.1-2010.9[17] 1956.12.23, 現 스마트융합섬유과.[18] 1962.3-1979.3[19] 1979.3-1993.3 정년퇴임하였고, 퇴임하기 전 총장 선거를 나갔다고 한다.[20] 이공대학 학장, 교무처장, 기획실장, 초대 출판부장을 역임하였으며, 경성대학교를 들어갈 당시 학교에 의류학과를 만들었다고 한다. 現 패션디자인학과.[21] 1954년 정막현대무용연구소를 창설하여 1957년 부인인 현대무용가 김기전와 결혼한 후에 정막무용연구소로 명칭을 바꾸어 원화여자고등학교 인근에 부부가 함께 운영을 했다. 이후 1961년 대구 중구 동인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명칭을 대구발레아카데미로 바꾸었다. 당시 대부분 연구소라는 이름을 쓰던 시절에 아카데미라는 명칭을 최초로 도입했다.[22] 2000년대 초반 대구시민문화연구소 산하에 소극장인 스페이스 콩코드를 개설하여 7년간 운영을 했다.[23] 1999년 정순영 교수가 경성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설립한 연구소이다. 2007년부터는 다다(DADA)를 설립하여 부설 기관 형태로 재편되었다.[24] 문교부소속, 함귀봉교육무용연구소의 전신[25] 1949.3-1950.4, 동문으로는 최창봉, 차범석, 김문숙, 김삼화, 조동화, 정병호가 있으며 무용과가 없던 시절 무용교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26] 1993년 2월 28일 경성대학교 소속.[27] 여기서 막(漠)은 石井漠(이시이 바쿠)의 이름 ‘漠’ 자에서 따온 것이다.[28] 조선교육무용연구소 제3기 연구생 출신이다.[29] 함귀봉은 일본 유학파 출신으로 동양음악전문학교을 졸업했다. 조선교육무용연구소는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무용 교육 기관이었다. 오늘날 무용과와 다름없었다.[30] 생전에 집필했던 마지막 유작이다.[31]![파일:김상규와 정막.jpg]()
왼쪽이 김상규, 오른쪽이 정막이다.
맨 왼쪽부터 삼남 정기호, 장남 정기홍, 차남 정기준이다.
삼형제 모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를 다녔다.[14] 1959년 출생,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15] 1965년 출생, 부산고등학교 졸업 후 경성대학교 84학번, 연극영화학과 2기로 졸업하였다. 동문으로 조재현, 이병준가 있다.[16] 1999.1-2010.9[17] 1956.12.23, 現 스마트융합섬유과.[18] 1962.3-1979.3[19] 1979.3-1993.3 정년퇴임하였고, 퇴임하기 전 총장 선거를 나갔다고 한다.[20] 이공대학 학장, 교무처장, 기획실장, 초대 출판부장을 역임하였으며, 경성대학교를 들어갈 당시 학교에 의류학과를 만들었다고 한다. 現 패션디자인학과.[21] 1954년 정막현대무용연구소를 창설하여 1957년 부인인 현대무용가 김기전와 결혼한 후에 정막무용연구소로 명칭을 바꾸어 원화여자고등학교 인근에 부부가 함께 운영을 했다. 이후 1961년 대구 중구 동인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명칭을 대구발레아카데미로 바꾸었다. 당시 대부분 연구소라는 이름을 쓰던 시절에 아카데미라는 명칭을 최초로 도입했다.[22] 2000년대 초반 대구시민문화연구소 산하에 소극장인 스페이스 콩코드를 개설하여 7년간 운영을 했다.[23] 1999년 정순영 교수가 경성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설립한 연구소이다. 2007년부터는 다다(DADA)를 설립하여 부설 기관 형태로 재편되었다.[24] 문교부소속, 함귀봉교육무용연구소의 전신[25] 1949.3-1950.4, 동문으로는 최창봉, 차범석, 김문숙, 김삼화, 조동화, 정병호가 있으며 무용과가 없던 시절 무용교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26] 1993년 2월 28일 경성대학교 소속.[27] 여기서 막(漠)은 石井漠(이시이 바쿠)의 이름 ‘漠’ 자에서 따온 것이다.[28] 조선교육무용연구소 제3기 연구생 출신이다.[29] 함귀봉은 일본 유학파 출신으로 동양음악전문학교을 졸업했다. 조선교육무용연구소는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무용 교육 기관이었다. 오늘날 무용과와 다름없었다.[30] 생전에 집필했던 마지막 유작이다.[31]
왼쪽이 김상규, 오른쪽이 정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