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10:56:54

김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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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TNT FC No. 10
김민균
(金民均 | Kim Min-Kyun)
<colbgcolor=#25aae1><colcolor=#ffffff> 출생 1988년 11월 30일 ([age(1988-11-30)]세)
경기도 김포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73cm, 68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유소년 백석초 - 백마중 - 중대부고 - 명지대
소속팀 <colbgcolor=#25aae1> 선수 대구 FC (2009~2010)
파지아노 오카야마 (2011~2012)
야기엘로니아 비아위스토크 (2013)
파지아노 오카야마 (2013)
울산 현대 (2014~2016)
FC 안양 (2016 / 임대)
FC 안양 (2017~2019)
아산 무궁화 (2017~2019 / 군 복무)
서울 이랜드 FC (2019~2021)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 (2022~2023)
코치 TNT FC (2023~/ 플레잉 코치)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6경기 1골 (대한민국 U-20 / 2006~2007)

1. 개요2. 프로 데뷔 이전3. 클럽 경력
3.1. 대구 FC3.2. 일본, 폴란드 리그3.3. 울산 현대
3.3.1. FC 안양 (임대)
3.4. FC 안양
3.4.1. 아산 무궁화 (군 입대)
3.5. 서울 이랜드 FC
3.5.1. 2019 시즌3.5.2. 2020 시즌3.5.3. 2021 시즌
3.6. 대전 한국철도3.7. TNT FC
4. 국가대표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2. 프로 데뷔 이전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이회택 축구교실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기본기 위주로 축구를 즐기던게 또래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는데 도움이 되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프로의 길을 꿈꾸게 되었다.

중학교는 백마중학교에 진학했으며, 이 당시 포지션은 쉐도우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김민균을 축으로 해서 백마중은 전국대회 4강과 경기도대회 4강 등에 진출하며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백마중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선보인 김민균을 원하는 고교 팀은 여럿 있었다. 그 중에서 김민균이 원래 선택한 팀은 신한고였다. 그러나 이길용 감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신한고행은 없었던 일이 되었고 결국 중대부고가 최종 선택지였다.

중대부고 측에서 김민균에게 독일로 축구 유학을 제시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6개월 정도 베르더 브레멘[1]유소년 팀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김민균이 느낀 점은 볼을 예쁘게 차는 축구는 다르게 보면 너무나도 연약하게 공을 찬다는 점[2]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당시 유학선수들이 겪던 향수병도 좀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맹활약을 펼치며 창조적인 패스와 개인기 등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켰던 뛰어난 미드필더로 이름이 높았다. 이를 바탕으로 명문대학교 진학을 노릴 수도 있었다.

결국 명지대학교로 진학하였고, 명지대 진학 이후에도 명지대 축구부 에이스로 군림하며 많은 여성팬을 몰고 다녔다. 비슷한 시기, J리그에서 입단 제의까지 받을만큼 김민균 선수의 실력은 대학권에서도 최고로 통할 정도였다.

그러나 명지대 2학년 재학 도중, 허리 부상으로 5개월 가량을 결장하며 스카우터 눈에 드는데 실패한 김민균 선수는 2학년을 마치고 신청한 2009년 드래프트에서 대구 FC에 5순위로 지명되었다. 더 높은 지명순위를 예상했던 김민균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3. 클럽 경력

3.1. 대구 FC

대구 FC에 입단한 김민균은 변병주 감독에게 주전으로 곧바로 기용되면서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고, 이후 팀에 차차 녹아들며 공격형 미드필더와 플레이메이커를 두루 소화하며 대구의 공격의 첨병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대구는 공격밖에 하지 않았다.2009년 3월 8일 성남 일화 천마를 상대로 데뷔하며 빠르게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2009년 5월 16일에는 강원 FC와의 2대 2로 비기는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였다. 데뷔시즌 31경기 출장해 1골 3도움을 기록했다. 대구 팬들은 김민균의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2010 시즌 시작 전, 출발 드림팀대구 FC의 선수로 출연했다. 구단측에서 김민균이 가진 잠재성과 명지대 시절 외모로 높이 평가받았던 것을 감안해 내보낸 듯. 설마 이영진 감독이 안쓸줄 몰랐겠지.

다만, 이기적인 플레이와 지나치게 개인 기술에 의존하는 플레이는 김민균의 약점으로 지적 받았고 병주 이후 대구 FC 의 3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영진은 김민균의 그러한 플레이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위와 같은 감독과의 마찰로 김민균 선수는 2010시즌 교체출장으로 15경기 출장에 그쳤고, 주전 보장을 받지 못한데 크게 반발한 김민균은 2011시즌 시작전 대구와 상호 합의하에 계약해지를 했다고 한다. 2010시즌 기록은 15경기 1골 1도움.

3.2. 일본, 폴란드 리그

대구와 계약 해지 후, 일본 J2리그의 파지야노 오카야마라는 팀에 입단하였다. 이 팀은 이동명, 김태연 등 한국 선수들을 잘 써먹는 J2리그의 하위권 팀중 하나로도 유명한 팀이다. 오카야마에서 2년간 활약한 김민균은, 2년간 73경기 10골을 기록하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13시즌을 앞두고 폴란드의 1부 리그인 엑스트라클라사에 있는 축구팀인 야기엘로냐 비아위스토크로 이적하여 작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비아위스토크에서는 5경기 출장에 그치며, 6개월여만에 상호 계약해지로 팀을 나왔고, 이후 친정팀 격인 오카야마로 다시 복귀하여 몸상태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하여 12경기 2골을 기록했다. 이후 2014시즌을 앞두고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K리그 무대에 3년여만에 복귀하게 되었다.

3.3. 울산 현대

친선 경기부터 선발 및 교체로 꾸준히 출전하며 경기 감각을 쌓아올렸다. 조민국 감독표 철퇴 축구의 첨병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3월 13일 귀저우와의 ACL경기에서 후반 13분 김용태와 교체되어 투입되었다. 투입된 후 찔러넣는 패스와 크로스를 주로 올렸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3월 23일 인천과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한 김신욱과 후반 33분에 교체되어 경기에 투입되었다. 4월 19일 수원 삼성과의 홈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0-2로 뒤지던 게임을 2-2로 비기게 하는데 일조했다. 9월 7일 경남과의 홈경기에서 멋진 발리슛으로 결승 득점 하며 2대1 승리에 일조했다.

3.3.1. FC 안양 (임대)


파일:김민균_안양_2016.jpg
2015 시즌이 끝난 후 K리그 챌린지 소속 FC 안양으로 임대되었다.

이후 '기적을 꿈꾸는 사나이' 라고 불리며[3] 리그 38경기 11골 4도움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임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팀 내 득점 선두였을 정도.

3.4. FC 안양

상술한 활약으로 시즌 종료 후 안양에 완전히 영입되었다. 비록 5월에 아산 무궁화로 입대하게 되어 얼마 뛰지는 못하지만, 주축 선수 중 한 명이었던 김민균을 잡았다는 점에서 안양 팬들의 평가는 매우 좋은 편. 입대 직전까지 '안양의 마에스트로' 라고 불리며 안양의 즉전감으로 활약하였고, 5월 11일에 입대하였다.

3.4.1. 아산 무궁화 (군 입대)

아산에서도 전의 명성을 이어 활약하였고, 2018 시즌에는 18경기 4골을 기록하였다.

3.5. 서울 이랜드 FC

2018 시즌을 마치고 전역했고, 2019년 2월 1일 안양과의 계약을 해지한 뒤에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였다.

3.5.1. 2019 시즌

천안에서 열린 6라운드 친정팀 안양전 김경준의 도움으로 쐐기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으며, 더글라스쿠티뉴의 네 번째 골을 어시스트했다.

천안에서 열린 8라운드 부천전 유정완의 추격 중거리 골을 어시스트했다. 우성용 감독대행의 데뷔전인 13라운드 안양과의 원정 경기에서 권기표에게 침투패스를 넣어주며 어시스트를 추가했다.

20라운드 아산 원정 알렉스의 골을 크로스로 도왔고, 자신이 얻은 PK를 넣으며 2:3까지 따라 붙었지만 팀은 패배했다. 이 경기에서 부주장 이현성이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아웃됐고 팀 합류 후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달았다. 주장 안지호이 부상으로 자주 결장했고, 김영광, 김동철, 이경렬 등 완장을 달고 팀을 지휘할 사람이 마땅히 없자, 우성용 감독대행은 이 경기부터 안지호가 복귀할 때까지 김민균에게 완장을 달게 한다.

23라운드 수원전 원기종의 도움으로 선취골, 이태호의 결승골을 코너킥으로 도우며 2:1 승리에 일조한다. 레울파크 복귀 후 2연승에 앞장선다.

26라운드 부산전 홈경기에서 세 골차로 끌려가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하며 3:3으로 비기는데 일조한다. 레울파크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득점했다.

k리그2 32경기에 나와 5득점 6도움을 기록하며 팀내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고 리그 도움 7위 등, 암울한 시즌에 팀의 에이스로서 모습을 톡톡히 보여줬다.

3.5.2. 2020 시즌

지난 시즌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0 시즌을 앞두고 주장으로 선임됐다.

2라운드 레울파크 개막전에서 레안드로의 패스를 왼발로 차 동점골을 기록했다. 8라운드 부천전에서 레안드로의 패스를 밀어넣으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12라운드 아산전에서 완벽하게 구석을 꿰뚫는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20라운드 대전전에서 이시영의 크로스를 머리로 돌려놓으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26라운드 제주전에서 골대 맞고 나온 공을 밀어넣으며 만회골을 기록했다.

K리그2 24경기 5골을 기록했다. 작년에 비해 레안드로, 수쿠타-파수 등 공격진의 무게가 생겨 팀이 전체적으로 향상된 모습을 보였고, 주장으로서 꼴찌에서 플레이오프에 경쟁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3.5.3. 2021 시즌

김영광 이후 처음으로 구단 2년 연속 주장에 선임됐다.

2021시즌 서울 이랜드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 포함해 12경기 출전을 기록했고, 2021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로 서울 이랜드를 떠났다.

3.6. 대전 한국철도

2022년 대전 한국철도로 이적했으며, 1년 반간 소속된 뒤 2023시즌 중반 은퇴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3.7. TNT FC

TNT FC가 김민균을 플레잉 코치로 영입하였다.

4. 국가대표 경력

중대부고 2학년 재학중에 이미 U-20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그 실력을 검증받았던, 김민균 선수는 2006년 당시, U-20 대표팀 선수단 중에 가장 막내였음에도 조동현 감독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프로팀 소속이었던 당시 U-20 선수단에서 현역 고교생 이었던 김민균 선수가 주전을 차지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중 2006년 1월, 카타르 8개국 U-20 친선 축구대회 당시 對 이란 U-20 과의 경기에서 김민균 선수는 후반에 교체 투입되어 스루 패스를 통해 신영록 선수에게 2골을 어시스트하며 일약 스타 덤에 오르게된다. 이 당시 함께 뛰던 선수들이 하태균, 신영록, 이청용, 고명진, 기성용, 송진형, 신광훈 등으로 황금세대로 일컬어지는 세대와 함께 대표팀에 뽑힌 것이다.

이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청소년대표에 내리 차출되며 잘생긴 외모와 출중한 실력을 앞세워 서서히 입지를 다지던 김민균 선수는, 2007년 캐나다 U-20 월드컵 23인 캐나다행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20인 최종 엔트리에는 탈락해 아깝게 귀국한 바 있다.

5. 플레이 스타일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이다. 특히 대구 FC에서 뛰면서 안정된 볼 키핑력과 개인기를 통한 돌파나 공격을 자주 선보였는데, 이를 통해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도 찍히기도 해서, 당시 대구 감독이던 이영진은 플레이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날카롭게 찔러주는 스루패스는 K리그에서 상위권이라고 불릴 만 했다.

게다가 안양 시절부터 골 결정력도 상당히 오른 모습으로 공격 본능도 많이 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플레이에 있어 기복이 두드러지는 점이다. 이는 안양에서 활동하면서 많이 줄어든 편이기도 하지만 꾸준했더라면 더 큰 선수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아쉬운 점으로 늘상 지목되기도 한다.

6. 여담

  • 명지대학교 시절에는 미남 선수로서 여성팬들을 꽤나 몰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명지대 축구부 선수단 버스가 웬만한 프로 축구팀 선수단 버스보다 팬들의 낙서가 많았다. 대부분은 김민균 선수 팬이었다.
  • 한국 축구 유망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1] 이동국이 독일 진출을 했던 그 클럽이다.[2] 현대 축구의 반역자로 일컬어지는 후안 로만 리켈메 역시 예쁘게 공을 차는 스타일이었지만, 피지컬은 유럽 유수의 선수들과도 다툴 정도로 출중했다. 단지, 몸싸움을 잘 하지 않았을 뿐이지. 김민균이 깨달은 건 이 점을 말한다.[3] FC 안양 홈 경기에서 득점을 하면 장내 아나운서는 득점자에게 지정된 칭호를 붙여서 (ex. '불꽃남자' 정재용, '최강 스트라이커' 김효기 등) 득점자를 호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