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09:00:52

김민수(농구)

김민수(농구선수)에서 넘어옴
김민수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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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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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2006-07 시즌 2007-08 시즌
전병석
SBS / 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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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명준
전자랜드 / 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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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 포워드
<rowcolor=#fff>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2011-12 시즌 2012-13 시즌
김효범
모비스 /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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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센터
이승준
삼성 /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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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 센터
이승준
삼성 / 센터
<rowcolor=#fff> 2013-14 시즌 2014-15 시즌 2015-16 시즌 2016-17 시즌 2017-18 시즌
이승준
삼성 / 센터
정효근
전자랜드 / 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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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 센터
김현민
kt / 센터
김민수
SK / 포워드
<rowcolor=#fff> 2018-19 시즌 2019-20 시즌 2020-21 시즌[1] 2021-22 시즌 2022-23 시즌[2]
김종규
LG / 센터
김현민
kt /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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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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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23-24 시즌[2] 2024-25 시즌[2] 2025-26 시즌[2] 2026-27 시즌[2] 2027-28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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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 포워드
[1] 온라인 팬 투표
[2] 국내외 부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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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중학교 농구부 코치
KEISUNG MIDDLE SCHOOL BASKETBALL TEAM
파일:20220616 김민수.jpg
김민수
金敏秀 | Min-Su Kim[1]
<colbgcolor=#3594d3>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1982년 1월 16일 ([age(1982-01-16)]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복수국적)[2]
신체 200cm|체중 105kg
가족 어머니 김은숙,[3] 형 2명
아내, 딸 김시은[4]
직업 농구선수(포워드/ 은퇴)
농구코치
학력 Escuela Primaria N°32 Carlos María Biedma(초등학교)
Escuela de Educación Técnica N°4(중학교)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스포츠지도학 / 학사)
프로입단 2008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서울 SK)
현역시절 등번호 15[5], 91[6]
병역 전시근로역(귀화)
소속 <colbgcolor=#3594d3> 선수 서울 SK 나이츠 (2008~2021)
코치 경희대학교 농구부 (2021~2023)
여수화양고등학교 농구부 (2023~2024)
계성중학교 농구부 (2024~)

1. 개요2. 프로 데뷔 이전3. 프로 시절
3.1. 2012-13 시즌3.2. 2013-14 시즌3.3. 2014-15 시즌3.4. 2015-16 시즌3.5. 2016-17 시즌3.6. 2017-18 시즌3.7. 2018-19 시즌3.8. 2019-20 시즌3.9. 2020-21 시즌
4. 지도자 시절5. 플레이 스타일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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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現 계성중학교 농구부 코치.

2. 프로 데뷔 이전

아르헨티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 이름은 훌리안 파우스토 페르난데스 김(Julian Fausto Fernandez Kim). 그래서 그의 별명도 아르헨티나 특급이다.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법적으로 국적을 절대 포기할 수 없도록 정해둔 국가라서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이후에도 복수국적을 유지한 케이스다.[7]
파일:김민수 드래프트로 SK에 지명되다..jpg

아르헨티나에서 농구를 배웠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8]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어렵게 농구를 배웠다. 어머니는 1960년대 이민을 가서 거기서 현지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랬다가 한국 교포의 주선으로 경희대학교에서 테스트를 받고, 경희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2008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서울 SK 나이츠에 지명되면서 프로에 입문했다. 이 때 받은 돈으로 어머니를 한국에 영구귀국시켰다고.

대학에서는 팀 사정상 센터를 보았는데, 원래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에 가깝다. 다만, 그의 신체조건 (키 2m)를 볼 때, 파워포워드로 쓰고 싶어하는 감독이 많은 것 같다. 당장, 경희대 최부영 감독도 그랬고, 지금 소속팀인 SK 나이츠 역시 그렇다. 그러나 본인이 4번 포지션에서 적응을 잘 못하면서 외곽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고 3번 포지션에서 압도적인 슈팅력이나 돌파력을 보이면서 기량을 과시하는 것도 아니라서, 프로 무대에서는 계륵에 가까운 플레이다.

프로에서 3번을 뛸 수 있는 팀으로가서 잘 가다듬었다면 좋은 3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키에 3번으로 키워줄 프로팀은 많지않았다. 프로에서는 그의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빅맨을 요구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을 찌운 것이 그의 농구 인생을 평범하게 이도저도 아닌 선수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기대치에 못미쳤다는 의미이지 그는 한국선수중 용병수비를 가장 잘 하는 선수중 하나이며 언제든 두자릿수 득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이다.

3. 프로 시절

당시 빅맨이 꼭 필요한 SK에 지명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9] 하지만 이 지명이 얄궃게도 김민수의 커리어가 꼬이는 시작점이 되는데, 빅맨이 필요했던 SK가 그 시즌 팀의 에이스였던 테렌스 섀넌이 대마초 이슈로 갑작스럽게 방출되면서 데뷔시즌 막바지부터 용병을 제치고 팀의 주전 빅맨은 물론이고 에이스 노릇을 해야했다는 것.[10] 결국 그 여파로 인해 몇 년이 지나면서 부상과 의욕저하 등으로 1~2년차때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국가대표 명단에서도 그 이름을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그의 득점력은 신인 시절인 2008-09 시즌이나, 그 이듬 해인 2009-10 시즌에 평균 14점 대를 넣으면서 팀의 주포는 아니어도 제 2 옵션으로는 얼마든지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골밑이 아니라 외곽에서 자꾸 이런 플레이를 하고, 그 외곽 플레이가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 이러면서 팀 밸런스가 무너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한 부분에서 더 성장하는 것이 나타난다면 분명 좋은 체격조건을 바탕으로 팀에 한 몫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3.1. 2012-13 시즌

2012-2013 시즌, 10-11 리그 MVP 박상오가 FA로 영입되고 신인 최부경이 파워포워드 자리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공기화할 줄 알았으나 이게 왠 일,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의욕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서울 SK 나이츠의 1라운드 1위라는 놀라운 성적의 공신으로 거듭났다.

포워드 진의 득점력이 초반 박상오의 슛감이 좋지 못함으로 인해 우려를 샀지만 최부경의 적극성과 더불어 김민수가 고감도의 슛을 선보여 우려를 불식시켰다.

스몰 포워드로 기용 될 때에는 이전 프로 무대에서 보여줬던 이도저도 아니게 어물쩡대다가 밸런스를 잃은 슛을 던지던 모습을 벗고, 팀이 득점을 필요로 할 때마다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득점에 가세하고 있다. 가끔 프로 데뷔 전 대표팀에서 보여주었던 절륜한 기술도 선보이기 시작. 시즌 출발만 해도 주득점원의 롤은 아니었으나, 득점과 수비 양쪽에서 빛을 발하면서 점차 영향력을 가져가고 있다. 스몰 포워드지만 2m의 신장을 가지고 있다보니 지역방어에서 상대 용병이 골밑에서 득점할 때 도움 수비로 블락해버리는 등 수비에서도 사람이 달라지니 팀 전체 수비력에 시너지를 일으키는 중이다.

파워 포워드 포지션에는 최부경이 빠질 때에 기용되는데, 박스 아웃에서는 약점을 보이지만 이전의 몸싸움을 회피하던 모습과는 달리 블루워커의 면모가 느껴질 정도로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엔 부상이 겹치고, 자기 포지션을 확실히 잡지 못해 방황하다 기량이 발전은 커녕 퇴보해 선수 본인도 의욕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팬들로부터 별다른 성원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2012-2013 시즌에 들어서 건강한 몸 상태와 더불어 문경은 감독의 역할 지시 및 선수 관리가 빛을 발하였는지, 그야말로 환골탈태. 전에 없이 의욕적이고 슛감도 최고조, 공격과 더불어 수비에서도 코트에 영향력을 드러내는 모습이 과거 지명 당시 서울 SK 나이츠 팬들이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과거와 급달라진 모습에 나이츠 팬들은 당혹감을 내비치는 한편,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다. 결국 2012-13 시즌 SK 나이츠의 정규시즌 1위의 1등 공신이 되면서 FA에서도 대박을 터뜨리는 등 커리어 최고득점의 시즌을 달성했다.

3.2. 2013-14 시즌

그러나 13~14시즌에는 기량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전체적인 수비-공격 지표가 하락하였고, 주로 최부경-김우겸과 로테이션으로 출장하고 있다. 이것이 더 심해져서 고양 오리온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역적 1순위로 뽑힐정도로 나쁜 활약을 펼쳤다. 팀이 이겼기에 망정이지만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야투율이 10%도 나오지 않는 심각한 부진에 빠진것은 먹튀에 대한 우려를 지울수 없는 부분이다.

3.3. 2014-15 시즌

14~15 시즌 초반 몇 경기 저조한 야투율을 보이며 부진한 듯 보였지만, 최부경이 안면골절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자,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4경기 연속 20득점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득점 뿐만 아니라 골밑에서의 궂은일도 마다않으며 팀 내 핵심적 역할을 제대로 해 주고 있다.

3.4. 2015-16 시즌

15~16 시즌은 김선형이 승부조작사건으로 팀에서 이탈하였고, 새로 영입한 이승준, 이동준, 이정석 등의 선수들이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이먼과 함께 어떻게든 팀을 지탱하고 있는 중이다. SK 나이츠팬들은 김민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김민수마저도 국가대표로 차출되었다면 SK 나이츠의 시즌 초반이 완전히 망가졌을거라면서 안도하고 있는 중이다.

10월 11일 삼성전에서 라틀리프의 거친 스크린으로 인해 목에 부상을 입고 그대로 코트 밖으로 실려나갔다. 다행이도 검사 결과 신경손상 등의 큰 부상이 발견되지 않아 이후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 듯 하다. 기사 그리고 10월 13일 LG 세이커스전에서 정상적으로 출전했다.

현재는 11월 14일 모비스전에 또 부상을 입어, 출장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로 SK나이츠는 탈탈탈 털리고 있다.

12월 후반 복귀한 후, SK 나이츠가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외곽포에서도, 작전 수행에서도 준수한 빅맨의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3.5. 2016-17 시즌

11월 5일 KCC 원정경기에서 3,927점을 기록하며 팀 통산 개인 최다 득점기록을 갱신했다. 이전의 기록은 서장훈(98-02)의 3,912점

그러나 지금까지 지적받았던 문제점인 그 피지컬을 가지고도 계속 외곽 플레이만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슛컨디션이 점차 떨어지면서 득점스탯이 급락하는 와중에 수비에 소극적인 모습까지 보이면서 최준용 부상 이후 DTD 테크의 한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얻게된 별명이 돌민수 .

12월 25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32분 동안 야투 성공률 0%, 자유투 1득점으로 극혐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팀의 시즌 4번째 20점차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다.[11]

이 후에도 계속 안 나오는 날은 팀이 이기고 많이 나오는 날은 팀이 지면서 상대팀 팬들에게 환호받는 존재가 되었다...

아니나다를까 1월 13일 LG와의 홈경기에선 박스아웃을 제대로 못해 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고, 또 쓸데없는 파울 누적으로 바스켓 카운트를 헌납하는 등 최악의 경기력을 갱신하면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2월 23일 오리온전에서도 수비에서 완전히 구멍, 들어가지도 않는 3점슛만 골대를 팅팅 튕겨대면서 팀의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이 꼴인데도 문경은은 끝까지 김민수를 고집했고 결과는 이 시즌 몇번째일지 모를 역전패. 김선형과 테리코 화이트가 54점을 합작했는데도 못 이겼다.

3.6. 2017-18 시즌

계약기간 3년 보수총액 3억 5,000만원(연봉 2억 7,000만원, 인센티브 8,000만원)에 재계약 했다. 기사 지난 시즌 정말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도 32.1% 인상되었다.

SK 나이츠가 20주년을 맞는 시즌이다. 이 팀에서 10년간 선수생활을 하며 팀 역사의 절반을 함께 해온 김민수의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

그리고 화려하게 반등에 성공했다!!! 포지션을 빅맨으로 확실히 고정시키며, 최부경과 함께 SK 골밑을 지키며 팀내 2위에 해당하는 7개 가량의 리바운드를 걷어내고 있다. 기복은 여전하지만 내외곽을 가리지않는 쏠쏠한 득점능력에다 케빈 러브를 떠올리게하는 아울렛 패스도 수차례 보여주며 SK 나이츠의 1라운드 1순위 등극에 보탬이 되고있다. 지금까지만 보면 변기훈과 함께 연봉 올려받을만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재평가를 받고 있다.

헤인즈를 제외하면 용병을 수비하며 SK가 선두경쟁을 이어가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에 뽑히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대신 2017-18 시즌 올스타전에서 무려 만 35세의 선수가 덩크왕을 차지했다. 팀메이트 최준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360도 덩크가 워낙 인상깊었다.

시즌 성적은 51경기 출전 10.5득점에 6.3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시즌 내내 상대 빅맨들을 수비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기에 SK 팬들은 김민수의 수비5걸은 물론 수비왕까지 기대했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하승진과 상대 빅맨을 마크하는 롤을 맡았다. 평소 KCC를 만나면 120%의 활약을 하던 것에 비하면 외곽이 침묵하며 공격은 많이 부진했으나 팔꿈치에 맞아 피를 보고도 교체되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며 수비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원주 DB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상대방 용병들을 수비하면서 사투를 펼치고 있다. 벤슨이 대놓고 팔꿈치로 가격해 출혈이 있던 1차전 이후로 벤슨이 계속해서 틈만 나면 팔꿈치를 휘두르면서 폭력적인 플레이를 하는데 심판들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 고생하며 버티고 있는 중. 웬만한 일로는 분노하지 않는 김민수가 3차전에는 자신을 대놓고 위에서 깔아뭉개려는 행동에는 화를 냈을 정도다.

이후 챔피언결정전에서 계속해서 대활약했고 마지막 경기인 6차전에는 4쿼터에 결정적인 3점을 꽂아넣는 등 팀의 최고참으로서 진가를 보여주면서 데뷔 10년만에 첫 우승반지를 손에 넣었다. 지금 있는 SK멤버 중에 유일하게 암흑기 때부터 팀에 있던 현역선수라 더 각별한 우승이었다. 골밑에서 든든하게 버텨주는 지금까지 SK 나이츠팬들이 꿈꿔오던 김민수의 그 모습을 시즌 내내 보여주었다.

3.7. 2018-19 시즌

10월 13일 개막전부터 3점슛을 4개나 몰아치며 팀내 최다인 20득점을 올리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리바운드도 9개나 따는 등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전자랜드전에서 약간 부상을 당하고 페이스가 조금 떨어진 모습을 보이나 했지만, 이내 살아나며 국내 핵심선수들이 죄다 부상으로 컨디션 조절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두자릿수 득점 이상을 보장하는 능력을 보이고 있다. 11월 4일은 허리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잔부상이 좀 많아지긴 했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관리만 잘해주면 기량 저하는 딱히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에도 부상으로 중간 중간 결장이 늘어나고 있다. 신장이 낮아진만큼 골 밑에서 최부경과 같이 김민수가 힘내줘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리온 윌리엄스가 나간 이후 SK는 상대팀에게 리바운드에서 털리는 경기가 늘어나고 있다. 김우겸이 대신 나오고 있지만 김우겸은 김민수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부족하다. 11월 21일 DB전에 복귀하여 10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해 좋은 활약을 했지만 팀은 19점차를 역전패당했다. 11월 23일 kt전에서는 3점슛 3개 포함 26득점으로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였지만 팀은 두 외국인 선수의 득점력 부진으로 또 졌다.

휴식기 이후 또 허리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다가 결국 허리디스크 수술로 시즌 아웃이 유력해졌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해보자. 김민수의 부상 이후 3점슛 스코어러와 빅맨 전담수비 선수가 없어진 SK는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팬들도 김민수만 있었다면 팀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중.

허리 디스크 수술을 마치고 재활 중 비교적 이른 복귀를 시도하게 됐다. 2월 18일 서울 삼성과의 2018-2019시즌 KBL D-리그 2차 대회 맞대결에 출전할 예정이다. 당초 잔여경기 모두 결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김민수는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의학이 발달돼 허리디스크 수술이 과거에 비해 간결해졌고, 덕분에 회복까지 소요되는 기간 역시 단축됐다고 한다. “(김)민수가 어느 때보다 재활훈련에 성실히 임했다”라는 게 SK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SK 측은 김민수의 몸 상태에 대해서 “정밀진단을 통해 정상이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선수 스스로 복귀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김민수는 “사실 시즌아웃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기분이 좋진 않았다. 1경기라도 뛰며 시즌을 마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김민수는 몸 상태를 테스트해보고 싶고, 수술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3월 1일 KCC전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3점 2개 12득점으로 출전 시간 대비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팀은 패배. 그 이후에는 계속 골밑을 사수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K팬들이 김민수가 5년만 젊었어도라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12] LG전에서는 23점차를 역전하는 동안 메이스/김종규와 대등하게 겨루면서 클래스 어디 안간다는 것을 입증했다.

3.8. 2019-20 시즌

이번 시즌도 SK의 기둥으로 활약하고 있다. 1라운드 인삼공사전에서는 데뷔가 3시즌은 느린 오세근을 짓밟으면서 팬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기량이 하락세로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13]

이후에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 등 잔부상이 조금씩 문제를 일으키며 관리를 받으며 출장하고 있다. 그래도 출전할 때마다 제 몫은 충분히 한다.

12월 30일에 열린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와의 D리그 경기에서 25득점 12리바운드의 더블더블 활약으로 팀의 D리그 첫 승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만 1군에서는 시즌 초와 다르게 워니의 존재로 인해 롤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코트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1월 12일 kt전에서 16득점을 기록하며 SK의 골밑을 든든히 지켜주며 아직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에는 3점슛도 터져주면서 SK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3.9. 2020-21 시즌

시즌 들어 세월의 흐름을 피해가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스탯이 모두 폭락한 상황인데, 특히나 3점슛 성공률은 11프로대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2021년 5월 14일 공식은퇴를 발표했다.
파일:김민수 은퇴식.jpg
김민수, SK 나이츠 (2008~2021)

은퇴식은 다음시즌이였던 2021년 12월 19일 KCC와의 홈경기에서 열렸다. 이 날 경기는 접전 끝에 SK가 승리했다.

4. 지도자 시절

은퇴 후 모교 경희대학교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여수화양고등학교 A코치에 부임했다. 그후 2024년 계성중학교 코치로 부임하였다.

5. 플레이 스타일

스트레치 포워드 스타일의 4번으로, 장점은 뛰어난 공수 밸런스이다.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혼혈답게 역대 한국인 선수 최고 수준의 운동능력과 괜찮은 슈팅 능력과 드리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훅슛과 페이더웨이 등의 득점 스킬도 매우 깔끔하다. 게다가 힘도 좋아서 하승진이나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로도 좋은 수비를 보여줄 수 있으며, 사이드스텝과 수비 스킬도 나쁘지 않아 미스매치도 어느 정도 견뎌 준다. 다만 BQ가 뛰어난 편은 아니고, 젊은 시절에는 수비시에 몸싸움을 꺼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젊었을 때는 골밑에 들어가는 걸 꺼렸지만, 베테랑이 되면서 오히려 골밑에서 플레이하는 비중이 늘어나기도 했다. 과거 2006년 WBC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장신 3번에 목말라있던 농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프로에 와서는 4번으로 정착했다. 주요 득점원들이 부상을 입었을 때 연속으로 득점력을 과시하며 에이스 3번으로의 편린을 잠깐이나마 보여주어 더 아쉬움을 사기도.

또한 김민수는 데뷔 초부터 용병 수비를 가장 잘 하는 4번 선수였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소극적인 모습이 종종 나오는 것. 그런데 FA 계약 직후 굳은 일을 맡아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일 리바운드와 수비에서 맹활약 중이다. 2017년 10월 29일 KCC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하승진을 전담 수비하여 효율적으로 막아내어 SK가 큰 점수 차로 승리하는데 일조하였다.

6. 여담

  • 과거 SK 나이츠의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는 김선형, 헤인즈에게 깨졌고, 지금은 구단 통산 득점 3위인 선수로 남아있다.[14]
  • 아내와 딸이 경기장을 자주 방문하곤 하는데, 따님이 아빠랑 완전히 붕어빵으로 닮아 SK 팬들을 웃음짓게 하고 있다. 김민수의 인터뷰에 등장한 가족들 17-18시즌 올스타전 덩크콘테스트에서는 심사위원단을 상대로 초콜릿을 뇌물(?)로 주며 심사위원들을 곤란하게 만들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 KCC 상대로 정말 잘한다. KCC팬들이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선수가 김민수일 정도.
  • 화려한 김선형에게 가려진 선수라는 평도 있는데 외곽을 겉도는 시즌이 아니라 내외곽을 오가며 폭격하는 시즌에는 확실히 팀의 에이스급 선수가 맞다. 커리어 초반을 팀의 암흑기로 잃은 것이 아쉬운 선수.[15]
  • 김민수가 외국인 선수 수비까지 대부분 맡아주고 있으므로 김민수가 없거나 부진하면 SK는 팀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최부경도 비슷한 위치.[16]
  • 상술한대로 홀어머니 밑에서 정말 어렵게 성장했다. SK에 지명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잠실에 전셋집을 구하고 어머니를 영구 귀국 시키는 것이었다. 어머니 김윤숙씨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공장, 백화점, 정육점 등에서 닥치는대로 일을 했었다. 여기에 2005년에 정육점에서 일을 하다 육절기에 왼쪽 손가락 하나가 거의 절단되는 사고까지 겪었다.

7. 관련 문서



[1] 아르헨티나 이름은 훌리안 파우스토 페르난데즈 김(Julian Fausto Fernandez Kim)[2]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에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아르헨티나는 법으로 절대 국적포기를 할 수 없도록 정해놓은 나라라서, 드물게 대한민국으로 일반귀화를 했어도 복수국적자에 해당되며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의 대상이 된다.[3] 아버지는 1997년에 돌아가셨다.[4] 개인 유튜브 채널 앨리샤의 마이크 테스트가 있다.[5] 2008~2010, 2011~2021[6] 2010-11 시즌[7] 2007년부터 바뀐 FIBA 규정에 따라 귀화 선수는 1명만 발탁 가능하다. 이 제도에 따르면 선천적 복수국적자나 국적 회복자는 이 슬롯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김민수의 경우 후천적으로 복수국적이 된 케이스라서 당시 대표팀에 이동준이 귀화 선수로 발탁되면서 상술된 귀화 선수 규정 때문에 자칫하면 둘 중 한 명은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할 뻔했었다. FIBA가 김민수에 대해 대표팀 경력 관련으로 증명서를 요구했기 때문. 이후 김민수가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이전에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로는 출전을 한 경력이 없었다는 증명서를 아르헨티나 농구 협회로부터 받고 나서야 FIBA로부터 귀화 선수가 아닌 복수국적자로 심사에 통과하면서 국가대표 엔트리에 포함이 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2007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당시에는 조별리그에서는 출전할 수 없었고 일본과의 결선리그 2차전부터 출전을 해야했다. 참고로 라건아는 복수국적자임에도 불구하고 귀화 선수 슬롯에 해당된다.[8] 김민수가 10살 때부터 심장병을 앓고 계셨다고 한다.[9] 김주성이 있던 동부로 픽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보는 평이 있는데, 그 당시 동부는 외곽과 슛을 담당해줄 수 있는 공격자원이 필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당시 3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동부는 결국 윤호영을 지명했는데, 데뷔 1~2년차만 해도 김민수가 앞서갔지만 윤호영은 본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스몰포워드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했고, 결국 동부가 원하는 공격은 아니었지만 윤호영-김주성-용병이라는 강력한 동부산성을 만들어냈다.[10] 물론 이 당시의 김민수는 국가대표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하던 시기도 있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김민수는 용병 수비 능력이 급상승한 점도 있긴 했다.[11] 이 날도 계속해서 외곽 플레이를 고집하다가 경기를 말아먹었다.[12] 이 말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SK 팬들에게 끊임없이 저평가 당했다는 소리도 된다. 반대급부라고 볼 수 있는 김선형은 SK 내에서 에이스, KBL에서 최고 수준의 가드로 평가받지만, 공격과 외국인/토종 빅맨 전담 수비로 맹활약하는 똑같이 에이스 롤을 부여받는 김민수는 단 한번도 리그에서 제대로 인정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에이스여도 다 같은 에이스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물론 SK에서 10년 이상을 뛴 데다 본인의 아쉬운 부진(2016-17 시즌)을 감안하지 않을 순 없다.[13] 힘에서 오세근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 농구팬들을 놀라게 했고 경기 내내 위기 때마다 3점슛도 쉬지 않고 터지며 왜 SK의 중심인지 스스로 증명했다.[14] 1위 김선형, 2위 애런 헤인즈, 3위 김민수[15] 태양과 달에 비유하자면 김선형은 강렬하고 화려한 태양, 김민수는 묵묵히 팀을 지탱해주는 달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16] 거기다 김민수는 외곽에서 공격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공격에서 부진하면 팀 전체에서 득점력 저하라는 역풍까지 맞는다. 최부경이 공격적인 부분에서 매우 제한적이라 김민수의 활약 여부에 따라 팀 승패가 갈리는 건 당연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