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12 04:09:00

김성기(음악가)

金聖基, 1649~1725

조선 후기의 음악가. 거문고, 퉁소, 대금, 비파에 두루 능한 명인으로 알려져있다. 자는 자호(子豪)이고 어옹(漁翁), 어은(漁隱), 조은(釣隱) 등을 호로 삼았다.

원래 상의원[1]에서 을 만들던 장인이었다.[2] 그러나 본업보다는 음악에 더 관심을 가져 거문고 악사인 왕세기(王世基)를 쫓아다니며 거문고를 배우려 했다. 그러나 왕세기는 처음에는 김성기에게 연주를 가르쳐주지 않으려 했는데, 도제가 아니면 비법을 전수하지 않는 것이 조선의 전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성기가 귀동냥까지 해가며 열정을 꺾지 않자 왕세기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 후 왕실 음악을 담당하는 장악원의 악사가 된다. 고관들의 잔치마다 불려갈 정도로 김성기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얼마 후 악사 자리에서 물러나 서강[3]에 은거한다. 어옹, 어은이란 호대로 낚시로 소일하며 생활했다. 목호룡이 자신의 잔치에 은거한 김성기를 억지로 끌고오려 했으나 욕만 먹고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일각에서는 김창업 등 노론 측과 가까웠던 김성기가 임인옥사에서 소론과 결탁해 노론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던 목호룡을 결코 좋게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은거 후 창작에 전념한다. 김성기의 작품은 《어은보》((漁隱譜), 《낭옹신보》((浪翁新譜) 등에 전해진다. 옛 음악을 복원하는 데도 관심을 쏟았다. 학계에서는 평조삭대엽 등 김성기의 작품이 황진이개성 사람들을 통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고려 음악을 계승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4]


[1]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관청.[2] 김성기의 신분이 높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3] 지금의 마포구[4] 김성기의 스승 왕세기가 개성 왕씨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