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8 17:56:21

김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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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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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N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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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철욱2023-24.png
김철욱
金哲旭
<colbgcolor=#d70029>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1992년 6월 25일 ([age(1992-06-25)]세)

[[중국|]][[틀:국기|]][[틀:국기|]] 헤이룽장성 하얼빈
귀화 전 이름 우띠롱(오적룡, 吴迪龙)[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신장 202.3cm|체중 101kg
포지션 센터
학력 하얼빈초등학교 (졸업)
하얼빈 제5중학교 (졸업)
군산고등학교 (전학) →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스포츠지도학 / 학사)
프로 입단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안양KGC)
병역 전시근로역 (귀화)
소속 안양 KGC인삼공사 (2016~2021)
원주 DB 프로미 (2021~2022)
안양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부스터스 (2022~ )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생활3. 시즌별 성적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의 중국 발언 논란
5. 여담

[clearfix]

1. 개요

중국에서 귀화한 대한민국농구 선수.

귀화 전 이름은 '우띠롱(오적룡, 吴迪龙)'이며 김철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딱히 없다고 한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농구가 좋아서 한 건 아니고 노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다른 애들보다 키가 컸고 부모님이 그냥 놀 거면 농구라도 배우라며 농구교실을 보냈다. 거기서 하루 두 시간씩 친구들이랑 농구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노는 게 좋아 시작한 농구였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김철욱의 꿈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를 잘해서 명문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는 것. 농구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가 아닌 농구에 눈을 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중학교에 갔을 때 그 때 키가 186cm였다. 어렸을 적엔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가는 게 목표였는데 농구 특기생으로 학교를 가면 시험 점수가 플러스가 되기 때문에 중간에 농구전문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면서 점점 농구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부하는 시간은 줄어들면서 공부에는 집중을 못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농구의 실력은 늘었다고 한다.

결구 김철욱은 공부를 포기하고 농구로 프로에 가서 좋은 선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농구를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기량도 빠른 속도로 올라갔으며, 중학교 2학년 때는 우리나라의 유소년 팀 격인 중국 프로리그 3군에 스카우트 되며 실력을 쌓아갔다.

김철욱이 한국에 오게 된 건 그의 나이 16세 때로 2009년 2월 28일이라고 한다. 경희대학교 최부영 전 감독(현재 경희대학교 농구부장)과의 인연이 그 시작이었다. 중국 연변대학 총장을 통해 최부영 감독을 알게 됐는데 총장과 최부영 감독이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최부영 감독을 중국에서 한 번 만나고 김철욱이 혼자 운동하는 모습과 개인기가 담긴 영상을 경희대에 보냈다. 이후 ‘한국에 와서 농구해도 괜찮겠냐’라는 제안이 왔다.

하얼빈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17년을 자란 김철욱이 단번에 한국행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한국행에 긍정적인 가족들의 반응과 농구를 통해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이 그를 움직였다. 부모님과 선생님 모두 다 찬성했고 혼자 멀리 가는 건 마음 아파했지만 운동선수 출신이라 이해했다. 농구로 빛나기 위해 인생에 발전이 될 한국행에 승낙했다.

우선 중국은 평균키는 우리나라보다 작을지언정 인구수가 10억을 가뿐히 넘기는 국가이고, 이에 따라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2m에 달했던 김철욱이 키가 작아서 스몰 포워드를 봤을 정도로 동유럽 못지 않게 빅맨진의 신장이 대형화 되어있다. 더군다나 그저 사람 수만 많은게 아니라 농구의 인기 자체도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아 경쟁이 빡쎈 중국에서, 20개 뿐인 CBA 팀의 포워드로 자리잡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김철욱이 중국에서 농구선수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고, 그런 점에서 그가 일찍이 한국행을 택한 것은 어린 나이에도 굉장히 현실적인 판단이었던 셈.

한국행을 결정한 김철욱은 군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경기 수와 출전시간을 보장한 제물포고등학교로 전학하게 된다. 제물포고에서 김철욱은 한국농구에 빠르게 적응하며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농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높이와 정확한 중거리 슛을 모두 갖춰 상대로선 여간 막기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김철욱은 고교 마지막 대회에서 뜻하지 않는 불운을 맞는다.

경복고등학교와의 첫 경기에서 레이업을 하기 위해 점프하고 착지하는 순간 발에서 ‘뚝’하는 소리가 나왔고 바로 병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왼쪽 네 번째, 다섯 번째 발가락이 다 부러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학 진학을 코앞에 남겨놓고 당한 부상으로 이후 김철욱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기나 긴 재활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철욱은 대학 1학년이 끝나갈 때쯤에야 지긋지긋했던 발가락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4학년을 앞두고 이번에는 동계훈련 때 상대편이랑 무릎을 박아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오랜 기간 재활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 4학년이 끝나고 프로진출을 하지 못하고 경희대에서 1년의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다.

2.2. 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부상 이후 기량 회복이 원활하지 않아 몸상태에 관해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이종현-박인태 이후 센터 포지션으로는 3번째, 드래프트 전체 순위로는 8순위로 안양 KGC인삼공사에 지명되었다.

비록 가비지 타임때만 출전하긴 하지만 1군에서 활약하기에 충분한 임팩트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2016-17 시즌 후 오세근의 FA 결과에 따라 팀 내 행보가 주목되는 빅맨 중 하나이다.

2월 8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속공에 참여하는 상대팀 임동섭 선수의 와사바리를 한 행위로 인해 크게 비판 받았고 KGC는 2경기 출전 정지와 월급의 1/3을 벌금으로 부과하는 자체 징계를 받았고 KBL은 200만원의 징계금을 부과했다.

PO에서도 두텁기 짝이 없는 스쿼드 덕에 백업의 역할을 수행했다.

2017-18시즌의 쇼케이스가 될 동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선 강병현, 전성현과 함께 그나마 사람구실을 하는 선수였다. 매경기 평균 더블더블 등 팀내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다만 마무리 능력과 자유투, 파울관리에 대한 개선이 조금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드래프트 당시 저평가의 원인이었던 몸상태와 체력을 어마어마하게 끌어올렸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던 선수가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환골탈태한 모습. 홍삼의 파워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성곤, 한희원과는 다르게 이쯤 되면 KGC에 지명된 것이 선수인생의 행운 중 하나라고 보아도 될듯하다. KBL 최고의 센터인 오세근, 사이먼도 있으니 저 둘의 내공을 스펀지처럼 잘 흡수해준다면 국대급 센터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시즌 평균 6~8분 가량을 소화하는 식스맨으로 활약하면서 오세근의 백업 센터 역할을 3라운드 기점부터 쏠쏠하게 하고 있는데, 외국인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는 수비 능력에도 자잘한 반칙이 많아서 오세근의 출전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경기가 종종 있는 것은 아쉬운 모습.[2]

오세근의 부상 이후 선발로 출장하는 경기가 많아졌다. 종종 실수를 많이 하긴 하지만 슛 부문에서는 성공률이 꽤 높다.

2020~2021 시즌에는 오세근의 휴식을 책임지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기사

2.3. 원주 DB 프로미 시절

2021년 6월 1일 원주 DB 프로미로 트레이드 되며 DB 소속으로 뛰게 된다.

참고로 이 트레이드는 2020-21 시즌 도중에 있었던 이우정 트레이드의 댓가에 따른 추후 지명 형태로 간 것임이 밝혀졌다. 이 시즌 중에 샐러리 캡이 터졌던 문제로 DB가 당장에 선수의 연봉을 온전하게 떠안을 수가 없었던 상황이라, 시즌 종료 후 오프시즌 시작 당일에 추후 지명 형태로 선수를 받기로 했던 것이다.

등번호는 21번이고 김종규의 백업으로 활약할것으로 보인다.

2.4. 안양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부스터스 2기

2022년 5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KGC의 복귀를 알렸고 다음날 5월 25일 공식 발표가 나왔다.

2022-23 시즌에는 정규 리그 단 한 경기, 1분 1초 출전에 그쳤고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에는 뛰지 못했다.

3. 시즌별 성적

역대 성적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6-17 KGC 31 15/35
(42.86%)
1/4
(25.00%)
7/10
(70.00%)
40 20 11 1 3
2017-18 38 26/59
(44.07%)
0/0
(0.00%)
16/18
(88.89%)
68 54 2 4 0
2018-19 26 17/30
(56.67%)
7/23
(30.43%)
6/6
(100%)
61 30 10 1 6
2019-20 39 39/72
(54.17%)
14/33
(42.42%)
7/13
(53.85%)
127 55 9 5 3
2020-21 22 13/21
(61.90%)
7/28
(25.00%)
4/6
(66.67%)
51 22 3 3 3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21-22 DB 26 22/43
(51.16%)
6/33
(18.18%)
11/15
(73.33%)
73 34 9 3 6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22-23 KGC
KBL 통산
(7시즌)
182 132/260
(50.77%)
35/121
(28.93%)
51/68
(75.00%)
420 215 39 18 23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의 중국 발언 논란

2022년 8월 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중국 화이팅! 中国加油 台湾加油 祖国统一'라는 문구를 올려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간체자를 해석하면 중국힘내, 대만힘내, 조국통일 이라는 뜻이다. 대만힘내라는 뜻을 볼 때 단순히 중국과 대만에게 똑같이 응원 메세지를 보낸 걸로 볼 수 있지만, 뒤에 문구인 조국통일이라는 문구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듯한 문구라는 점에서, 그 하나의 중국을 중국 주도의 통일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비난 속에 부랴부랴 글을 삭제했지만, 역시 중국인이다라는 비아냥만 가득하다.

5. 여담

  • 한국말을 매우 잘하는데도 한국말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언어 능력에서는 중국에서 언어대회나 국어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언어능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 2011년 귀화한 후 한국 국적으로 대표팀에 뽑히고 싶다고 한다.
  • 과거 논란이 있어서 안티팬들도 있지만 본인을 좋아해주는 팬들에게는 다른 KGC 선수들에게 지지 않을정도로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다만 전태풍처럼 간혹 반말을 쓰면서 다가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 이미 김철욱으로 개명한지도 한참 됐음에도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 에서는 개명전 이름인 우띠롱(오적룡) 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불린다. 줄여서 '띠롱이' 라고도 불린다. 상술한 하나의 중국 사건으로 인해 띠롱이라는 별명은 멸칭으로 전락했다.


[1] 본 문서는 우띠롱으로도 넘어올 수 있다.[2] 사실 KGC가 그리 팀파울이 많은 팀이 아니라서 매치업 상대에게 앤드원만 주지 않으면 저런 모습이 딱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출전시간 분배가 미흡하다는 것도 감독이 휴식을 안 주는 문제가 더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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