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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흠/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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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정계 활동
3.1. 제39대 충청남도지사
3.1.1. 지지율
3.1.1.1. 리얼미터

1. 개요

충청남도지사 김태흠의 생애에 대해 서술한 문서.

2. 생애

1963년 1월 11일,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면(현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에서 태어났다. 수부국민학교, 웅천중학교, 공주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정치대학 무역학과(82학번)를 졸업하고 2003년 1월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사회정책학과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건국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3년 7월 20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5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하였으며, 1985년 12월 12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3. 정계 활동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충청도의 맹주였던 김종필 후보를 돕는 청년조직을 만들어 활동을 한 게 정치 관련 활동의 시작으로 알려져있다.[1]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용환은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그룹인 7인회의 멤버, 김태흠 의원이 친박계가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1995년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를 보좌하는 의원부장을 거쳐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국무총리비서실에서 행정관(4급 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KBS 뉴스 9 1998년 10월 30일자 방영분 1:38 지점에서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8년 후인 제19대 국회부터 본인의 지역구가 되는 충청남도 보령시·서천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6.5% 득표율을 얻는 데 그치고 자유민주연합 류근찬 후보는 물론 다른 후보들에도 밀리며 6명[2] 중 뒤에서 2위인 5위로 낙선한다. 그 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한나라당 충남도당 대변인을 맡았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년 동안 보령시·서천군 당협위원장충청남도 정무부지사[3]를 지내다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한나라당 후보로 다시 보령시·서천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자유선진당 류근찬 후보에게 져 또다시 낙선하고 말았다[4].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2009년까지 한나라당 충남도당 위원장직을 역임했으며 이후 2011년에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 보령시·서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3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자유선진당 류근찬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5] 19대 국회를 통하여 최초로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후 친박에 속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 보령시·서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더불어민주당 나소열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6월 2일 새누리당 제1사무부총장에 임명되었다.

2017년 7월 3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이재만 최고위원과 더불어 친박계를 대표한다. 류여해, 이철우 최고의원은 친홍계로 분류되니 딱 2:2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5월 28일 최저임금법 개정 투표에서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김태흠 의원은 "5월 28일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것은 현 정부처럼 최저임금 목표액과 시기를 정해놓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에도 반대하고 우리나라 정서상 숙박비, 식사비, 교통비 등의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해 반대한 것이다." 라고 해명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미래통합당 후보로 충청남도 보령시·서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는데, 3선 서천군수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나소열 후보를 1.73%p(1,577표) 차이로 누르고 3선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김태흠 의원은 경상권 이외 지역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친박 의원으로 자리매김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인천광역시에서 살아남은 윤상현. 그러나 윤상현은 최근 여타 친박들과는 좀 다른 행보를 보였는데 윤상현은 공천 탈락 불복 후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3파전에서 승리했다.

2020년 5월 3일,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지금 우리에겐 관리자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할 개척자가 필요하다"면서 "우리 당은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기르고, 어려울수록 원칙과 정도를 걷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그러나 5월 6일 "저의 부덕의 소치로 이만 출마의 뜻을 접고자 한다"라 하며 원내대표 출마를 포기했다.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러닝메이트로 같이 뽑아야 하는데, 국회 경험이 풍부한 3선 이상이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에 출마하는 것이 관행적이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의 총선 참패로 의석수가 쪼그라든데다가 당선자들이 대부분 초선~재선이기 때문에, 정책위원장 구인난이 있었다고 한다. 5월 5일까지도 김태흠, 이명수(4선 / 충남 아산시 갑) 후보는 정책위원장 러닝메이트를 구하지 못했고, # 그 다음날 두 후보 모두 출마를 철회했다.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은 주호영(5선 / 대구 수성구 갑), 권영세(4선 / 서울 용산)의 양자구도로 진행됐으며 결국 주호영이 당선됐다.

2020년 5월 12일, 이은권 전 대전 중구청장과 함께 황운하 전 대전경찰청장의 겸직 논란에 따른 당선 무효를 주장했지만 대법원에서는 당선무효소송을 기각하고 황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

2022년 4월 4일, 원내대표 출마 대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가 직접 나서 4일 김태흠 의원과 만나 원내대표 불출마와 충청남도지사 출마를 부탁할 것으로 알고 있다", "김 의원이 고심 끝에 당의 입장을 생각해 이 대표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22년 4월 21일, 국민의힘 충남지사 경선에서 현역 의원 감점 규정에도 불구하고 50%를 넘기는 득표율로 박찬우 전 의원와 김동완 전 의원에 승리하여 충청남도지사 공천권을 거머줬다. 다만 출마를 위해서는 현재 국회의원 직에서 사퇴해야 되기 때문에 지방선거와 함께 보령시·서천군 지역구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다. 이후 보령시·서천군 국회의원직은 장동혁이 이어받게 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3주만에 치러지는 선거 일정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본적이 충청남도라는 점[6],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이 7% 가까이 앞섰다는 점 등으로 인해 무난하게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었고 여론조사상으로도 민주당의 양승조 지사에게 다소 앞선것으로 나타나고 있다.[7] 김태흠 본인의 강성 이미지와 추진력[8]과 양승조 지사의 온건이미지와 무난한 도정 지지율[9] 등이 영향을 준 듯 보인다.[10]

결국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후보를 7.75%p(67,350표) 차이로 꺾고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에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적으로 체급을 크게 키우는데 성공했으며 중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충청 구심점 역할을 할것으로 보인다.[11]

여러모로 같은 충청도 출신의 이완구와 행적이 비슷하다. 다선 국회의원을 재직하고[12], 둘 다 친박 성향, 보수정당 계열의 우세로 전망되는 지방선거에 출마해 충남도지사에 당선된 부분, 그러면서 국회의원 시절 기존의 지역구 의석을 지켜낸 것까지. 다만 이완구는 경찰 출신 정치인, 김태흠은 전업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은 다르다.

3.1. 제39대 충청남도지사

2022년 6월 30일 취임 하루 전 기획재정부 출신의 전형식 전 충북경제자유구역청장을 충청남도 정무부지사로 내정하였다.

2022년 7월 1일 공식 취임하게 되며 보수정당 소속으로서는 이완구 前 총리가 충남지사에서 사퇴한지 13년 만에 최초로 취임하는 지사가 된다.[13] 김태흠 개인으로서도 2006년 당시 이완구 도정에서 정무부지사를 지낸 이후 14년 만에 충남도청으로 복귀하는 셈이 된다.[14]

9월 29일, 충남도청에서 '베이밸리 메가시티 건설을 위한 경기·충남 상생 협약식'을 가졌다. 충남 북부와 경기 남부를 아우르는 아산만 일대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계획을 '베이밸리 메가시티'라고 이름하고, 이를 위해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손을 잡은 것. 협약에는 ▲천안-아산-평택 순환철도 건설 ▲국가산단 및 산업벨트 조성 ▲충남-경기 산학연 연계 ▲평택·당진항 물류 환경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자리에서 아산만과 서해안을 중심으로 신산업 등을 연결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올릴 것이라며 실무협의회 구성과 공동 연구용역 등 실무과제를 빠르게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초반 시도지사 평가에서는 임기 내내 나름 중상위권에 포진해 있던 전임 양승조 지사에 비해 좋지 않은 10위를 기록했다. 도정에 대한 긍정 평가는 50.9%로, 득표율인 53.9%보다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다. # 그나마 9월에는 조금 올라 8위를 기록했다.# 10월 조사에서는 6위를 기록하는 등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초반과 달리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후에도 충청권 하계U대회 유치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지역현안을 관철시킨 부분 등 도청 기관 이전 후 별다른 동력을 얻지 못하고 방치 되어가던 내포신도시 활성화 대책을 도지사 차원에서 추진하고 지역 곳곳에 국가산업단지 유치를 실현하는 등 본인 특유의 결단력을 바탕으로 취임 당시 내세운 '힘쎈 충남' 캐치프레이즈에 맞춰 속도감 있고 체감적인 추진력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고 있다.#, #, #[15] 다만, 갑작스레 도지사 차원에서 일하는 도정을 강조하고 실제로 곳곳에 속도감 있는 업무를 강조하다 보니 실적과는 별개로 갑작스레 바빠진 분위기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산하 공무원들도 나타나는등 개선 해야할 부분도 나타났다. 허나, 전체적인 충남도 공직 사회는 김태흠 도정에 대해 호평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을 개선 해야할 부분으로 지적하긴 했으나 그간 충청남도 공무원들이 너무나 일을 안한다는 소리를 듣던 지역민의 원성을 들어 왔기에 앞으로 김태흠 도정에 대해 기대한다는 반응이 크다.#

2023년 2월 6일, 도정 첫 충청남도 행정부지사홍성군 출신의 김기영 행안부 대변인을 임명하였다.

2024년 4월에 있었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크게 지는 결과를 맞이함에 따라[16] 이에 따라 충남권의 야당 국회의원들과 원활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또한 총선을 기점으로 현 정부의 국정동력이 크게 상실된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와의 가까운 사이를 기반으로 성과를 낸 김태흠 지사로서는 남은 임기동안 지금보다 더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3.1.1. 지지율

3.1.1.1. 리얼미터
7월 직무수행평가에선 10위, 지지율은 50.6%을 기록했다.링크

8월 직무수행평가에선 14위까지 떨어졌고, 지지율 역시 2.2%p 하락해 48.4%를 기록했다.링크

9월 직무수행평가에선 8위로 급반등했고, 지지율 역시 과반 지지율을 달성했다.링크

10월 직무수행평가에선 6위로 상위권에 안착, 지지율도 4.1%p가 올라 54.1%의 지지율을 기록. 여름에 비해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링크

11월 직무수행평가에선 다시 8위, 지지율도 떨어져 52.7%을 기록했다.링크

12월 직무수행평가에선 0.1% 떨어진 52.6%를 기록했다. 다만 옆동네인 세종시장의 평가가 급등해, 순위는 9위로 떨어졌다.링크

2023년 1월 직무수행평가에서는 2.7%가 올라 55.3%를 기록했고 순위도 7위로 올라갔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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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김태흠은 김종필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즉 김종필은 김태흠의 대선배이다.[2] 원래는 7명이었으나, 이 곳에 출마한 또다른 후보였던 김옥선이 사퇴해서 6명으로 한 명 줄었다.[3]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충청남도지사 재임 시절 발탁되었다.[4] 그래도 이번엔 4명 중 2위로 아쉽게 낙선하였다.[5] 자유선진당은 이 선거에서 말 그대로 몰락했다. 당 대표인 심대평부터 험지인 세종시에 출마해 낙선했으며, 중진들이 출마한 선거구에서도 대부분 낙선했다. 게다가 정당 득표율도 굉장히 낮게 나와 비례대표 의석도 거의 못 가져갔다. 이 후의 행보는 자유선진당 문서 참조.[6] 윤석열 대통령의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논산 출신이다.[7] 2022년5월28일 현재 21개 여론조사에서 15개는 김태흠이 이기고 6개는 양승조가 이기는것으로 조사됐다. 김태흠이 이기는 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밖으로 나타나지만 양승조가 이기는 조사에서는 1~2% 차이의 접전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양승조 지사에 비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거막판 5월23~25일 실시된 KBS MBC SBS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801명 전화면접조사에서 9.1%로 앞선것으로 조사됐다.[8] 이는 강원도지사에 출마한 김진태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점인데 그나마 막말을 자제하고 반성한 김진태보다 김태흠이 더 나쁜 상황에 있다.[9] 인물론으로 비벼볼 수 있다는 점은 강원도지사에 출마한 이광재 전 의원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10] 오히려 충남에 비해 민주당이 비교적 선전할 것으로 보였던 충북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답이 없는 수준으로 계속 밀리고 있다. 여기는 현직인 이시종 지사가 3선을 채워 출마가 불가능해서 현역 프리미엄이 존재하지 않고 민주당의 후보가 하필이면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 출신인 노영민이라 인물론에서도 밀리는 중이다. 참고로 노영민은 비서실장 시절에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었고 다주택자라는 점을 지적받아 집을 한채만 남기고 모두 처분했는데 하필이면 서울 강남의 아파트가 아니라 지역구였던 청주시 흥덕구의 집을 처분해서 권력과 물욕에 눈이 멀어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키워준 지역을 팔아먹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청주가 부동산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돼 지역 여론도 매우 안 좋다. 민주당 지지층에게도 '양정철과 함께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천거하여 결과적으로 정권을 팔아먹은 부역자' 이미지로 각인되어 '노욕민'이라는 멸칭으로 불릴 정도로 노영민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은 형편이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 김영환 충청북도지사 후보도 타지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다가 내려왔다는 점에서 비호감이 강한 편이었으나 상대인 노영민에 비해서는 비호감도가 적었고 정권교체의 바람을 타고 무난하게 당선되었다.[11] 여담으로 개표 중반에 국민의힘의 압승이 유력해지자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서 출구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후보들의 프로필 사진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이 때 스티커를 붙이던 이준석 대표가 김태흠 후보의 눈(!)에 당선 스티커를 붙여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런 장난까지 칠 정도면 꽤나 친한 사이인 모양이다.[12] 김태흠은 3선, 이완구는 재선.[13] 이완구 전 총리는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수정안에 반발하여 지사직을 사퇴하였다.[14] 김태흠은 민선 4기 도정 출범 직후부터 2007년까지 충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내다가 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15] 취임 초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낮은 것과는 별개로 충청권 광역단체장 4명 중 대전의 이장우 시장을 제외하면 이례적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16] 특히 공주시·부여군·청양군아산시 갑이 야당에 넘어갔으며, 보령시·서천군, 서산시·태안군은 5% 이내의 초접전으로 신승하였고, 홍성군·예산군은 10% 이내의 경합열세를 보였으며,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은 충남 의석 11석 중 3석만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