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07:08:29

까르띠에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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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탱크 시계의 탄생3. 탱크 시계의 역사
3.1. 태동기 (1919년-1930년대)3.2. 혼란기 (1940년대-1970년대 초)3.3. 머스트 드 탱크 (1977년-2004년)3.4. 탱크 솔로 (2005-2021), 탱크 머스트 (2022년-현재)
4. 탱크 시계의 종류
4.1. 노말 (Normale, 1919)4.2. 생트레 (Cintrée, 1921)4.3. 루이 (Louis, 1922)4.4. 쉬누아즈 (Chinoise, 1922)4.5. 오뷔(Obus, 1924)4.6. 아 기셰 (à Guichet, 1928)4.7. 오뷔 사보네트 (Obus Savonnette, 1930)4.8. 에탕슈 (Étanche, 1931)4.9. 바스퀼랑트 (Basculante, 1932)4.10. 아시메트리크 (Asymétrique, 1936)4.11. 알롱제 (Allongée, 1960)4.12. 머스트 드 탱크 (Must de Tank, 1977)4.13. 아메리칸 (Américaine, 1989)4.14. 프랑세스 (Française, 1996)4.15. 아 비스 (Á Vis, 2001)4.16. 디방 (Divan, 2002)4.17. 앙글레스 (Anglaise, 2012)4.18. 솔로 (Solo, 2005-2021)와 머스트 (Must, 2022-현재)
5.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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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라인은 산토스와 더불어 까르띠에 시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100년이 넘도록 거의 변함이 없는 일관된 아르데코(Art Déco) 스타일의 클래식한 디자인은 이 시계가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비결이다. 스퀘어 다이얼, 로만 아워인덱스[1], 레일웨이 미닛인덱스, 블루 핸즈, 블루 카보숑[2] 크라운은 1920년대 출시 초기와 오늘날의 시계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탱크의 강력한 아이덴티티다.

까르띠에는 무브먼트 측면에서는 동급 경쟁사 대비 그다지 주목받지는 않는다. 사실은 탱크 시계를 구매하는 수요층이 그다지 무브먼트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타 브랜드 대비 상대적으로 기계식 무브먼트 여부를 중시하지 않는 여성 구매자 비중이 높은 이유도 있다. 그래서 탱크는 쿼츠 뿐 아니라 오토매틱 시계도 함께 판매하고 있지만, 남성용 사이즈인 라지(L)와 엑스라지(XL)에만 일부 오토매틱 무브먼트가 들어가고, 미디엄(M)과 스몰(S) 사이즈는 쿼츠로만 생산된다.[3]하지만 막상 까르띠에의 무브먼트 기술은 결코 뒤쳐지지 않으며 2022년에는 로터가 아닌 무브먼트 자체가 회전하며 동력을 저장하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까르띠에는 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든 회사라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헤리티지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그 시계는 이 탱크가 아닌 '산토스'이지만,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시계업계에서 이 타이틀은 중요한 무형자산이다.

2. 탱크 시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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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루이 푸랑수아 까르띠에

1847년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승의 가게를 인수하여 사업을 시장한 창업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François Cartier)는 알프레드(Alfred)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를 경영한 알프레드는 해외로 사세를 확장시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알프레드에겐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첫째 루이(Louis)는 파리에 남아 본사를 경영하고 둘째 피에르(Pierre)와 셋째 자크(Jacques)는 각각 뉴욕런던에서 회사를 경영하게 하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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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첫째 루이, 뉴욕의 둘째 피에르, 그리고 런던의 막내 자크 3형제

이렇게 1900년대 초부터 까르띠에 삼형제는 단일 브랜드 아래 유럽과 미국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각자의 재량 하에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였다. 흔히 까르띠에 시계의 역사에서 주로 언급되는 루이는 창업자 루이 프랑수아가 아니라 바로 이 3세대 첫째 손자인 루이를 가리킨다.

잘 알려진 대로 까르띠에가 만든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는 탱크가 아니라 산토스였다. 산토스는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는 시계이지만, 한편으론 루이가 자신의 친구인 항공기 조종사 아우베르투 산토스뒤몽의 부탁 때문에 약간은 급조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는 산토스에서 다소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여 자신의 미학적 철학을 결집시킨 걸작을 만들고자 했다. [5]

이 때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당시는 이미 전열보병의 시대가 저문지 오래이고 철조망을 친 뒷편에 길게 땅을 파서 참호를 만들고, 군인이 그 아래 웅크려 머리위로 소총을 쏘는 것이 전형적인 전투의 모습이 되었다. 이에 각국 군대는 철조망을 찌그러트리는 동시에 좁은 참호를 건너 상대를 무력화시킬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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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FT-17

그 결과 영국군은 두꺼운 철판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고 길게 이어진 바퀴 위에 무한궤도를 벨트처럼 감싸 참호를 넘을 수 있는 전차를 처음 발명해냈다. 그리고 1917년 프랑스의 르노[6]는 그 위에 360도로 회전하는 포탑을 얹어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에 근접한 탱크를 만들었다. 이 모델이 바로 르노 FT-17 이다.

파일:tank and tank.jpg.jpg

루이는 이 탱크의 모습을 본 순간 새로운 시계의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산토스의 러그가 케이스 위아래에서 안쪽으로 살짝 좁혀져 스트랩과 연결되는 반면에, 탱크는 케이스 외곽선을 그대로 상하로 연장시켜 러그 역할을 겸하도록 함으로써 가운데 케이스를 포함하여 알파벳 H 모양과 유사하다.(이 두 개의 세로축은 수레나 들것의 손잡이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브롱카(brancard)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시침과 분침은 블루핸즈로 만들어 다이얼 바탕과 뚜렷하게 대비시켰다. 직선의 두 러그는 무한궤도로 된 바퀴, 파란색 시침과 분침은 길쭉한 회전형 포탑과 닮아있다. 크라운 끝은 파랑색 카보숑으로 장식하여 다이얼 위 블루핸즈와 조화를 이루게 했다. 최초의 탱크인 노말(Tank Normale)은 오늘날의 바통핸즈와 달리 브레게 핸즈처럼 시침과 분침 끝부분 부근에 둥근 링 있었다.

파일:casterbajac_tank.jpg

지극히 남성적인 전쟁무기 탱크가, 20세기 가장 우아한 시계의 이름으로 쓰인게 아이러니한 면도 있다. 훗날 프랑스의 디자이너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Jean-Charles de Castelbajac)은 탱크 시계와 관련된 재미난 그림들을을 그렸는데, 그 중 한 작품에서 그는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서“Si tous les Tanks étaient fabriqués par Cartier, nous aurions le temps de vivre en paix."(모든 탱크가 까르띠에에서만 만들어졌다면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있을 것이다.)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3. 탱크 시계의 역사

탱크 시계의 역사는 사람에 따라 분류 기준이 다르지만, 대체로 4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언급되는 모델들의 상세한 설명과 사진들은 이어지는 탱크시계의 종류 문단에서 서술한다.

3.1. 태동기 (1919년-1930년대)

1920년대에 까르띠에는 최초의 노말을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모델을 시도하였다. 아무래도 처음 탄생한 시계인 만큼 오랜시간 검증된 주력 디자인이 없다보니 이런저런 시도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의외로 노말 이후 불과 3년 뒤에 출시된 루이가 향후 한 세기동안 탱크의 표준 외형을 거의 결정지어버렸다. 그 밖에도 길이를 세로로 늘인 생트레, 중국 건물의 대들보처럼 케이스 아래위로 가로형 바를 추가한 쉬누아즈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약 10년동안 디자인 측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친 후 1930년대부터는 기능적 측면에서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아직 남성들 사이에 손목시계가 완전하게 정착되지 못한 채 회중시계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그만큼 시계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신사들의 주머니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렀기 때문에, 비를 맞아 물이 스며든다거나 외부 물체에 부딪쳐 파손될 위험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손목시계가 점차 확산되며 방수나 내구성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다이얼 대부분 면적을 금속 케이스로 숨긴 채 최소한의 창만 뚫어 시간을 표시한 아 기셰, 마치 회중시계처럼 전면 유리를 보호하는 커버를 추가한 사보네트, 방수 기능을 추가한 에탕슈, 책상위에 얹어 시계를 볼 때도 안정적으로 거치 가능한 바스퀼랑트가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시계 제작기술이 점차 발전하며 방수성과 안정성이 향상됨에 따라, 이 같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시계들은 1930년대 중후반부터 급격히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1920년대처럼 디자인적 측면에서 여러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 1920년대의 독특한 시계들은 극히 물량이 드문 한정판으로서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문외한이 봐도 100년된 아 기셰, 사보네트, 바스퀼랑트의 모습은 레어템의 기운이 마구 느껴진다

이처럼 다양한 연구개발이 이어진 시기이지만, 미국 대공황의 영향으로 막상 회사의 실적은 좋지 못했다. 심지어 워낙 판매가 부진하여 무브먼트 납품업체인 르쿨트르(오늘날에도 계속 시계를 생산하는 그 예거 르쿨트르 맞다)는 까르띠에가 약정한 물량만큼의 무브먼트를 구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납품계약을 파기한 적도 있었다.

3.2. 혼란기 (1940년대-1970년대 초)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프랑스가 고립되고, 첫째 루이와 막내 자크가 1942년 동시에 사망함으로써 1940년대 까르띠에의 도전정신은 다소 주춤해졌다. 실제로 아래 문단에서와 같이 탱크 시계들을 출시연도 순으로 나열할 때 1940년대에서 60년대는 거의 신제품이 등장하지 않는 공백기임을 알 수 있다.

홀로 남은 둘째 피에르도 머지않아 해외 법인인 뉴욕과 런던 까르띠에를 매각하였고, 나머지 후손들도 차례로 지분을 정리하여 3대에 걸친 창업자 가족경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창업자 가문이 직접 경영하지도 않고, 형식상 별개의 법인인 파리-런던-뉴욕을 연결하던 혈연 관계도 끊김에 따라 까르띠에 브랜드는 단기 수입에 집중하며 라이선스를 남발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2차대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출신인 로베르 오크(Robert Hocq)라는 라이터 사업가는 자신이 생산한 제품에 까르띠에 로고를 붙여 판매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 제품이 꽤 성공적이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그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렘브란트 그룹(Rembrandt Group)과 제휴하여 1972년, 1974년, 1976년에 각각 까르띠에 파리, 런던, 뉴욕법인을 인수하였다. 삼형제 사망 이후 수 십년만에 세 메종들은 한 지붕 아래 다시 뭉친 셈이다.

함께 까르띠에를 인수한 렘브란트 그룹은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명품 브랜드만을 모아 1988년 회사를 분할하였으며, 그 분할된 회사가 오늘날 잘 알려진 리치몬트 그룹(Richemont Group)이 된다.[7]

한편 1969년 세이코가 실질적인 최초의 쿼츠시계[8] 아스트론을 출시함에 따라 전 세계 시계시장은 그야말로 혼란과 공포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까르띠에의 시계 역시 매출은 하락하였고, 고육지책으로서 자사의 보석이나 펜 등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까르띠에 시계를 끼워 팔기도 했다.

그런데 썩어도 준치라고, 사람들은 무려 까르띠에라는 명품 로고가 박힌 이 시계들이 쿼츠 무브먼트 덕에 가격이 저렴해지자 시계만 따로 판매할 수는 없는지를 문의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짧았던 이 혼란기의 탱크 시계들을 소위 프리 머스트(Pre-Must) 탱크라고 한다.

3.3. 머스트 드 탱크 (1977년-2004년)

리치몬트 그룹은 삼형제 사망 후 다소 난잡했던 까르띠에 이미지를 재정리하려는 의미에서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les Must de Cartier) 라인을 출범하며 고급 가방, 라이터, 향수, 펜 등 여러 액세서리 붙여 판매하였다. 저 머스트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로서, 그야말로 반드시 가져야 할 필수품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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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80년대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 광고

1977년 까르띠에의 시계 또한 이 브랜드 아래로 편입되었으며, 이 시기에 만들어진 탱크 시계가 바로 머스트 드 탱크이다. 이 라인업은 쿼츠 파동으로 시련을 겪던 시계업계의 사정을 고려하여, 다른 까르띠에 제품들에 비해서는 살짝 낮은 가격대의 대중적인 전략을 택하였다. 범용 ETA 무브먼트를 채택하고, 케이스 소재 또한 기존의 귀금속이 아니라 은 위에 금을 도금함으로써,[9]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할 만큼은 아니면서도 중산층이 몇 달 노력하면 구매할 만한 가격대로 출시되었다.

이런 대중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머스트 드 탱크는 1977년부터 2004년까지 거의 30년간 장수하며 엄청나게 팔렸다. 1960년대까지 한 해에 50점 내외만 생산되던 것이, 이 시기에는 브랜드 론칭 이후 겨우 4년 만에 무려 16만점 이상 판매되었다.

오늘날 흔히 빈티지 탱크시계라 하면 바로 이 시계라고 보면 된다. 그 이전 1960년대 시계들은 연식과 희소성 때문에 물량이 많지 않고있다고 해도 가격대가 넘사벽, 반대로 이후 2005년부터 판매된 솔로는 빈티지라고 부를 연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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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을 떠나서 스틸로만 생산되는 현행 솔로나 머스트보다 은으로 만든 이 머스트 드 탱크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특히 금색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매장에서는 4배 값을 주고 루이로 넘어가는 옵션밖에 없지만[10], 비록 도금일지라도 빈티지 머스트 드 탱크에서는 얼마든지 합리적인 가격에 금장 은시계를 구할 수 있다.[11]

생산 기간도 길었고 물량도 많았던 만큼 기본형 외에 트리니티, 레몬색 다이얼, 아르데코, 랙커 다이얼 등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특히 시/분/초 표시가 전혀 없는 랙커 다이얼은 2022년 재탄생한 탱크 머스트에서 현대적으로 복각되며 부활하였다. 단점은 시계인데 시간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3.4. 탱크 솔로 (2005-2021), 탱크 머스트 (2022년-현재)

파일:Tank Solo and Must.jpg

2000년대 초반 머스트 드 탱크가 단종된 후 2005년부터 솔로가 주력 탱크로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기존 머스트 드 탱크보다 케이스 및 좌우 브롱카가 평평하고 살짝 각지게 바뀌었다. 그리고 “Must de Cartier” 대신에 “CARTIER”로 로고가 단순화되었다. 또한 은 위에 금도금한 버메일(Vermeil) 소재였던 이전 모델과 달리 스틸로 출시되었다.

2021년에는 머스트가 17년간 판매되던 솔로를 대체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머스트는 솔로와 별개의 라인이기 때문에 솔로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실상 이 둘은 외형도 거의 같고 브랜드 포지셔닝 측면에서도 후속모델이나 다름없다.

머스트는 그 이름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1977년 출시된 머스트 드 탱크를 재해석한 라인업이다. 다소 평평하고 각졌던 솔로의 케이스와 브롱카는 다시 이전의 머스트 드 탱크와 비슷하게 부드럽고 볼륨감있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만, 소재에 있어서는 직전 모델인 솔로와 마찬가지로 스틸로 만들어져 버메일(은 위에 금도금) 소재였던 머스트 드 탱크와 차이를 두었다. 그 밖에 조금 소소하게 더 뾰족해진 카보숑, 디버클에서 핀버클로의 변화, 조금 작아진 크기 등을 제외하면 이 둘은 언뜻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정리하자면 대체로 머스트 드 탱크 / 솔로 / 머스트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로고 글자가 “Must de Cartier” 라면 당연히 머스트 드 탱크.
2) 소재가 금색(도금)이라면 머스트 드 탱크이고, 스틸이라면 솔로나 머스트.
3) 로고가 "CARTIER"인데 금색 소재라면 순금으로만 생산되는 훨씬 비싼 루이일 확률이 높다.[12]
4) 둘 다 스틸이고 로고가 "CARTIER"라면 양 옆 브롱카가 납작하고 카보숑이 둥근 쪽이 솔로, 브롱카가 둥그스름하게 입체적이고 카보숑이 뾰족한 쪽이 머스트
5) 솔로는 디버클(D-buckle, deployment duckle)인 반면, 머스트는 일반적인 핀버클(pin buckle)
6) 같은 사이즈의 두 시계를 비교할 때 살짝 더 큰 쪽이 솔로

파일:Tank_lacquer_old and new.png

한편 탱크 머스트는 기본형 모델 외에도 머스트 드 탱크 시절 인덱스가 전혀 없는 소위 랙커 다이얼(lacquered dial) 모델을 복각하여 내놓기도 하였다. 위 사진에서 머스트 드 탱크(1977, 위)와 탱크 머스트(2021, 아래)의 랙커 다이얼 모델들을 비교할 수 있다.

여담으로 탱크 머스트 쿼츠시계 라인 내에 태양광으로 충전도 가능한 솔라비트 시계도 추가되었다. 기본 내장 배터리에 더하여 태양광 충전을 통해 무려 16년간 배터리 교체가 필요없다고 한다.

4. 탱크 시계의 종류

탱크 시계는 모두 그 형태나 상징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를 모델명으로 사용하여 매우 직관적인 특징이 있다.

4.1. 노말 (Normale, 1919)

파일:TankNormale.jpg
최초의 탱크 시계이다. 원래 1917년 연합군 장교였던 미국의 존 퍼싱 장군에게 헌정한 시계였으며, 2년이 지난 1919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당연히 유일한 탱크 시계이므로 아직 세부 모델명 없이 그냥 탱크라고만 불렸다. 몇 년 후 고급 모델인 루이가 등장함에 따라, 최초이자 기본이라는 의미에서 노말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13] 오늘날의 탱크에 비해 가로세로 비율이 거의 비슷하여 정사각형에 가깝고, 브레게 핸즈를 달고 있다.

사실 이 노말은 탱크의 화려한 100년 역사를 열었다는 그 상징성을 제외하면, 막상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불과 3년 뒤 등장한 루이가 고급형/보급형 불문하고 이후 100년간 생산될 모든 탱크의 기본 형태를 평정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1996년에 출시되어 큰 성공을 거둔 프랑세스가 이 노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4.2. 생트레 (Cintrée, 1921)

파일:Tank Cintrée.jpg
아치형이라는 뜻이다. 세로로 길쭉한 동시에 러그가 완만한 곡선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가로세로 비율 자체가 기본형과 확 다르다 보니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 시도된 파격적인 모델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의외로 노말 이후 2-3년만에 등장하였다. 사실상의 첫 파생형 모델인 셈이다.

4.3. 루이 (Louis, 1922)

파일:Tank Louis.jpg
루이 까르띠에가 본인의 이름을 당당하게 부여한 상징적인 시계다. 풀 네임으로 탱크 루이 까르띠에(Tank Louis Cartier)로, 혹은 반대로 줄여서 Tank LC라고도 불린다. 사실상 극소수 지인들과 VIP만을 위한 제작형 시계나 다름없었던 노말과 달리, 실질적인 양산형 탱크의 시작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웠던 노말에 비해 세로로 살짝 길어진 직사각형 모습이다. 그리고 노말의 케이스와 브롱카가 다소 평평하고 직선적인 데 반해 루이는 부드럽고 매끈한 곡선을 띠고 있다. 이 디자인은 탱크 라인업의 탄생 극초기부터 이미 노말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오늘날 탱크의 전형적인 모습을 완성시켰다. 탱크의 시작은 노말이지만, 실질적으로 100년 넘게 이어질 탱크의 형태를 완성한 것은 이 루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노말이 출시된 이후 불과 3년만이었다.

애초에 노말보다 고급 라인으로 시작되었고 그 지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여 머스트나 솔로, 프랑세스 등보다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 스틸이나 도금으로도 만들어지는 다른 모델들과 달리 루이는 오직 순금으로만 제작되며 당연히 가격대도 비교 불가다.

다만 전통을 중시하는 제품이다 보니 고급 시계 중에는 드물게 미네랄 글래스를 채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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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루이. 수동 모델 기준 가격은 1,600만원이 넘으며 일반 머스트의 약 4배 수준이다.

4.4. 쉬누아즈 (Chinoise,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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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뜻한다. 중국식 건물의 가로 대들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파일:Tank Chinoise_now.jpg
한 세기가 지난 2022년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출시된 쉬누아즈.

4.5. 오뷔(Obus, 1924)

파일:Tank Obus.jpg
포탄이라는 뜻이다. 기존의 탱크 시계들의 다이얼 좌우 러그인 브롱카가 케이스와 일체화되어 아래위로 뻗은 반면에, 이 오뷔는 정사각형 케이스 위 아래에 별도의 러그가 달린듯한 형태였다. 스트랩 좌우 러그의 모습이 마치 포탄과 같아서 이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출시된 루이, 생트레, 쉬누아즈가 좋은 반응을 얻고 후세에 복각이 된 것과 달리 이 오뷔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다만, 몇 년 후 사보네트가 출시되었을 때 이 포탄 러그가 다시 등장한 적이 있다.

4.6. 아 기셰 (à Guichet, 1928)

파일:Tank à Guichet.jpg
쪽문 혹은 작은 창을 뜻한다. 당시에는 남성들의 시계 트랜드가 기존의 회중시계에서 조금씩 손목시계로 넘어갈 무렵이었고, 회중시계 시절에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던 내구성, 방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비록 제작 당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핸즈가 모두 사라진 이 형태는 한편으론 오늘날의 디지털시계와 비슷한 측면도 있다.

우리가 탱크라는 시계를 떠올릴 때 사각형 다이얼과 레일웨이, 로만 인덱스, 블루핸즈를 먼저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하지만 아 기셰에서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케이스와 러그만 남아있음에도 이것이 탱크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다이얼뿐만 아니라 외형 실루엣 그 자체 또한 100년의 세월동안 탱크라는 라인업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았음을 방증한다.

4.7. 오뷔 사보네트 (Obus Savonnette, 1930)

파일:Tank Savonnette.jpg
뚜껑이 달린 회중시계를 의미한다. 몇 년 전에 탄생한 오뷔의 총알모양 러그를 기초로 하여 전면 글래스를 보호하기 위해 뚜껑을 덮은 모델이다. 다른 탱크 모델에서는 카보숑이 용두에 하나만 있는 데 반해, 이 시계에는 무려 5개나 달려있다. (반면에 카보숑이 아예 없는 시계도 있다.) 상단의 둘은 뚜껑의 경첩을 고정시키며, 하단의 둘은 양쪽으로 누름으로써 내부에서 뚜껑을 고정한 고리를 해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 시계의 러그가 오뷔의 포탄형태를 채용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일반적인 탱크의 러그 구조 하에서는 뚜껑을 위로 열 경우 상단 경첩 부분이 스트랩과 맞닿을 수 있기 때문에 케이스와 러그 사이가 살짝 분리된 오뷔 러그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4.8. 에탕슈 (Étanche, 1931)

파일:Tank Étanche.jpg
방수를 의미한다. 2001년 이 시계가 아 비스라는 모델명으로 복각되긴 했지만, 이 에탕슈 오리지널 시계는 몇 점 생산되지 않아 애초에 사진이나 스펙 자료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카보숑을 포기한 대신 방수 가능한 크라운을 장착했고, 바깥 케이스 내에 방수를 위한 별도의 케이스를 한 겹 추가하였다.

4.9. 바스퀼랑트 (Basculante, 1932)

파일:Tank Basculante.jpg
기울이다, 매달다, 회전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의 리베르소(Riverso)와 많이 비교되는 모델이다.

리베르소는 일반 시계와 동일한 구조의 케이스를 슬라이딩 방식을 이용하여 가로로 뒤집을 수 있다. 반면 이 바스퀼랑트는 시계 케이스를 감싼 프레임 자체를 12시 방향에서 살짝 들어올릴 수 있으며, 그 액자형 프레임 안쪽에서 3시와 9시 방향에 연결된 나사를 피벗으로 하여 케이스가 상하로 360도 회전하는 모양새이다. 이 때문에 다이얼 디자인은 전형적인 탱크의 모습을 띠지만 용두의 위치가 12시 방향으로 옮겨져 내부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

이런 구조적 차이는 설계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리베르소가 귀족들이 말을 타고 스틱을 휘두르는 폴로 경기를 할 때 전면의 유리를 보호하려는 고민에서 만들어졌다면, 이 바스퀼랑트는 손목시계인 동시에 책상 위에 두고 탁상시계처럼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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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하고 단순한 리베르소에 비해, 바스퀼랑트가 내구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다소 불안정한 측면이 있는 것도 이처럼 목적 자체가 스포츠 활동이냐 거치용이냐로 달랐기 때문이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바스퀼랑트의 구조는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프레임 부분이 쉽게 망가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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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하여 365점 한정으로 재출시되기도 했다. (12시 아워마크가 XII가 아니라, 2000을 의미하는 로마자 MM으로 표시되었다.)

4.10. 아시메트리크 (Asymétrique,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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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이라는 뜻이다. 본격적으로 자동차가 대중화되던 시기 운전대를 잡은 손목의 각도에서도 시계가 똑바로 보이도록 만든 시계이다. 오늘날이야 한 집에 두 대 이상의 차를 가진 집도 흔하지만, 당시에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을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엄청난 자랑거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4.11. 알롱제 (Allongée,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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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뜨린 모양을 의미한다. 흔히 태그 호이어의 모나코를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스티브 맥퀸이 이 알롱제도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4.12. 머스트 드 탱크 (Must de Tank,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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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머스트 드 탱크는 시계 라인업 그 자체가 약 30년간 지속되며 한 세대 전체를 상징하기 때문에, 다른 시계와는 달리 상단의 역사 문단 해당항목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다.

4.13. 아메리칸 (Américaine,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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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 가능하듯 미국이라는 뜻으로서 뉴욕의 고층빌딩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모델이다. 1996년 출시된 프랑세스, 그리고 2012년 출시된 앙글레스와 함께 초창기 까르띠에 3형제가 각각 사업을 운영했던 파리, 런던, 뉴욕을 기념하는 시계이기도 하다.

형태적 면에서는 1920년대 생트레를 복각한 시계이기도 하다. 다만 생트레가 측면의 우아한 곡선이 도드라지는 반면, 이 아메리칸은 직선이 강조되고 케이스 좌우 축이자 러그를 겸하는 브롱카(brancard, 들것이나 수레의 손잡이를 뜻한다)가 훨씬 두껍고 튼튼하여 남성적인 인상을 준다.

4.14. 프랑세스 (Français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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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의미한다. 탱크의 첫 시계인 노말의 다이얼 비율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여타 탱크 시계와는 달리 금속 브레이슬릿을 기본으로 하며, 러그 끝부분이 살짝 마름모 형태로 좁아진다.

아메리칸(미국 뉴욕) 및 앙글레스(영국 런던)와 함께 까르띠에의 3대 본거지를 상징하는 시계 중 하나이다. 그리고 탱크 시계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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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재출시된 프랑세스를 착용한 라미 라미 말렉(Rami Malek)

4.15. 아 비스 (Á Vi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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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를 뜻한다. 마치 산토스 시계처럼 케이스 위에 네 개의 나사모양이 외부로 돌출되어있다.

4.16. 디방 (Divan,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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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파를 의미한다. 위아래 방향에서 다이얼을 꾹 눌러 양 옆으로 길어진 듯한 모습이다. 일반적인 탱크 시계의 비율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니터를 통해 이 시계를 보는 순간, 사진 혹은 모니터의 문제로 화면이 찌그러진 것이라 착각하곤 한다.

4.17. 앙글레스 (Anglais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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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England에 해당하는, 영국이라는 뜻이다. 약 10년 만에 탱크 내에서 오랜만에 출시된 신제품이었다. 브롱카카 크라운 앞면과 위아래를 덮어 실질적으로 크라운가드 역할을 겸한다.

4.18. 솔로 (Solo, 2005-2021)와 머스트 (Must, 2022-현재)

상단의 역사 문단 해당항목 참조

5. 여담


수많은 배우, 예술가, 운동선수, 왕족, 영부인 등 셀러브리티들이 사랑한 시계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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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앤디 워홀은 “I don't wear a Tank watch to tell the time. Actually I never even wind it. I wear a Tank because it is the watch to wear”(나는 시간을 확인하려 탱크시계를 차는 게 아니다. 사실 태엽을 감지도 않는다. 그저 탱크가 차야 할 시계이기 때문에 차는 것이다.)라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탱크에 진심이었다. 기성예술을 벗어나 파격을 추구한 팝 아트의 대표가 지극히 클래식한 탱크를 사랑한 점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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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 알리는 일상에서는 물론이고, 시합을 치르러 링에 오르기 직전 시계를 풀어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워밍업을 하며 탱크를 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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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케네디
이 시계는 1962년경 생산된 옐로골드 탱크 워치이며 재클린이 여동생인 리(Lee)의 남편이자 폴란드 왕족 스타니스와프 알브레히트 라지비우(Prince Stanisław Albrecht Radziwiłł, 흔히 영어식으로 라지윌이라 불린다.)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다. 재클린은 훗날 남편인 캐네디 사망 후 리의 내연남인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을 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내심 라지윌과 이혼 후 오나시스와 결혼을 원했던 리로서는 언니에게 내연남을 뺏긴 셈이 되어 자매 사이에 큰 앙금을 남기게 된다. 여동생 리의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남편 라지윌은 언니에게 시계를 선물하고, 본인과 썸타던 내연남은 언니랑 결혼을 해버렸으니 이 시계는 재클린 사후 라지윌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원이 넘는 금액으로 뜬금없이 킴 카다시안에게 낙찰되었다.

[1] 참고로 7시 방향의 VII 또는 10시 방향의 X의 한 획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CARTIER" 라는 시크릿 레터가 숨어있다.[2] cabochon, 둥그스름하게 깎은 장식용 보석[3] 참고로 1970-80년대 머스트 드 탱크 시계는 쿼츠와 수동 무브먼트로 두 버전이 함께 판매되었는데, 오늘날 쿼츠시계의 중고가가 조금 더 높게 형성돼있다.[4] 먼 훗날 1989년부터 2012년까지 까르띠에는 이 삼형제가 메종을 운영한 세 지역의 이름을 딴 탱크 프랑세즈(프랑스), 탱크 앙글레즈(영국), 탱크 아메리칸(미국) 시계를 출시하였으며, 이 셋을 '탱크 트리니티라' 총칭하기도 한다. 각 시계별 자세한 내용은 아래 탱크 시계의 종류 문단에서 해당항목 참조[5] 실제로 산토스가 20세기 초반 이후 거의 명맥이 끊겨 잊혀졌다가 1970년대 산토스 까레로 부활한 것과 달리, 탱크는 꾸준히 출시되어 발전해왔다.[6] 지금도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그 르노 맞다[7] 프랑스어기 때문에 '리슈몽'으로 기재하는 게 더 원음에 가깝지만, 국내 법인명을 리치몬트로 등록하였으니 본 문서에서도 이 표기대로 기재하였다.[8] 양산형이 아닌, 프로토타입 발명시점을 기준으로는 1927년 미국이 최초이다.[9] 이렇게 금도금한 은을 버메일(Vermeil)이라 한다[10] 일부 시계에서 전면 케이스를 금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후면은 스틸이다[11] 그래서 소재로만 따진다면 현행 솔로나 머스트보다, 오히려 은으로 만든 빈티지 중고 머스트 드 탱크의 가치가 높다고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로고나 작은 디테일을 빼면 별 차이가 없기도 하고, 특히 쿼츠시계의 경우 고장없이 튼튼한데 무브먼트 가치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12] 단, 솔로도 금시계가 있기는 하나, 백케이스는 여전히 스틸로 만들어졌다.[13]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처음에는 제네시스가 단일 모델 이름이었지만, 나중에 G80을 시작으로 여러 G(V)XX의 파생 모델들이 등장한 후 라인업 이름으로 올라간 것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