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국 작가 로버트 그레이브스(1895~1985)가 쓴 역사 기반 소설. 원제는 《나 클라우디우스 I, Claudius》로, 한국에는 후속작인 《신(God) 클라우디우스》까지 묶어서 나왔다. 다만 원작 뒤에 첨부된 세네카의 클라우디우스 비난 개그물과[1] 네로 이후 뒷 이야기를 언급한 작가의 코멘트 부분은 번역판에서 짤렸다(...)최초 발매일자가 1934년이었으며, 이후 1937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76년에는 영국 BBC 에서 TV 시리즈로 제작했는데 이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2]
2. 내용
'만약, 로마 제국의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의 비밀 자서전이 남아있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그 자서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서 절름발이에 말더듬이였던 클라우디우스가 권력 싸움의 밖에서 로마의 제정을 지켜보며 최후에 칼리굴라의 사망 이후 황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후속작에서 황제가 된 뒤, 공화정을 부활시키고자 하지만 그 자신이 권력의 노예가 되며 비참한 죽음을 예상하면서도[3] 결국 클라우디우스는 아들인 브리타니쿠스에게 마지막 희망을 가지며, 일부러 폭군의 자질을 가진 네로를 후계자로 삼고, 브리타니쿠스를 브리타니아로 비밀리에 망명시킨 후에
하지만 브리타니쿠스도 공화정의 부활은 회의적이었고(...) 자신이 직접 네로와 대결한다고 하며 망명을 거부하자, 자신과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예상하며 쓸쓸히 자서전을 마무리 짓게 된다. 뒷부분은 클라우디우스의 죽음을 다룬 수에토니우스, 타키투스, 디오 카시우스 등 로마인들의 기록과 저승에서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옮겼다.
사실 이 시대에 대한 이전 자료로서 시오노 나나미의 책만 읽다 이 책을 읽으면 정신적인 충격이 매우 클 것이다.[4] 아우구스투스는 이런 찌질이가 로마 내전에서 어떻게 승리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누라 치마폭에서 헤메는 찌질이로, 리비아 드루실라는 자기 장남 티베리우스를 제위에 앉히고 수렴청정하겠다는 신념 하에 티베리우스의 경쟁자들을 모조리 말살하는 희대의 악녀이지만[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력은 굉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에 전3권으로 번역되어 나온 원작 소설에서 초반부인 1권은 리비아가 거의 하드캐리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리비아가 만악의 원흉. 공화정에 질색한 리비아가 온갖 권모술수로 제정을 만들었지만, 그 때문에 칼리굴라 같은 황제가 등극돼서...망했어요. 리비아 본인도 결국엔 죽을 때가 되니 죽어서 자기 죄악 때문에 고통받을까봐 자신을 여신으로 만들어달라고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에게 사정한다. 하지만 칼리굴라에게는 무시당하며 그나마 항상 갈굼하던(심지어 정치적인 이유로 클라우디우스의 첫사랑을 리비아가 독살하기까지 했는데도) 클라우디우스만 그녀에게 약속을 지키겠다고 한다, 티베리우스는 새디스트에 의심병에 가득찬 스탈린같은 폭군으로, 칼리굴라는 어릴때부터 미치광이인 사이코패스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클라우디우스 본인도 황후 메살리나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그녀의 거짓말에 완벽히 속아넘어가는 과오를 보이며, 클라우디우스의 친구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는 무신론자로 보일 정도의 현실주의자였으나 유대 왕이라는 권력을 쥐자 점차 자신이 메시아라는 망상에 스스로 빠지게 되어 파멸한다. 보통 사람들도 권력의 아름다움에 반해 인생을 망치고 그 비참함을 극단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권력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그 와중에서 공화정에 마지막 희망을 가지면서 점차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지식인의 모습을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로마 제정 시대를 다룬 작품으로서는 미국인 소설가 고어 비달의 《줄리안》[6] 및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과 더불어 매우 훌륭하게 평가되며, 작품 자체도 타임지에서 선정한 100대 작품으로 꼽힐 만큼 평판도 매우 좋다. 그레이브스의 뛰어난 캐릭터 묘사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 한국에서는 꽤 늦게 번역되었고 시오노 나나미조차도 언급이 없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제작된 픽션이며, 정사로 받아들이면 난감하다. 그레이브스는 이 작품을 쓸때 1권의 경우는 수에토니우스의 야사를 많이 참조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7][8]. 그런 이유로 2권에서는 기타 다른 1차 사료들을 다채롭게 사용하여 이야기를 기름지게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제가 절대권력으로 인한 타락과 공포이니만큼 제정의 좋은 면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 또 화자가 권력싸움에 휘말리면 다 죽어나갈 위치에 있는 인물이니...
[1] 원제는 《아포콜로킨토시스 디비 클라우디(Apocolocyntosis divi Claudii, 신성한 호박이 된 클라우디우스)》. 그러니까 저승에 간 클라우디우스가 조상들에게 비난받고 아우구스투스의 노예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2007년에 김천운 역으로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세네카 인생론>에 실려 있다.[2] 주인공 클라우디우스로 나온 배우 데릭 제이코비는(이안 맥켈런처럼 커밍아웃한 게이이기도 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공화정파 원로원 의원 그라쿠스로 출연한다. 패트릭 스튜어트가 세야누스로, 존 허트가 칼리굴라로, 존 리스데이비스가 마크로로 나왔다.[3] 초반에 예언가 노파로부터 율리우스 가문 황제들의 운명에 대한 시를 읽게 된다. 거기서 자신의 죽음과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멸망한다는 걸 알게 된다.[4] 하지만 정작 시오노 여사도 클라우디우스의 통치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보다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하긴 했다.[5] 이 소설에서는 수에토니우스의 야사대로 아우구스투스를 독묻은 무화과로 독살한 것은 물론이고, 자기 친자식인 대 드루수스도 공화정 복귀 신념을 보이자 낙마사고를 치료해준다고 의사를 보내 독살하고,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와 마르켈루스도 리비아가 독살한 것으로 암시하며, 대 율리아의 문란한 사생활도 리비아가 마약에 중독시켜 벌어진 일이고, 아그리파 포스투무스도 멀쩡한 정상인인데 정신병자로 조작해 죽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6] 으레 '배교자 율리아누스'로 불리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이기도 했던 율리아누스 황제.[7] 애시당초 작품 컨셉이 로마 제국의 숨겨진 이야기이니 당연하며 그레이브스는 집필 전에 수에토니우스의 저서를 번역했다. 2009년에 한국의 '다른세상' 출판사에서 《열두 명의 카이사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은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영역본을 중역한 것. 역자는 조윤정.[8] 참고로 집필 동기가 어느날 밤 꿈속에서 클라우디우스가 나타나서 자신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일단 클라우디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덕분에 로마의 황제중 4명(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을 "내부인"의 시각으로 그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