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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깃발. 인공기와 베트콩의 단기를 참조해서 만든 깃발이다.
南民戰事件
1. 개요
1979년 10월 9일에 내무부가 발표한 공안사건. 당시 구자춘 내무부 장관이 지하당 성격의 예비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南朝鮮民族解放戰線)을 적발하였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정부는 이들 일당 74명 중 20명을 반국가단체 조직 및 간첩혐의로 검거했으며, 54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하지만 이는 고문이 자행되어 신빙성 논란이 있다.# 또한 훗날 이 단체의 성격 등에 대해서 당사자들은 반대되는 진술을 하였다.2004년 의문사위는 남민전이 당시 검찰과 경찰의 주장처럼 북한 정권과 직접 연계하고 그들로부터 지령을 받아 행동했는지에 대해서 과거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통해서도 확증된 바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생전의 이재문도 검찰의 그 같은 공소사실을 시종일관 부인했고, 다른 남민전 관련자들도 오늘날까지 동일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직접 연계되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해당 조직이 극좌 혁명적 사회주의, 좌익 민족주의적 지향성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김남주(시인) 등은 폭력 혁명을 긍정하고 민중 혁명이 일어나면 "민족반동세력" 200만명을 죽여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는 증언이 있으며[1], 민투위 강도 사건 등 실제로 강도, 협박, 상해 등 폭력을 행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폭력 혁명을 목적으로 준비했다기에는 허술하다. 예비군때 m1소총 하나 훔치고 그와 맞지도 않는 칼빈 탄 몇개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갖고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안재구 등 최소한 일부 조직원들이 종북 성향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며, 실제로 안재구의 경우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난 후에 1994년 구국전위 간첩단 사건에 또다시 연루되었고, 이후 2011년에도 북한 대남공작조직에 전달할 대북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이적행위를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수사를 받았으며, 2017년 최종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2006년 3월 13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남민전 관련자 중 최석진, 박석률, 김남주 등 29명이 반유신활동을 했다는 점을 근거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했다.그러나 이 사건은 북한과의 연관은 없을지언정 구성원들이 극좌, 공산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거의 없으며 살인미수, 강도 등 폭력 행사까지 한 사건이기 때문에 2006년 당시에도 이들의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을 두고 큰 논란이 있었다.
2. 관련자
-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대표. 이중에서 이재문이 1976년 2월 29일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 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장에 취임했다.
- 이문희
- 이재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안재구: 장손이 KBO 리그 NC 다이노스 소속 투수인 안인산이다. 인산이란 이름도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그리고, 수학자라 구속되었을 당시에 세계 수학자들이 항의를 했다고 한다.
- 차성환
- 이수일
- 김남주
- 홍세화[2]
- 최석진(崔錫鎭): 법륜 스님의 친형이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졸업 후 당시 한국경제개발협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