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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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행정구역 |
노이쾰른 Neukölln | |||||
행정 | |||||
국가 | 독일 | ||||
주 | 베를린 | ||||
인문환경 | |||||
면적 | 44.93km² | ||||
인구 | 330,017명(2023년 12월) | ||||
인구밀도 | 7,345/km² | ||||
정치 | |||||
구청장 | | 마틴 히켈 | |||
구의회 (55석) [1] | | 15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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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석 | ||||
| 9석 | ||||
| 4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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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베를린에 중남부에 위치한 자치구.2. 구역(Ortsteil)
2.1. 노이쾰른 (Neukölln)
단순히 "노이쾰른"이라고 하면 대개 이곳을 가리킨다. 인접한 크로이츠베르크와 같은 생활권으로, 대안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트렌디한 지역. 중심가는 헤르만플라츠역과 노이쾰른역.2.1.1. 역사
이 지역의 이름은 역사적 지명 쾰른(Kölln)[2]에서 유래한다. 13세기에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막 생겨날 당시에 슈프레강 동쪽의 알트베를린(Alt-Berlin)과 강 가운데에 위치한 섬 피셔인젤(Fischerinsel)에 위치한 쾰른(Kölln), 이렇게 두 지역이 생겼다. 도시가 점차 확장됨에 따라 17세기에 쾰른 남쪽지역[3]을 분리하여 노이쾰른(Neu-Kölln)이라 이름짓고 기존 쾰른은 알트쾰른(Alt-Kölln)으로 부르기 시작한다.반면 현재의 노이쾰른 구역은 14세기부터 릭스도르프(Rixdorf)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릭스도르프와 노이쾰른은 별개의 지역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899년에 릭스도르프 자체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고, 1912년에 릭스도르프라는 이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노이쾰른(Neukölln)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때까지는 여전히 베를린과는 별개의 도시였다. 이후 1920년이 되어서야 베를린의 일부가 된다. 17세기에 생겨난 최초 노이쾰른 지역은 이미 미테 구역의 일부로서 노이쾰른이라 불리고 있지 않지만, 옛 노이쾰른 이름을 본따서 이름을 변경한 옛 릭스도르프 지역만이 현재 노이쾰른이라는 이름을 계승하고 있는 상당히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1.2. 주요 키츠
- 로이터키츠(Reuterkiez): 크로이츠베르크와 인접한 로이터플라츠(Reuterplatz) 주변 지역. 크로이츠쾰른(Kreuzkölln)이라고도 부른다. 쇤라인슈트라세역의 동쪽, 헤르만플라츠역의 북동쪽 지역을 일컫는다. 란트베어 운하(Landwehrkanal)를 따라 늘어서 있는 레스토랑, 카페 등이 인기가 높다. 마이바흐우퍼(Maybachufer)에서 열리는 주말 벼룩시장이 유명하다.
- 쉴러키츠(Schillerkiez): 보딘슈트라세역/라이네슈트라세역의 서쪽, 즉 Schillerpromenade 주변 지역을 일컫는다. 이 지역의 서쪽에 위치한 템펠호퍼 펠트(Tempelhofer Feld)가 시민들에게 개방됨과 함께 인기 주거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 롤베르크지들룽(Rollbergsiedlung): 라이네슈트라세역의 동쪽, 칼 마르크스 슈트라세역의 북서쪽에 위치한 집단 주거지로서 1960년대부터 들어선 서민 주택단지이다.
- 존넨알레(Sonnenallee): 헤르만플라츠역과 존넨알레역 사이를 잇는 도로 존넨알레 주변 지역을 일컫는다. 엄청난 수의 튀르키예인들과 아랍인들이 거리를 채우는 번화가이다.
- 알트-릭스도르프(Alt-Rixdorf): 노이쾰른역 북동쪽, 칼 마르크스 슈트라세역의 남동쪽에 위치한 리하르트플라츠(Richardplatz)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노이쾰른이라 믿을수 없을 만큼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늑한 곳. 18세기 초에 이곳에 정착한 보헤미아 난민들의 주거지(Böhmisch-Rixdorf)로 유명한 유서 깊은 키츠이다.
- 하이데크지들룽(High-Deck-Siedlung): 쾰니셰 하이데역의 남동쪽에 위치한 6천여 세대 대규모 서민주택단지로서, 베를린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인구밀도를 보이는 지역이다. 각 건물의 지상 1층이 전부 연결된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갖고 있다.
2.2. 브리츠 (Britz)
노이쾰른 구역의 남쪽, 부코의 북쪽 지역. 주로 조용한 주택가 위주이다. 중심가는 브리츠 남역 근처이다.지하철 7호선 Parchimer Allee역 근처에는 1920년대 말에 조성된 신도시 후프아이젠지들룽(Hufeisensiedlung)이 있다. 호수를 둘러싸고 집들이 말굽(Hufeisen) 모양으로 늘어서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어있다. 2008년부터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2.3. 부코 (Buckow)
브리츠의 남쪽, 그로피우스슈타트의 동쪽과 서쪽에 나뉘어 있는 지역.2.4. 루도 (Rudow)
그로피우스슈타트의 남동쪽. 루도역 근처 지역. 비교적 조용한 주택가 지역.2.5. 그로피우스슈타트(Gropiusstadt)
브리츠의 남쪽, 루도의 북쪽 지역. 중심가는 요하니스탈러 쇼세역이며, 그 외에도 립시츠알레역과 부츠키알레역이 구역 내에 위치해있다.이 지역은 2차대전 이후 서베를린 정부에서 전후 복구를 위해 기획한 계획도시이며, 계획은 발터 그로피우스라는 이름의 건축가가 맡았다. 그는 나치 정부와의 갈등으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던 건축가였으나,[4] 고국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말에 기쁘게 독일로 날아가 새 개발계획을 담당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대부분의 아파트를 4층 이하의 저층 아파트로 구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61년에 동독 정부에서 기습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세우자 계획이 크게 틀어지게 된다. 배후지인 브란덴부르크로의 왕래가 차단되면서 기존 계획으로는 더 이상 서베를린의 주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 명확했고, 결국 이 지역에 세워진 아파트들은 대부분 10층 내외의 고층 아파트로 재설계되어야만 했다.
당연히 발터 그로피우스는 이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계획 변경은 불가피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반론하긴 했으나 계획 자체를 포기하고 떠나지는 않았고, 결국 이 계획도시는 서유럽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고밀도의 계획도시로 완성된다. 설계자 본인은 불만이 있었으나, 어쨌든 서베를린 시 정부는 성공적으로 완성된 계획도시 개발에서의 그의 막대한 공로를 높이 사서 이곳의 이름을 그로피우스슈타트라고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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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이런 역사 때문에 이곳의 인구밀도는 매우 높아서, 강남구와 거의 비슷하다. 심지어 2020년대의 주거난 때문에 베를린 시 정부에서 지금도 아파트를 이곳의 빈 땅 여기저기에 짓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인구밀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1] 출처[2] 독일 서부의 도시 쾰른(Köln)과 발음은 같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지명이다. l이 두개 있다.[3] 현재 메르키셰 박물관역 근처[4] 유대인은 아니었고, 건축 사상이 나치의 지향점과 맞지 않아서 탄압을 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