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공략 후궁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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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50A3E5><colbgcolor=#000> 연희공략 등장인물 뉴호록 침벽 | ||
이름 | 뉴호록 침벽 (鈕祜禄 沉璧)[1] | |
배우 | 장가예(张嘉倪)[2] | |
민족 | 만주족[3] | |
가족관계 | 고모할머니: 효소인황후[4] 아버지: 뉴호록 애필달[5] 작은아버지: 뉴호록 눌친[6] 남편: 건륭제 아들: 아하[7] | |
거주지 | 저수궁 여경헌[8][9] | |
<rowcolor=#50A3E5> 품계 | 5품 | 4품 |
상(常)귀인 → | 순(順)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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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희공략의 등장인물. 건륭제의 후궁인 용비 화탁씨, 혹은 순귀인 뉴호록씨를 모티브로 하는 인물이다.2. 작중 행적
58회에서 등장하며 입궁하자마자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위영락을 자금성으로 돌아오게 한 장본인. 위영락이 태후와 함께 몇 년 동안 원명원에 거주하던 도중에 곽란부의 반란을 평정한 직후에 입궁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태후와 같은 뉴호록씨의 여인이었다.[10] 황제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면서 그녀에게 침벽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후궁들과 황후의 계략에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위영락에 의해 구제된다.[11] 그 후 영락의 침궁으로 몰래 숨어들어오는 등 영락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명옥이 죽고난 후 명옥이 자살했던 가위로 스스로를 찔러 위영락을 곤경에 처하게 한다. 그리고 위영락을 궁지로 몰고 부찰 부항과 도망치게 한 뒤 현장에서 잡으려 했던 것. 그러나 위영락은 눈치채서 역으로 함정을 파서 위기를 모면한다. 건륭제 역시 순빈의 계략을 눈치 챘지만 앞에선 그냥 지켜보는 척을 하고, 뒤로는 해란찰을 시켜 침벽이 입궁하게 된 경위를 캐게 했다.
참고로 침벽은 부찰 부항과도 인연이 있었는데 부찰 부항이 절벽에서 떨어지려던 순빈을 구한 적이 있다. 알고보니 본인의 아이를 따라 자결을 하려 한 걸 부찰 부항이 살렸던 것이며 이 때문에 그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 것. 그 때문에 위영락과 엮어 부찰 부항을 제거하려 하였고 더불어 원하지 않던 결혼을 해야했던 상대인 황제에게도 타격을 가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락의 계략으로 도피 현장에는 영락이 아닌 소전자가 발견되었고, 영락은 당당히 부하들을 데리고 행차하였다. 또한 부항도 자기가 영락과 도피할 까닭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도피 현장에 부러 마차를 세워 놓은 다음 떳떳히 입궁하였다. 계획이 어그러진 뒤 어떻게든 영락과 부항을 모함하려던 침벽에게 황제는 해란찰을 시켜 찾은 침벽의 아들 아하의 장난감 악기들을 내보였고, 그렇게 모든 사실이 밝혀지자 침벽은 황제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연금된다. 그리고 위영락과 대화에서 밝히길 황제를 죽이려 했던 건 본인을 자금성으로 보낸 가족들을 황제 손을 빌어 죽이기 위한 것이였다. 이후 외전에서 복강안의 언급을 보면 연금된 후 머잖아 자살했다고 한다. 영락의 독백으로 연금된 이상 굶어죽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고, 실제로 침벽이 영락을 굶겨죽이려고 했으니 자신의 업보를 그대로 되돌려 받았다.
3. 성격
본인을 정말 순수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의 달인. 이 연극에 말려들어서 인생을 망치고, 망칠 뻔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실상은 연희공략에서 제일가는 또라이 중 하나다. 죽은 자기 아들 아하를 따라 죽으려다가 부찰 부항이 구해준 덕에 실패하게 되면서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다 없애려고 했었다.분명 침벽의 뒷사정은 딱하긴 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피해 정인과 도피하여 아들까지 낳았지만 그 남편의 배신으로 붙잡혀와 자금성에 끌려오다시피 했고, 친정에 보내진 아들은 엄마를 찾다가 죽었다. 이럴 바엔 아들을 따라가겠다고 죽으려다 지나가던 부항에게 구해진 탓에 의미없는 목숨만 연장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침벽 입장에선 황제나 친정 오라비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 당연했을 것이다.[12] 하지만 한때 부항과 연인 사이였으나 지금은 깔끔히 정리하고 친구 사이로 남게 된 영락이나, 영락의 오랜 친구 겸 시종인 명옥은 침벽의 복수와는 상관이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부항도 따지고 보면 뒷사정을 모른 채 순수한 선의로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려던 것뿐이었다.
영락과는 똑같이 연기와 계락에 능하고 복수를 위해 입궁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영락은 침벽과는 달리 절대 무고한 사람이나 약자에게는 손을 대지 않고 은혜도 똑같이 잊지 않고 갚는다. 영락이 대외적으로 간교하다는 평을 듣고 스스르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으며 그런 면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영락의 계략에 걸려든 이들은 대부분 원래부터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악당이었는데 어쩌다 영락과 그 친지들을 건드려서 자멸한 것에 가깝다. 반면 침벽이 복수를 다짐하게 된 이유는 나름대로 동정이 가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이들까지 상처입히고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준 영락에게도 배은망덕하게 굴었다. 때문에 침벽이 복수를 위해 꾸민 연극은 결코 옹호할 수 없는 악행이 되었고, 결국 그 악행들에 영락의 친구 명옥이 휘말려 죽자 영락은 침벽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그녀를 몰락시켰다.
그런데 이마저도 위구르인이었다는 설정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원래는 계황후가 자신을 경계하자 그녀를 쳐낼 목적으로 계황후가 있는 승건궁으로 가서는 고의적으로 불임이 되는 약까지 복용하였다.
4. 기타
위의 사진에서처럼 청나라 여인의 복식이 아닌 위구르인 복장을 하고 있는 침벽의 원래 설정은 용비 화탁씨이다. 원래 설정되었던 휘도 사향을 뜻하는 이파르한이니 대놓고 용비라고 광고한 셈. 촬영 당시에도 위구르 복장을 하고 나왔다. 광전총국에서 가뜩이나 중국이 요새 위구르와 사이가 안 좋은데 악역으로 그리면 안 된다고 하여 위구르에 관한 것들을 모조리 편집되었고 일부 대사가 바뀌었다.[13] 시놉시스격인 소설에서도 순빈이 아니라 용비로 나온다. 따라서 침벽에 관한 분량이 대거 설정구멍이 터진 것도 다 이 때문이다.[14] 그리하여 침벽은 실존인물 용비 화탁씨와 순귀인 뉴호록씨를 섞어서 새로이 만든 캐릭터가 된 것이다.침벽이 위구르의 공주였다는 설정 당시, 승진이 경이로운 수준으로 빨랐다. 갓 입궁한 후궁이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품계는 귀인인데 침벽은 고작 3개월 만에 귀인에서 용빈을 거쳐 용비로 봉해졌다. 위영락이 입궁한지 3개월 만에 귀인에서 빈으로 1단계 승진을 한 걸 보면 진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침벽이 입궐한 시기는 27세다. 당시 여인들이 15세만 되어도 성년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꽤 늦은 나이에 결혼한 셈. 그런데 위구르인이었다는 설정에 의하면 위구르에 정인이 따로 있었는데 그의 신분이 미천하여 공주와 결혼할 수 없었고, 둘은 몰래 비밀리에 도망쳐서 아이까지 낳아 키웠었다. 그런데 결국 그 정인이 재물과 지위에 눈이 멀어서 침벽이 있는 곳을 발설하였고, 결국 오라버니들에게 붙잡힌 침벽만 궁으로 돌아와서 공물로 바쳐졌던 것. 그리고 그 정인은 침벽을 배신한 대가로 침벽의 오라버니들에게 죽는 업보를 겪게 되었다. 이 탓에 침벽은 자신을 배신한 첫 남편을 남편 취급도 하지 않고, 여경현에 연금되었을 때 "팔려다니는 공물 신세에 남편이랄 게 있을 리가 없다."라고 자조했다.
5. 실제 역사의 용비 화탁씨와 순귀인 뉴호록씨
- 용비 화탁씨는 위구르족으로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향비로 잘 알려져 있다. 효의순황후 서거 후 내명부를 관리한건 유비 가리엽특씨이며 유비 사망 후에는 영귀비 파림씨가 내명부를 관리했다.
- 순귀인 뉴호록씨는 총독 애필달의 딸로 만주족 팔대 성씨와 총독이라는 아버지의 지위 덕에 순탄하게 순비까지 진급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15] 순빈, 종국에는 순귀인까지 강등되어 죽을 때까지 순귀인으로 죽었다.
[1] 황제가 직접 하사한 이름이다. 참고로 원래 설정의 이름은 곽란 이말이한(霍兰 伊帕尔汗)이다. 이말이한은 사향을 뜻하는 위구르어 '이파르한'의 음역이다. 머리띠 말(帕) 자는 현대 보통화에서 '파'로 읽히기 때문.[2] 부찰 황후역의 친란과는 황제의 딸 신판의 작가인 경요가 집필한 드라마 '우견일렴유몽'에서 주인공 자매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이 배우는 우정의 작품을 여러 번 찍다가 이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3] 원래 설정은 위구르족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만주족으로 설정이 변경된 이유는 후술.[4] 강희제의 황후다.[5] 원래 설정의 아버지는 '곽란 화찰맥'이다.[6] 작중에서 화친왕 홍주에 의해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는 설정의 대신이다. 눌친이 홍주에게 맞은 것 또한 실제 역사에서 있던 일이었다.[7] 황제에게 시집을 오기 전에 가진 자식으로 아버지(침벽의 첫 남편)가 외숙부들(침벽의 오라비들)에게 침벽의 위치를 밀고하자, 아하는 외할아버지 애필달에게 끌려가고 침벽은 아하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도망쳤다가 짐승을 잡는 덫에 걸려 죽었고, 침벽의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한 시녀가 침벽에게 아하의 죽음을 알렸다 한다.[8] 원래 이곳은 태후의 딸인 화안공주의 처소로 만든 곳이었다. 그런데 화안공주가 여경헌을 짓는 도중에 요절하는 바람에 공사는 중단되고, 미완의 건물이 되었다. 그런데 침벽이 자금성에 오면서 황제가 다시 공사를 재개시킨 것이다.[9] 원래의 용비 설정에는 실제 역사처럼 보월루에서 거주했다.[10] 드라마판에서는 이게 부각이 안 되는데 태후가 뉴호록씨의 방계 혈통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모종의 사유로 급히 설정 변경을 해야 했기에 그랬던 거다.[11] 바늘로 입술에 작은 구멍을 내어, 입가에 점이 있었던 태후의 죽은 딸인 화안공주의 환생인 것처럼 꾸몄다.[12] 침벽이 일으킨 소동의 피해자인 영락도 침벽의 진실을 듣자, 착잡함과 동정이 섞인 눈빛을 보였다.[13] 원래 시놉시스에 따르면 극 중 침벽은 건륭제에게 앙심을 품고 마지막까지 반항을 하는 설정이었는데 요즘 중국 당국이 가장 예민해하는 위구르 독립운동을 연상시킨다고 판단해서 이러한 설정이 잘려나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경쟁작이었던 여의전의 한향견은 연희공략의 침벽과 달리 마지막에 건륭제에게 순종하는 걸로 그려져서 덕분에 잘만 나왔다.[14] 침벽이 청나라 개국공신 가문 출신인 만주족 여성인데도 화분혜를 잘 못신는 것, 그리고 소가빈이 아무런 장면 설명없이 그저 침벽에 의해 제거가 됐다고 넘어간 것 등등이 다 이러한 제재 때문이다. 나중에 침벽의 실상이 다 드러나고 나서 처소에서 유폐되어있을 때도 실성한 표정을 지으면서 위구르 전통춤을 추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원래 침벽이 용비 화탁씨라는 설정이었을 때 위구르 전통춤을 자주 추는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15] 순귀인이 건륭제의 황손을 회임했다가 유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대 학자들은 해당 기록이 순귀인이 거짓 회임을 하였으며 그 사실이 건륭제에게 알려졌다는 것을 정설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