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1:32:52

다아시 레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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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h
1991
Siamese Dream
1993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1995
Adore
1998
파일:The_smashing_pumpkins_machina_cover.jpg
파일:Machina_i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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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e_Smashing_Pumpkins_-_Oceania_cover.jpg
Machina/The Machines of God
2000
Machina II/The Friends & Enemies of Modern Music
2000
Zeitgeist
2007
Oceania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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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아시 레츠키
D'arcy Wretzky
파일:e9896ec6974a34dd3b6e27fec5b062f0.jpg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다아시 엘리자베스 레츠키-브라운
D'arcy Elizabeth Wretzky-Brown[1]
출생 1968년 5월 1일 ([age(1968-05-01)]세)
미국 미시간 주 사우스 헤븐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이전 소속 스매싱 펌킨스, 캐서린
배우자 캐리 브라운 (1993년 결혼 ~ 1999년 이혼)
신체 173cm
활동 기간 1988년 - 1999년
사용 악기 베이스

1. 개요2. 생애3. 어린 시절
3.1. 스매싱 펌킨스 활동3.2. 1999년, 마지막 활동3.3. 탈퇴 이후
4. 여담

[Clearfix]

1. 개요

다아시 레츠키는 락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전 베이시스트이며, 밴드 내의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 캐서린이라는 밴드에서도 활동 하였다.

2. 생애

3. 어린 시절

다아시는 미시간 주 사우스 헤븐에서 태어났으며, 다아시의 아버지인 제리 레츠키는 배관공이었고, 어머니인 비키 앤더슨은 음악가였다. 다아시의 어머니는 다아시와 자매들에게 음악 관련 활동들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 하였다. 크면서 바이올린과 오보에와 같은 악기들을 다뤘고, 합창부에도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체조부도 했다고.[2]
10살 때부터 음악 관련 장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는데, 어렸을 때에는 무대공포증이 심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포스트 펑크 밴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커버 밴드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서 한 밴드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다아시가 프랑스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밴드가 해체된 후였다. 결국 미국으로 돌아와 시카고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 후 스매싱 펌킨스에 합류하게 된다.

3.1. 스매싱 펌킨스 활동

한 클럽에서 콘서트를 마친 다아시는 빌리 코건이 자신이 공연을 했던 밴드에 대해 뒷담화를 까고 있던 것을 우연히 듣게 되고 말다툼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코건에게서 자기 밴드에 가입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한다. 당시 스매싱 펌킨스에는 빌리 코건제임스 이하만 있던 상태였고, 다아시가 가입하고 몇 달 후에 지미 체임벌린이 합류하게 된다.

다아시는 스매싱 펌킨스 활동 동안에 5개의 정규 앨범인 Gish, Siamese Dream,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Adore, 그리고 Machina/The Machines of God에 이름을 올렸는데, 정작 GishSiamese Dream의 베이스 트랙 구간은 빌리 코건이 연주를 했다. 다아시는 백킹 보컬도 가끔 맡았는데 대표적으로 1집의 Daydream, 2집에서는 대다수의 곡들을, 3집에서는 1979, Cupid De Locke, Farewell and Goodnight, Beautiful, Where Boys Fear to Tread와 같은 곡들이 있다. Daughter이라는 곡에서는 빌리 코건과 함께 공동 작곡/작사로 이름을 올렸다.

1995년에는 제임스 이하와 함께 Scratchie Records라는 독립 레이블사를 설립하였고, The Frog와 같은 밴드들을 양성했다.

3.2. 1999년, 마지막 활동

다아시는 이 시기를 행복과 불편함이 왔다갔다 하던 시기라고 언급했고 빌리 코건은 1995년, 3집의 성공 이후 다아시가 마약으로 인해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9년 4월, 9일간의 짧은 The Arising 투어를 마치고 다아시는 밴드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연기 경력을 쌓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스매싱 펌킨스는 Machina/The Machines of God와 Machina II/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의 녹음이 한창이었는데, 다아시의 탈퇴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다아시가 녹음한 베이스 트랙은 얼마되지 못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베이스 트랙들은 코건이 녹음했다고 한다.

3.3. 탈퇴 이후

밴드를 탈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아시는 코카인 소지로 인해 체포되었다. 후에 코건이 인터뷰 하기를, 도움 받길 거절하는 못돼먹은 마약 중독자처럼 굴어서 해고시켰다고…
결국 2000년도에 진행되었던 투어에서 다아시의 빈자리는 의 전 베이시스트였던 멜리사 아우프 데 마우어로 대체되었다.

다아시는 스매싱 펌킨스의 재결합에 응하지 않았고 2009년 7월에는 시카고 라디오 지역 방송에서 전화를 걸어 근황을 전했다. 다시 음악을 할만큼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이고, 잠깐동안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살았다가 미시간 주의 농장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2011년 2월 1일에는 밤에 야생마를 통제하지 못해서 돌아다니게 하고, 야생마가 다른 농부의 농장에 침입해 창고에서 사유 재산과 야채를 훔쳐간 것 때문에 감옥에서 6일을 보냈고, 또 7일에는 감정 통제가 되지 못했는지(…) 미시간 주 사우스 헤븐에서 음주 운전을 해서 또 감옥에 갔다 왔다.

4. 여담

  • 베이스는 독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1] 하이픈 된 Brown이라는 성씨는 다아시가 캐리 브라운이라는 음악가와 결혼하면서 붙인 성씨이다. 이혼 후에도 변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2] 본인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전형적인 톰보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