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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체임벌린 Jimmy Chamberlin | |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 제임스 조셉 체임벌린 James Joseph Chamberlin |
출생 | 1964년 6월 10일 ([age(1964-06-10)]세) |
미국 일리노이 주 졸리엣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소속 | 스매싱 펌킨스, 즈완 |
신체 | 178cm |
활동 기간 | 1988년 - 1996년, 1999년 - 현재 |
사용 악기 | 드럼 |
[Clearfix]
1. 개요
스매싱 펌킨스의 드러머.2. 생애
2.1. 어린 시절
재즈 드러머인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9살 때 부터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주로 재즈 뮤지션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지미 체임벌린에게 큰 영향을 준 재즈 뮤지션들로는 듀크 엘링턴, 버디 리치, 진 크루파 등이 있다.15살이 되던해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여러 로컬 밴드들과 라이브를 하며 프로 드러머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로 데뷔한지 얼마 안돼서 지미 체임벌린의 드럼 연주실력은 동료 뮤지션들로부터 고평가를 받았고 수익도 좋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지미에게 대학에 진학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1994년 스매싱 펌킨스가 성공한 후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을 했을 때 까지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하며 1995년에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헤로인에 더욱 깊게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2.2. 스매싱 펌킨스 활동
지미 체임벌린은 뮤지션인 친구의 소개로 당시 드러머를 찾고있던 스매싱 펌킨스의 멤버들과 알게되었다. 당시 지미는 일시적으로 드러머를 그만두고 맞춤형 주택을 짓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밴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껴서 일을 그만두고 스매싱 펌킨스에 가입하기로 결정한다.훗날 지미 체임벌린은 밴드에 가입할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아발론에서 드럼 머신으로 연주하는 빌리, 제임스, 다아시를 봤어요. 정말 끔찍한 소리였어요! 정말 끔찍했죠. 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곡의 구조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빌리 코건의 목소리가 성공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힘이 넘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 수요일마다 직장에서 차를 몰고 그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게 되었죠. (중략) 풀타임으로 밴드 활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밴드 멤버들과 첫 리허설을 했을 때 빌리 코건은 자신이 작곡한 드럼 라인을 그대로 연주하라고 지시했지만 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제 마음가는 대로 드럼을 연주했죠. 그리고 밴드 멤버들은 곧 제 실력을 인정했습니다.
빌리 코건은 지미 체임벌린을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지미 체임벌린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그는 분홍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채로 멀린 컷을 하고 있었고 노란색 드럼을 가져왔어요. 우리 세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건 안 되겠지, 이 사람은 아니야'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는 곡들의 드럼 파트를 리허설 한 번 만에 모두 외웠고 밴드와 연주할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정말 놀라웠어요. 그건 지미 체임벌린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바로 알 수 있었죠. 그를 밴드의 드러머로 고용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 정도로 지미 체임벌린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어요.
또한, 지미 체임벌린은 밴드에 가입한 직후 Flying V를 메인 기타로 쓰고 있던 빌리 코건에게 자신이 갖고있는 Stratocaster를 주었고 이는 밴드의 사운드를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1년 5월 28일 스매싱 펌킨스는 1집 Gish를 발표한 뒤 월드 투어에 나섰고 월드 투어를 하는 동안 지미 체임벌린은 헤로인을 접하게되고[1] 곧 헤로인에 중독되었다. 훗날 지미 체임벌린은 "당시 나는 락스타가 된 후 무엇이든지 해도 상관없다는 자만심에 빠져있던 상태였고 아무 생각 없이 주위 사람들이 권한 헤로인을 투여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2집 Siamese Dream 작업 당시 빌리 코건은 헤로인에 중독되어 있던 지미 체임벌린이 시카고의 마약 딜러들과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애틀랜타에 위치한 Triclops Sound Studios에서 앨범 녹음을 진행해야만 했고 지미 체임벌린은 헤로인에 취한 채로 손에 피가 날 때 까지 앨범의 드럼 파트를 녹음했다고 한다.
지미 체임벌린의 헤로인 중독은 1995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부터 극심해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스매싱 펌킨스의 3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월드 투어 도중인 1996년 세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과 같이 헤로인을 투여하다 멜보인이 헤로인 과다 투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지미 체임벌린은 멜보인이 정신을 잃은 것을 발견하고 그의 정신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지미 체임벌린은 마약 소지죄로 체포되었고 빌리 코건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밴드에서 해고했다.
이후 지미 체임벌린은 약물중독 재활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성공적으로 헤로인 중독을 치료하였으며 1999년 밴드에 복귀하여 2000년 12월에 밴드가 해체될 때 까지 스매싱 펌킨스의 드러머로서 활동하였다.
스매싱 펌킨스가 해체된 후 지미 체임벌린은 빌리 코건의 권유로 그의 새 프로젝트 즈완에 참여하였고 2007년 재결성한 스매싱 펌킨스에도 참여했지만 2009년 탈퇴하였다.
2015년 여름, 스매싱 펌킨스와 마릴린 맨슨의 합동 투어에서 지미 체임벌린이 등장하여 스매싱 펌킨스로의 복귀 사실을 알렸다.
2018년 2월에 빌리 코건은 다아시 레츠키를 제외한 스매싱 펌킨스의 원년 멤버인 제임스 이하, 지미 체임벌린과의 재결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3. 드럼 연주 실력
헤비한 속주 드러밍도 소화해 내면서 끊어치는 펑키한 그루브, 엘빈 존스를 연상케하는 재즈적인 필링, 사이키델릭 블루스에서의 몽환적이고 느릿느릿한 박자까지 여러가지 다채로운 성격의 리듬을 모두 소화해낼수 있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드러머로 꼽힌다.특히 Tonight, Tonight 같은 심포닉 구성의 곡에서도 적절하게 빛을 발하는 그의 센스는 최고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