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9:12:11

단결 혹은 죽음

1. 개요2. 배경3. 결성4. 점점 격해지는 위세5. 세계대전과 파멸6. 비슷한 단체?

1. 개요

세르비아어: Уједињење или смрт(우예디네네 일리 스므르트)

세르비아 왕국의 장교들이 1909년에 만든 비밀결사 단체로 흔히 흑수단(黑手團)이나 검은 손(Црна рука, 츠르나 루카)으로 알려졌다.

2. 배경

이들의 전신은 세르비아의 2대 국왕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암살을 목적으로 한 단체였다.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는 친오스트리아 성향이었기 때문에 이 단체는 반오스트리아 성향이었다. 물론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에 선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중립이었다. 대다수 세르비아 국민들의 성향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친오스트리아에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1901년에 최초의 암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고 1903년에 두번째 시도에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알렉산다르와 왕비의 암살에 성공했다. 이때 시체 처리 방법이 잔인한데 총에 맞아 죽은 국왕 부부의 시체를 칼로 토막내고 내장을 끄집어낸 뒤 왕궁 밖 비료 더미로 던져 버렸다.

알렉산다르 암살 후에는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에서 세르비아 왕을 추대하고 점차 과격한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단체로 바뀌었다. 그래서 세르비아 왕실이 뒤로 이 단체를 지원했다는 카더라가 있었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3. 결성

드라구틴 디미트리예비치(Драгутин Димитријевић, 1876~1917), 코드네임인 '아피스(Апис)'로 더 자주 불렸던 이 장교는 1903년 국왕 알렉산다르 1세 암살에도 참여하였으며[1] 이후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 집단의 우상으로 떠받들리며 일개 대위~소령 주제에 세르비아 군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08년 세르비아가 노리고 있던 보스니아오스트리아-헝가리가 병합하는 걸 세르비아 급진당 정권이 무력하게 이를 보고 있자 분노한 아피스는 추종자들을 모아 베오그라드의 한 아파트에서 '단결 혹은 죽음', 통칭 '검은 손'을 창설했다.

4. 점점 격해지는 위세

검은 손의 목적은 급진당 정권 타도와 세르비아인 거주 지역을 모두 세르비아로 편입하는 대세르비아주의의 실현으로 파시즘 정당의 원형을 띄었다. 검은 손은 무수한 암살테러를 저지르고 다녔으며 세르비아의 극우 민족주의 여론을 등에 업고 단 7명으로 시작했지만 2년 만에 2500명으로 성장했는데 발칸 전쟁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성장해 조직원이 10~15만 명에 달한다는 소문마저 나돌게 되었다.

이후 세르비아 군부의 비호 속에 아피스가 세르비아군 정보부장 자리에 오르면서 검은 손의 위상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세르비아 국경경비대는 세르비아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사실상 검은 손의 사조직으로 전락했으며 총리인 니콜라 파시치(Никола Пашић)조차 검은 손과 아피스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점점 위협적으로 커져나가는 검은 손과 세르비아 군부의 위세에 세르비아 정부는 우선권 법령을 발표해 문민통제를 시도했지만 이는 역효과였다. 세르비아 군부와 검은 손은 극렬히 반발해 1914년 5월 경 아피스가 주도하는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러시아와 프랑스가 개입하여 아피스를 저지했다. 이 시점에 아피스의 계급은 겨우 중령에 불과했는데 일개 중령이 정부를 전복하려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데 세르비아 정부와 총리가 막을 수 없었다.

5. 세계대전과 파멸

쿠데타가 무위로 돌아간 지 1달 후 보스니아의 젊은 보스니아라는 단체와 연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사라예보 사건)을 지원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최후통첩을 통해 황태자 암살 배후인 검은 손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세르비아 정부는 여기에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대응해서 당장 잡혀서 처벌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전시상황에서 수장인 아피스는 대령까지 진급하면서 암살 이후에도 오히려 승승장구하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르비아는 2년 만에 전 국토가 동맹국에 점령당하고 정부와 왕실은 그리스 왕국 코르푸섬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망명정부를 이끌던 왕태자이자 섭정 알렉산다르 1세가 아피스와 갈등을 빚자 검은 손이 왕실까지 위협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던 알렉산다르의 명에 의해 1916년 12월 수장인 아피스와 주요 지도부가 반역 혐의로 체포되었고 1917년 5월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아피스를 포함한 수뇌부 9명이 처형되고 나머지는 감옥에 갇히면서 완전히 몰락했지만 이후 세르비아 왕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 되어도 왕실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검은 손과 연관된 것 때문에 평화협상에서 푸대접을 받았고 전쟁배상금도 일절 받지 못했다.

6. 비슷한 단체?

검은 손에 반대한 또 다른 세르비아군 내부 비밀 조직인 하얀 손이라는 단체도 있었는데 하는 짓은 비슷했다. 두 조직 모두 세르비아 왕실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하얀 손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르비아 왕국의 후신인 유고슬라비아 왕정이 폐지되면서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 의해 해체되었다.

이탈리아 마피아도 초창기 범죄 행위, 갈취 행위를 하는 걸 검은 손으로 불렀는데 이를 한역해서 지금도 중국어로는 마피아를 흑수당으로 부른다.


[1] 국왕 암살과는 별개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국왕 알렉산다르의 행동거지가 워낙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세르비아 국민들 사이에선 암살당해도 싸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