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38><colcolor=#fff> 더글라스 드라이스데일 Douglas Drysdale DSO, OB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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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더글러스 번스 드라이스데일 Douglas Burns Drysdale | |
출생 | 1916년 10월 2일 |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런던 햄프스테드 | ||
사망 | 1990년 6월 22일 (향년 73세) | |
영국 노퍽주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군인 | |
복무 | 영국 해병대 (1935~1962) | |
최종 계급 | 대령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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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군인.2. 생애
런던 햄프스테드 출신으로 어린시절 아르헨티나에서 성장했다. 폴로, 사냥을 즐겼고 1935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2차 대전 전후로 중위로 진급했으며 본토에서 복무하다가 아이슬란드에 있는 제2해병대대에 참모로 배치되었다. 1942년 대위로 진급하고 미국 워싱턴 DC에서 해병대 연락장교로 복무했고 1943년 제3해병특수여단에 배치되었다.1945년 버마 전선으로 이동해 9월달 개시될 지퍼 작전에서 상륙부대를 담당했으나 종전선언으로 없던 것이 되었다. 소령으로 진급해 제44코만도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참모대학을 수료하고 중령으로 진급해 제41코만도대대장이 되었다.
6.25 전쟁 당시 영연방군의 일원으로 한국으로 건너왔고 낙동강 전선에서 후방 게릴라전 등 특수작전을 수행했으며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차량이 배속되며 기동타격대로 개편되었다. 북진에 참가했고 중공군이 남침하자 장진호 전투 당시 고토리에 배치되었고 하갈우리에 있는 제1해병사단이 포위되어 사령부가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하갈우리로 진격했다.
하지만 중공군 제60사단 제179연대에게 기습공격을 당했고 탄약차량이 폭발하며 선두부대, 후발부대가 분산되어 큰 피해를 받았다.[1] 하갈우리에 도착한 인원은 고토리에 있던 미 해병대를 포함한 400명만 도착해 이스트힐을 방어했다. 하지만 제41코만도대대는 중공군을 상대로 역습을 가해 후퇴시키는 등 상당히 큰 전과를 올렸다. 이후 추위가 계속되자 철수작전 대오에 합류했다. 이 공으로 은성훈장을 받았다.
1951년 말 페리스 N. 그랜트 중령이 새로운 대대장으로 부임하고 미국 콴티코 해병대학교에 영국 대표로 복무했다. 귀국해 해병부사관학교장을 거쳐 1961년 대령으로 진급했다. 제3코만도여단장을 마지막으로 1962년 예편했고 노퍽주에서 거주하다가 1990년 사망했다.
3. 여담
- 2022년 12월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1] 드라이스데일은 당시 이 계곡을 죽음의 계곡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