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00:58:52

더스틴 페드로이아/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더스틴 페드로이아
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보스턴 레드삭스
3.1. 2006 시즌3.2. 2007 시즌3.3. 2008 시즌3.4. 2009 시즌3.5. 2010 시즌3.6. 2011 시즌3.7. 2012 시즌3.8. 2013 시즌3.9. 2014 시즌3.10. 2015 시즌3.11. 2016 시즌3.12. 2017 시즌3.13. 2018 시즌3.14. 2019 시즌3.15. 2020 시즌
4. 연도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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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더스틴 페드로이아의 커리어를 정리해 놓은 문서이다.

2. 아마추어 시절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시절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외야수로 활동하는 안드레 이디어와 팀메이트였고,[1]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2루수 이안 킨슬러와도 같은 학교에서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사이였는데, 결국 경쟁에선 페드로이아가 승리했고 1학년 때부터 리그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반면 후배에게 진 킨슬러는 전학을 가는 신세가 되어 빅리그에 진출한 지금까지도 같이 2루수로 전향한 페드로이아에게 조금씩 밀리는 평을 받는다.[2]

그러나 5'7", 높게 계산해봐야 5'9"에 180파운드밖에 안되는 쬐끄만하면서도 무거워보이는 사이즈[3]로 지명 순위가 많이 밀렸고, 심지어 드래프트되지 못할 것으로까지 예상됐다고 한다.

그래서 2라운드에 페드로이아를 드래프트한 보스턴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키가 작아 2루수 전향까지 예상되는, 대학시절 17도루 13실패로서 도루능력도 부족하고 장타력도 부족한 느림보 유격수가 보삭스 1픽이라는 자체가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4][5] 거기다 스윙이 지나치게 커서 메이저리그에선 컨택을 장담할 수 없다는 스카우터진의 혹평을 받았지만 테오 엡스타인을 위시한 구단 내 세이버메트리션들은 여러가지 대학시절 기록 분석을 통해 페드로이아가 빅리그에서도 대학때만큼 할 수 있다고 스카우터진을 설득했고 결국 페드로이아를 지명하기로 하고 그와 계약했다. 단 2라운드로 밀린 탓에 계약금은 현재의 드래프트 동기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57만 5천불밖에 못 받았다.

참고로 당대 2004년 드래프트에서 고교 최고 유격수 맷 부시가 전설의 1픽이 된 반면[6][7] , 페드로이아는 당시 유격수들 중 (비록 2루로 전향했지만)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어차피 레드삭스 입장에서는 핸리 라미레즈라는 좋은 유격수 유망주가 있었기 때문에 페드로이아를 2루로 돌려도 문제가 없었고...[8]

3. 보스턴 레드삭스

3.1. 2006 시즌

후반기 콜업으로 잠시 빅리그 맛을 본 후, 기존의 2루수 마크 로레타가 FA로 팀을 떠난 2007년부터 본격적인 풀타임 시즌을 시작한다.

3.2. 2007 시즌

뛰어난 선구안과 좋은 수비를 바탕으로 주전 2루수를 꿰찼지만, 상당한 선구안에 비해 도루능력과 타격이 떨어지는 문제로 시즌 초중반까지 오더에선 9번 타순에 그쳤다.

그러나 5월 말에서 6월 초부터 기존의 선구안 위주의 소극적인 타격에서 벗어나 출루율을 비슷한 선에서 유지하고 타율을 급상승시키더니 6월에는 훌리오 루고의 그간의 전설적인 잉여짓과 코코 크리스프의 부진으로 인한 타순 개혁에서 테이블세터 2번으로 이동했다. 케빈 유킬리스는 그에 따라 중심타순으로 옮겨갔다. 6월 중순부터 2번을 치더니 시즌 말과 포스트시즌엔 1번을 쳤다.(당시엔 유킬리스도 2번으로 복귀)

시즌 최종 성적은 .317 .380 .442. 루키로서 이만하면 훌륭하고, 포스트시즌에도 비록 1번타자로서 도루는 하나도 못했지만 .283 .348 .483라는, 루키치고는 굉장한 성적을 기록한다.

결국 이 해에 ROY(Roockie of the Year)에 오르며 2000년대 말부터는 유격수 시대가 아닌 2루수 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3.3. 2008 시즌

육길이가 이젠 3번으로 갔지만 페드로이아는 1,2번에 계속 남았다. 그렇게 테이블세터를 뛰면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은, 홈런과 타점과 안타와 도루가 늘었다는 것이다.[9] 그 결과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팀 내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템파베이가 올시즌 갑자기 폭발하며 지구2위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그의 활약은 여전하다.

결국 213안타 17홈런 83타점 118득점 20도루 .326 .376 .493 WRC+ 122 bwar 7.0을 찍으며 리그 MVP. 득점, 최다안타, 2루타 부문에서 AL 1위, 타율에서 AL 2위를 기록했고,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동시에 수상. 마침 당해 MVP 유력후보 시카고 화이트삭스카를로스 쿠엔틴이 부상으로 홈런왕 레이스에서 나가리된지라 이렇다할 경쟁자가 없던 AL MVP도 수상하게 되었는데, 이는 라이언 하워드에 이어 RoY 다음 해에 MVP를 딴 역대 세번째 케이스.

다만 이 해의 OPS .869는 AL 18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당해 홈런에 눈을 뜬 팀 동료 케빈 유킬리스와 위에 예를 든 카를로스 쿠엔틴에겐 심하게 뒤쳐지고 저스틴 모노, 조 마우어 등에게도 뒤쳐진다. 그러나 이 해에 테이블세터로서 홈런을 저렇게 때려내고 80타점에 20도루를 기록한 점은 다른 강타자 경쟁자들과 차별화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기자단 투표에서 1위표 16장으로 2위 모노의 2배 이상 획득하고 MVP를 수상했다. 과거에 드래프트될지조차 의문이었던 선수가 이렇게 MVP가 된 것만으로도 테오 엡스타인세이버메트릭스의 최대 승리로 여겨졌으며, 지금까지도 테오의 최고 성공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3.4. 2009 시즌

이후 2009년[10]에는 타율이 조금 떨어졌지만 홈런 수는 여전했고, 타율 떨어진 것을 원래부터 갖고 있던 대단한 선구안으로 메우며 OPS를 8할대로 유지하며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3.5. 2010 시즌


2010년에는 아예 타율을 떨어뜨리고 홈런을 늘리는 일대의 개혁으로 유킬리스와 비슷한 컨셉으로 가는가 싶었고 당연히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지...만, 그렇게 하여 5할에 근접한 장타율을 찍다가 시즌 중반부터 유킬리스와 함께 부상으로 시즌 아웃. 그 결과 레드삭스는 자멸했다.

3.6. 2011 시즌

2011년에는 역시 작년의 부상 여파로 인해 다소 부진...했다는건 훼이크고, 라이벌 뉴욕 양키스 로빈슨 카노의 2010년 미친듯한 MVP급 활약의 반향으로 인해 올스타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타율이 부진하면 부진할수록[11] 미칠듯한 선구안은 더욱 발전하는지 159경기 0.307 0.387 0.474 21홈런 91타점 26도루 OPS+ 131 bwar 8.0, 그러나 이 커리어하이 성적으로 MVP는 택도 없었다. 타자 중엔 호세 바티스타, 아드리안 곤잘레스, 미겔 카브레라, 자코비 엘스버리가 AL을 싸그리 박살낸데다가 저스틴 벌랜더는 미칠듯한 연승행진으로 19년 만에 사이 영 상MLB MVP까지 싹쓸었기 때문.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 용케 살아남아 20홈런을 넘기고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시원하게 망한 보삭스의 2011 시즌에 그나마 희망이 되어주었다.

3.7. 2012 시즌

2012년에는 중반까지만 해도 (96경기 출전한 당시) .272 .328 .409 9홈런 9도루 42타점의 성적에 수비력도 전년도에 비해 떨어지면서(UZR이 하락)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는걸 증명하듯이 귀신같이 3할 언저리까지 끌어올렸고, 수비력도 다시 올라와서 UZR도 8.0까지 상승한 상황. 2011년이 미친거지 12시즌의 최종성적을 보면 자기 할 일은 다 했다. 그리고 팀에서도 막상 페드로이아보다 잘한 선수가 없었기에[12] 결국 2012년에도 코디 로스와 함께 보스턴의 살림꾼 역할을 하고 있다 하겠다.

3.8. 2013 시즌

파일:external/boston.sportsthenandnow.com/Dustin+Pedroia+Kansas+City+Royals+v+Boston+0GXgVoc4X2dx.jpg
이렇게 견실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감히 노마 가르시아파라 트레이드 이후 최고의 레드삭스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페드로이아[13]도 2009년 시즌부터 시작된 장기계약이 2015년 클럽 옵션 시즌을 끝으로 마무리되는데, 2013년 7월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로 6년 1억불 수준의 장기계약 논의가 벌어진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아직 FA까지 기간이 남았음에도 서둘러 논의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비록 30홈런급 장타력을 갖추진 못했지만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드물게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MLB MVP를 지낸 경력까지 있는 2루수라 시장에 나오면 거액 계약이 예측되는 선수를 연간 2천만불이 안되는 가격에 붙잡는 계약은 벤 셰링턴 단장과 보스턴 프런트가 일 잘하는 것이라는 칭찬이 많다. 그리고 뉴스가 터진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7월 23일 아침에 합의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4년부터 바로 시작하는 계약도 아니고, 연간 금액이 많이 보장된 계약도 아닌, 2015~21 기간을 커버하는 7년 1억불 규모의 계약이다. 이거 연평균으로 따지면 1500만불도 안된다. 탬파베이 레이스가 2012년 겨울에 노예계약으로 묶은 에반 롱고리아가 (물론 원래 붙어있던 옵션 기간 3년을 전부 보장받는지라 사실상 10년 계약이나 마찬가지지만) 6년 1억불에 그친 것보다 더욱 후려친 노예계약이라는 평가다.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 꽤 늙었을 시점인 38세에 접어드는 시기라서 불안한 점이 없지는 않은데, 계약의 마지막인 37세 시즌까지도 지금처럼 견실한 수비는 물론 3할 전후의 타격스탯까지 유지해줄 수 있다면 연간 1500만불도 안되는 이 계약은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타격왕이나 MVP 재도전을 성공하면, 그것까지는 어렵더라도 우승을 몇번 더 이끈다면 정말로 은퇴 후 펜웨이 파크에 페디의 15번 영구결번 배너가 걸릴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이 당시 기자에게 노예계약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XX XX 부자야 라고 말한 일화는 꽤 유명하다.

3.9. 2014 시즌

현지시각 2014년 5월 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홈경기에서 그랜드 슬램을 때려내며 통산 100홈런을 돌파했다. 13년 6.9 war의 어마어마한 성정에 이어서 14년에도 0.287 7홈런 53타점 의 꾸준한 활약으로 4.9의 war를 기록하였다.

3.10. 2015 시즌

15년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는 출장하지 못하였다. 93경기 .291 12홈런 42타점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3.11. 2016 시즌

16년에는 201안타를 기록하면서 작년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버렸다.

3.12. 2017 시즌

2017년 9월 5일 레드삭스의 애플워치 사인 훔치기 사건이 터지자 "이것이 야구다"란 말로 팀을 변호해서 까이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 시즌에서는 국밥모드가 되어 팀의 디비전 시리즈 탈락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다.

2017년 4월 22일 볼티모어전에서 나선 페드로이아는 수비 과정에서 매니 마차도와 충돌하며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생겨버렸다. 결국 시즌 동안 단 105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해 10월 왼 무릎 연골을 재건하는 수술을 받았다.[14]

3.13. 2018 시즌

파일:Dustin_Pedroia_BOS.jpg
재활 끝에 2018년 5월 27일 빅리그로 복귀했다. 하지만 3경기 동안 11타수 1안타 2볼넷 1삼진 타율 .091 출루율 .231 장타율 .091 OPS .322에 머물렀고, 6월 2일에 통증 재발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됐다. 결국 9월 7일에 시즌아웃을 선언했다. 팀이 우승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3.14. 2019 시즌

2019년 1월 12일 러닝 훈련을 실시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무릎 부상에 있어 러닝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3월에 스프링캠프에 복귀했다. 그러다 4월 9일에 315일만에 부상에서 복귀하여 시즌 첫 경기를 치렀으나, 18일에 다시 부상으로 인해 아웃되었다.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해서인지 회복이 생각보다 더디었고, 5월 말에 페드로이아도 점점 견디기 힘들었는지 진지하게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 레드삭스도 진지하게 2루수를 새로 구해봐야 하는 상황이 온 듯. 8월 7일에 왼쪽 무릎 관절 보호 시술을 받았다.

3.15. 2020 시즌

2020년 2월 23일, 무릎 부상으로 인해 다시 60일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4월 중순, 론 로니키 감독에 따르면 여전히 복귀할 몸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결국 2020년에는 단 1경기도 나오지 못했다. 최근 3년간 무릎 부상으로 인해 9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다. 결국 구단과 은퇴 여부를 두고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그러던 2021년 2월 1일, 현역 은퇴를 발표하며 15년간 한 팀에서만 이어왔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됐고 6월 26일, 펜웨이 파크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4.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더스틴 페드로이아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6 BOS 31 98 17 4 0 2 5 7 0 7 7 .191 .258 .303 .561 -1.0 -0.8
2007 139 581 165 39 1 8 86 50 7 47 42 .317 .380 .442 .823 3.7 3.9
2008 157 726 213 54 2 17 118 83 20 50 52 .326 .376 .493 .869 6.4 7.0
2009 154 714 185 48 1 15 115 72 20 74 45 .296 .371 .447 .819 4.7 5.6
2010 75 351 87 24 1 12 53 41 9 37 38 .288 .367 .493 .860 3.2 3.2
2011 159 731 195 37 3 21 102 91 26 86 85 .307 .387 .474 .861 7.9 8.0
2012 141 623 163 39 3 15 81 65 20 48 60 .290 .347 .449 .797 4.3 5.1
2013 160 724 193 42 2 9 91 84 17 73 75 .301 .372 .415 .787 4.9 6.1
2014 135 609 154 33 0 7 72 53 6 51 75 .278 .337 .376 .712 3.8 3.9
2015 93 425 111 19 1 12 46 42 2 38 51 .291 .356 .441 .797 2.3 2.6
2016 154 698 201 36 1 15 105 74 7 61 73 .318 .376 .449 .825 3.6 5.4
2017 105 463 119 19 0 7 46 62 4 49 48 .293 .369 .392 .760 1.2 2.6
2018 3 13 1 0 0 0 1 0 0 2 1 .091 .231 .091 .322 -0.2 -0.1
2019 6 21 2 0 0 0 1 1 0 1 2 .100 .143 .100 .243 -0.4 -0.5
MLB 통산
(14시즌)
1508 6777 1805 394 15 140 891 712 138 624 654 .299 .365 .439 .805 44.5 51.9

[1] 이디어는 2011년 중순에 다저스가 개박살이 나면서 우익수가 처절한 상황인 보스턴으로의 트레이드 루머가 불거지기도 했는데, "디백스에서 페드로이아와 함께 커리어 후반기를 뛰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동부-서부로 워낙 떨어져서 그렇지 실제로도 친한 사이.[2] 다만 킨슬러가 기복이 크고 0-162 드립을 유발한 누구 때문에 저니맨이 되면서 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2회 우승 주역인 페드로이아에 평가가 밀리는 것이고 대단히 실력 차이가 나는 수준까진 아니다. 한살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17년 종료 시점 둘의 누적 fwar은 거의 차이가 없다. 타격 비율스탯인 wrc+은 116의 페드로이아가 109의 킨슬러보다 좀 높다.[3] 스파이크 때문에 조금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이 사이즈는 같은 2루수이기도 한 정근우보다 조금 큰 것이다. 몸무게는 몰라도 키 부분에서 팀 린스컴과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구글 검색어에는 연관검색어로 height, how tall is Dustin Pedroia가 뜨는 지경이다.[4] 이해 보스턴은 FA로 키스 폴크를 3+1년 24m을 지불하고 영입해 1라운드 지명권을 상실한 상태여서 페드로이아가 첫 지명자였다.[5] 페드로이아 같은 단신이 상위 라운드에서 뽑히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톰 버두치의 칼럼에 따르면, 페드로이아를 처음 본 싱글A 감독이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이 선수가 우리 팀이 첫 번째로 뽑은 선수가 정말 맞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6] 비록 부시의 실패는 결과론적 성격도 있지만, 아직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팬들은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급의 흑역사라고 치를 떨면서 명단장 케빈 타워스를 까는 근거로도 사용한다. 참고로 그때 2픽이 MLB 최강의 금강불괴 금강불괴가 꼭 아니었어도 그 뒤 순번에도 제러드 위버, 스티븐 드류, 필 휴즈, 제프 니먼, 벤 조브리스트 등 00년대 후반부터 MLB를 선도하고 있는 알짜 유망주들이 튀어나온지라 더욱... 뭐 스캇 보라스가 무서워서 피해간 영향이 크지만.[7] 여담으로 이 선수, 기껏 유격수 하라고 데려왔더니 1시즌만에 때려치우고 투수를 하더니 그 후로 온갖 화려한 기행과 쓰레기짓을 저지르다 급기야 음주 뺑소니 크리를 터뜨리고 실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그렇게 역대 최악의 1픽으로 야구인생이 끝나나 싶더니.. 뜬금없이 텍사스 레인저스에 불펜투수로 복귀, 100마일의 패스트볼을 뿌리며 텍사스 계투진의 중심이 된다. 몇 년을 깜방에서 썩다가 나이 30줄에 빅리그 입성해서 100마일을 뿌려대는 걸 보면 정말 재능 하나는 있었던 듯.[8] 그런데 페드로이아를 데려온 테오 엡스타인이 잠시 단장직에서 물러나 백수로 지내던 시기에 구단 측에서 핸리를 아니발 산체스와 묶어서 베켓 로웰과 엿바꿔먹었다! 이에 페드로이아를 다시 유격수로 돌릴 생각도 했지만, 2006년 트리플A에서 유격수로서 에러를 선보이며 2루에 고정되었고, 훌리오 루고의 먹튀짓이 겹치면서 유격수 자리는 이후 2015년 잰더 보가츠의 포텐이 터질때까지 장장 9년간 보스턴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9] 볼넷이 적어지긴 했지만 안타가 많아진다면야 볼넷 따위... 보스턴이 빌리 빈에이스처럼 돈이 없는 구단도 아니고...[10] 2009년에는 테오 엡스타인이 장기계약을 꺼릴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6년 $40.5M + 2015년 $11M짜리 팀 옵션 조건으로 확 묶어버렸다. 당시의 인터뷰[11] 그러나 이는 상대 투수들의 견제와 의도적인 투수 괴롭히기의 영향도 충분히 있다.[12] 팬그래프 기준 팀 WAR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WAR를 보면 초반에 스탯을 꽤 까먹었음에도 결국은 페드로이아가 WAR 1위다.[13] 데이비드 오티즈도 페드로이아에 크게 뒤지지 않는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뷔한 경력이 있어서 순혈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못하고, 30-30 클럽을 달성한 자코비 엘스버리도 타자 중에서 페드로이아와 위상을 나란히 할 수 있지만 엘스버리는 한 클럽에서만 커리어를 마감하기보다는 FA 대박을 노리며 연봉조정에서 단기계약을 고집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 팬들도 언젠간 떠날 선수로 취급하고 있었고 실제로 떠났다. 케빈 유킬리스도 2000년대 후반 레드삭스를 이끈 순혈 타자로 꼽힐 수 있었지만 바비 발렌타인 때문에 쫓겨난 뒤 뉴욕 양키스로 가버리는 바람에...[14] 이는 보스턴 팬들이 마차도를 혐오하는 이유다. 페드로이아는 이 때 생긴 왼쪽 무릎 부상으로 이후 고질병으로 남아 선수 생명이 위태롭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2017년에는 105경기만 출장했고, 이전같은 좋은 수비를 다시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18년에는 3경기, 2019년에는 6경기 출장에 그쳤고, 또 다시 60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본인이 직접적으로 은퇴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선수 활동이 끝났음을 암시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이후 2020년 복귀 암시했다.) 결국 2021년 재활 중 다시 무릎에 물이 차며 다시 수술을 받게 되어 끝내 은퇴선언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명예의 전당에 갈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선수이자 레드삭스 팬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선수가 35세라는 이른 나이에 부상을 당해 은퇴하게 되었니 레드삭스 팬들이 마차도를 끔찍하게 혐오할만 하다. 이후 볼티모어와의 경기에서 벤치클리어링이 활발하게 나오는 등 대립각이 세워졌었다. 마차도가 LA다저스로 트레이드 된 뒤 2018년 월드시리즈에서 보스턴과 만나게 되는데 땅볼 타구 이후 1루로 질주하던 1루수이던 스티븐 피어스의 발을 밟으면서 마차도에 대한 혐오 여론이 더욱 강해졌다. 이후 샌디에이고로 넘어가면서 보스턴과는 만날 일이 없었는데 2023년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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