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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사국([ruby(土佐国, ruby=とさのくに)], 구자체: 土佐國)은 난카이도에 속한 율령국이다. 지금의 고치현에 해당한다. 별칭은 토슈(土州)이다.2. 역사
고대, 중세 시절에는 어마어마하게 깡촌 취급을 받던 영지다. 원래 도사가 속해 있는 시고쿠 자체가 매우 따뜻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적고 산지의 비중이 매우 높아 별로 가치 없는 지역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도사는 중앙에 고치 평야가 자리 잡고 있고 바다에 접해 있지만 상대적으로 바다에 진출하기 용이한 곳이 많지 않고 주변이 높은 산지와 바다로 포위당한 형국의 고립된 지형이었으며 위치와 주변 지형의 제약으로 인해 물류와 인력의 교류 및 이동이 어려웠다. 게다가 쌀농사에 필요한 물과 식수 또한 구하기 어려워 인구 또한 많지 않았다.후세 역사가들은 중세 영주들의 세력 확장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로 여긴다. 현재도 고치 출신이면 깡촌 출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원도만 해도 고대부터 21세기까지 쭈욱 깡촌 취급을 받은 때가 많았는데, 시코쿠는 인구 밀집지대인 오사카 일대와는 아예 바다로 갈라져 있다! 큐슈는 대륙과의 소통구이기라도 했지, 시코쿠는 이도 저도 아니다. 중세 태정관의 귀족이던 고셋케의 이치조[1] 가문의 장원이 있었음에도 범죄자들이 유배가는 땅, 요괴가 나오는 공포스러운 땅 취급을 받았다. 중세의 혼란함에 지친 이치조 노리후사(一条教房)[2]가 가문의 장원인 하타 장(幡多荘)이 있는 도사로 향하려 했을 때 그의 친척들과 동료들이 하향을 극구 말리던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3] 노리후사가 도사에 왔을 때는 "수도의 높으신 분이 오셨다"고 현지 국인들이 환대해서 정착은 무난히 할 수 있었단다.
중세에는 여러 호족이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다 쵸소카베 쿠니치카, 모토치카 부자에 의해 평정되었다. 쵸소카베 가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으로 참가했다가 패해서 개역당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선 야마우치 카즈토요가 들어와 도사 번의 번주가 되었다. 그 후 야마우치의 가신은 상급무사, 기존의 쵸소카베 가의 신하들은 향사(鄕士)라고 불리는 하급무사로 전락해서, 에도 막부 말기까지 두 계급 사이에는 신분적 차별이 심했다.
3. 특산물
가쓰오 타다기의 발생지이기도 하다.4. 지명
도사견의 '도사'가 이 지역을 뜻한다. 현재는 도사시, 도사군, 도사정으로만 남아있다.[1] 가마쿠라 시대에 후지와라 씨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으로, 메이지 덴노의 황후인 쇼켄 황후가 이치조 집안 사람이다.[2] 센고쿠 다이묘 도사 이치조 씨의 시조이다.[3] 물론 자포자기 심정으로 도사에 처박히려고 간 건 아니고 장원 경영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