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10-28 14:55:50

독보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의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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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매체에서

1. 개요

獨步
(?~?)

병자호란 시기에 활동했던 조선의 승려로, 명청교체기의 대륙에서 조선의 비밀 외교를 담당했다.

2. 생애

호는 여충(麗忠), 속세 시절의 이름은 중헐(中歇) 또는 신헐(信歇)이라 하며, 정확한 생년월일과 귀의 이전의 삶은 불명이다. 묘향산에서 불법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는걸 보면 평안도 출신으로 보인다. 일찍이 명나라와 접촉하여 홍승주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 조선의 사정을 알아보려던 홍승주의 명으로 조선에 귀향하였는데, 임경업 휘하의 병졸들이 그를 거수자로 여기고 포박한다. 임경업은 그를 한양으로 보내서 조사를 받도록 하였고, 이때 독보는 최명길과 만나게 된다. 최명길과 조정은 독보의 뛰어난 중국어 실력과 담력에 주목해, 그를 조선과 명 사이의 외교 인력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일종의 외교관이 된 독보는 무인년(1638)년부터 명과 조선 사이를 오가며, 양국의 입장 차이를 좁히려 노력했다. 독보는 명 측에게 정묘호란으로 인한 조선의 국력 약화로 명-청 전쟁에 관여할 수 없음을 알리고, 조선과 청 간의 조약은 절대 명을 등지려는 게 아니니 안심하라고 주장하였다. 명 숭정제는 독보에게 '여충(麗忠)'이란 호를 지어 하사하며, '조선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논지의 글을 독보를 통해 인조에게 보냈다. 이를 전달받은 인조 또한 크게 기뻐하여 독보에게 쌀과 금 등의 보상을 내렸다.

이후 다시 중원으로 건너가서 조선의 외교 업무를 보던 중, 한때의 상관이었던 홍승주가 송산 전투에서의 패배로 청에 귀순하고 만다. 이때 홍승주가 가지고 있던 여러 기밀 문서 또한 청 측에 전달되면서, 청나라는 자신들의 두 골칫거리인 조선과 명 사이를 이어주는 독보의 존재를 눈치채고 만다. 그러자 독보는 앞선 병자호란으로 무너진 조선의 복수를 위해, 임경업과 함께 명나라로 건너가서 청과의 항쟁을 계속한다.

허나 명이 결국 청에게 멸망하고, 독보는 임경업과 함께 수감되어 옥 생활을 하게 된다. 겨우 풀려나서 조선에 돌아왔지만, 뜻을 함께한 임경업이 인조의 숙청으로 죽고[1], 본인 또한 울산광역시으로 유배가는 처지가 된다. 이때 그와 인연을 유지하던 최명길이 아래의 시를 지어, 토사구팽을 당한 그를 위로하였다.
가을이 정원에 드니 모든 잎이 우는구나
눈처럼 흰 귀밑머리는 거울 속에서 빛날 뿐이고
그동안 한이 없던 관심사가
모두 스님의 지팡이에 붙었네
독보는 유배형이 끝나자, 다시 중원으로 향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3. 매체에서

파일:칼부림_독보.jpg
사극 웹툰인 칼부림에선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다루어진다. 2부 중반부터 등장하여. 주인공 이함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본작에선 왜란 시기에 의병으로 활동했었단 설정이며, 임경업과는 사제관계로 그려진다. 4부에선 항왜 사쇄문과 인연이 생겨서 함께 다니기도 하고, 원숭환 밑에서 영원성 전투에도 참전하는 등. 등장 자체는 드문드문하지만, 나올 때마다 굵직한 행적을 보인다. 병자호란의 시작을 다루는 5부 들어선 실제 역사처럼 임경업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선 임경업의 행적을 설명할 때, 아주 잠깐 언급된다.

고우영 일지매에서 음흉한 표정을 짓고 다니는 괴승으로 잠깐 나오는데, 김자점의 사주를 받아 밀서를 전달하는 등 핵심적인 음모에 가담한다.
[1] 후에 인조는 임경업이 간신의 손에 죽어서 안타깝다며 책임전가를 시도했지만, 임겹업에 대한 고문을 묵인하고 죽도록 방치한 것은 인조 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