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3:03

럭스(밴드)

1. 개요2. 활동
2.1.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2.1.1. 럭스 비판 측의 입장2.1.2. 럭스 옹호 측의 입장
2.1.2.1. 반박
3. 근황4. 디스코그라피5. 이전 멤버

1. 개요

Rux

대한민국의 펑크락 밴드로 원종희(보컬), 이은교(드럼), 배지성(베이스), 장부일(기타)의 4인조로 구성되었다. 홍대 앞 클럽 '스컹크 헬'과 '스컹크 레이블'을 운영하던 리더 원종희[1]를 주축으로 스컹크 레이블 소속 멤버들이 1996년에 결성하였다. 1999년 "I Gotta Go"로 데뷔했으며 이후 8년 만인 2004년에 25곡을 수록한 첫 정규 앨범 《우린 어디로 가는가》를 발표했다.

럭스는 2005년 7월 30일 MBC 생방송 음악캠프 도중에 함께 무대에 오른 카우치와 스파이키 브랫츠 멤버에 의한 성기 노출 파문에 연루되면서 대한민국 인디밴드에 대한 인식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이 사건 이후 MBC에서는 출연금지를 받았으며, 공연을 위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발자국〉, 〈지금부터 끝까지〉, 〈언제나 이 자리에서〉, 〈전진〉 등이 있다.

대한민국 100대 명반 중에 있는 몇 안 되는 펑크밴드다.[2][3]

2. 활동

인터뷰[4]

원종희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미국에서 살았으며 그때 사촌 형이 펑크 밴드를 하는 것을 보고 펑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같은 학교에 있는 한국인 2명이 영어를 못 한다고 놀리는 것에 화가 나 있었는데 펑크가 화를 표출하는 음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원종희는 한국에 돌아온 후, 중학교 2학년 때 럭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드럼으로 시작했지만 보컬이 없어서 그가 보컬을 맡게 되었다. 초기 멤버들이 학업을 이유로 음악을 그만두었고 원종희는 뮤직비디오 감상실에 기타, 베이스, 드럼을 구하는 광고를 냈는데, 그 당시 클럽 드럭에서 공연을 하다 잘린 상태였던 자살매미라는 이름의 밴드 멤버들이 럭스로 들어와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 나중에 갤럭시 익스프레스에서 활동하다가 대마초 재배 혐의로 구속된 이주현이 들어왔다. 이주현은 럭스를 거쳐간 멤버들 중 가장 긴 시간동안 원종희와 함께 럭스 활동을 같이한 멤버였다.#

클럽 하드코어에서 활동하면서 점차 이름을 알린 럭스는 데뷔 음반으로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한 ‘우리는 한마음’이라는 테이프를 냈고 1998년,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과 함께 스컹크 레이블을 만들었다.# 앨범을 내주는 기획사를 찾을 수 없어서 자체적으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CD 앨범을 만들기 위해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여기에 필요한 세금과 유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레이블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럭스는 원종희가 직접 운영하는 스컹크 레이블과 스컹크헬 공연장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럭스가 처음 발표한 정식 앨범은 1999년에 나온 EP 앨범 《Another Conception》였으며, 리더 원종희가 군대에 다녀온 뒤인 2004년에 1집 <우린 어디로 가는가>를 발매했다. 무려 25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앨범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밴드 결성 10년만의 일이다.

2.1.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당시 인디 밴드들을 방송에 소개하는 기획을 준비하고 있던 MBC는 3번째로 음악 방송에 나갈 밴드로 럭스를 뽑았다. 당시 럭스는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몇 번이나 최우수 록밴드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던 유망 밴드였다.

MBC측에서 섭외 요청이 처음 왔을 때 럭스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렸는데, 당시 멤버였던 조상현 같은 경우는 본인이 존경하던 크래쉬가 음악방송에 나왔을 때 음악방송 안에서 그냥 구색이나 맞추려고 불러놓은 것처럼 연출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출연을 반대했고 리더인 원종희는 저쪽에서 하자는데 우리가 굳이 무서워서 피할 것까지는 없다며 출연을 찬성했다. [5]

결국, 럭스는 MBC의 정중한 요청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MR 방송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럭스는 실망했다. 그러나 '이왕 할 거면 제대로 보여주자' '백댄서로 가득찼던 저 휑한 공간에 우리의 동료들로 가득 채워서 우리의 에너지를 보여주자'와 같은 마음으로 친한 동료들 30명을 불러 같이 공연하기로 했다. 그 30명 안에는 카우치와 스파이키 브랫츠의 멤버도 있었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자 중반부에서 이들은 대형 사고를 터트리고 마는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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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은 럭스의 첫 지상파 방송 출연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럭스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한 것은 물론 조선펑크 씬 자체가 풍비박산 나버렸고 대중들은 홍대 인디씬과 밴드 음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갖게 되었다. 이 사건 후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인디 밴드가 대중음악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상실되었고 한국 언더그라운드에서 인디 밴드와 경쟁하던 힙합씬이 인디 밴드를 밀어내고 대한민국 음악계의 주류 문화로 안착했다. 또한 인디 록뿐만 아니라 기존의 록 시장도 크게 타격을 받아, 2010년대부터는 사실상 록은 비주류로 밀려나게 된다.[6]

보컬 원종희는 사전 모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카우치 멤버들과 함께 입건되었고, 대중과 언론들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원종희는 돌출 행동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은 들었지만 재미삼아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며 정말로 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카우치가 옷을 벗었을 때 그게 진짜였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링크

이후 조사를 받던 중 원종희가 '인디 밴드들은 평소 이렇게 논다' 라며 인디 밴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을 가엾게 여겼다. 결국 나중에 어설프게 옹호해주려다 실언을 했다고 인정했다. 경찰 측은 원종희가 사건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런 행동을 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리지 않았으므로 업무방해죄로 처리될 것이라고 했고, 결국 카우치와 함께 MBC 출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음악캠프는 그 날로 종영.

이 사건 직후 럭스 맴버의 리더이자 보컬인 원종희는 카우치와 스파이키 브랫츠 멤버들은 원래 사석에서도 공연에서도 한 번도 옷을 벗지 않았다고 인터뷰하면서 카우치 알몸 사건에 대해 옹호적인 태도를 취했고 자신의 밴드도 방송금지를 당하자 나도 방송국이 불러도 안 간다고 맞받아쳤다.[7] 이후 옹호 발언은 실언이라 인정했다.

사건 이후 원종희는 집에서 자숙하고 있었으며 당시 하루에도 몇 통씩 오는 협박문자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8]

2.1.1. 럭스 비판 측의 입장

럭스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만 했어도 인디씬과 밴드 음악계에 가해지는 사회적 비판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과를 하긴 했는데 작은 곳에서 한 사과라 안 밝혀졌다고 주장하는데 알려지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범죄자가 친구들하고 술먹으면서 '사실 그 범죄 내가 저질렀는데 피해자에게 미안하긴 해'한 걸 범죄자의 사과라고 받아들이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사태의 중요성을 생각했을때 정식 기자회견에서의 사죄가 옳지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는 곳에서의 사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애초에 자신들의 무대에 검증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기행을 저지른 것이 럭스 이므로 당연히 럭스가 사과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아티스트는 자신의 무대에 책임지는게 아티스트인데 럭스는 아티스트로써의 기본 본분을 잊은 것이다. 오히려 럭스는 일체 그런 행동 없이 사태를 즐겼다. 사태를 즐겼다는 것은 후술할 원종희 인터뷰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애초에 성기 노출 퍼포먼스를 한 이들을 방송 무대 위로 데리고 온 사람들이 럭스 밴드이다. 이들이 논란의 인물들을 부르지만 않았어도 그들이 방송에 나와서 성기 노출을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동조자가 아니라 해도 방관자인 사실은 변함은 없다.

2.1.2. 럭스 옹호 측의 입장

럭스의 사과나 유감, 반성 표명 등은[9] 전부 조그만 공연장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있는지도 모르는 아주 조그마한 수준의 대중음악을 다루는 매체에서 이루어졌다. 아예 안 했다는 의견이 많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에 가깝다.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라고 한다는 것은 상당히 극단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공모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피해를 입었는데,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 두 명이 탈의한 순간, 럭스가 잘 됐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 상황을 즐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럭스가 사전모의를 하지 않은 이상 럭스가 그 순간을 즐겼다고 해서 럭스 또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웃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들도 사전 모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정황추리를 할 수는 있지만, 일단 경찰 조사 결과에서도 럭스는 옷을 벗고 성기를 노출하자는 것을 들었긴 했으나 술자리 농담으로 여겼을 뿐이었다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당장 웃음도 스파이키 브렛츠 멤버가 날뛰는 것을 인파속에 섞여 뒤에서 아주 잠깐 보인 것이고 그들이 제대로 일을 벌인 것을 확인한 후에는 무대에서 대단히 착찹한 표정으로 노래를 마쳤다. 그리고 럭스는 방송 전체를 책임질 의무가 있는 PD도 아니다. 이상한 사람들을 끌어온 것은 럭스가 잘못한 것이지만, 보통 의도가 없다면 실책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그 이상한 사람들을 거르지 못하고 방송에 내보낸 최종적인 책임은 럭스 이전에 방송국과 PD가 있다. 럭스가 방송국이나 PD와 다른 부분이라면 그 사람들을 직접 부른 당사자이며 그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 그들과 적당히 화해를 하기는 했으나, 꽤 긴 시간이 지나서 화해했다고 한다.

또한 비판측 의견은 많은 부분 트집에 불과하다. 사과를 이미 했는데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란 것은 그야말로 트집이다. 애초에 럭스 자체가 알려져 있는 그룹도 아니다. 심지어 해당 사태조차 카우치 사태라고 알려져 있지 럭스 사태라고 알려져 있지도 않으며 엔하위키, 나무위키 등장 이전까지 사람들은 럭스를 알지도 못했다. 사과했는데도 알려지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는 논리대로면 일이 벌어진 이후 다시 인터뷰를 잡고 사과를 크게 했어도 노이즈 마케팅이니, 그냥 조용히 묻혀져서 지내지 왜 사과로 다시 일을 키우고 인디씬과 밴드 음악계에 더 큰 2차가해를 가하냐고 하는 등, 알려지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란 수준으로 트집 잡으려거든 얼마든지 트집 잡기는 가능하다.

범죄자가 친구들하고 술 먹으면서 미안하긴 해 라고 한 수준의 사과도 아니고, 럭스는 나름대로 인디씬을 조명해주는 매체를 대상으로 진지한 인터뷰로 사과를 했다. 그런데 그것을 비난하기 위해서 이상한 비유를 들면서, 알려지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고 그것은 사과조차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근본적인 사과는 불가능하다.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자기들이 모르니까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식이다.

또한 아티스트는 자신의 무대에 책임지는 게 아티스트식도 트집이다. 그런 식이라면 대통령은 국내의 모든 범죄에 책임이 있고, 도지사는 한 도의 모든 범죄에 책임이 있고, 시장도 구청장도 다 그런 식이다.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상식선에서의 얘기다. 만약 한국인 중 누군가가 상식 밖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모든 한국인이 다 그런 식이라고 쏘아붙이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국인이 있겠는가? 비판하는 사람 본인조차도 그런 식의 비판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2.1.2.1. 반박
사과를 했으니 장땡이라고 하는데 위의 글만 읽어도 럭스 측은 처음엔 사과 한마디도 안하고 우리가 왜 잘못이냐고 방송에 안 출연하면 될 거 아니냐며 적반하장으로 당당하게 굴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제서야 사과한 진정성 없는 사과에 불과하다. 만약 비난의 여론이 안 들어왔으면 지상파 방송에서 성기 노출하는 행위는 사과 안해도 잘 나갔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가졌을 거라고 봐야한다.

게다가 음란 퍼포먼스를 한 자들을 음악 방송 무대에 초대한 사람도 럭스 밴드였으니 럭스가 책임을 지지 않을 언정 피해자라고 치부하기에는 억지가 있다.

심지어 유튜브 다시보기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럭스 보컬 원종희는 논란의 퍼포먼스가 나오고 자신이 센터로 나올때 원종희 표정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또한 사건 이후에도 사고를 일으킨 멤버들과 술을 마시고 논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해당 사건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라면 정상인이라면 패 죽이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절교는 해야 마땅하다.

3. 근황

이후 럭스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며 클럽을 중심으로 언더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이후 몇 년 만의 인터뷰에서 보컬 원종희는 한때 우울증으로 팀이 아니라 삶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불러만 주면 알래스카라도 달려가 공연하고 싶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사건이 일어나고 2~3년 정도는 멍하니 지냈다고. 카우치와는 한때 연락이 뜸했지만 지금은 간간이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대부분의 오해를 풀고 가끔 음악작업도 같이 하며 지낸다고 하나... 출연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MBC에는 더 이상 못 나온다. 하나 알아야 할 점은, 럭스와 카우치는 MBC에서만 출연정지가 되었다. 즉, 다른 방송사에선 출연이 가능하긴 하나, 전신노출 사건의 파급력이 워낙 커서 방송 활동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공연 쪽에서는 현재도 활동이 어느 정도 활발하다. 롤링홀 등 홍대 클럽 공연에는 꾸준히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중.

반대로 전라노출의 주범인 신현범과 오창래는 커리어가 완전히 끝장났다. 각각 징역 10개월과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를 받았으며, 이후로 행보는 알려진 바가 없이 완전히 잠적하였다.

2006년 8월 5일 롤링 홀에서의 두 번째 단독 공연을 진행했다.

2010년 7월 18일 새벽 4시 30분 만취 상태로 부산 남구의 한 식당에 침입해 한우 1.5kg을 훔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공연을 마치고 회식을 하던 차에 고기가 다 떨어져서 훔쳤다고 한다.기사

2011년 8월에 마지막 공연을 한 뒤, 보컬 원종희의 호주 유학을 기점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가 2012년 원종희의 귀국으로 다시 활동 재개, 6월에 '할로우 잰 &럭스 COMEBACK SHOW'라는 이름으로 롤링홀에서 컴백무대를 가졌다.

2013년 보컬 원종희가 정새난슬[10]과 결혼했다. 둘 사이에서는 딸 1명이 태어났다.

2014년에 The Strikers의 리더 SUNN-ROW와 Veggers의 드럼 표신재[11]가 합류하였다.

2015년 원종희가 정새난슬과 이혼한 사실이 정새난슬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려졌다. 럭스의 전 기타리스트가 사석에서 정새난슬의 아버지빨갱이라고 비하한 사건에서 부부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펑크음악을 하는 자들로서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있었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정새난슬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인물 이외에도 럭스의 주변 인물 중에는 그러한 정치적 의도가 섞인 비하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과의 개인적 친분을 고려해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원종희에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12]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이 일어난 지 16년이 지난 2021년에 원종희가 심경을 밝혔으며, 그 사건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사과는 일절 없고 그 사건이 인디계의 성장통이었다느니 뻔뻔하게 쉴드를 치는 내용이라 네티즌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그리고 3년후에 해당 건으로 재차 사과를 하였다. #

4. 디스코그라피

  • 정규 음반
    • 《우린 어디로 가는가》 (2004년)
    • 《Ruckus Army》 (2007년)
    • 《영원한 아이들》 (2009년)
  • 싱글
    • 《Gotta Go》 (1999년)[13]
    • 《Last 10 Seconds》 (2008년)
    • 《만신창이》 (2009년)
    • 《Out Of The Blue》 (2010년)
    • 《더러운 양아치》 (2011년)
    • 《괴물들이 살아 숨쉬는 나라》 (2014년)
  • EP
    • 《Another Conception》 (2004년)
  • LIVE
    • 《The Skunx 2005 Live》 (2005년)
  • 기타
    • 《3000 펑크 - 펑크대잔치 2집》 (1999년)
    • 《Hard Core - Second Compilation》 (1999년)
    • 《인디피아 Vol.2》 (1999년)
    • 《We Are The Punx In Korea》 (2003년)
    • 《No Future For You/대한민국 따위는 신경꺼라! 여기에 너를 위한 미래는 없다!》 (2008년)

5. 이전 멤버

  • 기타
    • 조상현(기타, 현 넉다운 멤버)
    • 박건우(기타, 전 텔레파시 멤버, 2002 ~ 2005년 5월) 럭스 최고의 명곡으로 꼽히는 '지금부터 끝까지' 를 작곡했다.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이 일어나기 2개월 전 멤버간 불화로 인해 탈퇴하였다. 당시 사건 현장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작곡가이며 공식 탈퇴 처리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출연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20대 때 여행 중에 만난 일본인 아내 미키와 국제결혼하였다. 상세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 드럼
    • 김석년(드럼, 현 레이지본 멤버)
    • 류명훈(드럼, 전 13스텝스, 잠비나이 멤버. 현 스카썩스, 49 몰핀스, 할로우잰 멤버)
    • 표신재(드럼, 전 더 베거스멤버) : 금전 문제 및 여성 문제로 홍대에서 사라짐
    • 이대희(기타, 현재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전향 후 파닥파닥등의 작품을 남김)


[1] 1980년 9월 8일생. [age(1980-09-08)]세.[2] 정확히는 100BEAT 선정 베스트 앨범 100의 2000년대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다.[3] 2004년 정규 1집 <우린 어디로 가는가>[4]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럭스를 추천하고 바로 사건이 터진 걸 본 평론가 박준흠과의 인터뷰다.[5] 이에 조상현은 그 말은 맞지만 나는 나가기 싫으니까 안 나가겠다고 하고 안 나갔다.[6] 2000년대 가요시장에서 록 음악의 입지는 애매한 편에 속했다. 완전 비주류는 아니었지만, 당시 인기를 끌던 아이돌 음악과 알앤비&힙합에 비하면 확실히 입지가 작았다. 이러한 애매한 위치마저 흔들어놓은 사건이 바로 카우치 사건이다.[7] 다만 방송사고 당시 무대에 올랐던 멤버들 중 일부는 현재 방송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럭스 탈퇴 후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결성해 엠넷 밴드의 탄생에 출연했던 이주현.[8] 훗날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편의점에 뭘 사러 갔을 때 손님들이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짜증을 못 참고 "어 왜?" 라고 대꾸를 했더니 시비걸던 사람들이 쫄아서 사진 찍자고 했다고...[9] 물론 그들의 해명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10] 일러스트레이터. 1981년생이며 사회운동가 겸 가수 정태춘의 딸이다. YB밴드의 음반 자켓을 디자인하기도 했다.[11] 2018년, 성범죄를 일으킨 것이 폭로된 성범죄자다.[12] 참고로 리더 원종희는 좌파 성향이다. 민중가요인 오월의노래2를 밴드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곡을 발매하기도 했고, 3집의 <영원한 아이들>이란 곡의 가사에선 아나키즘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외의 다른 곡들 가사들에서도 좌파적 성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13] 멜론에서 명반 딱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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