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07:13

페르난도 레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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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레돈도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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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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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리가 EA SPORTS 로고.svg
라리가 EA SPORTS 앰버서더
파일:Fernando Redondo_LALIGA.jpg
이름 페르난도 레돈도
Fernando Redondo
본명 페르난도 카를로스 레돈도 네리
Fernando Carlos Redondo Neri
출생 1969년 6월 6일 ([age(1969-06-06)]세)
아르헨티나 아드로구에
국적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신체 186cm /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주발 왼발
소속 선수 AA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85~1990)
CD 테네리페 (1990~1994)
레알 마드리드 CF (1994~2000)
AC 밀란 (2000~2004)
기타 라리가 (2019~ / 앰버서더)
국가대표 29경기 1골 (아르헨티나 / 1992~1999)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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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191919><colcolor=#ff4b44> 등번호 CD 테네리페 - 5번
레알 마드리드 CF - 6번, 5번
AC 밀란 - 5번, 16번, 30번
아르헨티나 대표팀 - 5번
가족 아들 페데리코 레돈도
}}}}}}}}}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기타

[clearfix]

1. 개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UCL 2회 우승, 라리가 2회 우승을 이끌었고, 1999-00 시즌엔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를 수상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2.1.1. 초기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데뷔해 뛰어난 재능을 드러낸 레돈도는 테네리페로 이적하였고 그곳에서 몇 차례 부상을 당하는 등에 악재가 있었지만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그 곳에서 당시 감독으로 있던 호르헤 발다노를 만난다. 그는 발다노에게 신임을 받으며 중용되었고 라리가 최고의 미드필더 중 1명으로 자리잡게 된다.

2.1.2. 레알 마드리드 CF

1994-95 시즌 레돈도는 발다노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자 그를 따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그는 팀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으로 자리잡아 루이스 미야와 함께 수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96-97 시즌에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7-98 시즌에는 32년 만에 팀이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muxrm200.gif
1999-00 챔피언스 리그 8강 맨유전에서 라울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하는 레돈도
1999-00 시즌 레돈도가 속한 레알 마드리드는 리그에서 최악이라 할 만한 부진을 겪고 있었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감독 비센테 델보스케의 지도 아래 그와 라울 곤살레스가 맹활약을 펼치며 8강에서 맨유, 4강에서 바이에른 뮌헨, 결승에서 발렌시아를 꺾으면서 챔스 우승을 이루었고 그는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를 수상했다. 하지만 새로 취임한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갈락티코스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AC 밀란으로 이적을 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걸출한 수비형 미드필더인 클로드 마켈렐레를 보유하게 되지만, 레돈도와 달리 빌드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클로드 마켈렐레를 방출하게 되고 한동안 수비형 미드필더 부재에 시달린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특히나 테크니컬한 수비형 미드필더인 페르난도 레돈도를 그리워했다. 같은 국적이자 같은 이름인 페르난도 가고가 그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패하고, 이후 샤비 알론소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다.

2.1.3. AC 밀란

AC 밀란으로 이적 직후 발목 부상을 당하여 레돈도는 이후 부상에 자주 시달리게 되었고, 합류하자마자 첫 두 시즌을 통으로 날렸다. 하도 부상이 잦다 보니 본인이 직접 밀란의 갈리아니 단장에게 찾아가서 몸 상태가 좋아지기 전까지는 급여를 안 받겠다고 선언하는 일도 있었다.[1]

세 번째 시즌과 마지막 시즌에는 각각 8경기씩 토탈 16회 출장에 그치면서 당시 기준 상당한 고액이었던 1,100만 파운드 이적료 값을 전혀 못 해주었다. 하지만 갈락티코스 정책의 피해자라는 이미지, 급여를 내놓겠다고 하는 충성심, 결정적으로 레돈도가 눕는 바람에 대체 자원으로 영입한 선수들이 세도르프, 피를로라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밀란의 레전드들이라 동시기의 먹튀 3인방인 3R에 비해선 크게 까이진 않는다.

결국 AC 밀란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2004년에 은퇴를 선언한다. 마지막 경기는 브레시아 전에서 안드레아 피를로와 교체되어 들어갔는데 후이 코스타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레돈도는 1992년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로 데뷔하였다. 1992 킹 파드컵[2]에서 초대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고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선 대회 내내 주전으로 출장하여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 디에고 시메오네와 중원을 이뤄 뛰어난 활약을 펼첬으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도핑을 한 것이 걸리면서 파동이 일어나고 그 영향으로 루마니아에 팀이 패배하면서 16강 탈락을 하고 만다.

레돈도는 이후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다니엘 파사레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3] 1998프랑스 월드컵 명단 제외가 된 후로 몇 차례 경기에 출장한 뒤 부상 등으로 대표팀에 오르지 못하고 2002 한일 월드컵마르셀로 비엘사의 부름을 받았으나, "난 이미 대표팀을 떠난 몸"이라며 거절한다. 2004년 완전히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싱력은 물론이고 미드필드에서의 뛰어난 템포 조절 능력과 화려하고 우아한 볼 터치를 활용하는 탈압박과 드리블 능력을 가졌던 당대 최고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테크니컬한 드리블로 찬스를 만드는 뛰어난 찬스 메이커였으면서도, 거칠고 터프하면서도 정교한 태클을 비롯한 뛰어난 수비 능력도 갖춘 90년대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선수. 주 발인 왼발로 강력한 슈팅과 정확한 롱 패스를 배급할 능력이 있었고, 거기에 더해 피지컬도 뛰어나 상대 공격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도 않았고, 아주 빠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큰 덩치와는 달리 상당히 민첩한 편이라 앞에 언급한 환상적인 터치와 개인기를 이용해 상대 선수를 가볍게 제쳐내곤 했다.

그러나 플레이 스타일상 원 볼란테에 서건 투 볼란테에 서건 굉장히 전진성이 강하고 공을 소유하려는 성향도 강했다. 따라서 본인의 수비력이 나쁘지는 않았어도 공격적으로 더 치우쳐 있는 플레이 성향이 불안정성을 야기했고 레돈도가 나간 공간을 커버해줄 다른 수비적인 미드필더의 조력을 요구했다.[4] 또 원 볼란테를 전문으로 보는 다른 클래식한 수미들만큼 강력하고 완고한 수비 능력을 갖췄던 선수는 아니었으며 상당히 거칠고 터프한 수비를 펼쳤다.[5] 기본적으로 신체 조건과 능력이 우월했기 때문에 수비적인 상황에서도 활약했던 것은 맞지만 후방에서 뛰었던 말년의 베론과 비슷하게 플레이메이커의 성향이 더욱 강했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기타

  • 잘생긴 외모로 인해 별명이 그라운드 위의 귀공자이다.
  • 축구선수로 뛰면서 대학에 재학하던 중 FIFA 월드컵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으나, 학업이 축구보다 더 중요하다며 대표팀 선발을 고사한 적이 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다니엘 파사레야와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파사레야 감독은 레돈도의 장발 스타일에 불만이 많았으며, 대표팀 선수단에게 단발령을 실시했는데 레돈도는 클라우디오 카니자와 함께 이를 거부하였고, 이는 그의 월드컵 대표팀 명단 제외로 이어졌다. 실제로는 기용법을 놓고 충돌했다는 설도 있는데, 레돈도는 원래 보직인 중앙 위치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원했고, 감독은 왼쪽 미드필더로 뛰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레돈도를 제외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파사레야를 디스한다. 이후 그는 월드컵이 끝나고서야 머리카락을 잘랐다.


[1] 갈리아니 단장은 당시 그의 결정에 무척 놀라서 "내 생에 이런 선수는 본적이 없다"며 레돈도의 프로의식에 찬사를 보냈다. 추가로 급여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이 팀에 왔을때 제공받는 집과 자동차도 전부 반납했다.[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전신.[3] 머리카락이 길면 축구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국대에 레돈도를 뽑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마저 머리카락을 자르고 왔는데, 레돈도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삭발을 거부했다.[4]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그 역할을 주로 크리스티앙 카랑뵈가, 국대에서는 디에고 시메오네가 담당했다.[5] 팔꿈치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