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16:29:34

레미 본야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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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레미 케네스 본야스키
(Remy Kenneth Bonjasky)
출생 1976년 1월 10일 ([age(1976-01-10)]세)
수리남 파라마리보주 파라마리보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
[[수리남|]][[틀:국기|]][[틀:국기|]]
입식 전적 98전 78승 20패 (40KO)
체격 193cm / 108kg / 196cm
링네임 The Flying Gentleman
주요 타이틀 K-1 그랑프리 3회 챔피언[1]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파이팅 스타일
3.1. 세미 슐트에 버금갔던 안티
4. 기타

[clearfix]

1. 개요

네덜란드킥복싱 선수이다. 별명은 플라잉 더치맨 혹은 젠틀맨이며 K-1 그랑프리 3회 챔피언을 지냈다. 공식은퇴는 2014년에 했지만 실질적인 은퇴는 2009년 12월 K-1을 끝으로 2010년[2] 에 했다. 격투기 대회 첫 데뷔는 고등학생때였던 1992년[3]이라고 스스로 밝힌바 있다.

2. 생애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에서 태어났다. 이후 5세에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처음에는 축구를 했으나 17세에 친구의 권유로 킥복싱 체육관에 가보고 흥미를 느껴 킥복싱에 입문했다. 운동을 하면서도 학업도 병행하여, 대학을 졸업한 후, 잠시 네덜란드의 은행인 ABN AMRO에서 은행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처음에는 파트 타임으로 선수 생활을 했지만, 곧 프로 격투기 선수가 되어 훈련에 매진하였다. 2002년에는 미르코 크로캅이랑 시합을 치렀는데 크로캅의 펀치 연타에 2번 다운되며 TKO패한다. 이 때 경기를 보면 크로캅이 오히려 지치겠다 싶을 만큼 본야스키에게 펀치 연타를 퍼붓는게 꽤 명장면.[4] 그래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K-1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을 지냈다.[5]

2005년에는 오사카 개막전에서 알렉세이 이그나쇼프를 꺾었고 도쿄에서 열린 WGP Final 8강전에서 최홍만을 상대로 아웃파이팅을 펼친 끝에 판정승을 거두었다. 이어진 4강전의 상대는 세미 슐트였는데 이 경기에서 본야스키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방어만 하다가 KO패를 당하였다. 견고하게 방어하면서 반격 기회를 노리는 본야스키 특유의 스타일이 최홍만이랑 맞먹는 신장에[6] 가라데 베이스였던 슐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2006년에는 K-1 Revenge에서 마이티 모에게 판정승으로 리벤지를 하고, 오사카 개막전에서 피터 아츠랑 시합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피터 아츠의 결장으로 게리 굿리지를 상대하게 되는데 플라잉 니킥으로 손쉽게 KO승을 거두고 결승행을 한다. 2006년의 불운은 이혼도 있지만 도쿄 결승전에도 발생하는데 스테판 레코와의 시합에서 로우킥을 하다가 로우블로우가 발생하고 또 다시 레코가 뒤돌려차기를 하다가 로우블로우가 발생한다. 결국 판정승으로 이기지만 로우블로우로 인한 고통 때문이었는지 기권하게 되고 4강 진출은 리저브 파이트의 승자인 피터 아츠가 대신 올라가게 된다.[7] 2007년에는 모친이 사망하였고 그 영향인지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는데 그랑프리에서는 피터 아츠에게 패배해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2008년, K-1 WGP Final 4강에서 구칸 사키를 상대하였다. 1라운드에서는 양 선수 간에 약간의 공방이 오고 갔으며, 본야스키가 근소한 점수 우위를 점하였다. 그리고 2라운드에 본야스키의 기습적인 플라잉 미들킥이 성공하며 사키가 ko되었다. 사키가 울부짖으며 괴로워할 정도로 강하게 들어간 킥이었다.

2009년, K-1 WGP Final 8강에서 에롤 짐머맨을 판정으로 잡고 4강에 진출했으나 다음 상대는 다름아닌 천적 세미 슐트였다. 이미 2차례 패배로 기존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한 레미는 평소답지 않은 스타일로 1R 시작과 동시에 저돌적으로 파고들어 레프트 훅으로 세미 슐트를 순식간에 다운시켜 이변을 일으키는듯 보였다. 추후 같은 패턴으로 러쉬를 이어갓지만 세미 슐트의 사기적인 리치차이로 모조리 막혀 버리고 시동을건 세미의 펀치&니킥 콤보로 되려 3번의 다운 TKO 패배로 다시 한번 세미 슐트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2013년 Glory 5에서 타이론 스퐁이랑 시합을 치렀는데 2라운드 스퐁의 라이트 훅 한 방에 KO패한다.

2014년 Glory에서 12년 전 자신에게 TKO패를 안겨줬던 미르코 크로캅이랑 두 번째 시합을 치르게 되었는데 크로캅이 러쉬하고, 본야스키가 가드를 바짝 올린 뒤 아웃 파이팅을 펼치며 미들킥이랑 헤드킥을 넣는 등 12년 전 시합이랑 별반 다를게 없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12년의 세월이 흐른지라 두 선수 모두 몸이 예전같지 않아 지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결국 유효타에서 앞선 본야스키가 3-0 판정승을 거두었다. 두 선수가 일본의 양대(K-1, PRIDE) 메이저 단체의 탑 클래스 선수였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3. 파이팅 스타일

전형적인 아웃복서 스타일로 단단한 가드 후 킥과 무릎으로 상대에게 데미지를 누적시키고, 결정적인 순간에 흑인 특유의 탄력을 이용한 폭발적이고 화려한 킥 공격을 선보였던 K-1의 강호. 다만 펀치의 경우는 킥의 보조역할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마치 고양이 펀치를 연상시키는 스타일.

마치 큰 방패와 큰 창을 번갈아서 싸우는 듯한 스타일로 먼저 가드를 세우고 상대 공격을 받아내면서 로우킥으로 상대를 야금야금 공략하고, 빈틈이 생기면 플라잉 니킥을 위시한 화려한 무릎, 킥 공격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데 능했다. 모델로 활동했을 정도로 비율이 좋아서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막상 다른 탑 컨덴더들과 파이팅 포즈 상태에서 붙어있는 것을 보면 팔과 다리가 상당히 길면서도 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커버도 두텁고, 로우킥 등 하체 내구성도 강력하며, 한방 한방도 꽤 묵직한 편이었다. 특히 킥 테크닉이 화려한데, 특히 그를 상징하는 기술인 플라잉 니킥은 그에게 플라잉 젠틀맨이라는 별명을 만들었을 정도였다. 본야스키 하면 곧 플라잉 니킥이 떠오를 정도로 기습적인 플라잉 니와 하이킥을 잘 썼다. 복싱은 주로 킥 위주의 게임을 보완하는 용도였고 주력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단발단발로 상대의 흐름을 끊어주는 용도로 펀치를 활용하는데 능했고, 펀치력도 상당했던 편.

본야스키는 인터뷰에서 킥을 위해 펀치를 주고, 레그킥을 위해 바디킥을, 하이킥을 위해 레그킥을 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본야스키가 이기는 경기를 보면 정말 대부분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흘러간다. 이는 화려하고 강력한 킥을 위해 여러 셋업을 깔아둔다는 뜻, 그리고 펀치를 킥을 위한 셋업으로 활용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03, 04 WGP 우승 때 화려한 파이트 스타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05년을 기점으로 해가 갈수록 안티가 늘어 세미 슐트와 더불어 가장 안티가 많았던 챔피언이기도 하다. 무사시급의 과도한 판정 이익을 보거나, 관점에 따라 다소 졸렬한 감이 있는 경기 운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무사시는 네추럴 헤비급이 아니었다는 변명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본야스키는 2m에 가까운 키에 100kg이 넘는 체중을 가지고 있었고, KO율 자체는 꽤 높다는 것, 그리고 첫 WGP때는 상당히 어그레시브했던 플레이를 감안하면 절대 피지컬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유독 세미 슐트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엄밀히 말해 2000년대 후반 세미 슐트를 제외하고 볼 경우, 본야스키가 가장 뛰어난 킥복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야스키가 정리했던 바다 하리나 피터 아츠가 오히려 세미 슐트와 그럭저럭 대등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본야스키는 유독 세미 슐트에게 힘 한번 못 써보고 일방적으로 당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본야스키는 선방어 후공격을 지향했고, 특히 안면은 가드로 굳게 잠그는 대신 복부와 다리는 튼튼한 내구력을 믿고 대주면서 상대에게도 복부와 다리 쪽의 데미지를 돌려주는 스타일이었다. 턱도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복부나 다리에 데미지를 주어 본야스키를 쓰러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역으로 본야스키가 데미지를 돌려주어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었던 경우가 대부분. 그런데 세미 슐트는 슈퍼헤비급 체격에서 나오는 파괴력으로 본야스키의 철벽같은 복부를 앞차기나 니킥으로 아주 간단하게 뚫어버렸고(...), 서로 로우킥을 주고 받아도 본야스키가 압도적으로 데미지가 컸다. 한 마디로 슐트와는 똑같이 공방을 주고 받으면 딜교가 안 되는데, 본야스키는 선방어 후공격 스타일이 완전히 몸에 밴 선수라 세미 슐트에게 유독 약했던 것. 게다가 중요한 건 세미 슐트가 본야스키의 방어벽을 부술 능력 정도는 갖고 있었다는 것. 결국 말도 안되는 방어력이 자꾸 본야스키의 발목을 잡은 셈이고 그게 본야스키가 세미 슐트만 만나면 쪽도 못 쓰는 이유였다.

3.1. 세미 슐트에 버금갔던 안티

로블로에 대한 어필이 지나치게 과도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물론 관중석에서는 진짜로 맞은 것인지 스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역대 본야스키 경기 중 엄살 논란이 없었던 로블로는 누가 봐도 직격타였던 스테판 레코의 뒤돌려차기 로블로를 제외하면 없었으며, 상식적으로 본야스키 혼자 다른 선수들과 비교될 정도로 독보적인 횟수의 잦은 로블로가 발생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입식이든 종합이든 대부분의 격투기 선수들이 경미한 로블로가 스치면 스탑 사인을 보내고 심판에게 어필하여 잠시 로프나 케이지에 기대서 회복한 뒤 경기에 임한다. 하지만 본야스키는 로블로를 당하면 그대로 반칙 몰수패를 유도했기 때문에[8] K-1 팬들 중에도 격투가 정신이 없다 혹은 졸렬하다며 반감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반칙 상황 이전까지 바다 하리와 나름 팽팽했던[9][10] 08년도 WGP 우승을 인정하지 않는 안티들도 많다.

K-1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K-1 선수들 중에도 안티가 많았다. 실제로 알리스타 오브레임[11], 최홍만[12], 바다 하리, 멜빈 만호프, 스테판 레코 등이 과도한 판정의 집착을 지적하며 무도가 정신내지는 스포츠맨쉽이 떨어진다며 이를 비난한 일도 있다. 로블로를 고의로 하는 막장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과 동업가인 파이터들이 지적한 점, 그리고 본야스키와의 3차전에서 레코의 로블로 어필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안티들이나 척을 진 선수들이 주장하는 대로 본야스키의 로블로가 엄살이었을 가능성도 꽤 높다.

판정 머신이라고 욕을 자주 먹었던 무사시조차 07년 아시아 그랑프리에서 박용수와 왕캉에게 총 4번의 로블로를 직격받으면서도 경기에 끝까지 임했던 것과 매우 대조되는 자세. 무사시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직격타 수준의 심각한 로블로 내지는 로블로에 의한 닥터 스탑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의 선수들은 경기를 속행한다. 로블로로 악명높은 명현만도 더 칸 시절, 카오클라이와의 경기 중 미들킥에 의해 두번의 로블로가 스쳤지만 30초 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애초에 팬들은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선수들의 경기를 보러 왔는데 누가 봐도 그냥 파울컵을 스친듯한 로블로 어필로 경기의 맥이 끊기는 것도 모자라 아예 거기서 경기가 중단되어버리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타 선수들조차 본야스키를 꽤 싫어했었던 듯 하다. 어느 정도로 싫어했냐면 바다 하리는 2008년 WGP결승 중 늘 그렇듯 화를 못이겨 슬립 다운된 본야스키를 파운딩과 스텀핑 킥으로 폭행하며 반칙패를 당했고[13], 오브레임은 그의 로블로 어필을 보며 오스카 남우 주연상을 줘야한다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본야스키의 로블로에 관해서는 스테판 레코와의 악연이 가장 특별히 뿌리깊다. 과거에도 두 선수의 경기 중 로블로 어필이 나온 적이 있었고, 로블로 어필 직후 레코의 뒤돌려차기로 또다시 로블로가 나와 경기 진행이 굉장히 지연되기도 했다.[14] 후에 K-1 WORLD GP IN SEOUL 2007 개막전 인터뷰에서도 레코는 본야스키를 계집애라고 모욕한 일이있었고, 이후 경기 중 본야스키의 인사이드 로우킥이 파울 컵을 스치자[15] '너는 로블로를 직격당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스치기만 해도 판정을 위해 엄살을 부린다' 내지는 '나는 고작 이정도 로블로로 너처럼 로블로 사인을 보내 엄살을 부리지 않는다'[16]는 메시지가 담긴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안티들 입장에선 아쉽게도 본야스키와 척을 졌던 선수들은 모두 본야스키에게 졌거나 상대전적이 밀린다. 오브레임은 본야스키전에서 그를 이길 것이라 확신했는지 오스카상을 가지고 왔었는데, 패배 후 되돌려받는 굴욕까지 겪었다. 본야스키를 더더욱 좋지 않게 생각하는 팬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 순수하게 실력으로 붙어도 충분히 이길만하고, 실제로 이긴 적도 많은데 로우블로로 엄살을 부리거나, 상대 반칙패를 유도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니 더더욱 꼴사납게 보이는 것.

바바 야스시의 만화 공수도소공자 코히나타 미노루에서 제라르 벨트런의 KOS 결승전 상대로 본야스키를 모델로 한 돈야스키(...)라는 엑스트라 낙무아이가 나오는데 플라잉 니를 시도하다가 카운터성 펀치를 맞고 KO패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맞는 표정을 리얼하면서도 상당히 추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린 걸 보면 바바 야스시도 본야스키의 안티였던듯(...) 참고로 나중에 천만홍과의 매치업 포스터에서 또 엑스트라로 나온다. 포스터에서의 평범한 얼굴 역시 고의로 순혈 흑인 특유의 두터운 입술같은 얼굴 특징만 살려 바보느낌이 들게 그린 것으로 봐선 빼박.

4. 기타

  • 바다 하리가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선수이지만[17] 반대로 입식 한정 최종 보스세미 슐트한테는 항상 압도당했다.[18] 2009 파이널 매치에서 1라운드 6초만에 레프트 훅으로 다운을 빼앗기도 했으나 결국은 얻어맞다가 패배했다.# 그리고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피터 아츠, 바다 하리는 패배를 한번씩 맛보았지만 레미 본야스키는 승리했다.
  • 2005년 최홍만에게 판정으로 이긴 적이 있다.최홍만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본야스키를 검은 콩이라고 했다
  • K-1 프로듀서는 오브레임 vs 본야스키의 대결을 앞두고 K-1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 '라고 평했다. 오브레임이 계속해서 탑 컨덴더들을 잡아내면서 비상불이 켜져있던 시기였기 때문. 다행히도 본야스키가 오브레임의 요격을 끊어냈다.[19]
  • 상당한 장신임에도 균형잡힌 몸매에 잘생긴 외모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나 링 밖의 설전에서도 겸손하고 매너가 좋아서 "플라잉 젠틀맨"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그리하여 처음 챔피언이 된 2003년도부터 2005년까지만 해도 K-1의 대표적인 인기스타였다. K-1 하면 플라잉 니킥을 떠올리게 만든 장본인이었을 정도이니... 다만 2006년부터는 위에 서술했듯 안티도 만만치 않았다.
  • 몸매가 균형잡히고 키가 커 늘씬해보여서 실제 모습이 호리호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직접 만나보면 솥뚜껑만한 거대한 손과 엄청나게 두꺼운 몸통과 코어 근육에 놀라게 되는 떡대의 파이터였다.
  • 축구선수 루이 사하와 외모가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국내 축구 팬들에게 사하가 격투기 선수로 투잡을 뛴다는 드립도 있었을 정도.
  • 굉장한 동안이다.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최근 사진을 보면 전성기 시절 젊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목소리는 많이 늙은 티가 나서 인터뷰를 들어보면 얼굴은 젊은데 쉰 목소리가 나와서 위화감이 들기는 한다.


[1] 2003년, 2004년, 2008년[2] 2010년초 이미 언론 인터뷰로 눈에 안과 질환이 있어 그만하기로 했다는 말을 한 뒤, 몇년간 아무 대회도 출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4년 글로리에서 이벤트성 경기로 크로캅과 한 경기를 한 뒤, 기자회견에서 여러 기자들 앞에서 더 이상은 격투기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사실상 2009년 12월 경기를 실질적 은퇴로 본다.[3] 큰 대회가 아닌 작은 대회로 추정되며, 격투기 언론이 발달하지도 않았을때라 대중적으로 알려진 기록은 없다. 참고로 그는 격투기를 하면서도 은행원 생활을 했을만큼 인텔리 이미지가 있다.[4] 후에 본야스키는 2006년 K-1 Revenge에서 마이티 모를 이긴 뒤 인터뷰에서도 크로캅이랑 다시 시합하고 싶다 말했을 만큼 미련이 많이 남았던 모양.[5] 당시 준우승자는 03년, 04년 둘 다 무사시였다.[6] 신장은 슐트가 최홍만보다 약 6cm 더 작았다.[7] 당시 피터 아츠는 무사시와의 리저브 시합에서 이긴 뒤 빈둥빈둥 놀다가 오퍼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피터 아츠는 본야스키 대신 토너먼트에 합류하였고 글라우베 페이토자를 KO로 이긴 다음 결승전에서 세미 슐트를 상대하지만 판정패하여 준우승을 거둔다.[8] 설령 닥터 체크 후 시합을 재개해도 로블로는 감점사항인데다가 가격자의 인사이드 로킥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판정전에 매우 효과적이다.[9] 전체적으로 봤을 땐 바다 하리는 1라운드에서 기습 플라잉 니에 한차례의 다운을 빼앗겨 본야스키가 앞서고 있었지만, 레미의 페이스에 끌려다니던 1차전과는 달리 2라운드에서 폭풍같이 어그레시브한 하리 특유의 리듬으로 몰아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리의 리벤지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어이없게 반칙패로 끝난 이 결승전은 굉장히 김빠지는 결말이었다. 본야스키의 팬들은 이 때 하리의 유효타가 없었던 점을 들어 반칙 없이 그대로 진행했더라도 하리가 졌을거라고 보며 실제로 하리는 이미 데미지를 꽤 받은 상태였다. 물론 2라운드에서 하리 또한 로우킥을 제법 쌓은데다가 가드 위로 때렸다곤 하지만 슬립다운이 될 정도로 강력하게 몰아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리의 패배를 단언 할 수는 없는 경기이긴 했다.[10] 물론 하리가 평생까임권을 얻을만한 짓을 했다는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본야스키가 결승전 속행 의사를 밝히지 않아 결승전이 싱겁게 마무리 된 것에 대해서는 본야스키의 스포츠맨쉽 정신에 대해 조금 말이 많이 나왔다. 알다시피 WGP결승전은 K-1의 메인 중 메인 매치이며 어느 격투기 단체를 가도 메인 매치의 NC나 반칙패 등은 최악의 상황으로 여긴다. 차라리 하리에게 큰 페널티 점수를 주더라도 경기는 속행했어야 했다는 여론이 많았다.[11] 근데 정작 이분은 고의 로블로 논란이 좀 있으시다... 특히 미르코 크로캅과의 경기에서[12] 근데 정작 이분 역시 본야스키의 스포츠맨쉽을 지적했던 인터뷰 이후 마이티 모와의 2차전에서 로블로 논란을 만들었다(...)[13] 물론 위에 서술했다시피 당연히 바다 하리가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14] 이 때 뒤돌려차기 각도 때문에 과도한 로블로 어필에 화가 난 레코가 고의로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었다[15] 우연히도 06년 레코vs본야스키 2차전 때 스테판 레코의 로블로가 거의 비슷하게 들어갔었다. 이 때 본야스키는 특유의(...) 자지러지는 로블로 어필을 했다. 레코는 스쳤을 뿐인데 엄살을 부린다고 항의했다.[16] 이는 06년 2차전에서 발생한 거의 비슷한 로블로에 대해 어필을 하던 본야스키에 대한 조롱이기도 했다.[17] 바다 하리는 세미 슐트를 1차전에서 한 번 ko로 잡았고,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패배한 후에 리벤지에 성공했다.[18] 바다 하리와 피터 아츠는 한번씩 세미 슐트를 꺾어보았지만 레미는 단 한번도 슐츠에게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19] 헌데 이 때 오브레임이 입식에선 보기 드문 괴상한 클린치 타격과 뺨클린치 니킥 반칙 등을 구사했기 때문에 오브레임전에 대해서는 클린치 타격에 감점이나 경고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한 팬들의 불만도 있었다. 실제로 패전한 선수들의 경기 양상을 보면 괴상한 클린치 타격에 공방의 흐름이 말려들어가는 양상이 많았는데, 본야스키전 이전까지 오브레임에게 반칙성 경고가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것에 대해선 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