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시티 FC 관련 문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0b56a4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373A3C,#DDDDDD | <colbgcolor=#0053a0><colcolor=#fff> 구단 | 레스터 시티 FC · 레스터 시티 WFC |
역사 | 역사 · 역대 유니폼 · 기록 · 응원가 | |
선수단 | 스쿼드 · 스쿼드(간략) | |
역대 시즌 | 2014-15 · 2015-16 /리그 · 2016-17 /리그 · 2017-18 · 2018-19 · 2019-20 /리그 · 2020-21 /리그 /FA컵 · 2021-22 /리그 · 2022-23 /리그 · 2023-24 /리그 · 2024-25 /리그 | |
더비 매치 | ||
구단 시설 | 킹 파워 스타디움 · 필버트 스트리트 | |
관련 인물 | 위차이 시왓타나쁘라파 · 아이야왓 시왓타나쁘라파 · 역대 감독(1대~40대) · 역대 감독 · 레스터 시티 FC 100인의 선수들 | |
관련 구단 | ||
기타 | 레스터 시티 헬기 추락 사고 | |
파트너 |
1. 개요
레스터 시티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2004) |
2. 창단과 요요클럽
1914-15 시즌 선수단 |
1894년 풋볼 리그 가입 이후 한동안 2부 리그에서 놀다가 1908년에 1부 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한 시즌만에 강등되었다.[1]
1919년 레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바꾼 후 피터 호지 감독의 지휘 아래 1925년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 1부 리그로 승격하여 짧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1927-28 시즌에는 3위를, 1928-29 시즌에는 2위를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2016년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 전 까지의 팀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다. 또한 이 당시 선수단에는 현재까지도 레스터 시티 역대 최다 득점자인 최고의 스트라이커 아서 챈들러와 역대 리그 최다 출전자인 풀백 아담 블랙 등이 포함되어있었다.
이후 또다른 위대한 스트라이커인 아서 로울리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음에도 1~2부 리그를 전전하는 요요팀 신세를 지냈다.
3. 아이스 킹의 전성기
아이스 킹의 영원한 수장 |
특히 1962-63 시즌에는 18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고 잠시 리그 1위에 오르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하며 리그와 FA컵 더블을 노릴 정도의 팀이 될 정도로 성공했다. 당시 수십 년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었던지라 선수들은 얼음 위에서 경기를 했음에도 18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했고, 언론들은 여기서 유래하여 레스터에게 아이스 킹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리그는 마지막 5경기에서 1점만 따며 4위로 시즌을 마쳤고, FA컵은 맨유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영국 축구 최초로 세트피스를 실험하는 맷 길리스 감독의 전술은 영국 축구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맨유의 맷 버스비 감독은 "조심해야 할 팀은 단 하나, 레스터 시티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고, 당시 2부리그 소속의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인 빌 샹클리는 길리스의 전술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67-68 시즌, 뱅크스가 스토크 시티로 떠났고, 다음 시즌인 1968-69 시즌에는 초반의 부진과 병환과 길리스 감독마저 사임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1969년에 3번째로 진출한 FA컵 결승전에서 맨시티에게 1대 0으로 패배했고, 리그에서는 22팀 중 21위로 강등당하며 12년간의 긴 1부리그 생활이 끝이났다.
4. 또다시 요요클럽과 침체기
그 뒤 지미 블룸필드 감독의 부임후 전시즌 2부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채리티 실드를 우승하였고 7년간 감독직을 맡으며 키스 웰러, 프랭크 워싱턴, 앨런 버셔널[3] 등과 함께 레스터를 다시 1부리그 궤도로 올려놓았다.이후 블룸필드의 후임으로 부임한 구단 레전드 프랭크 맥린톡이 역대 최악의 감독이라는 오명을 들으며 레스터를 강등시켜 레스터는 다시 요요클럽으로 세월을 보내다 1978년에 레인저스를 이끌었던 명장 조크 월러스가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게리 리네커를 1군으로 콜업하여 리빌딩을 시작, 1982년에 코번트리 시티를 7년 동안 지휘했던 고든 밀른 감독의 지휘 아래 1983년에 1부 리그로 승격하였다. 1부 리그에서 중하위권을 마크하다 리네커가 떠난 직후인 1986-87 시즌에 2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2부 리그에서도 겨우 중하위권을 유지했고, 1990-91 시즌에는 리그 22위를 기록하며 강등 턱밑까지 갔다.[4]
5. 마침내 이루어낸 승격
1991년에 브라이언 리틀이 감독으로 취임한 뒤 스티브 월시를 중심으로 리빌딩을 시작하여 곧바로 전시즌 대비 18계단이나 오른 리그 4위를 기록,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결승까지 갔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내주어 블랙번 로버스에게 26년만에 1부리그 승격을 내주었다.[5]다음 시즌인 1992-93 시즌에도 리그 6위를 기록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에서 스윈던 타운에게 후반 57분까지 3:0으로 끌려가다가 12분만에 3골을 때려박으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규시간 6분을 남겨놓고 이번에도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내주어 실점하였고, 또다시 프리미어 리그 진출이 막혔다.
그리고 또다시 1993-94 시즌에는 4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다시 진출하였다. 결승 상대는 다름 아닌 이스트 미들랜즈 라이벌 팀 더비 카운티였다.
1993-94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 1994년 5월 30일 월요일 23:00(BST+8) |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 ||
주심: 로저 밀포드 | ||
관중: 73,671명 | ||
| 1 : 2 | |
더비 카운티 | 레스터 시티 | |
<rowcolor=#000,#ddd> 28' 토미 존슨 (A. 폴 심슨) | | 41', 84' 스티브 월시 (A. 41' 게리 코스워즈, 84' -) |
경기 하이라이트 |
6. 갑작스레 닥친 불운, 그리고 등장한 난세의 영웅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 직후에 불운이 찾아왔는데, 1994년 12월에 브라이언 리틀 감독이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는 바람에 팀은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8] 후임으로 마크 맥기 감독이 부임했으나 리그 42경기에서 단 6승만을 거두며 1994-95 시즌 21위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강등당했다.그렇게 2부리그로 강등되었지만 레스터의 보드진들은 맥기를 밀어주었고, 2부리그 1위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1995년 12월, 이번에는 맥기가 갑자기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떠났고, 1995년에 마틴 오닐이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오닐은 취임 뒤 리빌딩을 거듭하였고, 비록 리그 1위는 아닐지라도 리그 5위를 기록하며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995-96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 1996년 5월 27일 월요일 23:00(BST+8) |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 ||
주심: 데이비드 앨리슨 | ||
관중: 73,573명 | ||
| 1 : 2 | |
크리스탈 팰리스 | 레스터 시티 | |
<rowcolor=#000,#ddd> 14' 앤디 로버츠 (A. 레이 호튼) | | 76' (PK) 게리 파커 120' 스티브 클라리지 (A. 줄리안 왓츠) |
경기 하이라이트 |
7. 두 번째 전성기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끈 마틴 오닐 감독 |
7.1. 1997 코카콜라컵 우승
이 중 첫 번째 우승이었던 1996-97 시즌, 승격 첫 해였던 레스터는 리그에서 중상위권 팀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코카콜라컵 결승에 진출하여 미들즈브러와 만나게 되었다. 1996-97 코카콜라컵 결승전 1997년 4월 6일 일요일 23:00 (BST+8) |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 ||
주심: 마틴 보든햄 | ||
관중: 76,757명 | ||
| | |
레스터 시티 | 미들즈브러 | |
1 | 1 | |
118' 에밀 헤스키 | | 95' 파브리치오 라바넬리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스티브 월시 |
1996-97 코카콜라컵 결승전 재경기 1997년 4월 17일 목요일 04:45 (BST+8) | ||
힐스버러 스타디움 (셰필드) | ||
주심: 마틴 보든햄 | ||
관중: 39,428명 | ||
| | |
레스터 시티 | 미들즈브러 | |
1 | 0 | |
100' 스티브 클라리지 (A. 스티브 월시) | |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스티브 월시 |
7.2. 2000 워딩턴컵 우승
1999-2000 워딩턴컵 결승전 2000년 2월 27일 일요일 23:00 (GMT+9) |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 ||
주심: 앨런 윌키[11] | ||
관중: 74,313명 | ||
| | |
레스터 시티 | 트란메어 로버스 | |
2 | 1 | |
29', 81' 맷 엘리엇 (A. 29', 81' 스티브 구피) | | 77' 데이비드 켈리 (A. 앤디 파킨슨) |
- | | 63' 클린트 힐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맷 엘리엇 |
8. 몰락, 그리고 암흑기
그렇게 승승장구하나 싶었지만, 2000-01 시즌을 앞두고 에이스 에밀 헤스키가 리버풀로 떠났다. 게다가 마틴 오닐 감독이 셀틱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이 과정에서 주축이었던 닐 레넌과 스티브 구피도 셀틱으로 이적갔다. 후임으로 부임한 피터 테일러는 시즌 초반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내지 우승권에도 올랐으나 후반기 뒷심 부족으로 29R부터 36R까지 리그 8연패를 기록하는 등 최종 1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거기에 2001-02 시즌에는 구장 신축으로 인한 재정 악화까지 겹치며[12] 이전 시즌 후반기의 부진과 이적시장 실패를 극복하지 못 하고 2001-02 시즌에 최하위로 강등당하고 말았다.[13][14]새 구장으로 이전한 뒤 2002-03 시즌 한 시즌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지만, 2003-04 시즌 재강등당했다. 이 2003-04 시즌 5라운드 리즈 유나이티드에 4-0 대승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지만 곧바로 5연패에 빠지며 꼴찌로 추락했다. 특히 10라운드 울버햄튼 원정에서는 전반 3-0으로 이기던 경기를 후반에 4실점하며 4-3 대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11월에는 블랙번과 맨시티, 포츠머스를 상대로 3승을 거두며 12위까지 올랐고 12월 첫 경기에서 아스날에 1-1 무승부를 거뒀지만 2003년 12월부터 2004년 4월까지 22경기 1승 12무 9패로 부진했다. 결국 36라운드 찰튼 원정에서 2-2 무승부로 결국 한 시즌만에 강등되고 말았다. 강등 확정 후 37라운드 포츠머스와의 홈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포츠머스를 상대로만 2경기 모두 승리를 거뒀다. 최종전은 무패우승이 걸린 아스날과의 원정경기였는데 폴 디코프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역전패를 당하며 아스날 무패우승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6승 15무 17패로 승점 33점을 기록했는데 19위 리즈 유나이티드, 20위 울버햄튼과 승점이 같았다. 폴 디코프가 12골, 노장 레스 퍼디난드가 11골, 마커스 벤트가 9골을 넣고 무지 이제트가 14개의 어시스트로 리그 도움왕에 올랐지만 강등에서 구하기는 역부족이었다. 2003-04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강등당한 뒤 하부 리그의 시즌이 계속되었다.
9. 킹 파워의 인수
승격 후 첫 시즌인 2009-10 시즌, 극강의 홈 어드밴티지를 바탕으로 리그 5위에 오르며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물론 4강에서 카디프 시티에 패하며 승격은 좌절됬으나, 충분히 박수 받을만했다. 그러나 구단주 밀란 만다리치와 피어슨 사이의 갈등이 빚어졌고, 끝내 피어슨이 감독직을 사임하고야 말았다.새로운 구단주와 부구단주 |
그 사이 2010년 11월 30일, 회장이었던 밀란 만다리치가 결국 회장직을 사임하였고, 2011년 2월 10일에 위차이 시왓타나쁘라파가 회장직에 올랐다. 해당 시즌은 최종 10위로 마무리되었다.
다음 시즌인 2011-12 시즌, 레스터는 유력한 우승 후보임에도 13경기에서 단 5승만 거두었고, 에릭손 감독은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그리고 후임으로 다시 피어슨을 선임하였다. 최종 9위로 마무리.
그리고 다음 시즌인 2012-13 시즌, 레스터는 2013년 2월 초에 리그 2위에 오르는 등 승격이 눈앞에 왔으나 후반기에 갑작스럽게 페이스가 떨어지며 최종전 기적을 쓰며 겨우겨우 6위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9.1. Here's Hogg... DEENEY
2012-13 엔파워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4강 1경기 2차전 2013년 5월 12일 목요일 20:30(BST+8) | ||
비커리지 로드 (왓포드) | ||
주심: 마이클 올리버 | ||
관중: 16,142명 | ||
| 3 : 1 (3 : 2) | |
왓포드 | 레스터 시티 | |
15', 65' 마테이 비드라 (A. 15' 크리스티안 바토키오, 65' 트로이 디니) 90+7' 트로이 디니 (A. 90+7' 조너선 호그) | | 19' 데이비드 뉴젠트 (A. 19' 매티 제임스) |
경기 하이라이트[왓포드] | 매치 리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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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0. 11년만의 복귀, 그리고 기적
그리고 승격 첫 시즌인 2014-15 시즌, 레스터는 압도적인 꼴지를 기록하며 사실상 강등 후보 1순위로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러나 4월부터 기적을 만들어냈고, 일명 대탈출(The Great Escape)에 성공했다. 이렇게 힘겨운 잔류싸움 끝에 뒷심을 보이며 다음 시즌을 EPL에서 맞게된 2015-16 시즌, 여전히 유력한 강등 후보 1순위로 지명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비록 리그 우승 다음 해에는 다시 순위가 중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복귀했지만, 이후 적극적인 선수 영입과 감독 교체 등을 통해 비교적 얇은 뎁스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 리그-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왔다갔다하며 빅6를 긴장하게 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9-20 시즌, 2020-21시즌에 시즌 막판까지 가는 치열한 4위권 경쟁 끝에 5위를 기록하였고 2020-21시즌에는 첼시를 꺾고 창단 첫 FA컵을 우승하기도 하였다.
11.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11.1.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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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14위
- FA컵: 16강
- 캐피탈 원 컵: 2라운드(48강)
- 감독: 나이젤 피어슨
11.2.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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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꿈만 꾸는 것은 싫다. 이젠 꿈을 현실로 만들 차례다.
-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그 누구도 예상못한 강등권 팀의 우승, 그것도 팀 역사상 최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라는 영화와 같은 업적을 달성한 시즌. 영국 베팅 사이트에 의하면, 레스터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할 확률은 5000분의 1로, 이는 동전을 던져서 옆으로 서 있을 확률과 비슷하다. 세계의 축구 팬들이 놀란 이변으로, 실제로 제이미 바디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마저 제작되고 있다. 만약 축구계의 최고의 이변을 뽑으라 한다면 축구팬들의 100이면 100 레스터 시티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뽑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더독이 가끔가다가 강팀을 어쩌다가 한 번씩 잡을 때는 간간히 있어도, 이것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강팀이 즐비한 EPL에서 이 성과를 한 시즌 내내 지속시키며 우승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 프리미어 리그: 우승
- FA컵: 64강
- 캐피탈 원 컵: 16강
-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11.3.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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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프리미어 리그: 12위
- FA컵: 16강
- EFL컵: 3라운드
-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 FA 커뮤니티 실드: 준우승
-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경질) →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11.4.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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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프리미어 리그: 9위
- FA컵: 8강
- 카라바오컵: 8강
- 크레이그 셰익스피어(경질) → 클로드 퓌엘
11.5.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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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프리미어 리그: 9위
- FA컵: 64강
- 카라바오컵: 8강
- 감독: 클로드 퓌엘(경질) → 브렌던 로저스
11.6.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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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1.7.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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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
- 프리미어 리그: 5위
- FA컵: 우승
- 카라바오컵: 32강
- UEFA 유로파 리그: 32강
- 감독: 브렌던 로저스
11.8.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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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프리미어 리그: 8위
- FA컵: 32강
- 카라바오컵: 8강
- UEFA 유로파 리그: 조별예선 3위 →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4강
-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 감독: 브렌던 로저스
11.9.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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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그야말로 충격적인 강등이다. 시즌 개막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레스터가 강등될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었다. 그러나 프리시즌 들어 슈마이켈과 포파나 등 주요 선수들이 이탈하는 와중에도 보강은 미미했고, 시즌 내내 로저스의 전술적인 부진이 겹치며 좀처럼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선수들의 폼도 떨어지며 고전했고, 보드진 역시 로저스를 너무 신뢰하다가 경질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로저스가 자진 사임으로 물러났고, 로저스만 바라보던 보드진은 새 감독을 구하는데도 시간을 써야 했다. 부랴부랴 딘 스미스를 선임했지만 때는 늦었고, 결국 10년 만에 2부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11.10. 2023-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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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등 후 챔피언십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시즌. 시즌 초중반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페이스를 보여주며 단독 선두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는가 싶었지만, 중후반부터 급격히 페이스가 망가지면서 리즈와 입스위치에게 밀려 3위까지 추락하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리즈와 입스위치가 시즌 종료를 앞두고 동시에 기세가 완전히 꺾여버렸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하는데 성공해 트로피를 따냄과 동시에 1시즌 만에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이루어 냈다.
11.11. 2024-2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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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1.11.1. 판니스텔로이 체제
뤼트 판니스텔로이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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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그당시 리그 최다 실점인 102실점을 기록했다. 이기록은 1930-31시즌 블랙풀이 125실점을 기록하면서 깨졌는데 블랙플은 1부리그에 잔류했었다. 이후 2023-24시즌 셰필드 유나이티드 FC가 104실점을 기록했다.[2] 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1968년 여름에 레스터는 잠비아 축구 협회의 초청을 받아 잠비아를 순회하며 6경기를 치루었는데, 당시 잠비아의 대통령이던 케네스 카운다는 잠비아 축구 협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행사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3] 현재까지도 레스터 시티의 하프타임쇼에 출연하며, 레스터 시티 유일의 클럽 엠버서더이다.[4] 이것도 리그 개편으로 강등이 한 자리 줄어 망정이지 개편 전이었다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3부리그 강등을 당할 뻔했다.[5] 여담으로 당시 페널티킥을 유도해낸 블랙번의 공격수 데이비드 스피디는 레스터 팬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시즌 레스터에 합류했다.[6] 게다가 더욱 극적이었던 것은 지난 두 시즌의 두 번의 석연찮은 페널티킥 모두 월시가 내준 것이었으며, 1993-94 시즌 월시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의 반 이상을 날렸었다.[7] 다만 동점골 당시 레스터의 공격수 이완 로버츠가 더비의 골키퍼 마틴 테일러를 쳤지만 심판의 오심으로 골이 인정되긴했다.[8] 아무래도 리틀 감독이 선수 시절 커리어의 전부를 보냈던 빌라의 러브콜이었기에 쉽게 거절하지 못 한 것을 보인다.[9] 후에 인터뷰에 따르면 이 슛은 빗맞은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되려 빗맞은 탓에 팰리스의 골키퍼 나이젤 마틴이 역동작에 걸려 원더골로 연결되었다.[10] 이 당시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인 아스날전 3:3 무승부도 이 기간 중 하나인 1997-98 시즌에 나왔다.#[11] 후반 62분에 종아리 부상을 입고 대기심 필 리차즈로 교체[12] 2002년 22,000석 규모의 필버트 스트리트(Filbert Street) 구장에서 현재의 구장으로 이전했다. 현재의 구장명은 네이밍 라이트를 팔아 얻은 이름으로 2011년까지 레스터의 지역 기업인 감자칩 업체 워커스(펩시코 계열)가 네이밍 라이트를 가져 워커스 스타디움으로 불렸다.[13] 이 때 메인 스폰서가 LG전자였다. # 그러나 불과 한 시즌 만에 강등되자 LG전자 측에서는 당혹스러워 했다고 한다.[14] 토트넘과의 최종전이 필버트 스트리트에서의 마지막 홈경기였는데 2-1로 승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15] 이때 레스터의 골득실은 불과 -3이었다. 최종전 스토크 원정에서 0:0 무승부에 그치고 스토크 시티의 승격파티가 벌어진 상황에서, 최종전 전까지 강등권인 22위였던 사우스햄튼은 마지막 경기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승리하여 레스터를 끌어내리고 3부 리그 강등을 피했다.[16] 원래 다른 성이었는데 태국 왕에게 현재의 성을 하사받았다.[17] 태국 공항에 가면 가득한 킹 파워 면세점이 가장 친숙할 것이다. 관광 산업으로 먹고 사는 태국에서 제일 큰 여행 관련 기업 그룹이다.[18] 공식적으로는 Asia Football Investments 컨소시엄에게 팔렸다.[19] 이 시기 구단주는 킹 파워였지만 회장은 아직 밀란 만다리치였다.[왓포드] 왓포드 공식 유튜브 하이라이트[21] 데이비드 뉴젠트, 제이미 바디 투톱의 활약이 컸다.[22] 면세점 기업인만큼 당연히 관광 산업이 핵심 수입원인데, 코로나로 인해 관광 산업 자체가 극도의 침체기에 빠져버렸다....그래도 이때까지 꽤 투자를 많이 해줬고 레스터를 우승까지 시켜준지라 울버햄튼, 인테르 등의 구단주들에 비해 욕은 거의 안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