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6:21:10

레이 크록

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건설자들 & 거인들 부문 #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981207_400.jpg
에스티 로더 헨리 포드 루이스 B. 메이어 아마데오 지아니니 데이비드 사르노프
찰스 메릴 스티븐 벡텔 월트 디즈니 후안 트립 러키 루치아노
윌리엄 레빗 윌터 루서 레오 버넷 토머스 왓슨 주니어 레이 크록
윌리스 캐리어 피트 로젤 모리타 아키오 샘 월튼 빌 게이츠
같이 보기: 지도자 & 혁명가 부문, 과학자 & 사상가 부문, 예술가 & 연예인 부문, 영웅 & 아이콘 부문 }}}}}}}}}

파일:LIFE_LOGO.pn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90년 미국의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인을 선정했다. 순위는 없으며, 만장일치로 선정된 인물은 헨리 포드라이트 형제뿐이다.
제인 애덤스
<사회 개혁가>
무하마드 알리
<권투선수, 인권 운동가>
엘리자베스 아덴
<사업가>
룬 알레지
<방송 경영자>
루이 암스트롱
<재즈 뮤지션>
조지 발란신
<안무가>
존 바딘
<물리학자>
어빙 벌린
<작곡가>
에드워드 버네이스
<홍보 책임자>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가, 지휘자>
말론 브란도
<배우>
베르너 폰 브라운
<로켓 공학자>
데일 카네기
<작가>
월레스 캐러더스
<발명가, 화학자>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에어컨 발명가>
레이첼 카슨
<작가, 해양생물학자>
빙 크로스비
<가수, 배우>
클래런스 대로
<변호사>
유진 데브스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자>
로버트 더그래프
<포켓북 창업자>
존 듀이
<철학자>
월트 디즈니
<기업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W. E. B. 듀보이스
<NAACP 설립자>
앨런 덜레스
<CIA 국장>
밥 딜런
<포크 뮤지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시인>
윌리엄 포크너
<소설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교육자>
헨리 포드
<기업가>
존 포드
<영화감독>
베티 프리댄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
밀턴 프리드먼
<경제학자>
조지 갤럽
<여론 분석가>
아마데오 지아니니
<은행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
마사 그레이엄
<댄서, 안무가>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영화감독>
조이스 홀
<사업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가>
올리버 홈스 주니어
<법학자>
존 에드거 후버
<FBI 초대 국장>
로버트 허친스
<교육자>
헬렌 켈러
<인권 운동가>
잭 케루악
<시인, 작가>
빌리 진 킹
<인권 운동가, 테니스 선수>
마틴 루터 킹
<목사, 인권 운동가>
알프레드 킨제이
<성과학자, 생물학자>
빌렘 콜프
<생명과학자>
레이 크록
<맥도날드 창업자>
에드윈 랜드
<과학자, 발명가>
윌리엄 레빗
<부동산 개발업자>
존 L. 루이스
<노동당 지도자>
찰스 린드버그
<비행기 조종사>
레이먼드 로이
<산업 디자이너>
헨리 루스
<편집자>
더글러스 맥아더
<군인, 정치인>
조지 C. 마셜
<군인, 정치인>
루이스 B. 메이어
<영화 제작자>
클레어 매카델
<패션 디자이너>
조지프 매카시
<변호사, 정치인>
프랭크 맥너마라
<신용카드 발명가>
마거릿 미드
<인류학자>
칼 메닝거
<정신과 의사>
찰스 E. 메릴
<주식 중개인>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가>
로버트 모세
<공무원>
윌리엄 멀홀랜드
<토목 기사>
에드워드 R. 머로
<종군기자>
랠프 네이더
<소비자 보호가, 환경보호가>
라인홀드 니부어
<윤리학자>
존 폰 노이만
<물리학자, 수학자>
유진 오닐
<극작가, 작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물리학자>
윌리엄 S. 페일리
<방송 경영자>
잭슨 폴록
<화가>
에밀리 포스트
<소설가, 작가>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재키 로빈슨
<야구선수>
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
<기업가>
리처드 로저스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뮤지컬 작곡가, 작사가>
윌 로저스
<배우, 작가>
엘리너 루스벨트
<FDR의 아내, 사회운동가>
베이브 루스
<야구선수>
조너스 소크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
마거릿 생어
<사회운동가>
앨프리드 P. 슬론
<사업가, 산업가>
벤자민 스팍
<소아과 의사>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사진작가>
로이 스트라이커
<공무원, 사진작가>
빌 윌슨
<AA 창립자>
앤디 워홀
<화가>
얼 워런
<대법원장>
제임스 듀이 왓슨
<생물학자, 유전학자>
토머스 왓슨 주니어
<사업가, 정치인>
테네시 윌리엄스
<극작가>
월터 윈첼
<신문기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라이트 형제
<최초의 비행기 제작자>
말콤 엑스
<인권 운동가>
출처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bordercolor=#2f241d> 파일: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로고.svg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명예의 전당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랜디 존스 네이트 콜버트 레이 크록 데이브 윈필드 버지 버베이시
제리 콜먼 토니 그윈 딕 윌리엄스 트레버 호프먼 베니토 산티아고
게리 템플턴 테드 윌리엄스 켄 캐미니티 잭 매키언 케빈 타워스
래리 루치노 테드 레이트너 제이크 피비 존 무어스
}}}}}}}}}}}} ||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레이 크록
Ray Kroc
파일:Ray_kroc_1976.jpg
본명 레이먼드 앨버트 크록
Raymond Albert Kroc
출생 1902년 10월 5일
미국 일리노이 오크 파크
사망 1984년 1월 14일 (향년 81세)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배우자 에델 플레밍(1922년 결혼 – 1961년 이혼)
제인 도빈스 그린(1963년 결혼 – 1968년 이혼)
조안 크록(1969년 결혼 – 1984년 사별)
자녀 딸 마릴린 크록 바그(1924년 – 1973년)
직업 기업인
정당

1. 개요2. 생애3. 활동4.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기업인. 맥도날드의 초대 회장이었다.

2. 생애

맥도날드를 통째로 날먹하기 이전에는 그저 세일즈맨이였고 맥도날드 형제와 악연이 시작인 만남 당시에는 믹서기 판매원이었다. 다짜고짜 맥도날드 형제가 비싼 믹서기를 6개에서 8개 달라고 할 정도로 공격적인 구매에 궁금증을 느껴 방문해보니 햄버거가 30초만에 나오는 획기적인 시스템과 효율화된 작업 라인 그로 인한 적은 종업원수를 보고 매우 획기적이라 여기며 맥도날드 형제에게 접근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보자며 꼬드기기 시작하며 악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맥도날드 형제가 갑인 상황이었고 레이는 낮은 로열티를 받는 악조건이지만 보조를 맞췄고 점차 이율성을 중시한 레이의 독선적인 운영과 냉동 프렌치 프라이 도입을 비롯한 이율성보다 품질 및 맛을 중시한 맥도날드 형제랑 충돌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지점장과 식사에서 지점장의 아내인 조안 스미스에게 홀딱 빠진데다가 그 조안 스미스가 분말로 보관 가능한 밀크셰이크 파우더에 빠지면서 밀크셰이크 파우더 도입을 권하자 맥도날드 형제가 이를 결사반대로 1차 좌절, 본인의 부도가 눈 앞으로 오자 결별을 선택한다.

이에 소더본이라는 이한테 자문을 받은 결과, 맥도날드 라는 이름의 부동산 회사를 만든 뒤 맥도날드 운영을 할 부지를 구매한 이후 그 곳에 건물을 세워 맥도날드에게 임대하는 방식의 운영법을 조언하였고 이를 통해 지금의 맥도날드가 탄생했고 레이는 완전히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독립, 이후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는 직영점 외의 프랜차이즈 지점에 냉동 프렌치 프라이와 밀크셰이크 파우더를 보내자 형제들과 싸우는데 형제들은 이미 체급이 엄청 커진 레이를 상대로는 이길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구두약속으로 맥도날드 상표권과 브랜드명을 판매하였다. 문제는 레이 크록은 구두 약속인만큼 이를 쌩까며 지키지 않으며 날먹에 성공했다.

이렇게 맥도날드라는 브랜드를 날먹에 성공한 크록은 초대 회장이 되었고 자신을 지금껏 지지해주고 따라온 아내 에델 크록에게 맥도날드 주식 하나도 넘기지 않고 이혼으로 내쫓은 뒤 지점장의 아내였던 조안 스미스랑 재혼하였다. 한마디로 일생자체가 성공한 양아치에 가까운 인물이다. 게다가 골수 공화당원(보수) 성향에 일생을 봐도 매우 독선적인 경향이 심했던 인물이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정권때 복지를 줄여야 한다, 뉴딜정책은 폐지해야한다 며 반대만 일삼았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뉴딜정책 반대 및 복지축소를 위해 뇌물 즉, 로비활동하다가 걸려서 진짜 큰일 날 뻔 했다.

현재는 맥도날드의 초대 회장이자 설립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최근까지 상당히 미화되었으나 더 파운더라는 영화를 계기로 과거에 그가 저지른 악행이 서서히 주목받게되어 재평가되는 인물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의 세 번째 아내가 레이 크룩의 재산을 이용해 자선 사업가로 활동한다고 한다. 사실상 죽어서야 벌을 받은 셈

3. 활동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구단주를 역임하였다.

4.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