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로베르 기스카르 (생몰년도 : 1015년경 ~ 1085년) |
프랑스어 | Robert Guiscard (로베르 기스카르) |
시칠리아어 | Rubbertu lu Guiscardu (루베르투 루 귀스카르두) |
이탈리아어 | Roberto il Guiscardo (로베르토 일 귀스카르도) |
라틴어 | Robertus Guiscardus (로베르투스 귀스카르두스) |
11세기에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 발칸 반도에서 활약한 노르만족 출신 정복자.
19세기까지 이어지는 시칠리아 왕국의 창시자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또한 제1차 십자군 원정의 용맹한 지도자 중 하나인 타란토의 보에몽 1세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스카르는 라틴어 Viscardus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영리한", "교활한", "여우 같은" 혹은 "족제비 같은"이란 의미를 지니는데, 그의 영악함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한자어 간웅과도 의미가 통한다.
2. 생애
2.1. 정복자의 길
로베르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오트빌 가문의 탕크레드의 아들로 태어났다. 탕크레드의 12명의 아들 중 한 명으로 그중 로베르를 포함한 5명의 아들은 뛰어난 용병으로 이름을 날렸다. 형제가 많은 그는 노르만족의 관습대로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자신의 영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11세기 중반 형제 8명과 함께 남이탈리아로 건너가 용병으로 활동했다. 당시 남이탈리아는 동로마 제국의 영역이었는데 동로마는 셀주크 제국의 대대적인 침략을 당하고 있었기에 그 힘의 공백을 틈타 로베르는 남이탈리아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고 초기에는 미약했지만 남이탈리아에서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 그를 눈여겨본 교황 니콜라오 2세는 동로마 제국의 가톨릭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목적으로 로베르와 손을 잡게 되고 로베르는 교황에 의해 1057년 아풀리아 백작위에, 1059년 형 윙프레가 죽자 아풀리아,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공작에 봉해졌다.
이러한 작위 수여로 인해 그는 이들 지역을 정당하게 정복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되었다. 때마침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는 동로마 제국의 영역이었고, 시칠리아는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들의 영역이었고 이들은 가톨릭을 믿는 세력이 아니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에 로베르는 1060년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를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정복했고 1061년에는 시칠리아의 관문 메시나를 정복했다. 1071년 동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내 마지막 거점인 바리를 정복하고 이듬해에는 팔레르모를 정복하고 시칠리아에서 아랍인들을 몰아냈으며(노르만의 시칠리아 정복 전쟁) 1076년에는 랑고바르드 인이 통치하고 있는 살레르노를 빼앗아 자신의 수도로 삼는다. 이로써 이탈리아 남부 전역이 로베르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됐다.
2.2. 동로마의 제위를 탐하다
로베르의 군사적 성공에 위협을 느낀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하일 7세는 1073년 로베르와 자신의 아들과 로베르의 딸을 혼인시켜 이를 기반으로 동맹을 제안했고 로베르는 이를 승낙하고 딸인 헬레네를 제국으로 보냈으나 이 혼인은 로베르에게 동로마 제위를 탐하게 하는 구실이 되어버렸다.미하일 7세가 니키포로스 3세에 의해 축출되고 로베르의 딸인 헬레네가 수도원에 유폐되자 로베르는 복수를 명분으로 1080년 동로마 제국이 지배하는 아드리아 해 연안으로 진출하기 위해 함대를 편성하고 군사를 모으는 등 전쟁을 준비했다. 그동안 니키포로스 3세를 몰아내고 동로마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알렉시오스 1세는 로베르의 딸인 헬레네를 극진히 대우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외교적으로 로베르를 막기 위해 애썼으나 실패했고 1081년 5월 로베르는 미하일 7세를 사칭한 수도자 라이토르를 내세우며 동로마의 속주 디라히온[1]을 침공했다. 로베르의 침략을 맞아 알렉시오스 1세는 당시까지만 해도 제국의 봉신이던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국령 아나톨리아에 막 자리를 잡는 중이던 룸 술탄국, 로마 교황과 대립하던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군으로 하여금 로베르의 함대를 공격하게 했고 하인리히 4세를 부추겨 로베르를 후원하던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룸 술탄국으로부터는 튀르크인 병력을 지원받아 직접 로베르의 군대와 대결에 나섰다. 1081년 10월 디라히온에서 동로마군과 로베르군은 격전을 벌이게 되고 치열한 접전 끝에 동로마는 중앙군이 완전히 괴멸되며 패배했고 결국 디라히온은 로베르 군에게 함락되었다. 그러나 로베르는 본거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포위하여 교황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즉시 이탈리아로 회군해야 했다. 그는 곧장 로마로 진격해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구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다가 아들 루지에로 보르사에 의해 구출되었다.
2.3. 죽음과 후계
그 뒤 로베르는 전열을 가다듬어 1084년에 다시금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였다. 궂은 날씨와 베네치아 해군의 방해를 뚫고 상륙하여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진군하였으나 전염병이 로베르군을 강타했다. 로베르는 전염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진군하다가 이듬해인 1085년 7월 17일 케팔로니아 섬으로 가던 길에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그의 사후 공국은 아들인 루지에로 보르사에게 상속되었으나 아들들과 조카들의 상속권 다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맏아들 타란토의 보에몽은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안티오키아 공국의 공작이 되어 새로이 동로마 제국에 맞서게 된다.
후에 동생의 아들, 즉 조카인 시칠리아 백작 루지에로 2세는 사촌들[2]을 몰아내고 남부 이탈리아를 장악한 후 교황의 후원을 받아 시칠리아 왕국을 창설한다.
3. 대중매체에서
- 만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3권에서 등장한다. 방대한 세계의 역사를 꽉꽉 압축한 탓에 제아무리 유명인물이라도 5~6 페이지 이상 나오기도 힘든 이 작품에서 돋보일 정도로 많은 활약상과 분량을 자랑한다. 작중에서는 별명에 맞춰서 족제비 머리를 달고 다닌다.
- 만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도 보에몽 1세의 과거사를 설명하는 파트에서 짤막하게 등장한다. 작가 김태권의 말에 따르자면, 그의 모험담을 여기서 자세히 풀자면 책 몇권은 나와야 한다고.
-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의 1066년 시나리오에서 플레이 할 수 있다. 남부 이탈리아 최강의 세력이라 시칠리아 왕국 성립에는 무리가 없지만 나이가 50이 넘고 후계자들은 미성년자인데다가 아들이 셋이나 되고 형제들은 많아 급사할 경우 플레이하기가 상당히 귀찮아진다.[3] 플레이 팁이라면 시작하자마자 작위가 공작임을 이용하여 후계법을 장자 상속제나 남성 선거제로 바꾸고 시칠리아 섬에 있는 이슬람 소국을 성전으로 빠르게 정복하는 것. 넋 놓고 있으면 다른 남이탈리아의 기독교 소국들이 시칠리아를 먹어버리고, 급사라도 하면 나라는 갈라지고 이어받은 어린 아들은 삼촌들의 모험 이벤트 둠스택을 얻어맞는다.
-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3》의 1066년 시나리오에서도 역시나 등장한다. 프리셋 군주로서 플레이 가능. 크킹2와는 다르게 사방에서 쳐들어오는게 난이도가 꽤나 높다.
-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의 DLC '서방의 군주'들에서 추가된 캠페인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그가 고향을 떠나 시칠리아 왕국을 세우는 과정이 초반에 나오며 이후 그의 아들인 보에몽과 자손들의 활약이 그려진다.
4. 관련 항목
[1] 지금의 알바니아 두러스[2] 로베르의 후계들[3] 로베르 기스카르 플레이의 경우 공식 튜토리얼 캐릭터는 아니지만 초보자에게도 제법 권해볼만한 플레이, 특히 일일히 설명을 듣고 시작하기보다는 이래저래 부딪혀보면서 게임을 즐기는 동시에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플레이어에게라면 권해볼 만 할 것 같다. 일단 로베르 족제비놈의 능력치와 문화권(노르만)및 종교(가톨릭)의 성능 자체가 괜찮은 편이고, 남부 이탈리아 최강의 세력이라 초반 운영이 너무 빡빡해서 힘든것도 아니다. 게다가 다른 역사배경 대전략 게임에 비해 개전 명분 관리가 아주 빡빡해서 명분 없이는 전쟁을 걸 수 없고, 땅을 빼앗아 영토를 넓힐 수도 없는 것이 크킹의 특징인데 비교적 자유롭게, 게다가 단번에 공작령 단위로 걸 수 있는 성전 명분을 쓸 수 있는 시칠리아의 이슬람 소국들이 인접해있는 것도 자유로운 초반 진행에 큰 장점이다. (성전 명분을 쓸 수 있는 이교도 세력이라 해도 왕국급 이상으로 세력이 크면 함부로 싸움을 걸 수 없고, 같은 상대에게 한번 싸움을 걸어 이기면 휴전기간이 걸리지만 소국이 여럿 있으면 각각을 연달아 집어삼킬 수 있어 초반 확장플레이가 비교적 쉽고 자유롭다.) 그리고 '게임 플레이를 익힌다'는 점에서는 크킹 고유의 시스템을 익히지 못하면 좆된다는 점도 의외의 장점이 된다. 예를 들어 크킹은 '나라가 아닌 가문을 플레이하는 게임'이고 크킹 시스템의 핵심은 '상속'이라는 점이 다른 역사 배경 대전략 게임(예컨데 비슷한 시대 배경을 다루는 미토워 등)과 가장 큰 차이인데, 얼른 상위 작위인 시칠리아 왕위(시칠리아 섬 및 남이탈리아를 관습영역으로 삼는 왕위)를 만들지 못하고 공작위 여럿을 쥔 상태로 플레이하다 로베르가 죽게 되면 여러 자식에게 영토가 분할상속되어 조각조각 찢겨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장자 상속제로 법을 바꾸는 것이 가장 좋지만 장자 상속제 도입이 힘들면 다른 부작용을 감수하고 선거제 계승법을 사용한다든지, 최상위 작위는 하나만 가지고 진행하는 등의 꼼수도 쓰게 되는 것. 역사 대전략 게임 매니아가 크킹을 처음 접했을 때 생경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마음대로 전쟁을 걸고 영토를 넓힐 수 없다(명분이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나 '명분에 따라서는 전쟁에서 이기고도 영토를 제대로 얻지 못할수도 있다' 다음으로 '상속 준비를 철저히 해두지 못하면 플레이중인 영주 사후 영토가 여러 조각으로 찢기는 일도 쉽게 벌어진다'인 경우가 많음을 생각해 보면, 로베르 기스카르의 경우 그런 포인트들을 모두 실감하면서도 극복하거나 회피하는 방법도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초보자가 즐기기에 나름 장점이 있는 캐릭터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