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 로후스 미슈 Rochus Misch | |
출생 | 1917년 7월 29일 |
독일국 프로이센 왕국 슐레지엔주 알트 샬코비츠[1][2] | |
사망 | 2013년 9월 5일 (향년 96세) |
독일 베를린 | |
최종계급 | 친위대 상사 |
신장 | 185cm |
가족관계 | 아내, 딸 |
[clearfix]
1. 개요
나치 독일 친위대 소속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상사.2. 일생
미슈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참 진행 중일 때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의 슐레지엔에서 태어났다. 전쟁 종료 후 그의 아버지는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사망하였으며 그의 어머니 또한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때 미슈의 나이는 고작 2살이었으며 결국 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그가 5살인 1922년에는 그의 형 또한 수영 연습 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다. 그를 거둔 할아버지는 미슈가 학교 공부가 아닌 다른 일을 하기를 원했고 그를 호이어스베르다로 데려갔다. 거기서 미슈는 어느 한 미술 학교에 들어가 화가가 되기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1937년에 그에게 입대 영장이 도착했으며 SS특무부대(무장친위대의 전신 부대) 소속의 1 SS기갑사단에 선발되었다. 1938년 7월에는 후에 그의 아내가 될 게르다를 만나기도 하였다. 1939년 8월에 그는 분대지도자[3]로 진급했다. 폴란드 침공에 참전한 그는 전선에 나섰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후송되었으며 몇 개월간의 치료와 재활을 통해 다시 군에 복귀하였으며 철십자 훈장 1, 2급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그후 당시 지휘관이었던 빌헬름 몽케의 추천으로 1940년 5월부터 총통경호분견대에서 그를 경호하는 업무 외에도 통신병, 전령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복무하였다. 복무 중 1942년 새해가 되기 전날에 결혼하였고 딸을 낳게 된다.
패전을 앞둔 1945년 1월부터는 퓌러붕커에 위치하게 되었다. 상관인 프란츠 셰들 상급돌격대지도자[4][5]의 명령에 따라 벙커에서 통신관 업무를 수행하였다. 4월 22일에 베를린을 떠나는 마지막 비행기에 자리가 남아있으니 가족을 피난시키라는 셰들의 말을 듣고 직접 차를 몰아 가족에게 갔으나 가족은 베를린을 떠나는 것을 거부하였고 이내 다시 복귀하였다.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부인인 에바 브라운이 벙커에서 자살하자 이를 셰들에게 보고하였고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자살하기 직전에 미슈에게 더는 안 해도 된다는 말을 그에게 들었다. 그 후 그는 셰들에게 갔으나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셰들을 보게 된다. 셰들은 미슈에게 소련군 포위망을 피할 경로를 알려주고선 권총 자살했다. 5월 2일에 미슈는 벙커를 탈출하였으며 다른 독일군 병사들과 합류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소련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모스크바로 연행되었다.
1953년까지 수감되어 있다가 석방되었으며 베를린으로 돌아와 가족과 재회했다. 이후에는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하며 1985년 까지 영업을 하였으며 1998년에 그의 아내인 게르다가 사망했다.
2013년 9월 5일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전 퓌러붕커 최후의 생존자로 알려져 있었다.
영화 다운폴에서 등장한 총통벙커 내의 인물 중 하나이자 유일한 마지막 생존자였기에 그는 생존 사실만으로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 역시 영화 다운폴을 극장에서 관람했는데, 영화에서의 줄거리와 내용은 나름 괜찮았지만 신경질적인 히틀러와 참모들의 모습을 "헐리우드 액션"으로 날서게 비판하기도 했다. 벙커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게 조용히 이야기 했다나.
그의 역을 맡은 배우 하인리히 슈미더(Heinrich Schmieder)가 2010년에 40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에, 다운폴에서 자신의 역을 맡은 배우가 자신보다 일찍 작고한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