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3:53:26

론 채니


<colbgcolor=#000><colcolor=#ffffff> 론 채니
Lon Chaney
파일:Lon-Chaney-senior-circa-1925.webp
본명 레오니다스 프랭크 채니
Leonidas Frank Chaney
출생 1883년 4월 1일
미국 콜로라도콜로라도 스프링스
사망 1930년 8월 26일 (향년 47세)
미국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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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배우, 특수분장사
신체 178cm
별명 천의 얼굴을 지닌 사나이(The Man of a Thousand Faces)
활동 1902년 ~ 1930년
배우자 프랜시스 클리블랜드 크레이턴(1905년 결혼 ~ 1913년 이혼)[1]
하젤 베넷 헤이스팅스(1915년 결혼)
자녀 론 채니 주니어

1. 개요2. 상세3.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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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론 채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미국의 배우. 1920년대, 헐리우드에서 활동한 헐리우드 최초의 성격파 배우이자 특수분장의 선구자이다.

2. 상세

파일:Lon_Chaney_With_Makeup_Kit.jpg
파일:lon-chaney-hunchback-of-notre-dame.jpg 파일:The Phantom of the Opera.jpg
노틀담의 꼽추 (1923년)에서의 콰지모도 오페라의 유령 (1925년)에서의 유령
파일:lon chaney mr wu 1927.jpg 파일:lon-chaney-in-london-after-midnight-1927--album.jpg
미스터 우 {1927년)에서의 중국인. 자정 이후의 런던[2] (1927년)에서의 최면술사
론 채니가 분장한 여러 캐릭터들

론 채니는 자신의 메이크업 기술과 뛰어난 표현력[3]을 바탕으로 주로 냉혹하고 비열한 악당, 육체의 기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인물, 여자 주인공을 향한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을 하는 가련한 남자 등을 연기하였다.

론 채니가 맡은 역할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캐릭터에 동정적인 서사를 부여하여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론 채니가 출연한 영화들은 유작인 The Unholy Three (1930)[4] 단 1편만 유성영화이고 나머지는 모두 무성영화여서 오롯이 론 채니의 분장과 표정 연기를 통해서만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감정선이 관객들에게 전딜되기 때문에 이런 면이 더욱 두드러진다.

노마 시어러, 조안 크로포드, 로레타 영 등 유명 여배우들이 신인 시절 론 채니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여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론 채니의 영화에서 주로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유쾌한 성격의 훈남으로 등장하여 여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를 열연한 남자 배우로는 노먼 케리 (Norman Kerry)가 대표적이다. 그는 노틀담의 꼽추 (1923), 오페라의 유령 (1925), 괴인 서커스단의 비밀 (1927)에서 론 채니와 함께 공연했다.

론 채니는 자신의 메이크업 비법을 말년에 그의 유일한 아들에게 전수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지금은 어떻게 캐릭터를 분장했는지 다 밝혀진 상태이다. 론 채니 분장의 비밀

비록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론 채니는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갖기 위해서 주로 신인 영화 감독들과 작업했으며 영화 촬영장에서 영화에 같이 출연하는 후배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연기 선생이자 연예계 생활에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5]

론 채니는 평소 하루에 담배 3갑을 피우는 골초에다 메이크업 재료에 함유되어있는 발암물질[6]에 자주 노출되었고 결국, 1930년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후두암으로 사망하였다. 무엇보다 1929년 영화를 촬영하다가 세트장의 가짜 눈에 함유되어 있는 발암물질에 노출된 것이 안그래도 좋지 않았던 그의 폐건강을 심각하게 악화시켰다는 것이 통설이다.

론 채니는 대다수의 영화에서 악역을 맡았지만 정작 생전 론 채니가 본인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자신이 강직하고 정의로운 해군 역으로 출연한 로맨스 영화 Tell It to the Marines (1926)였다.실제로 이 작품은 론 채니가 출연한 영화들 중 2번째로 돈을 많이 벌어들인 작품이기도 하다.

3. 대표작

  • 죗값 (The Penalty) (1920년)
    미라클 맨(The Miracle Man. 1919)[7] 에 이어서 론 채니를 스타 배우로 만들어 준 작품으로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갔다가 의사의 오진으로 멀쩡한 두 다리가 절단된 후 세상을 비관한 끝에 성인이 되어 뒷골목의 범죄조직을 지배하는 사악한 악당이 된 주인공을 맡았다.
다리가 절단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론 채니는 나무 양동이 두 개와 여러 개의 가죽 끈으로 구성된 장치를 착용했는데, 무릎을 꿇은 채로 양동이 안에 앉았고 하반신은 뒤로 묶인터라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스튜디오에 고용된 의사는 이같은 분장을 하면 실제로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며 장치를 쓰지 말라고 만류하였으나 론 채니는 인물을 사실감있게 표현하기 위해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강행했다. 제작진들은 영화 개봉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실제로 론 체니를 다리가 없는 절름발이로 착각할까봐 영화가 모두 끝난 후 론 채니가 촬영시에 장치를 벗고 푸는 장면을 삽입했다고 한다. (이 장면을 찍은 필름은 현재 유실된 상태다.)
1921년, 론 채니는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고 콰지모도의 캐릭터에 깊은 인상을 받아 직접 출판사와 접촉하여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획득하였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와의 제작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론 채니는 본인이 직접 파리의 노트르담의 영화 판권을 소유했기 때문에 (비록 제작자 크레딧에 이름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영화의 제작자로서 활약하였고 영화의 감독도 론 채니 본인이 직접 지명했다. 제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어빙 솔버그는 영화를 '예술적'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비용이 삭감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9]
또한 콰지모도가 노트르담 대성당[10]을 기어서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장면은 모두 콰지모도 분장을 한 론 채니 본인이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연기했다고 한다. 평소 론 채니는 등산암벽등반이 취미인 건장한 스포츠맨이였기에 이런 연기가 가능했다고.
  • 뺨 맞은 남자(He Who Gets Slapped) (1924년)
    무성 영화 시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자 스웨덴 영화의 아버지인 빅토르 셰스트룀(Victor Sjöström)이 감독한 작품.

    한 학자(론 채니)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르나르 남작과 몰래 정을 통하던 아내의 배신으로 연구물을 르나르 남작에게 강탈당하고 학회에서 다른 학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한채 쫓겨난다.(학회에서 르나르 남작이 주인공의 연구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뒤 갑자기 돌변하여 주인공의 뺨을 때리고 주인공을 정신이상자라며 학회장에서 쫓아냈다.) 학회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아내에게 학회에서 있었던 일을 울면서 하소연하고 있는데 르나르 남작이 집으로 들어오고 주인공의 아내는 남작 곁으로 가서 기대며 당신은 그저 우리들에게 있어서 광대였을 뿐이라며 주인공을 비웃는다. 친구와 아내의 배신에 충격에 빠진 주인공은 실성한 채로 집을 나가버린다.

5년 후 주인공은 서커스단에 들어가 뺨을 맞는 것으로 관객을 웃기는 피에로가 되어있었다. 한편, 르나르 남작은 주인공의 연구물로 인해 명망있는 학자가 되고 가난한 만치니 백작은 주인공이 공연하는 서커스단에서 곡예를 펼치는 자신의 딸(노마 시어러)을 르나르 남작에게 정략 결혼 시키려고 한다. 백작의 딸은 남자 곡예사 (존 길버트)와 연인사이였고 비록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을 응원하던 주인공은 만치니 백작의 계획을 몰래 듣게된다.
본래는 1924년에 모든 제작이 완료된 영화였으나 유니버설 영화사 간부들이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영화가 완성된지 1년이 지나서야 개봉되었다. 원작자 가스통 르루는 완성된 영화판을 보고 꽤 호평했다고 전해진다.
영화의 감독은 루퍼트 줄리안 명의로 되어있지만 론 채니는 본인이 연기한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직접 감독했다고 한다. 유령의 얼굴이 크리스틴에게 드러나는 장면도 론 채니 본인이 감독을 맡아 촬영했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론 채니는 여배우의 사실적인 표정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까지 자신의 분장한 모습을 크리스틴 역을 맡은 메리 필빈(Mary Philbin)에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1925년에 만들어진 이 무성영화는 지금까지 가스통 르루소설을 각색한 것 중 가장 원작에 가깝다. 소설에는 멋진 배경과 중심인물이 등장하지만 허술한 플롯은 매순간 삐걱댄다. 그런 원작에 걸맞게 이 영화는 엉성한 연출과 유니버설의 멋진 무대디자인이 이상하게 결합된 산물로, 빗자루처럼 깡마른 인물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 배경 앞에서 연기를 펼친다.
그러나 영화에는 그 허술한 구조를 벌충할 수 있는 걸작다운 순간들이 있다. 유령이 에드거 엘런 포의 '붉은 죽음'으로 분장하고 나타나는 가면 무도회 장면(잠깐 테크니컬러로 처리된 시퀀스)이 그렇고, 유령이 관객에게 여가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알릴 때 샹들리에가 떨아지는 장면이 그러하며, 파리 오페라 하우스 지하의 마법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이 그러한데, 가면이 벗겨져 그 불행한 악당의 일그러진 얼굴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카메라조차 겁을 먹고 잠시 초점을 놓친다) 장면이 그 중 최고다. 이 영화가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성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멜로 드라마 연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론 체니가 연기한 유령은 말쑥한 차림새에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난폭한 유령이자 천재이다. "당신은 고문당한 남자들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추고 있소!" 라는 자막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KN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주인공 팔없는 알론조(론 채니)가 서커스단 단장의 딸(조안 크로포드)을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folding [ 스포일러 주의 ]범죄를 저지른 후 도망치다가 자신에게는 팔이 없다며 단장을 속이고 서커스단에 들어가 은신 중인 팔없는 알론조(론 채니)는[12] 서커스단 단장의 딸 나논(조안 크로포드)을 사랑하게 된다. 나논은 남자의 손을 무서워하는 공포증을 앓고 있었지만 알론조에게는 팔이 없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알론조는 자신에게 팔이 있다는 사실을 평소 자신을 학대하던 서커스단의 단장애게 들키게 되자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나논은 창문을 통해 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이 두개인 살인자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알론조는 나논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의료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던 의사를 협박하여 진짜로 자신의 팔을 자르고 만다.
그러나 차력사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나논의 공포증은 이미 치유된 상태였고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하고 알론조를 자신들의 결혼식에 초대할 계획을 세운다. 팔을 자르고 병원에서 퇴원한 알론조는 나논을 다시 찾아갔지만 이미 그녀는 차력사와의 결혼식 날짜를 잡은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이 함께 새 공연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알론조는 나논이 차력사의 손을 맞잡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실성한듯이 웃는디. 그러자 두 사람은 알론조가 자신들의 결혼을 축하해준다고 생각하며 기뻐하고 차력사는 알론조의 격려 때문에 용기를 내서 나논에게 고백했고 그 결과 두 사람이 이어질 수 있었다며 알론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알론조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결국 오열하면서 쓰러지고 만다.
이후 알론조는 차력사를 공연 중 사고사로 위장하여 죽이려고 술수를 부리지만 나논이 차력사를 구하려고 무대에 뛰어들다 사망할 위기에 처하자 그녀를 구하고 대신 말에 깔려 사망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친구와 함께 유랑극단을 운영하던 광대 티토(론 채니)는 어느 날 길가에 버려진 여자 아기를 발견하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녀에게 시모네타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양딸로 키우기 시작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시모네타(로레타 영)는 양아버지 티토의 가르침을 받아 곡예사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잣집 아들인 루이지(닐스 아스더)는 정원을 걷다가 무릎에 상처를 입은 시모네터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그녀의 다친 무릎을 치료해준다. 이후 그는 시모네타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고 비록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눈에 반했다며 시모네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시모네타는 루이지의 여자친구가 자신을 보고 질투하며 그와 싸우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루이지의 고백을 거절한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시모네타는 양아버지 티토에게 루이지에 대해 말하고 그런 시모네타를 보고 티토는 그녀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며 자신이 그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정신과의사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환자(론 채니)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지금 공연 중인 광대가 엄청 웃기다며 서커스 공연이나 한 편 보라고 권유하자 환자가 공연 포스터를 보고 슬피 울면서 "그 웃긴 광대가 바로 접니다." 라고 밀했다."는 이야기의 원전인 영화이다. 흔히 찰리 채플린의 일화라고 일컬어지는데 누군가가 이 영화의 줄거리 중 일부를 찰리 채플린의 일화라고 잘못 퍼뜨린 것이다.

[1] 론 채니의 여제자였던 배우 겸 가수. 두 사람은 론이 22살이고 프랜시스가 16살이었던 1905년에 결혼한 후 함께 LA에서 극장 Majestic Theater를 운영했다. 당시 론 채니는 연기자 활동을 잠시 멈추고 극장의 경영을 맡았으며 프랜시스 크레이턴은 극장의 최고 인기 여가수로 출연하였다. 그러나 1913년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게된다. 당시 미국의 극장 문화에는 주연급 출연자들이 공연이 끝나고 VIP 관객들과 같이 술자리를 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론이 프랜시스가 VIP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그들 중 한 명과 불륜 관계가 되었다고 의심하였고 이에 프랜시스가 결백을 주장하며 비소를 마시고 자살시도를 한 것이다. 프랜시스는 다행히 구사일생 하였으나 후유증으로 가수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사건 직후 두 사람은 이혼했으며 스캔들의 여파로 론 채니는 연극판에서 퇴출당했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투신하게 된다. 이후 론은 아들인 론 채니 주니어에게 어머니 프랜시스는 오래전에 죽었다며 그녀에 대한 얘기를 입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2]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유실 영화. 마지막 필름이 1965년 MGM 필름 보관소 화재로 유실되었다. 아직까지도 이 영화의 필름을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3] 론 채니의 부모님은 모두 청각장애인이었고 론은 어릴 적 부터 수화를 통해 부모님과 소통하였으며 출연한 영화들에서 이를 밑바탕으로 한 섬세한 감정 및 동작 연기를 보여주었다.[4] 1925년에 토드 브라우닝 감독이 연출하고 론 채니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범죄 영화를 잭 콘웨이 감독이 유성영화로 리메이크한 작품. 론 채니와 왜소증 배우 해리 얼스(Harry Earles)가 같은 역할로 출연한다.[5] 일례로 로레타 영과 함께 출연한 Laugh, Clown, Laugh(1928)에서 당시 로레타 영은 겨우 15살이었는데, 당시 영화 감독이 그녀를 괴롭히고 조롱하는 등 매우 혹독하게 대했으나 론 채니가 같이 있을 때는 예의를 차렸다고 한다. 론 채니는 이 사실을 알고 그의 촬영이 없는 날에도 로레타 영의 곁에 있었으며 아버지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훗날 로레타 영은 "론 채니는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였으며 자기가 죽을 때까지 그에게 신세를 진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며 론 채니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6] 론 채니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아직 폼 라텍스가 도입되지 않았었다.[7] 론 채니 최초의 히트작. 론 채니는 사기꾼과 한 패가되어 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가 정상적으로 걷게되는 사람을 연기하는 연기자 The Frog 역을 맡았다. 유실 영화로서 론 채니가 불구에서 정상인으로 변하는 몇 분의 장면만이 남아있다.[8] 원작 소설에서 콰지모도의 이야기는 초반 잠깐과 마지막 잠깐만 서술되어 있을뿐, 소설의 초점은 오히려 클로드 프롤로 개인의 고뇌와 에스메랄다의 인생에 집중되어 있다.[9] 다만, 론 채니가 이 영화의 감독으로 점찍은 1순위는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이었는데 그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돈이 필요했고 어빙 솔버그는 슈트로하임을 데려오기 위해 거금을 쓰면 당시 본인이 직접 제작하던 영화의 예산이 부족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론 채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10] 실제로 존재하는 성당에서 찍은 것은 아니고 거대한 세트였다. 이 대성당 세트를 만드는데만 6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11] 본래 토드 브라우닝 감독은 드라큘라 역할로 론 채니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영화 제작 준비를 하던 중 론 채니가 후두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12] 실제로는 엄지손가락이 두개인 것을 제외하면 두 팔이 멀쩡하게 있는 정상인이었다. 이 비밀은 알론조와 같은 방을 쓰는 난쟁이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