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5:57:30

론 채니


<colbgcolor=#000><colcolor=#ffffff> 론 채니
Lon Chaney
파일:Lon-Chaney-senior-circa-1925.webp
본명 레오니다스 프랭크 채니
Leonidas Frank Chaney
출생 1883년 4월 1일
미국 콜로라도콜로라도 스프링스
사망 1930년 8월 26일 (향년 47세)
미국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배우, 메이크업 아티스트
신체 178cm
별명 천의 얼굴을 지닌 사나이(The Man of a Thousand Faces)
활동 1902년 ~ 1930년
배우자 프랜시스 클리블랜드 크레이턴(1905년 결혼 ~ 1913년 이혼)[1]
하젤 베넷 헤이스팅스(1915년 결혼)
자녀 1명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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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배우.

1920년대, 헐리우드에서 활동한 헐리우드 최초의 성격파 배우 중 한명.

2. 상세

파일:Lon_Chaney_With_Makeup_Kit.jpg
파일:lon chaney shadows (1922).jpg 파일:lon-chaney-hunchback-of-notre-dame.jpg
그림자 (1922년)에서의 중국인 노틀담의 꼽추 (1923년)에서의 콰지모도
파일:The Phantom of the Opera.jpg 파일:lon-chaney-in-london-after-midnight-1927--album.jpg
오페라의 유령 (1925년)에서의 유령 자정 이후의 런던[2] (1927년)에서의 최면술사

론 채니는 자신의 메이크업 기술을 바탕으로 주로 냉혹하고 비열한 악당,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인물, 여자 주인공을 향한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을 하는 가련한 남자 등을 연기하였다.

노마 시어러, 조안 크로포드, 로레타 영 등 유명 여배우들이 신인 시절 론 채니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여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대표작으로는 죗값(The Penalty)(1920)[3], 그림자 (The Shadows) (1922), 노틀담의 꼽추 (1923), 뺨 맞은 남자(He Who Gets Slapped)(1924)[4] 오페라의 유령 (1925) 등이 있다.

론 채니는 자신의 메이크업 비법을 말년에 그의 유일한 아들에게 전수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론 채니는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갖기 위해서 주로 신인 영화 감독들과 작업했으며 영화 촬영장에서 영화에 같이 출연하는 후배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연기 선생이자 연예계 생활에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론 채니는 평소 하루애 담배 3갑을 피우는 골초에다 메이크업 재료에 함유되어있는 발암물질에 자주 노출되었고 결국, 1930년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후두암으로 사망하였다.

[1] 론 채니의 여제자였던 배우 겸 가수. 두 사람은 1905년에 결혼한 후 함께 LA에서 극장 Majestic Theater를 운영했다. 당시 론 채니는 연기자 활동을 잠시 멈추고 극장의 경영을 맡았으며 프랜시스 크레이턴은 극장의 최고 인기 여가수로 출연하였다. 그러나 1913년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게된다. 당시 미국의 극장 문화에는 주연급 출연자들이 공연이 끝나고 VIP 관객들과 같이 술자리를 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론이 프랜시스가 VIP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그들 중 한 명과 불륜 관계가 되었다고 의심하였고 이에 프랜시스가 결백을 주장하며 비소를 마시고 자살시도를 한 것이다. 프랜시스는 다행히 구사일생 하였으나 후유증으로 가수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사건 직후 두 사람은 이혼했으며 스캔들의 여파로 론 채니는 연극 무대에서 퇴출당했다. 연극계에서 퇴출당한 론 채니는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투신하게 된다. 이후 론은 아들에게 어머니 프랜시스는 오래전에 죽었다며 그녀에 대한 얘기를 입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2]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유실 영화. 마지막 필름이 1965년 MGM 필름 보관소 화재로 유실되었다. 아직까지도 이 영화의 필름을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이유는 론 채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래 모습과 괴물로 분장한 모습을 동시에 선보인 영화이기 때문이다.[3] 론 채니를 스타 배우로 만들어 준 작품으로 유년 시절 의사의 오진으로 멀쩡한 두 다리가 절단된 후 성인이 되어 뒷골목의 범죄조직을 지배하는 사악한 악당이 된 주인공을 맡았다. 다리가 절단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론 채니는 나무 양동이 두 개와 여러 개의 가죽 끈으로 구성된 장치를 착용했는데, 무릎을 꿇은 채로 양동이 안에 앉았고 하반신은 뒤로 묶인터라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스튜디오에 고용된 의사는 이같은 분장을 하면 실제로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며 장치를 쓰지 말라고 만류하였으나 론 채니는 인물을 사실감있게 표현하기 위해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강행했다. 제작진들은 영화 개봉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실제로 론 체니를 다리가 없는 절름발이로 착각할까봐 영화가 모두 끝난 후 론 채니가 촬영시에 장치를 벗고 푸는 장면을 삽입했다고 한다. (이 장면을 찍은 필름은 현재 유실된 상태다.)[4] 무성 영화 시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자 스웨덴 영화의 아버지인 빅토르 셰스트룀(Victor Sjöström)이 감독한 작품. 한 학자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르나르 남작과 몰래 정을 통하던 아내의 배신으로 연구물을 르나르 남작에게 강탈당하고 학회에서 다른 학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한채 쫓겨난다.(학회에서 르나르 남작이 주인공의 연구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뒤 돌변하여 주인공의 뺨을 때리고 주인공을 학회장에서 쫓아냈다.) 학회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아내에게 학회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르나르 남작이 집으로 들어오고 주인공의 아내는 남작 곁으로 가서 기대며 당신은 그저 우리들에게 있어서 광대였을 뿐이라며 주인공을 비웃는다. 친구와 아내의 배신에 충격에 빠진 주인공은 실성한 채로 집을 나가버린다. 5년 후 주인공은 서커스단에 들어가 뺨을 맞는 것으로 관객을 웃기는 피에로가 되어있었다. 한편, 르나르 남작은 주인공의 연구물로 인해 명망있는 학자가 되고 가난한 만치니 백작은 주인공이 공연하는 서커스단에서 곡예를 펼치는 자신의 딸(노마 시어러)을 르나르 남작에게 정략 결혼 시키려고 한다. 백작의 딸을 짝사랑하던 주인공은 그 계획을 몰래 듣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