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6:57:08

류시화

1. 개요2. 시
2.1. 문단과의 불화?2.2. 반론
3. 인도여행기4. 하이쿠 연구5. 저서
5.1. 시집5.2. 여행기5.3. 역서/해설서5.4. 명상서적5.5. 하이쿠 모음집

1. 개요

대한민국시인, 번역가. 1958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으며(현재 [age(1958-12-31)] ~ [age(1958-01-01)]세) 본명은 안재찬이다. '류시화'는 안재찬이 작품상에서 쓰는 필명으로 현재는 이 이름을 고정적으로 사용한다. 이 필명만 보고 류시화를 여성으로 착각했다가 아저씨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는 사람도 있다. 프로필로 쓰는 사진에서는 오직 장발 스타일만을 고수하기에 더더욱 착각하기 쉽다.

들리는 여담으로는 같은 학교 선배의 본명을 허락받고 빌려 쓴 것이라고 한다. 그 선배는 '류시화'라는 이름이 이렇게까지나 유명해질 줄 몰랐다고.

필생의 역작으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인디언 연설문집이 있다. 무려 페이지가 1000쪽 가까이 되는 백과사전급의 책이다. 그리고 수필 '나의 모국어는 침묵'은 미래엔의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

2.

대광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활'을 통해서 데뷔했다. 원래는 본명으로 시 작품을 내었는데 1988년부터 류시화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1991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1996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2012년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을 펴냈다.

독자층에서는 필력이 좋은 평가를 받는, 대학생 및 젊은층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서점가에서 류시화의 시집은 물론 번역물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많다. 교보문고에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시집 판매 순위를 집계한 결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2005)이 1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1998)이 2위,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2012)이 5위에 올랐다. #

창작 이외에도 외국 시를 번역하는 작업도 겸하는 편으로 실제 본인은 책을 많이 독파하는 독서광이라고 한다. 그것도 원어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해외여행도 하는 편으로 특히 인도를 방문했었던 때가 많았다. 방송인이자 탤런트김혜자와도 친분이 있어서 함께 인도여행을 갔다, 다녀오기도 했다. 김혜자 역시 류시화의 시를 좋아해서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2.1. 문단과의 불화?

류시화는 대중적인 인기와 문단에서의 평가가 극과극으로 나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때문에 문학지나 문예지에서는 류시화의 작품은 단 한 곳도 연재하지 않았던 편. 작가 본인은 인터뷰 등에서 자신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세상과 단절해 살아와서 폐쇄적인 성향이 짙다는 이유 등을 들어서 주류 문인들이 그의 시를 평가절하 하였다고 주장했다.

2.2. 반론

류시화가 '평가절하 되었다'는 표현은 조심스럽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일단 80년대에 류시화의 시가 주목받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시 문단의 취향에 안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문학사를 잠시만 공부해 보면 알 수 있지만 80년대 한국 문단의 최대 관심사는 정치적 문제, 즉 막바지에 이른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었고,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는 경향이 강한 류시화의 시는 당시의 경향과 거리가 멀었다. 류시화의 활동 이력을 보면, 80~82년까지 '시운동'지를 통해 50여편의 시를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83년부터 명상서적 번역을 시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80년대 류시화의 작품이 왜 문예지에 실리거나 평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가능하다. 활동이 없으니 평가도 없다.

안재찬은 1988년부터 '류시화'라는 이름으로 주로 외국 명상서적을 번역하면서 다시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류시화가 다시 문학 창작 영역에 복귀한 것은 1991년 '그대가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출판한 뒤로, 류시화의 창작활동은 자신이 쓴 시를 출판사에 그대로 넘겨서 출판하는 스타일이었다. 즉, 문예지를 통해 시를 발표하고, 이에 대한 비평활동을 거친 후 시집을 출판하는 통상적인 시작 활동이 아니었다. 따라서, 90년대 이후 문예지들이 류시화의 작품을 게재하지 않은 이유 역시 간단하다. 류시화가 자기 시를 문예지에 기고하질 않았다.(....) 문학잡지는 작가가 기고한 시를 싣는 잡지지 이미 출판된 시를 가져다 싣는 잡지가 아니다. 90년대 이후 류시화의 창작활동에 대한 전문 문학평론가들의 평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문학 평론은 문예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저작권 등의 이유로 류시화의 작품은 문예지에서 비평하기가 어렵다. 류시화의 시 자체가 비유나 은폐를 중시하는 근현대 시의 기술적 흐름과는 많이 동떨어지기 때문에 류시화 시를 문학비평하는 평론가가 별로 없다고 보는 사람 또한 많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류시화가 문학계를 떠나 새로운 자기 자리를 잡은 것이지, 문단이 류시화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한 것이 아니다.

3. 인도여행기

인도 여행기를 쓰기도 했는데, 대단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의 차원에서 인도를 묘사하고 소개해 놓았다. 사실 인도라는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겪은 이런저런 경험을 자기만의 긍정적이고 감상적 시선에서 해석한 책들은 서구권에서도 많았는데 문제는 이를 객관적인 여행 정보로 착각하거나 오독하고 여행을 갔다가 다른 차원의 문화 충격과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류시화 등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 체험들이 인생에서 좋은 계기나 기억이 되었을 것이고 그랬기에 지금껏 일관된 태도로 인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또 그를 통해 만들어낸 다른 결과물들이 인도 여행과 상관없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좋게 이해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개인의 체험일 뿐이라는 점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류시화의 저서를 읽어본 사람들 중에서 인도를 직접 방문하거나 나무위키의 인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책에 소개된 인도와 현실의 인도는 느끼는 사람에 따라서 많이 다르다.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한 인도인[1]', '낯선 사람도 반갑게 대해주는 좋은 곳[2]', '뭐든지 느리게 돌아가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고, 직접 방문한 사람들도 거기에 물든다'[3]라고 소개했지만, 인도가 여행지로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나라이고 종교적 감수성이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영적으로 충만한 나라라는 느낌은 받기 힘들다.

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라는 점에서도 비판받을 만하다.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순박하고 조용한 백성들' 따위로 타인의 시선으로 대상화, 타자화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류시화의 여행기를 자세히 보면 1960년대 서구권의 히피 무리들이나 록 가수들(조지 해리슨이라던가)의 인도 여행 경험담과 유사하다.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를 쓴 정호영[4]은 대놓고 책에서 항목 하나하나를 들어가며 나노단위로 까기도 했다(....) 또한 이옥순 교수[5]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인도는 힘이 세다>와 같은 저서에서 이와 같은 관점을 비판하고 균형 잡힌 인도에 대한 시각을 위해 노력했다.

사실 인도인들 중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과 같은 수식어에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 인도인들도 많다. 실제 인도 지식인층에 물어보면 중국을 국가의 롤모델로 삼고 그 정도 입지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이고,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에도 오히려 뿌듯해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영적인 인도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인도는 핵무기 보유국이며 세계 10위안의 군사강국이자 중국과 국경분쟁중인 나라다. 문화적으로 자부심이 높고 국민성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도인들도 영적인 충만성보단, IT 강국, 라마누잔과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을 배출한 똑똑한 인도인의 이미지를 선호하기도 한다. 물론 수많은 영적 가르침이 인도에서 비롯된 것을 본다면, 인도의 영적 문화도 여전히 큰 가치임을 부정할 수 없다.

몹시 종교적인 나라라고 흔히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도 보인다. 특히 남인도의 케랄라나 카르나타카, 타밀나두 주와 같이 첨단 산업 위주로 돌아가는 동네의 고학력 엔지니어들은 서슴없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규정하거나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카스트 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하위 카스트, 아웃카스트 출신 지식인들은 기독교로 많이 개종하고[6] 아예 본인의 원래 카스트를 알지 못하도록 이름과 성까지 서양식으로 갈아치우는 경우도 있다.

여러 관점들 중에서,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하다'는 시선이 '우리가 가끔 힐링할 때나 찾아갈 수 있도록 너희는, 니들은 걍 그렇게 계속 그 자리에 개발도상국, 후진국으로 남아있어라'는 것을 전제한다는 부정적인 해석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영적 가치는 가난과 부유함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은 관련 서적만 살펴봐도 손쉽게 알 수 있다'고 반론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또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립서비스'라는 재반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소위 '영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부유하면서도 영적으로 충만한 나라' 라고 말하는 나라는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도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가치'란 것은 결국 68 운동의 한 갈래와 뉴에이지 운동으로부터 나타난 가치, 즉 근대적 합리성과 과학 우선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나타난 가치이고, 따라서 '소위 부국강병(또는 개인이라면 사회적 성공)과 같은 근대적 가치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들의 주장은 결국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근대적, 세속적 가치에만 골몰하여 더 소중한 다른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영적인 가치를 잃는다면 부유함이나 권력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라는 것이며 인도와 같은 나라들을 예찬하는 것 역시 '그들은 부유함과 영향력, 권력같은 근대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를 더 소중히 하기에 가난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관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가 어떤 가치를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니 남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너는 근대적 발전의 성과에 힘입어 인도 사람들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으냐? 반면 인도 사람들의 가난함이 그들의 삶에 큰 고통을 주는 것은 분명 사실 아니냐?'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맥락을 싹 무시하고 '영적인 가치는 가난과 부유함에 구애받지 않는다'라고 말을 돌리는 것은 상당히 치사한 회피라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것.

류시화의 필력이나 인지도는 인도를 방문하며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1997년), 지구별 여행자를 비롯한 관련 저작으로 얻어진 바가 크다고 평가하는 사람 또한 많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내 이름은 칸 같은 영화나 인도 출신의 사람들이 직접 쓴 실생활을 기록한 작품들이 들어오기 전, 인도에 대한 환상을 널리 퍼트렸다.

특히 본인 스스로 인도의 유명한 명상가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도 알려졌던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 입문하면서 그의 저작품들을 활발하게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4. 하이쿠 연구

최근에는 일본의 하이쿠를 한국에 번역해서 소개하는 활동 또한 활발하게 한다. 하이쿠를 접하고 나서 큰 문학적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를 알기 쉬운 설명과 함께 잘 엮어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5. 저서

5.1. 시집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선집)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처럼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마음챙김의 시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5.2. 여행기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지구별 여행자

5.3. 역서/해설서

5.4. 명상서적

  • 삶의 길 흰구름의 길
  • 성자가 된 청소부
  • 티벳 사자의 서
  •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 조화로운 삶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5.5. 하이쿠 모음집

  • 한 줄도 너무 길다
  •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바쇼 하이쿠 선집


[1] 우리가 관광지에서 만날 사람들은 90%가, 특히 돈이 관련된 사람들은 사기꾼이다. 너무 기대하지 말자.[2] 물론, 처음 도착하면 여러가지의 의미로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 있다[3] 그러나 인도인들도 한국이나 일본 등에 여행 가서 '밤 8시 넘어서도 여자 혼자 돌아다닐 수 있고 기차가 제 때 오는 엄청 살기 좋은 나라' 라고 치켜세우는 걸 더 많이 볼 수 있다. 골때리는 공무 집행과 뭐든 제 시간에 못 맞춰 처리되는 업무 등은 교육을 좀 받았다면 인도인들 스스로도 사실 부끄럽게 생각한다.[4] 인도 현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장기간 체류했다.[5] 델리 대학교에서 인도사로 박/석사 학위를 받았다.[6] 과거에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의 주도로 불교로의 집단 개종이 많이 이루어졌으나, 그의 사후에는 뜸한 편. 기독교는 대신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 규모에 힘입어 전 세계 기독교 신자 수 순위로는 10위 안에 들 정도.[7] 류시화 화백의 최대 업적으로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 내용과 아름다우면서도 세련된 인디언 연설문집의 매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을 보고 류시화를 안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2003년도 출판과 2017년도 출판된 책 두 종류가 있다. 2017년도 출판한 책에는 인디언 사진과 함께 이전작에는 없었던 사진 설명문까지 상세하게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