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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 아침.
아침식사를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은 삼남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어댔다. 어느 집부터 방문을 할지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언덕 위쪽부터 돌자."
"아니야. 그럼 다른 아이들이 아래쪽을 전부 털어버릴 거란 말이야."
"그건 밑에서부터 돌아도 마찬가지야. 언니. 언니는 어디부터 가야한다고 생각해?"
첫째 한나는 동생들의 질문에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건 너희끼리 상의해. 언니는 이제 어른이란 말이야. 사탕이나 과자를 얻으러 다닐 시기는 지났어."
"언니, 우리랑 같이 안 가?"
"치사해."
막내가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한나는 모른척했다. 동생들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같이 놀자며 칭얼댔지만 동생들의 귀여운 몬스터 복장을 매만져준 한나는 그들의 엉덩이를 떠밀어 집 밖으로 내보냈다.
한나는 동생들을 내보내자마자 태도를 싹 바꿨다. 창틈으로 동생들이 다른 집을 방문하러 떠나는 것을 확인한 한나는 사탕과 과자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창고 어귀로 향했다. 한나의 친구는 그녀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와있었다. 그는 한나가 부탁한 장대발과 분장 소품을 양손에 가득 달고 있었다.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이게 뭐니?"
"어쩔 수 없잖아. 그걸 집에 두면 동생들에게 들켜버릴 것 아냐.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
"동생들에게 하는 정성에 반만 내게 했으면."
"사랑해, 친구!"
"네네. 자, 일단 옷부터 입어봐. 탈은 맞는 거 같아?"
"조금.. 큰 것 같기도?"
한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괴물 분장을 시작했다. 호박머리를 한 깡마르고 키가 큰 허수아비 괴물로 분장하는 것 이었다. 장대발에 올라선 한나는 양팔을 저어 균형을 잡았다. 제대로 된 분장을 하기 위해 동생들 몰래 특훈을 한 성과였다.
"괜찮아?"
"응, 됐다. 바구니 줘. 다녀올께."
할로윈 몬스터 분장을 한 한나는 거리로 나가 동생들과 마을아이들을 놀라게 만든 뒤 사탕과 과자를 나눠줄 생각이었다. 동생들이 놀라고 감탄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 볼 것이라 생각을 하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한나는 그런 기대를 품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이미 마을아이들이 우르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갔다.
아이들이 자신이 다가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짐짓 팔다리를 크게 움직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뒤를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에 그리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한나는 아이들을 따라서 그 구심점에 있는 인물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우와.."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과 똑같이 감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진짜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듯 한 할로윈 마녀였다.
해와 달, 그리고 유령, 박쥐 날개를 한 호박 머리 등의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마녀 모자. 박쥐 문양은 그곳에만 있는게 아니었다. 망토의 매듭을 잡고있는 리본은 황금빛 박쥐 형상을 하고 있었고 짧은 치마주름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감싸고 있는 보라빛 스타킹에도 박쥐 형상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었다. 등뒤에서 보니 양쪽 허리춤 부근에도 근사한 박쥐 날개 장신을 좌우로 펼치고 있는게 보였다.
근사함과 디테일 어느 것도 빠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할로윈 마녀 그 자체인 푸른 눈과 붉은 눈의 오드아이를 가진 소녀는 안경 너머로 무심한 듯한 눈빛을 던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들 따라다니니?"
"진짜 마녀 같아서요!"
"진짜 마녀 같아 보여? 그럼 무서운 거 아니니?"
"아뇨! 완전 예뻐요!"
"예뻐?"
할로윈 마녀 마리 밍 오네트의 표정에는 큰 기복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예쁘다며 떠들어대는 것이 기쁜 듯 보였다. 한나는 순간 날개 장신이 파닥거린다 싶었지만 자신의 착각이라 치부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위이잉, 덜컹덜컹』
"엄마야!"
"우와!"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마리의 곁에 튀어나온 고양이 로봇, 냥코벳G3는 머리 위에 꽂혀있는 안테나인지 태엽인지 모를 호박 머리 장신구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마리를 대신해서 아이들에게 사탕과 과자를 뿌려댔다. 그 등장에 깜짝 놀랐던 아이들은 이내 신이 나서 사탕과 과자를 주워담았다.
가지고 있던 사탕과 과자를 전부 나누어 준 마리는 유유히 골목으로 사라졌다. 한나가 하려던 것을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할로윈 마녀 마리를 목격한 뒤이기 때문일까? 한나는 자신의 분장이 조잡스럽게 느껴졌다. 한나는 괴물 흉내를 내면서 사탕을 나누어주는 대신에 마리의 뒤를 쫓았다.
장대발에 올라탄 덕분에 한나는 성큼 걸음으로 금방 쫓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나는 쉽게 마리에게 먼저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녀가 낯선 소녀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마을에서 온 친구인 듯 했다.
한나가 쭈뼛거리고 있자 마리가 먼저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네. 잭 오 랜턴이니?"
"아, 안녕하세요, 마리 언니!"
그제서야 한나는 마리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근사하긴요. 언니만 하려구요. 언니는 기계만 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언제 그렇게 예쁜 마녀옷을 준비하신 거에요? 아, 언니 솜씨가 그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내 의상도 언니에게 부탁하는 건데!"
"의상을 나한테 맡겨? 왜?"
"언니 오늘 복장이 우리마을 할로윈 축제 복장 중에 가장 근사한 걸요!"
"축제 복장? 하지만 난 오늘 따로 축제에 쓸 옷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지금 입고 있잖아요? 완전 할로윈 마녀 그 자체인 걸요."
"원래 내 옷이야. 오늘은 인간처럼 변장하지 않았을 뿐이야."
"에?"
"친구가 오늘은 할로윈이라 마녀 복장 그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을 거라고 해서 딱히 변장을 안했는데?"
한나는 혼란스러웠다. 지금 마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이웃집 언니, 이상하고 복잡한 기계를 만드는 과학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마치.. 진짜 마녀라도 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응, 맞아. 나 마녀야."
"에?"
"몰랐니? 넌 바로 옆집이잖아? 당연히 눈치채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은근히 눈치가 느리구나?"
"......"
기계를 잘 다루는 이웃집 과학자 언니가 조금은 남들과 달리 특이하다는 건 익히 느끼고 있었지만 설마 이정도로 할로윈 마녀라는 역할에 심취해 있을 줄이야?
한나는 마리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누긴 어렵다 생각하고 꽁무니를 뺐다.
"에이, 참 농담도.. 이야기 나누세요. 전 먼저 가 볼게요."
거리로 나간 한나는 마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 앞에 나타나 사탕과 과자를 나눠주었다. 이미 할로윈 마녀를 완벽하게 재연한 것을 본 아이들의 눈에 자신에 변장 따위가 성에 찰까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도 아이들은 장대발에 올라선 한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역시 장대발 타기를 연습하길 잘했어. 아이들 틈에서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이며 깡총깡총 뛰고 있는 동생들을 발견한 한나는 환하게 웃었다.
"으이그. 마리 이 바보야? 할로윈이니 마녀 복장을 하고 있어도 마녀로 의심을 안받는다고 했지 누가 마녀라고 밝히고 다니랬니?"
골목 어귀에서 한나가 사탕과 과자를 나누어 주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마리를 향해 그녀의 친구가 일침을 가했다.
"별로 들켜도 상관없는데."
"넌 진짜 웃기는 마녀야. 마녀 주제에 인간들의 마을에 숨어사는 것도 그렇고, 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앞에서 사역마 냥코벳을 꺼내는 것도 그렇고."
"냥코벳이 아니라 냥코벳G3.."
"네네, 아무렴 어때?"
"그러는 너야말로 사역마는..?"
마리는 그녀의 친구의 사역마가 한나가 변장을 한 호박 머리를 한 허수아비 괴물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당연히 마을 근방에 대기해 놨지."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설마. 사역마를 잃어버릴 일이 어디 있겠어?"
마리는 그건 모를 일 이라며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