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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이야기
『냉혼한 지배자』 베이가스
베이가스 코퍼레이션의 사옥은 눈꽃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위치뿐만이 아니었다. 눈꽃 마을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근방에서 가장 높기까지 했다.시청은 베이가스 코퍼레이션 사옥의 그늘 아래 있었다. 물리 적인 위치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가령, 회장 베이가스가 만나자고 하면 산타 시장은 월요일 아침부터 시청이 아니라 베이가스 코퍼레이션의 회장실로 출근해야만 했다. 산타 시장은 시장 비서를 대동하고 헐레벌떡 화장실로 향했다.
"헥, 헥헥.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장님."
"오! 어서오세요, 사장님. 늦긴요? 아침부터 뵙자고 한 건 저 인걸요."
베이가스는 냉장고 앞에서 뒤꿈치를 들고 냉동실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환영했다. 산타 시작은 냉큼 그의 곁으로 달려가서 그가 꺼내려던 아이스 캔디를 대신 꺼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시장 비서 에델은 비딱한 표정으로 베이가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 추운 날 집무실은 후끈후끈하게 난방을 틀어놓고 얼음을 꺼내 먹는단 말인가? 에델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베이가스를 바라봤지만, 베이가스는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가 배덕감을 즐기고 있다는 건 옷차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코트를 두른 주제에 그 아래에는 맨다리가 훤히 드러난 바지를 입고있지 않은가? 마치 겨울의 추위는 자신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베이가스 회장님? 시장님께 볼 일이 있으시면 비서인 제게 미리 말씀해주시고, 직접 시청으로 방문해 주시겠어요? 아랫사람 보내서 시장님 보고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응? 그랬나요?"
"아이구, 아닙니다. 바쁘신 회장님을 오라 가라 할 수 있나요? 늙은 제가 가벼운 산책 겸 회장님께 들리면 되지요."
"히히히. 제가 좀 바쁘긴 하죠."
시장 비서인 에델의 말에 쩔쩔 멘 것은 오히려 시장 쪽이었다. 당황하는 산타 시장과는 달리 베이가스는 여유롭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얼음을 으적으적 씹어 먹으며 계산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사업 얘기 좀 하죠. 연말이라 그런가? 장난감 산업이 호황인 거 아시죠?"
"예, 물론입니다."
"그래서 수요에 맞춰서 이번에 장난감 공장을 확장할까 합니다만. 그 공장 부지가 말인데.."
"없습니다. 더 이상 공장을 지을 땅은 이 도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델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을 그었다. 사실이었다. 이 곳 눈꽃 마을에는 더 이상 공장을 지을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베이가스는 한날 시장 비서의 발언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알아요, 땅이 없는 건. 내가 뭐 없는 땅을 내놓으라고 했나요? 제약 회사를 폐업하고 그 자리에 공장을 증설할 겁니다. 시장님, 정책적으로 도와주실 수 있죠?"
"물론이죠. 회장님의 사업이 이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는 걸요."
산타 시장은 베이가스의 말에 토 하나 달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에델은 그들의 대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드코어 제약이라면 바로 지난주에 고용 상태 시정명령이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그걸 폐업처리해서 다 없던 일로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계속해서 에델의 말을 무시하던 베이가스는 이번만큼은 무시하기 힘들었는지 눈쌀을 잔뜩 찌푸렸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요? 나는 뭐 땅 파서 장사합니까? 돈 안되는 사업 접고 돈 되는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게 이상한가요?"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습니다."
"까짓 것 장난감 공장에서 재고용하면 되잖아요? 아니다, 이 기회에 일자리를 좀 더 만듭시다. 원활한 물류를 위해선 도로 확장은 기본이죠. 거기서도 고용을 늘리는 걸로."
이 한겨울에 도로 공사는 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하지만 산타 시장은 훌륭한 사업안이라며 베이가스 회장의 제안을 추켜세웠다. 시장의 권위조차 무색한 베이가스는 그야말로 실질적인 마을의 지배자였다.
"역시 베이가스 사장님은 눈꽃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에델이 지속적으로 베이가스의 제안을 반대하자 산타 시장은 냉큼 인사를 하고 에델을 떠밀며 베이가스의 집무실을 나왔다. 시장을 환송한 베이가스는 의자에 몸을 뉘이며 경호팀장을 호출했다.
집무실에 들어선 경호팀장은 목례조차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곧장 냉장고에서 얼음캔디를 꺼내서 베이가스의 앞에 가져다 주었다.
"역시, 우리 경호팀장.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니깐?"
"아이스 캔디가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어휴. 그러게 말이야. 이게 다 그 놈의 겨울 악몽 때문이야. 번번히 나타나 훼방을 놓으니 좀처럼 아이스 캔디가 늘지 않는단 말이지?"
아그작 아그작.
베이가스는 얼음캔디를 통째로 씹어댔다. 그러자 입김이 서리면서 마치 얼음에 갇혀있는 영혼이 발버둥치다 이내 잡아 먹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베이가스에게 잡아 먹히면서 영혼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경호팀장, 제로는 무심한 눈빛을 하고 그 옆에 서있을 뿐 이었다.
"놈은 이번에도 냄새를 맡고 찾아올 거야."
"정보를 흘리셨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가 있나? 놈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 텐데. 알아서 냄새를 맡고 찾아오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크흐흐흣, 어디 한 번 또 놀아보자. 디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