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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1장. 누가 매실주를 훔쳤나?
"여왕님이다! 여왕님!!"
『맨 처음 나타난 것은 방망이를 옮기는 열 명의 병사들이었어요. 병삳즐은 네모나고 납작한 몸을 하고 있었고, 네모난 몸 모서리에 팔다리가 나 있었어요. 그 다음엔 열 명의 신하들이 보였어요. 이들은 다이아몬드 무늬를 하고 있었고 병사들처럼 둘씩 짝지어 나타났답니다. 그 다음으로 손님들이 왔는데, 대부분 왕이나 여왕들이었어요. 모두가 정원에 들어서자 드디어 하트의 왕과 여왕이 입장하였답니다.』
"네가 여왕이였냐!?"
하트 여왕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크하트는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트 여왕은 다름이 아니라 이꿈의 주인공 린이었기 때문이다.
하트 여왕은 그런 지크하트를 본체만체했다.
『앨리스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엎드려 왕과 왕비를 맞이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고민 안 해! 안 숙여! 복화술 같은 걸로 강요하지마!"
"...방해하지 말아줄래요, 지크하트? 전 지금부터 축구 경기를 개최할 거거든요?"
마지못해 지크하트와 눈이 마주친 린은 삐죽거렸다.
"축구? 크로켓을 개최하는 것 아니었어?"
"뭐가 됐든지요."
"좋아.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그 경기라는 걸 해야 이 꿈이 끝날거 아냐? 나도 참가하겠어. 빨리 끝내버리자."
"호오. 자신있다는 말씀이시네요? 병정들아! 경기를 시작해라!!"
"예, 여왕 폐하!"
하트 퀸 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정들은 지크하트에게 달려들었다.
"뭐야, 뭐!? 축구라며!" "맞아요, 축구. 다만 지크하트 당신의 역할은 공이라는 것 뿐?"
"하! 내가 이딴 카드병정들에게 당할쏘냐?"
지크하트가 날뛰기 시작하자 트럼프 병사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 나갔다. 카드로 된 몸 때문에 이들은 말그대로 종잇장처럼 날려가 버리는 것이었다.
축구에 참여한 어떤 선수도 공인 지크하트를 찰 수 없었다. 되려 그에게 엉덩이를 안 차였으면 다행이다.
린은 약이 올라서 홱하도 돌더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왕좌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라임이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정말! 남이 기껏 개최한 대회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다니! 아 약올라. 매실주, 매실주를 내어오너라!"
"여, 여왕 폐하! 매실주가... 사라졌사옵니다!"
"도둑이야!"
"매실주 도둑이야!!"
"당장 용의자를 체포해! 재판에 세우자!!"
"와아아아."
신하들과 병정들이 떠들더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크하트의 양 옆으로 다가온 병정들이 그를 체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개 트럼프 병정인 그들은 축구 경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히 지크하트를 체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지크하트를 법정으로 끌고가는 대신에 지크하트가 선 곳을 중심으로 피고인 석을 세우며 법정 자체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하트 왕은 주섬주섬 가발을 꺼내서 뒤집어 쓰는 것이 판사 역할을 수행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였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법정이 완성되었다. 지크하트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야, 뭐?"
"법정에선 정숙하시오!"
가장 상석에 앉은 하트 여왕 린이 라임에게 고개짓을 해보였다.
"시간토끼! 고발장을 읽으시오!
라임은 트럼펫을 세번 분 뒤 두루마리를 펼처 다음과 같이 읽었다.
"하트의 여왕이 매실주를 담궜다. 화장한 여름날에! 앨리수가 매실주를 훔쳐 마셨다! 당장 잡아 대령해!"
"뭐? 내가 뭘 훔쳐 마셔? 이봐. 나 방금까지 축구경기를 하고 있었잖아?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이야! 난 뭘 훔쳐 마시지 않았어! 그보다 재판이라니, 축구경기가 끝 아니었어?"
지크하트가 따지고 들었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평결하시오!"
"아직, 아직이요! 그 전에 더 큰 일을 해야합니다!"
"첫 번째 증인 나오시오!"
"첫 번째 증인!"
라임은 트럼펫 세 번을 불고 나서는 트럼펫을 내려 놓았다. 그리곤 바닥에 내려두었던 주전자와 찻잔을 집어 들었다. 시간토끼가 아니라 모자장수로서의 라임으로 돌아간 것 이었다.
"첫번째 증인 모자장수 대령했습니다"
"무슨 바보같은 상황극이람!"
"이런 것을 들고 와서 황송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불려올때 아직 다과를 못 마쳐서요."
"됐다! 증인은 증언을 하라! 피고가 매실주를 훔쳐마셨느냐?"
"예, 그렇습니다. 제게 마실 것을 가져오라 하시더니 모두 마셔버렸어요."
"야, 라임.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임의 증언을 막아서려던 지크하트는 멈칫했다. 그녀의 증언에서 무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밤 지크하트와 라임은 불침번을 교대했었다. 그때 지크하트는 라임이 증언한 것처럼 목이 마르다며 마실 것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라임이 가져다 준 달콤한 음료를 마셔서 병을 깨끗하게 비운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게 린의 "매실주"였나?
지크하트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피고가 항변하지 않습니다!"
"피고가 범행사실을 자백했습니다!"
"사형!"
"넵, 사형!"
"우앗, 우와악! 자, 잠깐만!!! 잠깐!!! 매실주는 무슨, 그건 매실주스였단 말이야!!?"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목에 칼을 들이대는 순간, 지크하트는 극적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지크하트를 깨운 것은 다름이 아니라 린이었다.
"윽?"
"지크하트 그만 일어나. 남자들 중에선 지크하트가 가장 늦게 일어났어."
"...남자 중에서 말이지? 그럼 여자들 중에선 라임이 가장 늦잠인가?"
린은 조용히 미소지을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린을 보며 지크하트는 큰 한숨을 몰아쉬었다.
린이 취했을때 자장가를 조심해라?
그건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린은 취한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매실주는 술이 아니라 그저 매실주스였기 때문이다. 취해서 다른 사람을 꿈에 초대하는게 아니라, 그저 장난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어젯밤 지크하트와 라임이 그녀의 꿈에 초대가 된 것은 매실주스를 훔쳐 마셨기 때문이다.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취한 척을 하다니. 장난이 심하잖아?"
"어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재미없었어?"
"재미있을리가!"
지크하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 그의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린은 깔깔 웃었다.
"흐응? 그럼 다음엔 조심해. 또 훔쳐 마시면 다음 번엔 거울 나라로 초대할 테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