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14:19:49

마크 캐번디시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마크 캐번디시
Mark Cavendish
MBE
파일:Mark-Cavendish-e1545474854904.jpg
신체 마크 사이먼 캐번디시
Mark Simon Cavendish
출생 1985년 5월 21일 ([age(1985-05-21)]세)
영국 맨 섬 더글라스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틀:국기|]][[틀:국기|]][[맨 섬|]])
신체 175cm, 70kg
종목 트랙, 사이클
포지션 스프린터
메이저 우승 투르 드 프랑스
포인트 종합 1위 (2011, 2017, 2021)
스테이지 우승 35회 (2008~2013, 2015, 2016, 2018, 2021)

지로 디탈리아
포인트 종합 1위 (2013)
스테이지 우승 15회 (2008, 2009, 2011~2013)

부엘타 아 에스파냐
포인트 종합 1위 (2010)
스테이지 우승 4회 (2010)

UCI 로드 월드 챔피언십
금메달 (2011)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기타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영국의 트랙 및 로드레이싱 사이클 선수. 투르 드 프랑스 최다 스테이지 우승자 공동 1위에[1]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역대 최강의 스프린터를 논할 때마다 마리오 치폴리니와 함께 0순위로 언급되는 선수이다.[2] 그러나 한편으로는 리우 올림픽 트랙 옴니움에서 벌어진 한국 선수와의 사고 및 그 이후의 대처로 인해 한국 팬들에게는 미운털이 박혀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2. 상세

영국, 정확히는 맨 섬 출신의 스프린터로 이명은 미사일. Etixx - Quick-step 소속의 에이스로 원래는 트랙 선수 출신이었다. 트랙 선수 출신답게 한번 불이 붙으면 누구도 못따라 오는 강렬한 스프린트로 유명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스프린터 인지라 오르막에 약하다는 약점이 있어 그랑투르에서는 종합 우승보다는 스테이지 우승을 노리는 선수.

한때는 하이로드 팀의 강력한 리드아웃맨들에 의존한 나약한 스프린터 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2010 투르 드 프랑스에서 팀의 서포트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3] 마지막 스테이지 샹젤리제에서의 극적인 우승을 포함, 총 다섯 스테이지 우승과 그린저지 포인트 2위를 차지, 논란을 종식시키고 명실공히 최강의 스프린터의 자리에 등극했다.

특이한 점으로 팀에서 준 잔차가 마음에 안들시 부품을 자기 마음대로 바꾼다. 실제로 스캇도 버린적이 있고 FSA크랭크는 싫다고 듀라에이스크랭크를 다른팀에서 빌려와서 장착한적도 있다..

2011년 투르에서도 샹젤리제 포함 총 다섯 스테이지에서 승리하였고, 생애 최초로 그린 저지도 획득하여 변함없는 폭발력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소속팀 HTC 하이로드가 스폰서쉽 만료로 해체크리가 되었으며 영국 내셔널프로젝트인 팀 스카이로의 이적이 점쳐지고는 있다.

2011년 11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UCI 월드챔피언십 도로부문에서는 브래들리 위긴스, 게런 토머스를 필두로 한 강력한 영국팀[4]의 리드아웃을 바탕으로, 월챔 등극에 성공하였다. 이 공로로 5등급 대영제국 훈장(MBE)을 받았다.[5]

팀 동료인 버니 아일과 함께 예상대로 2012시즌 팀 스카이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2년 TDF에서 브래들리 위긴스의 마이요 존에 주력하기 위해 전략적인 후원이 없었지만 4연속 샹젤리제를 제패,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면서 손가락 4개를 치켜올리는 세레머니를 취하였다.

영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로드 금메달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캐번디시를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코스도 평지 위주로 설계하였다는 후문. 게다가 같은 팀 스카이 소속인 2012 마이요 존을 입은 브래들리 위긴스가 TDF에서 자신의 마이요 존을 위해 희생해준 캐브가 금메달을 딸 수 있게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언까지 했지만 결과는 페이스 조절 실패로 인해 29위에 그치고 만다.
TDF 3 스테이지 승리를 포함, 비교적 성공적인 2012시즌이었지만, 본인은 위긴스, 프룸 등 GC컨텐더 중심으로 구성될 수 밖에 없는 스카이 팀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 결국 2013 시즌에는 1년 만에 다시 새 팀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이적하는 팀은 벨기에의 명문 오메가-파르마 퀵스텝.[6] 토니 마틴, 벨리츠 형제 등 적지 않은 선수와 스탭들이 前 하이로드 동료이며, 마땅한 GC컨텐더가 없는 팀 상황을 감안하면 새 시즌에는 다시 팀의 주력으로 스프린트 승리에 집중할 수 있을 모양이다.

2013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에서 스프린터 우승을 차지했으며 통산 스테이지 100승이라는 기록까지 남기게 되었다.

2016년 현재에는 디멘션 데이터팀에서 서벨로를 타게 되었으며 2016 투르 드 프랑스 1스테이지 1위를 하였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사이클 세부 종목인 포인트 레이스 도중 한국 박상훈 선수와 이탈리아의 엘리아 비비아니 그리고 호주의 글렌 오시어에게 사고를 냈다.캐번디시는 스피드를 조절하면서 52번째 바퀴를 돌다가 바로 뒤에서 추격하는 박상훈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캐번디시의 뒷바퀴에 앞바퀴가 걸린 박상훈은 그대로 쓰려진 반면 캐번디시는 넘어지지 않았다. 캐번디시는 충돌 직전 박상훈을 분명히 봤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는 고의성이 짙었다. 사고 직후 낙차로 의식을 잃은 박상훈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함께 넘어진 나머지 두 선수는 자전거를 수리한 뒤 레이스를 마쳤다. 그러나 캐번디시는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았고, 그대로 은메달을 받으면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현장에서 취재한 외국 기자들의 소셜미디어에 따르면 캐번디시는 사고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영국 언론들도 사고에 대한 질문을 꺼렸다. 결국 캐번디시가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했다. 그런데 비비아니에게만 했지, 글렌 오시어와 박상훈에게는 별도의 사과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7]

체이싱 레전드 등의 다큐를 통해 그를 접한 한국의 사이클 팬덤 및 동호인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 그를 마주할 경험이 있었던 국가대표 출신 사이클 선수들에게마저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상태. 호주 사이클 팬덤의 여론 역시 좋지 않으며, 이 경우는 조금 더 심각하다. 호주는 카델 에반스[8]나 리치 포트와 같은 걸출한 사이클 스타들을 다수 배출한 사이클 강국이며, 팬덤 규모 역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8월 16일 박상훈 선수가 "캐브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사고 직후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고, "박상훈한테 사과한건 아니다. 네덜란드인이 아니지 않느냐." 하던 뻣뻣한 태도에서 급변한 건데, 비난 여론에 밀려서 사과를 했든 진심이든 사고를 당한 당사자가 대인배스럽게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하니 뭐 더이상 이 일로 비난하기도 어렵게 되었지만, 국내에서의 그의 인상은 아폴로 안톤 오노 급으로 추락하게 됐다.

마크 캐번디시, 뚜 드 요크셔에서 복귀하다.
2017년 3월에 부상을 당한 후, 2017년 5월초에 있는 요크셔 투어를 시작으로 경기를 다시 시작한다. 팀 디멘션 데이터 소속으로 계속해서 로드레이싱에 참가했으나, 부상으로 인한 기복과 팀의 빈약한 리드아웃 트레인으로 인해 2016년과는 달리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2020년 바레인 맥라렌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바레인 팀에서는 투르 드 프랑스 최종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당하며 1년만에 계약을 해지했고, 이후 울며 겨자먹기로 드쾨닝크 퀵스텝[9]으로 이적했다. 퀵스텝에 들어간 뒤에도 팀의 메인 스프린터였던 샘 베넷이 작년 그린저지를 획득한 데다가 주요 대회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보여준 만큼 그랜드 투어에는 참가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실제로 대회 시작 직전까지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러나 팀의 메인 스프린터였던 베넷이 대회 직전 무릎 부상을 당한데다가 계약만료를 앞두고 팀과 마찰을 빚는 바람에 캐번디시가 2021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캐번디시가 투르 드 프랑스 이전에 열린 몇몇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나, 본인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피터 사간이 지로 디탈리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데다가 캐번디시 본인 역시 과거 상성에서 사간에게 크게 밀렸던 만큼 그린저지 경쟁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 팬들이 대다수였다. 한국 나이로 3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 역시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캐번디시는 투르 드 프랑스가 개막한 이후 2021년 6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스테이지 4,6,10,13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사이클의 전설 에디 메르크스와 같은 스테이지 34회 우승을 기록하게 되었다.[10] 스테이지 우승만 4개에 포인트 구간에서마저 대다수의 선수들을 압도하며 그린저지 경쟁자들을 큰 폭으로 따돌린 것은 덤이었다.[11] 아직 스프린터로서의 기량이 녹슬지 않았으며, 제대로 된 리드아웃 트레인만 가동된다면 언제든지 월드투어 우승을 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12] 해발 1000m를 아득히 넘는 스테이지 9, 그리고 악명 높은 몽방뚜[13] 구간을 2번이나 오르는 11번째 스테이지에서 컷오프 기준을 통과하며 사실상 마지막 위기를 모면했으며, 결국 포인트 1위로 샹젤리제를 통과했다. [14]

3. 기타

4. 관련 문서


[1] 에디 메르크스가 도핑 논란으로 사실상 영구제명 됐기 때문에 마크 캐번디시가 투르 드 프랑스 최다 스테이지 우승자 단독 1위다.[2] 피터 사간이랑 파비앙 칸첼라라는 올라운드형 스프린터라 제외한다.[3] 2009시즌 6회의 스테이지 우승을 합작해낸 극강의 리드아웃맨 마크 렌쇼가 박치기 반칙으로 투르 중간에 퇴출되고, 다른 팀원들도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2009년과 같은 알고도 못막는 옐로 트레인 리드아웃이 불가능해졌다.[4] 월챔은 일반적인 프로대회와는 달리 국가대항전이다.[5] 작위를 받았다 쓰여 있었는데, 대영제국 훈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전부 기사가 아니다. 이런 식의 오류 때문에, 기사 작위가 남발되는 줄로 아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다. 기사 작위는 전성기의 반짝 공헌만으로 받을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6] 캐브와 스카이의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적잖은 위약금이 오갔다는 정황이 있다.[7] 상세 링크는 이곳을 참조 :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44&aid=0000447193[8] 2011년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자이다![9] 바닥재를 전문으로 제작, 판매하는 독일의 기업인 퀵스텝이 모기업이다. 투어 대회의 종합순위권에는 힘을 못 쓰지만, 원데이 클래식 대회나 스프린트 스테이지에서만큼은 적수가 없다는 게 중론. 특히 스프린터들을 지원할 수 있는 리드아웃 트레인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다.[10] 에디 메르크스는 도핑 논란으로 사실상 영구제명 됐기 때문에 마크 캐번디시가 최초로 34회 우승을 기록하게 되었다.[11] 다만 포인트 2위인 호주 출신 마이클 매튜스와의 격차가 얼마 나지 않아 이 선수를 따돌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12] 물론 캐번디시의 우승에는 퀵스텝의 무시무시한 리드아웃 트레인 역시 한 몫 했다. 콜롬비아의 스프린터인 페르난도 가비리아 역시 역대 투어대회 우승의 대부분을 퀵스텝에서 해냈으며, UAE 에머릿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작년 메인스프린터였던 샘 베넷은 보라 한스그로헤에서 피터 사간의 리드아웃 및 도메스티크 역할만 수행하는 등 수모 아닌 수모를 당했으나, 퀵스텝으로 이적한 이후 마지막 샹젤리제 스테이지를 포함 2개의 스테이지에서 우승하고 그린저지까지 획득했다. 퀵스텝 리드아웃의 주축인 덴마크의 미카엘 모로코브(Michael Morkov)는 캐번디시와 동갑인 1985년생의 노장임에도 웬만한 월드투어팀 스프린터들을 상회하는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13] 프랑스 남부지방의 알프스 산맥에 있는 봉우리. 투르 드 프랑스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 중 하나이며, 마르코 판타니랜스 암스트롱의 맞대결을 포함해 수많은 명장면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수목한계선을 아득히 넘기는 고도로 악명 높다. 실제로 일정 고도를 넘기면 삼림이 사라지고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며, 바람이 심하게 불 경우 아예 진입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2016 투르 드 프랑스 당시에는 몽방뚜 스테이지가 취소되고 다른 구간으로 대체되기도 했다.[14] 아쉽게도 샹젤리제 스프린트 우승은 벨기에 괴물 바웃 반 아트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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