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2:19:01

막스 슈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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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슈멜링
Max Schmeling
본명 막시밀리안 아돌프 오토 지그프리드 슈멜링
Maximilian Adolph Otto Siegfried Schmeling
출생 1905년 10월 28일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주 클레인루코프[1]
사망 2005년 2월 2일 (향년 99세)
독일 니더작센주 벤젠도르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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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70전 56승(40KO) 10패(5KO) 4무
신장/리치 185cm / 193cm
체급 라이트헤비, 헤비급
스탠스 오소독스
링네임 Black Uhlan of the Rhine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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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 주요 승: 지미 리게트 시니어, 래리 게인즈, 로베르트 라르센(2), 페르낭 들라그, 집시 대니얼스, 조 몬테, 조니 리스코, 파울리노 우스쿤둔(2), 잭 샤키, 영 스타이블링, 미키 워커, 맥스 베어, 발터 뉴젤, 스티브 해머스, 조 루이스, 벤 포드, 아돌프 하우저
  • 무승부: 지미 리게트 시니어, 파울리노 우스쿤둔

3. 커리어

어린 시절 복싱경기를 보고 복싱에 흥미를 가졌고 1924년 프로로 데뷔해 8승 1패를 기록했고 1925년 잭 뎀시를 상대 한 적도 있다. 이후 유럽을 제패하고 1928년 미국에 진출해 조 몬테, 조 리스코를 각각 KO, TKO시키며 The Ring에서 주목하기 시작해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1936년 조 루이스와의 1차전을 치렀다. 루이스의 잽을 크로스 카운터로 받아치다가 4라운드 바디샷으로 루이스에게 다운을 뺏어냈다. 이후 유리하게 진행되다가 12라운드에 다시 다운시키며 KO승을 거뒀다. The Ring에서 올해의 대결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파급력이 상당했다.

2년뒤 루이스와의 리매치에서[2] 하지만 경기는 1라운드 2분 4초만에 KO패했다.

루이스전 이후 독일로 돌아왔고 아돌프 후저를 상대로 KO승한 것을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독일 공군으로 징집되었다. 1941년 크레타 전투당시 영국군의 박격포탄으로 인해 오른쪽 무릎을 부상입었고 회복후 후방으로 배치되었다. 미군 포로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전후 함부르크에 거주하면서 돈을 벌기위해 1947년 현역으로 복귀했다. 2연승을 거뒀으나 발터 뉴젤을 상대로 기권패했고 기량 저하를 보이다가 1948년 리하르트 보기트를 상대로 기권패하며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은퇴 후 독일 최초로 코카콜라 독일지부 사장이 되었고 1991년 재단을 창립했다. 1992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고 2005년 사망했다.

4. 파이팅 스타일

당대 최고의 카운터 스트라이커였으며 상대의 잽에 오른손 오버핸드로 카운터가 주 장기였다.

5. 여담

  • 라이벌이였던 루이스와는 2차전이후 친구가 되었고 종종 만나서 이야기하곤 했다. 루이스가 1981년 사망했을때 장례에 직접찾아 장례를 치러졌다. 1995년 인터뷰에서 내 인생엔 아쉬운 것은 루이스가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게 아쉽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 부인은 체코의 영화 배우였던 안나 온드라였고 1933년 결혼했고 1987년 사망했다.
  • 2차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로 유대인들이 잡혀가고 있을때 유대인 아이 2명을 자신의 아파트로 숨겨준 적이 있었다.


[1]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클레인루코프[2]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이 임박했던 시절이라 미국vs독일, 자유주의vs파시즘으로 언론에서 주목을 많이 했다. 아돌프 히틀러도 슈멜링에게 반드시 승리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알려라라고 직접 지시했을정도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