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03 02:05:15

막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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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護跋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행적3. 창작물에서의 막호발

1. 개요

고대 중국위진남북조시대삼국시대서진시대때 선비족의 수령.

모용선비 및 모든 모용씨 연나라(전연, 후연, 서연, 남연, 북연)와 토욕혼의 시조였으며, 모용목연아버지이자 모용외의 증조부였다.

2. 행적

모용부를 세운 인물이지만 그가 부족을 건설할 당시에는 모용이라는 성씨를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

막호발은 지속적으로 조위를 공격하여 많은 위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조위는 막호발에게 '솔의왕'이라는 왕작을 주어 회유하려고 했으나, 막호발은 선비족들을 이끌고 조위의 요서를 정복하여 들어와 살았다.

238년, 고구려군과 사마의의 조위군이 요동의 공손연을 협공할 때 같이 참전했다. 이후 대릉하 유역을 정복하여 근거지로 삼고, 주위의 선비족 집단을 거느렸다.

중국 사서의 기록에는 막호발이 보요관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그의 영토에 피지배층으로 있었던 한족들로부터 보요라고 불리게 되면서 뒤에 그 음이 와전되어 모용이 되었다거나, 하늘과 땅을 흠모하고 해, 달, 별의 용모를 계승했다고 해서 모용을 성씨로 삼게 되었다는 후대의 전설 등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2]

3. 창작물에서의 막호발

소설 《삼국지 간신전》에서는 막족의 차기 족장으로 탁발부가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켜 탁발정을 붙잡았으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굴욕적이고 두렵더라도 살아야 한다면서 자신의 긴 머리를 자르고 보요관을 썼다.

더 이상 막씨 성을 쓰지 않기로 하고 자신을 '호발'이라 했으며, 진유하가 부족 전부를 인질로 보내면 병주에서 목장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면서 삭주에서 유목민들을 견제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진유하가 모용 성씨를 주어 모용호발이라 했는데, 진유하는 막호발이 쓴 보요관이 모용관인 줄 알고 모용이라는 성씨를 준 것이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막호발은 성씨를 쓰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며, 막호발 자체가 이름이었으니 작중 설정이다.


[1] 모용씨는 그의 아들 모용목연의 이름에서 기원한 성씨로 추정되지만, 위서 선비전의 기록을 보면 모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인도 있다.[2] 모용몽골어족-튀르크어족의 원시 공동어 중 하나인 선비어와 가까운 튀르크어무렌, 몽골어바얀과 가까운 원음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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