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1:17:27

말라즈기르트

1. 개요2. 역사
2.1. 중세2.2. 근현대
3. 갤러리

파일:말라즈기르트 터키 1.jpg
말라즈기르트 칼레시 (만지케르트 성채)와 시가지
파일:터키 만지케르트.jpg
만지케르트 전투 기념비

1. 개요

튀르키예어 Malazgirt
쿠르드어 Melezgir
아르메니아어 Մանազկերտ

터키 동부의 도시. 에르주룸에서 동남쪽으로 110km, 아으르에서 서남쪽으로 65km, 비틀리스에서 동북쪽으로 75km, 에서 서북쪽으로 85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 3만의 소도시지만 터키 역사의 전환점인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가 벌어진 상징적인 곳이다. 시내에는 동로마 제국 시기에 세워진 만지케르트 성채와 2개의 아르메니아 교회[1]가 남아있고, 시가지 동남쪽의 당시 전장에는 전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다만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하여 찾는 이는 많지 않다. 역사적으로 3천년여간 아르메니아 인들이 거주했으나 학살과 1차 대전을 겪으며 사라졌고, 현재는 쿠르드계 주민들이 다수를 이룬다. 워낙 시골이라 터키어를 구사할 수 없는 주민들도 꽤 된다고 한다.

2. 역사

파일:만지케르트 터키.gif
말라즈기르트(만지케르트) 구도심 지도

기원전 800년경 우라르투 국왕 메누아에 의해 세워졌다. 한편 아르메니아인들은 전설 상의 시조인 하야크의 아들 마나즈가 세운 도시라 여겨 아르메니아어로 '마나바즈가 세움'이란 의미인 마나바즈케르트라 불렸다.[2] 기원 전후 무렵 일대는 아르메니아 왕국의 느슨한 지배 하에 마나바즈의 후손을 자칭한 나크하라르 출신 마나바즈얀 가문이 통치했으나 서기 333년 아르메니아 국왕 호스로브 3세가 일족 전원을 학살하고 직접 지배를 확립하였다. 이후 일대는 아그비아노스얀 가문에게 주어졌고, 서부 아르메니아의 무역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2.1. 중세

파일:만지케르트 터키.jpg
말라즈기르트 성채

중세에는 그리스어로 만지케르트(Μαντζικέρτ)라 불렸다. 7세기 중엽 이슬람 정복 후에도 일대는 큰 간섭을 받지 않고 기독교 지역으로 남았다. 726년에는 만지케르트 공의회가 열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시리아 정교회의 대표단이 모여 칼케돈 공의회를 규탄하고 단성론 신앙을 규정하였고, 이로써 아르메니아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와 완전히 결별되었다. 다만 771-72년의 아르메니아 봉기 후 압바스 왕조는 아랍 부족들의 아르메니아 이주를 권장하였고, 만지케르트에는 바누 술라임 등이 정착하였다. 압바스 조의 느슨한 지배 하에 만지케르트는 상공업이 발달하여 아르메니아 지역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부상하였다. 한편 9세기 중반 압바스 조가 쇠퇴하자 아랍계 카이스 후국이 세워졌고, 만지케르트는 그 수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860년 성립된 카이스 후국은 아르메니아 왕국 (바그라트 왕조), 동로마 제국, 함단 왕조의 순으로 복속했다가 결국 964년 후자의 알레포 아미르 사이프 앗 다울라에게 병합되었다. 다만 968년 동로마 장군 바르다스 포카스가 만지케르트를 점령하여 3세기 만에 동로마 제국령으로 복귀시켰고, 바스푸라칸 테마에 편성되었다. 1054년 셀주크 제국의 술탄 투으룰이 친정하여 만지케르트를 공격했으나 바실리오스 아포카피스 휘하 동로마 수비대에 격퇴되었다. 다만 1060년대 셀주크 군은 결국 만지케르트를 점령하였고, 1071년 로마노스 4세가 친정에 나서 공성전 끝에 셀주크 수비대를 항복시켰으나 이어진 8월 26일, 아흘라트 방면 평원에서 벌어진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알프 아르슬란에게 대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승전 후 셀주크 군은 만지케르트를 약탈, 주민 대다수를 학살하였고 도시에 방화하여 전소시켰다. 이후 도시는 튀르크식인 말라즈기르트라 개칭되었다. 다만 셀주크 제국 역시 얼마 안가 분열되었고, 1100년경 만지케르트는 아흘라트에 기반한 아흘라트샤 (에르멘샤) 왕조령이 되었고, 파괴된 성벽과 시가지가 복구되었다. 조지아 왕국에게 시달리던 아흘라트샤 조는 1207년 아이유브 왕조에 흡수되었고, 1232년 카이쿠바드 1세가 점령하여 룸 셀주크령이 되었으나 10여년 후 몽골 제국군에게 함락되어 재차 파괴되었다. 또다시 파괴된 도시는 재기하지 못하고 쇠퇴하였다. 그후 일대는 일 칸국, 흑양 왕조, 티무르 제국, 백양 왕조, 사파비 왕조, 오스만 제국에 차례대로 소속되었으나 소도시로 남았다.

2.2. 근현대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말라즈기르트의 타원꼴 중세 성벽은 온전히 남아있었으나 1903년 4월, 규모 7의 강진이 강타하며 일대에서 3천 5백여명이 사망하고 1만 2천 채의 건물이 파괴되었을 때에 붕괴되었다. 이는 21세기 들어 일부 복원되었다. 1915년 말라즈기르트는 비틀리스 빌라예트에 속한 인구 5천의 읍이었고, 곡물 경작 및 교역과 수공업 등이 주요 산업이었다. 당시 주민 대다수는 아르메니아계였으나 아르메니아 대학살 후 현재는 대부분 튀르크계로 구성되어 있다. 1915년 5월 말라즈기르트는 러시아 제국군에게 점령되었으나 1917년 오스만 제국군이 수복하였다.

3. 갤러리

파일:말라즈기르트 터키.jpg

파일:만지케르트 터키 2.jpg

파일:터키 만지케르트 1.jpg

파일:말라즈기르트 터키 2.jpg

파일:만지케르트 터키 4.jpg

[1] 예르크 코란 수르브 아스트바트사트신, 수르브 고브록 (성 요르요스)[2] 아르메니아어로 -케르트는 ~에 의해 건립됨이란 뜻이다